드디어 한 학기가 끝났습니다.
언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는지도 모르겠군요.
현대인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시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stop and think”를 소박하게나마 실천해보고자 했던 한 학기였습니다.
제12강 수업은 김영수가 담당했습니다.
12월 16일은 학생들의 학기말 논문발표회가 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의 참석을 바라겠습니다.
- 장소: 정치학과 세미나실 644호
- 시간: AM 9:30 - PM 3:00
발표회가 끝난 뒤, 망년회를 겸해 금년 수업을 평가하고 내년 수업을 준비하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금주 읽은 텍스트
1. 28장. 우남숙, “민족국가의 발견”
2. 29장. 전상숙, “계급의 발견”
3. 30장. 김용직, “3.1운동의 정치사상”
4. 31장. 정윤재, “민족생존의 정치사상: 민족개조론과 민족문화건설론”
5. 종장: 김홍우, “한국정치사상 연구의 새로운 지평”
학생들의 발표내용
【1】이헌미
1. 매우 힘든 한 학기였다. 많은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심하며 읽은 자료들일수록 말더듬이가 되어서 한 줄도 슬 수 없는 기현상에 시달렸다.”
2. 첫 시간에 읽었던 김홍우, “한국정치사상 연구의 새로운 지평”에서 정치적 사고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함께 말하기의 중요성-구술적 전환 oral turn>을 수업이 다 끝나고서야 자각했다.
3. 나는 ‘벌거벗은 공동목욕’ 따위는 어차피 불가능하며, 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인과 말을 섞고 나눔 없이 정치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넌센스다.
4. 여러 가지 난점이 많았지만, 얻은 점도 많았다. 첫째, 중세사에 친근해졌다. 둘째, 중국대륙과 한국사와의 관계를 연속적으로 볼 수 있었다. 셋째, 고려사절요 및 조선왕조실록 등 1차사료를 읽어야겠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5. 이 수업이 pre-graduate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강의구성 방식이 변해야 한다. 첫째, 강사들 사이의 coordination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전체 강의 내용과 형식에 관해 사전 계획이 확실히 수립되어야 한다.
6. 대학원 수업이 너무 통사적이고 방대하다. 한 시대나 하나의 주제에 한정하면 좋겠다.
7. 처음 1-2회는 정치사 내지 정치사상사 방법론 및 연구계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8. 이상의 점을 반영하여 reading list가 재정비되어야 한다.(1차사료의 적절한 배치, 해당주제에 관한 대표적 논문의 선택)
9. 휴머니즘이란 너무 많은 희망을 품지도, 너무 많은 절망에 빠지지도 않는 것이다.(오에 겐자부로) Without too much hope or too much despair, he had simply dealt with the suffering as best as he could. He was truly an authentic man.(<히로시마 노트>中)
10. “생각만 하기보다 실행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 소설을 쓰는 동안은 나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회사의 엉성함에 대해서도, 세상의 모순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침묵하며 쓸 뿐이었다. 이윽고 나의 인생이 시작됐다는 증거임에 틀림없다.”(마루야마 겐지, <소설가의 각오>)
11. 나 또한 방법론에 대한 불평을 그치고, 이러한 사상사가 과연 사상사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대신, ‘나의 인생’을 시작해야겠다.
【2】김동한
1. 지난 학기에 서양고대정치사상과 동양정치사상 수업을 듣고, 이번 학기에 한국정치사상 수업을 들었다.
2. 홀가분하다. 매주 목요일 밤마다 불면의 밤을 새우며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3.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한국정치사상의 묘미를 깨달았다. 박현모 선생님의 <정치가 정조>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강상규 선생님의 논문과 강의를 통해 한국정치사상 연구 방법론에 깊이 천착하게 되었다.
4. Thinking과 논평은 모두에게 고역이었다.
5. 방대한 내용을 초심자가 사유하고 논평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다음 학기에는 한 시대만을 강의하더라도 심도있게 했으면 좋겠다.
6. 시대별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 시대별 기본 문법을 소개하는 introduction과 추천도서가 필요하다.
【3】김동민, “나는 급진주의자이고 싶다”
1. 3.1운동을 서구에서 보편적 가치로 승인된 자유, 평등, 비폭력 등의 보편적 개념에 의한 계몽주의적 자유주의 운동으로 평가한 김용직 선생의 견해는 나이브하다.
2. 독립운동은 원천적 계약파기에 관한 문제이다. 즉, 헌법 이전의 문제이다.
3. 일본에게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암묵적 승인이다.
4. 일본 제국주의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다.
5.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민권운동이 아니다.
6. 따라서 3.1운동에 어떠한 급진적 사상도 없고, 급진주의는 피해야 할 것으로 보는 김용직 선생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7. 식민시대는 조선인에게 전쟁의 상황이다.
8. 전쟁의 시점에서 급진주의자가 되는 것은 civic virtue이다.
【4】시로자키 테페이
1. 조선의 자강 독립사상은 일본 청에서 번역된 수입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조선이 직접 수용하지 못한 것은 성리학의 전통 때문인가?
2. 서구사상의 번역에 대해, “서양제국이 문명의 발전소라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문명의 변압소이다”라고 높이 평가하는 견해(가와가츠 헤이타 川勝平太)가 있다.
3.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번역이 서양 사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4. 자강 독립사상에서는 한민족의 단합을 강조하는데, 일본의 학자들은 최근까지도 한국인의 당쟁적 분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5. 당쟁의 원인은 엄격한 근본주의에 있다고 본다.
6. 일본학자들은 한국인의 공의식이 종족에 한정되고, 타인에 무관심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근대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을 강조하여 단결을 도모했다고 본다.
7. 그러나 이는 근대화에 부적절한 문화적 요소로 평가된다.
8. 조선의 자강이론이 우승열패, 약육강식을 강조하면 일본의 대조선정책도 합리화될 가능성은 없는가?
9.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은 가장 비타협적인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왜 해방후 이들이 체포되었는가?
10. 일본 좌파는 1930년대 후 군부의 팽창정책이 대공황대책으로 성공하자 많이 전향했다.
11. 그들은 미국과의 전쟁을 자본주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12. 근대 일본에는 조선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이 존재했다: 1. 탈아입구파: 조선의 문명개화를 돕는다. 2. 아시아주의파: 조선은 일본에 의해 서구제국주의에서 해방된 모델이다. 3. 현실주의파: 조선은 일본 안보의 중요지역이고 대륙진출의 거점이다.
13. 일제하 조선 국내의 민족주의 운동은 두 개로 대별된다: 1. 타협적 민족개조론 2. 비타협적 민족문화건설론
14. 현대의 평가는 민족문화건설론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식민지기에 그 영향력은 어느정도였는가? 민족주의에 의해 과장되지는 않았는가? 서울대 국제지역원의 박태균 교수에 따르면, 식민지기에 조선인의 99.9%는 일제의 통치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5】이택선
1. 우남숙의 글에서 김가진은 합방론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김가진은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나, 가족을 이끌고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 전상숙의 글을 볼 때, 박헌영은 독립후 민족국가에 대해 구체적인 구상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동휘와 신채호에게는 투쟁만 생각하고 그러한 요소가 없다.
3. 김용직의 글은 3.1운동 당시 복벽주의나 입헌군주제론자들의 흔적을 상대적으로 경시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4. 정윤재는 민족개조론자들을 비판하고 민족문화건설론자들을 옹호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 역시 1차대전시 영국에 협력하여 자치권을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김동명, 김용직의 논의를 참고하여 보완하면 민족개조론자들에 대해 새로운 측면이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5. 이번 학기 한국정치사상 수업은 서양정치사상을 전공하는 나에게 이 분야에 대한 친밀도를 크게 높였다.
6. ‘소통’의 수업 덕분에 다소 장황하고 초보적인 나의 논지의 독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한국정치사상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이 분야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7. 한국정치사상 분야는 블루오션이자 황금광으로 그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나, 아직 독자적인 위상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국사학이나 국민윤리교육, 정치철학과 확실한 구별짓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8. 나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과 심지어 한국을 다루는 이 분야에서도 이른바 “순 조선의 것으로 옷을 해 입히려는 노력”(홍명희)이 크게 부족하다는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9. “최근의 문학은 또 구미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洋趣가 있는 편인데, 임꺽정만은 신간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홍명희, 삼천리, 제5권 9호, 1933.9)
학생토론
토론은 전 시간과 동일하게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둘러싸고 이루어졌습니다. 시로자키는 식민지배에 대한 조선인의 인식이 나쁘지만은 않았으며, 식민지배의 가혹성에 대한 한국사의 설명은 해방 이후 민족사관에 의해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암시했습니다.박태균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은 그 점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 김동민은 “나는 일제하의 민중이 일제 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또한 힘의 관점에서 한국이 무력했다는 것에 대해 어떠한 가치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제의 지배가 부당하다는 것,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타협 없이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영수는 1. 정치사상이나 정치철학이 ‘정치’위에 서있는 한, ‘힘’을 경시하는 것은 비정치적이다. 2. 다수의 동학교도들이 일진회에 참여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이 간과된다면 독립을 위한 투쟁은 비현실적이 되며, 당대의 고민을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저의 경우는 이번 수업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몇 가지 소회를 느꼈습니다.
1. 한말 이래 수 십 년 동안 정치적 격변 이상으로 얼마나 격심한 정신적 고투와 급진적 변화가 일어났는가.
2. 신채호, 박은식, 장지연 등의 한말 민족주의가 유교를 전면 부정하고 사회진화론을 기본적인 세계관으로 수용한 것은 노예화된 조선에 대한 비통함 속에서 나타났다.
3. 그 비통함을 통해 그들이 발견하고자 한 것은 ‘현실’이었다.
4. 그러나 한말 이래 조선의 사상은 ‘현실’에 대면하기를 매우 힘겨워 했다.
5. 후쿠자와와 달리 서구의 수용을 <문명개화론>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나, 민족, 국가, 계급을 발견하고 수용하는 데 고통을 느낀 것은 그 구체적인 사례이다.
6.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사상의 중요한 주제중 하나는 ‘현실’과 현실로서의 ‘힘’을 조선의 사유 속에서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아울러 한 학기동안 저희들이 계속 관심을 기울여 온 <thought as a thinking>이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했으나, 학업에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또한 이헌미양의 지적대로 thinking은 결국 <서로 말하기>를 살리는 것이라는 점을 수업의 끝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학생들과 합동강의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5년 12월 12일
김영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