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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기쁨과 확신
(구원의 안전보장 그리고 확신이 주는 기쁨)
-조지 커팅 지음-
구원 방정식
문장으로 길게 쓰인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때 문장을 잘 읽고 분석하여 여러
변수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한 뒤 방정식을 세워서 풀면, 어렵고 복잡해 보이던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을 경험 적이 있을 겁니다. 이와 비슷하게, 복잡해 보이는
인간의 구원 문제도 몇 개의 변수로 나누어 요약/정리하면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필요성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그것들을 만든 존재 즉 메이커가 있습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펜, 의자, 자동차, 책 등이 모두 메이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모든 메이커는 자기가 만든 물건이 설계대로 만들어졌는지 판단한 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물건은 따로 분리하여 폐기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메이커가 있습니다.
물건도 메이커가 있는데 하물며 물건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고등 존재인 사람이
무(無)에서 그냥 생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을 만든 메이커 역시 자기가 만든 사람이 자신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는지 여부를 반드시 판단합니다(행17:31; 히9:27).
이 같은 심판에서 부적격자로 드러난 사람은 메이커가 폐기합니다.
성경은 이 같은 메이커를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사람이 심판 받은 뒤 폐기되는 것을 ‘영원토록 지옥 불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계20:11-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러한 폐기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나를 만든 메이커가 있는가, 없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구원의 방해물
사람과 물건 간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곧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자신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난 부적격자로
판정하시는 근거가 '죄'라고 말하는데 성경적 의미의 죄란 ‘목표에서 벗어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사람을 만드시며 사람이 자신의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셨습
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유의지를 이용하여 고의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분의
목적에서 벗어나 그분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를 지었습니다(롬3:23).
첫 사람 아담에게서 시작된 이 죄의 독은 사람의 핏줄을 타고 전 인류에게 퍼졌습니
다(창5:3; 롬3:10). 그 결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아담과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에게 육체적 사망이 임했고(롬6:23) 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결국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서 지옥 불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셔서 티끌만큼의 죄도 차마 보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합1:13). 그러므로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과연 나는 죄가
있는가, 없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구원 계획
그러면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공장에서 갓 만들어진 펜이 하나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이 펜은 쓰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설사 이 펜이 자기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해도 그것이 자기를 고치거나 혹은 그 옆의 펜이 그것을 고칠 수 없습니다.
같은 범주에 속한 것들이 서로의 잘못을 인식할 수 있다 해도 고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앓고 있는 죄라는 병 역시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
즉 공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마더 테레사, 교황, 교주, 목사, 사제
등이 절대 고칠 수 없습니다.
펜을 설계한 메이커만이 펜을 고칠 수 있듯이, 사람과 차원이 다른 외부의 고등 설계자
즉, 사람의 설계자인 하나님만이 사람의 죄의 독을 제거함으로써
죽음과 심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행4:12).
4. 구원 방법
사람의 죄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처녀 탄생을 통해(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여)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죄 없는 삶을 사시고
온 인류를 대신하는 완전한 희생 예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단번에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셨습니다(마1:23; 고후5:21; 히9:26).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죄가 되셔서 하나님의 뜨거운 지옥 불 심판을
다 감당한 뒤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몸으로 부활하셔서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기나 햇빛같이 사람에게 필수불가결한 모든 것을 거저 주십니다.
이런 것들은 너무 귀하기 때문에 사람이 선행이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 역시 오직 하나님께서 선물로, 은혜로 거저 주십니다(롬5: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속죄 사역을 믿기만 하면
행위와 상관없이 은혜로, 선물로 공짜로 구원받습니다(엡2:8-9).
5. 구원의 확신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말을 믿습니까? 그 사람의 신실함에 근거해서 믿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 곧 온 천하 만물을 만드신 분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사람의 말을 신뢰하지 말기 바랍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창조자 하나님 그분이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기에 우리는 그것이
진리임을 믿습니다(요14:6).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롬6:23).
6. 구원 초청
인생은 마치 기차역을 향해 달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단 몇 시간을
아끼려고 열차 시간에 늦지 않게 부지런히 역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원이라는 무궁한 시간을 아끼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은 언제 당신에게 닥칠지
모릅니다(히3:13). 나이와 직업과 성별과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오늘 그 시간이
당신에게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드신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서 베푸시는 방법을 그대로
믿고 수용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태어나는(거듭나는) 기적이
당신에게 일어납니다(벧전1:23).
오직 그분의 말씀만을 신뢰하십시오. 그분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값없이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 미루지 말고 오늘 주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7. 구원 방정식의 요소들 설명
1. 하나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온 세상 만물은 다 만들어졌습니다. 즉, 창조자가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가장 고등한 생명체 역시 그냥 우연히 생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메바 같은 단순한 생명체에서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꾸며낸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크기를 제대로 측량하기조차 어려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지구가
그냥 생기는 것은 열역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든 창조자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첫머리에서 그 창조자를 ‘하나님’(God)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당연히 우주보다 더 크고 권능이 월등하게 넘치는
분이어야 합니다. 또한 온 세상 만물보다 훨씬 더 고등한 존재여야 합니다.
또한, 온 천하 만물을 만드신 창조자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스스로 계신
이(I AM)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출3:14).
이 말씀이 보여 주듯이,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자시요, 만들어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분이십니다. 이 온 우주 공간에 “나는 I AM이다. 즉,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영원 전에도 I AM이시요, 지금 이 순간도 I AM이시요, 영원한 미래 속에서도 I
AM이신 분 즉, 변함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 바로 성경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권능과 위대함과 전능함을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무한대의 지혜와 능력과 위엄과 영광과
공의와 사랑과 진노를 지닌, 측량할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가 영원토록 무한하듯이,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와 심판 역시 영원토록
무한합니다.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
이렇듯 무한한 권능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구는 먼지보다도 작고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은 먼지의 100만 분의 일도 안 되는 매우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 ‘거룩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창조자 하나님은 창조물과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는 존재라
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님이시요, 창조자이시고 사람을 포함한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다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자 하나님의
‘거룩함’입니다.
2. 사람
(1) 사람의 창조와 타락
사탄 마귀는 원래 하나님의 왕좌가 있는 셋째 하늘에서 주님을 섬기던 존재였습니
다. 사실 그는 매우 특별한 창조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는 천상의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겔28:14).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마음속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처럼 되어 보겠다는 불법이 생겨나자 그는 자신을 따르는 악한 천사들과
함께 반역을 일으켰다가 결국 하나님의 왕좌가 있는 곳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마귀는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다가
마침내 이브(사람 아담의 배필, 첫 여자)에게 접근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였고 또 이브는 그것을 아담에게
먹게 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심연(深淵)의 간격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에서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도록 허락하셨습
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금지 항목을 두셨는데 그것은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인 자유의지
를 시험하기 위한 하나님의 장치였습니다. 이 제약의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선하게 사용하여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습
니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의 유혹에 속아서)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를 따르게 되었고
그 결과 죄가 그에게 들어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였습니다(창1:26-27).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고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의 형상 중 일부만을 유지한 채 본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뒤 아담의 후손들은 다 아담의 형상에 따라 죄 가운데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대로 자기 형상에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더라(창5:3).
죄로 인해 사람은 다 결국 늙고 병들어 육신적으로 죽게 되었고(창5:5)
또 죽는 날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사람 즉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 곁을 떠나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지옥 불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마 25:41).
(2) 사람의 상태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엡2:1-3)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 즉, 죄 가운데 태어나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이제 막 새로 구매했지만 아직 개통되지 않은 스마트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에 가입되지 않아도 이 스마트폰은 거의 모든 기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전화기로서의 본연의 역할 즉 의사소통은 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개통되지 않은 스마트폰처럼 거의 모든 기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인간 본연의 존재 목적 즉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은 할 수 없습니다.
통신사에 가입해야 통화할 수 있듯이 사람도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가입해야 그분과 의사소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구원받아 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최신 스마트폰이라 할지라도 통화할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전화기라 할
수 없습니다. 구형 전화기라도 깨끗한 음질로 통화가 가능하다면 전화기로서의
자격을 충족시킵니다. 전화기의 생명이 통신사와의 연결에 달린 것처럼,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과의 연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명예와 권세와 학식이 높다 해도 통화가 안 되는 전화기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성경대로 그는 마귀의 자녀요,
진노의 자녀입니다(요일3:10; 엡2:3).
또한, 아무리 선행을 열심히 하여 하나님께 도달하려 한다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사람의 선행과 의로운 행위는 다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합니다
(사64:6).
오직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분과 같이 달리고
그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 그분과 같이 부활하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구원받은 사람은 즉시 천국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이란 이처럼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복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엡2:4-7).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이토록 놀라운 ‘인간 구원 드라마’를 천사들과 하늘의
영적 존재들에게까지 드러내 보이시고자 하십니다(엡3:10).
이로써 하나님의 친절과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은 다가오는 영원한 시대
속에서 무궁토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람 안에는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만한 요소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구원에서 사람의 행위가 이바지하는 것은 0%이고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는 100%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행위는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구원받은 이후에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으로 자신을 갈고닦아 시간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가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뒤에는 반드시 선한 행위의 열매가 드러나야 합니다.
(3) 사람의 구속(救贖)
성경에서 ‘죄’란 근본적으로 ‘설계자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창조물이 창조자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 곧 죄이며
이 죄의 뿌리에서 나오는 열매가 바로 우상숭배, 살인, 간음, 동성연애,
시기, 질투 등의 ‘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에 이르도록 즉 자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는
성경 기록대로 죄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나
마치 설계대로 나오지 않은 불량제품이 폐기되듯 지옥 불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절망적 상황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의 창건 이전에 한 방법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가 무한하시고 사랑이 무한하신 분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이 두 성품 중 어느 하나를 양보하거나 완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한 공의와 무한한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키시며 사람을 구원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온 우주 공간 어디에도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를 충족시킬
완전한 희생 예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죄가 되어 죽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완전한 공의의 심판을 그분에게 쏟아 부으셨고
이로써 자신의 거룩함과 공의를 완전히 충족시키셨습니다(고후5:21).
또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속죄의 희생물로 죽임을
당하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완전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시면서
사람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피로써) 깨끗이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세상의 창건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히9:26).
3. 믿음: 구원의 핵심 요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아 구원받으려는 사람에게 단 하나만을 요구하시는데
그것은 곧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사람의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이런 종교들은 악행을 극복하기 위해 선행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8 구원의 기쁨과 확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주인에게 귀여운 강아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강아지가 길에서 놀다가 갈비뼈다귀를 발견하였습니다.
강아지는 그것이 먹고 싶었지만 자기를 아끼고 보호해 주는 주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그것을 먹지 않고 물어다가
주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 뼈다귀를 보자마자 즉시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는 오히려 강아지를
나무라며 더러워진 강아지의 몸을 씻겨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쓸데없는 일은 하지 마. 네가 가져온 이 뼈다귀가 오히려 집안을
더럽게 하지 않니? 너는 그저 나만 바라보고 나를 믿고 기뻐하며 내 품 안에서
마음껏 뛰놀면 돼.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다야.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바로 이 쓸모없는 갈비뼈다귀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선행, 위대한 업적, 찬란한 지식, 고매한 철학,
각종 종교 행위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뼈다귀 즉,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더러운 뼈다귀에 불과합니다.
믿음이란 마치 강아지가 제 주인을 알아보고 그의 보호를 확실히 믿으며 그의
품에서 기뻐 뛰어놀 듯이, 사람이 자신을 만든 창조자 하나님을 알아보고 믿으며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의 품 안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것입니다. 즉, 창조자 하나님
외에 나를 보호하고 나를 온전하게 해 주실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그분만을
신뢰하며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기뻐하는 단순한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입니다.
4. 은혜: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 선한 행위나 재물,노력, 학식, 지혜 등이 구원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까요?
아니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일까요?
우리 주변을 돌아봅시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해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요소인 공기나 햇빛 등은 사람의 공로나 행위와 상관없이
거저 주어집니다. 이것들은 그 가치가 너무 커서 감히 어느 누구도 그 값을 지불하고
누릴 수 없습니다.
70-80년의 인생에서 누리는 모든 자연환경도 사람이 그 값을 지불할 수 없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사는 삶을 과연 사람이 자기 힘이나 노력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공짜로 즉,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
100%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엡2:8-9).
5.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거대한 개미집이 있습니다. 선량한 사람이 지나가다
그것을 발견했는데 공교롭게도 저 멀리 홍수가 나서 잠시 후에는 사나운 물길이
개미집을 온통 집어삼킬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량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개미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 수많은 개미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이 개미가 되어 개미들 가운데로 들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 즉, 지금 빨리 개미집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으면 잠시 후
홍수로 몰살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분이신 성자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직접 사람의
육신을 입고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창조물인 사람들이 그분을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한 날을 정하사 그 날에 자신이
정하신 그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터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그 사람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한 확신을
주셨느니라(행17:30-31).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 누구에게나 회개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소망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증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장차 하나님께
서 정하신 그 날에 심판자로 이 세상에 임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친히 구원의 길을 여시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렇듯 오직
예수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으므로 기독교는 타종교와 달리 절대적으로 배타적입니
다. 그러므로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와 WCC 종교통합운
동 등은 모두 하나님과 상관없는, 진리를 떠난 사람들의 어리석은 종교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희 모두와 이스라엘 온 백성은 이것을 알라, 곧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곧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이 온전하게 여기 너희 앞에 서 있느니라. 이분은
너희 건축자들이 업신여긴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행4:10-12).
6. 선한 행위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의 구원에는 사람의 그 어떤 행위도 일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에 따라 구원받은 이후의 성도는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누구나 다 구원받고
말씀 안에서 자신을 훈련하며 나날이 영적으로 성장하여 장성한 분량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선한 행위를 하며 자신을 희생하여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내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로 거저 주시는 구원에는 어떤 차등도 두지 않지만,
본래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구원 이후에는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달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선수가 상을 바라보고 결승점까지 전력을 다해 달리듯
이, 생을 마감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며 복음을
알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는 선한 믿음의 행위를 신실하게 행해야 합니다(히
11:6).
7. 불신자에 대한 최후의 심판
보상에만 하나님의 공의가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형벌에
도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가 적용됩니다. 생전에 심히 악한 죄를 저지르고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며 하나님께 대항한 사람들, 복음을 증언하는 크리스천들의 경고를
수없이 받고도 이를 무시하고 경멸한 사람들은 유황으로 타는 불 호수에서 더욱
뜨거운 형벌의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엄중한 공의를 영원토록 쉼 없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계20:11-12).
이 말씀은 구원받지 못하고 그리스도 밖에서 죽은 자들이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
다 불려 나와 크고 흰 왕좌 심판석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심판 뒤에 불신자들은 사탄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지옥
불 속에 들어가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8. 구원 초청
아침 출근 시간에 밖으로 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그야말로 분주하게 단
몇 초를 아끼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지나가는 시간은 양초가 불꽃을
내며 연소하여 없어지듯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입니다.
흐르는 물과 같은 시간 속에 사는 사람에게 절실하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장성해서 결혼하면 자녀를 낳고 행복한 삶을 위해 땀을 흘리며 일합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누구나 안정되고 행복한 노년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다음
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정작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기도 힘든 세상이기만 그런 노년은 고작해야 20년에서 길면
30년 정도입니다. 그 이후에 펼쳐지는 끝없는 시공간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처럼 각종 보험이 넘쳐나는 때에도 죽은 후에 삶을 보호해 줄 보험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험이 제공하는 안전장치라고는 고작해야 죽은 후에
유가족들에게 지급되는 사망보험금 정도뿐입니다. 이것 외에는 그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는 것이 언젠가는 꼭 죽어야 하는 사람이 맞이할 냉정한 현실입니다.
당신은 죽은 뒤의 삶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창조자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 시간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언제 당신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이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며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셨다면 그 문제를 더는 뒤로 미루지 말고 바로 오늘 이 시간에 당장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때에 서로 날마다 권면하여 너희 중의 아무도 죄의 속임수를
통해 강퍅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하라(히3:13).
기회는 항상 당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특히 구원의 기회를 놓쳤을 때 감당해야
할 대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무한대의 영역에 계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무궁토록
바로 당신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맹렬한 속도로 날카롭게 돌아가는 원형의 칼날 바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칼날이 닿기 직전까지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칼날과 당신이 아직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당신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그 날카로운 칼날에 당신은 결국 파멸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당신 앞에 놓인 날카로운 칼날을 저 멀리
치워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누구든지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값없이, 거저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놀라운 특권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온 세상 우주 만물을 공동으로 상속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무지와 교만과 고집을 내려놓고 지금 바로 당신의 창조자이
신 하나님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끝끝내 진리를 거부하고 마지막 기회마저 소진하며 이 세상을
떠나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되는 것을 절대 원치 않으십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지금 당장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벧후3:9-10).
12 구원의 기쁨과 확신
구원의 방법, 지식, 기쁨
인생은 여행하고 있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우리는 다 과거라는 역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영원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될 순간이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저는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느 대열에 속한 채 여행하고 있습니까?”
인생 여정이 나그넷길이라면 당신은 다음의 세 대열 중 한 대열에 속한 채 여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1대열: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들
제2대열: 구원의 확신이 없고 그 확신을 갈망하는 사람들
제3대열: 구원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사람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어느 대열에 속한 채 여행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영원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므로 여기에 무관심하다면 이는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사실 이것은 창조주로서 결국 우리를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설 인간
모두를 향한 중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막 떠나려는 기차에 헐레벌떡 뛰어와서 가까스로 올라탔습니다.
아직도 숨이 가빠 헐떡이며 땀을 씻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놓치실 뻔했는데 참 잘 뛰셨습니다.”
“네! 물론이죠. 이 열차를 타지 못했더라면 네 시간이나 무료하게 기다려야 했을
테니까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처럼 달리다니!”
네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이처럼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진대 하물며
영원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현세에서의 행복을 추구하고 이것을 위해서 늘 장기적으로
계획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앞에 놓인 영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가 분명히
증언해 주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죽은 다음에 있게 될 심판을 무시한
채 마침내 큰 구렁 저편에 있는 지옥에서 발버둥 치게 될 몸서리치는 불행을 도외시
한 채 인류는 이제 불행의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으며 하나님도 죽음도 심판도
하늘나라도 지옥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을 열어 주셔서 당신이 자칫하면 헤어날 수 없는 영원한
불행의 문턱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믿든지 혹은
믿지 않든지 간에 위에서 말씀드린 것이 바로 당신의 운명이요, 모습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영원의 문제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미루는 것은 당신 자신을 도둑질하는
것과도 같고 당신 자신을 죽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루 미루는 일이 열흘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양 속담에 “미루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이 영원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미루고 있다면 당신은 영원토록 후회하게 되실지 모릅니다. “차차라는
길은 영원이라는 마을로 인도한다.”는 스페인 격언이 있습니다. 더 이상 ‘차차’라는
길로 걷지 마십시오.
보라, 지금이 받아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분은 “그런데요. 저는 결코 제 영혼에 관해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구원을 확신할 수 없을 뿐입니다.”라
고 말합니다. 이런 분은 둘째 대열에 서서 여행하고 있는 분입니다. 무관심과 불확신은
모두 불신이라는 한 가지 요인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불신으로 말미암아 무관심이
생겼고 마침내는 죄와 타락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불확신이
생겼고 그래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해결책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확신을 갖고자 갈망하는 당신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저는 당신 영혼의 깊은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당신이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면 할수록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해결책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막 8:36)
인자한 아버지의 외아들이 항해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탄 배가
풍랑으로 인해 외딴 곳에서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때 그 아버지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확실한 곳에서 듣기 전까지는 결코
마음을 놓지 못할 것입니다.
혹은 당신이 어느 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밤은
깊고 날씨도 추우며 빛도 없고 길이 험하여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두 갈래 길이 나오는 곳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을 만나 반가운 마음으로 그에게
자기가 원하는 곳에 이르는 길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글쎄요. 저 길로
가시면 맞을 것 같습니다만 저도 초행이라서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부디 길을
잃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면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으실까요?
어두운 밤, 초행길에 방향을 모르고 간다는 것은 점점 당신에게 불안과 초조를
더해 줄 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에 대해 염려하고 초조한 나머지
침식을 잊게 된다거나 심한 갈등이나 초조감에 빠지곤 합니다.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의 영혼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재물을 잃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은 더욱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혼을 잃게 된다면 이야말로 돌이킬 수가 없는 영원한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저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당신에게 세 가지를 확실히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적인 용어로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원의 방법(사도행전 16장 17절)
2. 구원의 지식(누가복음 1장 77절)
3. 구원의 기쁨(시편 51편 12절)
얼핏 보면 지금 말씀드린 세 가지 사실이 서로 비슷한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습니
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사실 근본적으로 크게 다릅니다. 그것들은 각각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구원의 확신은 없지만 구원의 도리는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구원을 얻었으면서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에 따르는 기쁨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1. 구원의 방법
성경을 펴서 출애굽기 13장 11-13절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 봅시다.
주께서 너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족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태를 여는 모든 것과 네가 소유한 짐승에게서
나오는 모든 첫 새끼를 구별하여 주께 돌리라. 수컷은 주의 것이 되리라. 너는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것을 대속하지 아니하려면
그것의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자손들 가운데 사람에게서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
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저와 함께 약 3,50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상상해 봅시다. 하나님의 제사장과 가난하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들 곁에 서 있는 어린 나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이 말합니다.
“사정 말씀을 드리려고 왔는데요. 제사장님, 제발 이번만 긍휼을 베풀어 주실
수 없을까요? 이 약하고 어린것이 제 나귀의 첫 새끼입니다. 저도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하라’는 율법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것을
대신해서 내어 줄 어린양이 없습니다. 이 나귀 새끼의 생명을 살려 주실 수는 없으신지
요? 제발 부탁입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이 나귀 새끼 한 마리뿐이데 이것마저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딱 잘라 거절합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안 됩니다. 엄연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속할 어린양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어린양이 죽든지
아니면 반드시 나귀 새끼의 목을 꺾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젠 다 틀렸군요. 마지막 한 가닥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군요.”
그때 옆에서 딱한 사정을 듣고 있던 그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게. 내가 해결해 보겠네. 언덕 너머 우리 집에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양 한 마리가 있는데 아주 말을 잘 들어서 귀염을 독차지하고
있다네. 내가 부지런히 가서 그것을 끌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게나.”
마침내 나귀 새끼를 대신해서 그가 데리고 온 ‘점도 없고 흠 없는 어린양’이
죽어서 그 피가 제단 아래 뿌려지고 그 몸은 불살라졌습니다.
그러자 제사장은 가난한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이젠 당신의 나귀 새끼를 데리고 평안히 돌아가시오. 목을 꺾지 않아도 되었으니
참 기쁘겠소. 어린양이 대신 죽었으니 나귀는 털끝만큼도 다칠 필요가 없소. 당신의
친구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군요.”
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제사장이 나귀 새끼의 목을 꺾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듯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당신의 죄로 인해 당신의 머리를 꺾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서 죄에 대해 요구하시는 공정한 판단입니다. 이 같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을 위해 그의 친구가 예비해 주었던 어린양 같은 ‘대신
속죄 희생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비참한 상태를 보시고 자신이 직접 예비하
신 어린양 즉 죄 없으신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침례자 요한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예수님을 바라보고는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
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니라(요1:2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갈보리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는 의로운 분이셨지만 불의한 자를 대신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벧전3:18).
과연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십자가 형벌을 받도록 넘겨지셨으며
죄 있는 우리를 의로운 자로 만들기 위하여 다시 부활하셨습니다(롬4:25).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 즉 경건치 않으나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은
자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로마서 3장 26절은 오히려 그렇게 하심을 통해 그분의 공의와 거룩함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경륜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구원자로 주신 그분의 은혜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원자로 믿고 신뢰하십니까?
만일 당신이 “예! 저는 비참한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서 제가 받을 심판을 이미 다 받으셨다는 귀한 복음의 말씀을
확실히 믿습니다.”라고 마음 중심에서 진심으로 고백하신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이미 완전하신 희생물이 되어 죽으셨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이미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받아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죄가 없는 자로
인정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대신 속죄의 죽음과 부활의 공로로 당신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당신은 확실히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입니다.
이 얼마나 고맙고도 놀라운 구원의 길입니까! 또한 이 구원의 섭리야 말로 얼마나
위대합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영광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다니 이
얼마나 큰 은혜요, 긍휼입니까!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가 이 모든 구속 사업을 완수하고 모든 찬양을 받도록
만드심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져 어쩔 수 없이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모든 복을 누리게 하시고 영원무궁토록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오 나와 함께 주를 크게 높이고 우리가 함께 그분의 이름을 높이자(시34:3).
이렇게 엄청난 구원을 믿음으로 거저 받는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주저하며 받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림으로 그
대가로 구원을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족을 누리십니다. 그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죄를 담당하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시고 누구든지 그분을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심판을 걷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어 영원토록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요1:12)
그렇지만 당신은 아직도 의문을 가친 채 이렇게 말씀할지 모릅니다.
“물론 저는 저의 행실이나 능력 또는 율법을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서 십자가에서 영원히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공로만을 신뢰합니다. 그런데 제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이 어찌된 일일까요? 어떤 때는 구원받았다고 장담하다가도
얼마 못 가서 모든 소망이 사라져 버립니다. 마치 제 마음은 폭풍 속에서 닻을
내리지 못한 채 파도에 따라 출렁이는 배와도 같은데 어찌해야 좋을까요?”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닻을 배 안에 매어 놓고 배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잘 아시겠지만 배를 안정시키려면 배의 밖에 탄탄한
곳을 골라 닻을 내리는 것이 상식이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기분이나 감정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변덕을 부리는 느낌, 감정, 기분을 통해 확신을 얻으려 하니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사실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의 안전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을 통해 확신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큰 잘못입니다.
2. 구원의 지식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이미 영생을 혹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을까요? 요한일서 5장 13절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저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조금 바꾸어서
제시하려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느낌들을 준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18 구원의 기쁨과 확신
위의 구절과 아래 구절을 대조해서 어떻게 서로 다른가를 보십시오.
이 두 개를 비교하면서 다윗의 고백도 들어 보기 바랍니다.
내가 허탄한 생각들은 미워하나 주의 법은 사랑하나이다(시119:113).
첫째 유월절 밤 곧 이집트 땅에서 태어난 처음 난 것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재앙을
내리시던 밤에 이스라엘의 자손의 맏아들들은 어떻게 자신의 생명이 안전함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출애굽기 12장 참조)? 이제 그 당시 이스라엘의 두 가정을 찾아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첫째 집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죽을 지경이 되어 불안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 집의
맏아들에게 이유를 묻자 그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오늘 밤에 파멸시키는 천사가
우리 집을 지나갈 것입니다. 처음 난 것은 다 죽는다고 했으므로 제 생사가 어떻게
될지 몰라 온 가족이 안절부절못하고 떨고 있습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행히 파멸시키는 천사가 우리 집을 그냥 넘어가고 새벽이 온다면 그때는 제가
안심할 수 있지만 그때까지는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옆집 사람들은
자기들이 안전하다고 장담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억측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그저 일이 잘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 길고 무서운 밤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지 않았던가요?”
그는 대답합니다.
“물론이지요.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1년 된 어린양을 잡고 우슬초에 그 피를 적셔서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것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불안에 떨고 있는 첫째 집을 떠나 그 옆집으로 가 봅시다. 언뜻 보기에도
그 집의 분위기는 첫째 집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안함이 있었고 그들은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서 구운 고기를
먹으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찌된 일입니까? 이처럼 엄숙한 밤에 이 같은 평안함이 있다니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들은 말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는 명령을
내리실 것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풀려나고 작업반장의 잔인한 채찍에서 벗어나서 자유의 몸이 될 것입니다.”
“잠깐만요. 오늘 밤이 이집트를 심판하는 밤이라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 맏아들은 안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뿌렸거든요.”
“바로 옆집도 그렇게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던데요?”
“아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피를 뿌린 것보다 더 큰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고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출12:13).
우리 하나님은 밖에서 그 피로 인해 만족하실 것이고 우리는 안에서 그 말씀으로
인해 안전할 것입니다.”
문에 뿌려진 피가 우리를 안전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우리를 확신하게 만듭니다.
문에 뿌려진 이 피보다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요?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을까요? 이제 저는 여러분에 묻겠습니다.
“이 두 집 중에서 어느 집 맏아들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두 평안히 거하고 있는 둘째 집이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틀렸습니다. 두
집 모두 안전합니다. 그들의 안전은 하나님께서 밖에 뿌려진 피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지 안에 있는 그들의 느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구원의
확신의 복을 누리려면 당신의 속에서 나오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감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요6:47).
이제 저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시골에서
한 농부가 자기의 가축을 위해 좋은 초장을 얻으려고 물색하던 차에 자기 집 근처에
좋은 초장을 세놓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주인에게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주인에게서는 아무 답이 없었습니
다. 그런데 하루는 이웃 사람이 찾아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분명히 그 초장을 임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느끼고 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에 주인이 당신에게 선물을 푸짐하게 보내왔고 지난번에는 그분이
마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당신을 보고는 손을 흔들기도 했지 않았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자 농부의 마음은 희망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농부는 다른 이웃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번에 당신이 그 목초지 사용 승낙을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실은 주인과 친한 사람이 그 목초지 임대 신청을 했다는데 요즈음 그 사람은 문턱이
닳도록 주인집을 드나든다고 합디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농부의 희망은 산산조각 났고 한 때 희망으로 부풀었던
가슴은 이제 절망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어제는 희망으로 인해 기뻐서 날아갈
듯했는데 오늘은 온통 걱정과 의심 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집배원이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주인에게서 온 편지를 뜯으면
서 그는 주인의 글씨가 분명함을 보고는 얼른 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몇 줄을
읽어 내려가는 농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넘쳤습니다. 농부는 그것을 읽고 또 읽고
환호성을 올리며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이젠 됐어! 이젠 안심해도 돼. 이 편지를 보라고! 주인이 내가 필요한
대로 그곳을 마음대로 쓰라고 했고 임대 조건도 아주 유리하게 해 주었어. 이제
됐어. 끝이야. 다른 사람이 무어라 말하든 아무 상관없어!”
잠깐 생각해 봅시다. 수많은 영혼들이 가련하게도 이 농부와 같이 불안해하며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자기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허탄한
생각으로 인해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의심과 초조함을 물리치고 확신
가운데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이 옵니다. 불신자에게 멸망을 선포하신 말씀이든,
성도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말씀이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거기에는 100% 확실
함이 있습니다.
시편 119편 8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나이다.
민수기 23장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
“나는 어떤 다른 논쟁도 논리도 필요 없습니다.
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청원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나를 위해 죽었습니다.”
성도들은 여기에다 다음을 붙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저도 당신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당신은 오직 올바르신 분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을 믿고
그분만을 신뢰하십니까?”
올바른 믿음이란 얼마나 잘 믿느냐 하는 양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연 믿을 만한 분을 믿느냐에 즉 질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에 빠져
익사 직전에 있는 사람처럼 그분을 꽉 부여잡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간신히 그분의
옷단을 살짝 붙잡습니다.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더 안전할까요? 한 사람이 더 안전하거나
더 불안하지 않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처럼 꽉 붙잡았다고 해서 더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둘 다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음을 알았고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만을
믿으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공로만 유일한
구원의 근거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요6:47).
이제 확실히 아셔야 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선한 행위를 하거나 엄격한 종교
생활 혹은 종교 의식을 잘 지키거나 경건해졌다고 느끼거나 혹은 종교적으로 도덕적으
로 어려서부터 훌륭하게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당신이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엄청나게 큰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런 확신은 당신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좋은 것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주 연약할지라도 바로
그 믿음이 여러분과 저를 영원토록 구원합니다. 이 외의 인간의 어떤 다른 선한
일도 우리를 구하지 못하며 그것은 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착각이요,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3:17).
그래서 그분은 우리가 100% 확신을 갖고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촉구합니다.
어느 날 어떤 여인이 울상이 돼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확실히 예수님을 제 구원자로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다가와서
저보고 구원받았느냐고 물으면 저는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두렵습니다. 혹시 구원받지
도 못했으면서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까 봐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의 아버지는 미드랜드에서 도살장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화창한
날에 시장이 열렸고 그녀의 아버지는 아직 시장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아버지가 집에 올 때에 당신이 아버지에게 “아빠,
몇 마리나 사오셨어요?”라고 묻는다고 합시다. 또 그때에 아버지가 “열 마리를 사왔다.”
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웃 사람이 와서 “당신 아버지가 양을
몇 마리나 사오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무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글쎄요.
아빠가 말씀해 주셨지만 그게 거짓말이 될까 봐 말씀드리고 싶지 않네요.”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옆에 있는 어머니가 화를 내면서 “그것은 네 아버지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야!”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독자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그것은 위의 젊은 여인처럼
실제로 그리스도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며 그분께서는 분명히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혹시 내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믿어 보려고 무던히
노력을 해 왔지만 모두가 허사였어요. 내 자신을 들여다볼수록 확신은 고사하고
내가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었어요. 내 믿음을 보면 볼수록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여! 지금 당신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믿으려고
무척 애를 쓴다는 것이 이미 잘못된 것입니다.
제 말에 잠깐 귀를 기울이십시오. 다른 예를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 당신이 집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찾아와서 역장이
철도 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다 합시다. 그런데 지금 찾아와 이 소식을 전해 준 그
사람은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 거짓말쟁이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겠지요?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당신은 그 사람 말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믿으려고 노력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당신은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왜 그 사람 말을 믿을 수 없습니까?”라고 반문한다면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사기꾼의 말을 믿어 줍니까?”
이로 보건대 어떤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우리 속의 우리 믿음이나 감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전해 준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그 말이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또 다른 이웃이 찾아와서 역장이 화물 열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다시 전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래도 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아마도 당신은 그것이 정말이라고 믿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 말을 조금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
내부의 믿음이나 감정 때문입니까?” 그러자 그는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알려준
사람에 의해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가자마자 아주 절친한 친구가 찾아와서 같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당신은 “자네 말이라면 여부가 있겠나? 딱하게도 역장이
교통사고로 희생을 당했군!”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제 제가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 친구의 말을 고스란히 믿으십니까?”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거짓말을 한다거나
저를 속인 적이 없습니다.”
결국 당신은 사건 현장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당신의 맘속에 그럴
듯하게 보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내게 복음을 전해 주는 그분 즉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인해 그 복음을 믿습니다. 내 감정이나 내 속의 믿음 때문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언은 더 크도다. 이것은
하나님의 증언이니 곧 그분께서 자신의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
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이 증언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었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언을 그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요일5:9-10).
아브라함은 사람의 증언이 아니라 자기가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증언을 받았을
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느니라(롬4:3).
구원의 확신을 갈망하는 한 불쌍한 영혼이 그리스도의 종에게 나와 상담을 요청했습
니다. “선생님, 도무지 믿기지 않으니 어쩌면 좋죠?” 그때 상담을 하던 설교자는
조용하고도 슬기롭게 반문했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그분이 누구시지요?”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 사람은 이 악순환의 사슬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 자기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를 바라보고 믿지 않았습니
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증언하는 성경 말씀을 신뢰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자기
밖에서 이루어진 일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자꾸 자기 자신이 자기
속에서 무언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기 속에서 증거를 찾고자 했던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밖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 안에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태양을
등지면 그림자가 앞을 어둡게 하지만 태양을 바라보면 그림자가 등 뒤에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내 자신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동시에 볼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는
사람은 이 일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우리 밖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볼 때 생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완성하신 구속 사업을 통해
이미 당신과 저를 영원토록 안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영원토록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구원의 방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성취하신
일 안에서 찾을 수 있고
구원의 확신과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속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3. 구원의 기쁨
“제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는 추호도 의심이 없어요. 그렇지만 구원받기 전이나
다름없이 낙심하고 답답해 할 때가 자주 있거든요. 위안이나 기쁨을 송두리째 잃게
될 때도 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이제 또 다른 문제를 살펴봅시다.
성경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지만 구원받은 사람의 몸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에 의해
위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고 가르칩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성도에게도 육신이라 불리는 옛 성품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 옛 성품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악한 성품을 가리킵니다.
육신이라 불리는 옛 성품은 어머니의 무릎에서 젖을 빨고 있는 어린아이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육체를 대적하시기 때문에 언행 심사에 있어서
육신적인 모든 일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성도가 주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는
대로 걸을 때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심령 속에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기록된 대로
사랑, 기쁨, 화평 등과 같은 성령님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믿은 사람이 세상의 방법대로 살며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한다면 이는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일이며 그 결과 이와 같은 열매들이
부족하거나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 사업과 당신의 구원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당신의 세상에서 걷는 것과 기쁨 역시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일 그리스도의 공로가 무효가 된다면 당신의
구원도 무효가 될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당신이 걷는 일이 잘못되면 당신의 기쁨은
사라질 것입니다. 물론 첫째 논리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지만 두 번째 논리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같은 체험을 했던 것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위로 안에서 걸으며 크게 늘어났다.”는
사도행전 9장 31절의 기록과
“제자들이 기쁨과 성령님으로 충만했다.”는 사도행전
13장 52절의 기록을 보기 바랍니다.
당신이 구원받은 후에 심령에 참으로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여부는
당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걷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당신의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까? 당신은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이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혼동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가 제멋대로 행하며 절제하지 못하고 세속적으로
살면 성령님을 근심시킬 수밖에 없고 이 경우 구원의 기쁨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구원의 확신과 관련시켜 생각하면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요약해서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구원은 당신을 위해서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공로에
달려 있으므로 절대로 안전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성경을 통하여 당신에게 약속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
다.
구원의 기쁨은 당신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지 않는 데 달려
있습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님을 근심시킬 일을 저지를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가 실제적으로 중단됩니다. 바로 이때에
당신이 당신 자신을 판단하고 당신의 죄들을 고백하면 교제의 기쁨이 다시 회복됩니
다.(요일 1:3~9)
당신의 자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럴 때 당신은 자녀의
언행과 표정에서 이 사실을 역력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리광을
부리며 태연자약하던 아이의 얼굴에 불안한 빛이 서려 있고 행동이 어색하며 자꾸만
부모의 낯을 피하려 들 것입니다. 이제 이 아이가 해야 할 일은 부모님께 솔직하게
잘못을 자백하여 용서를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쉽사리 자백하지
않은 채 울며 버틴다고 부자간의 교제가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오직 부모님께 자백하
면 용서해 주신다는 확신으로 겸손하게 자백해야 할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순간부
터 자백하고 용서를 받기까지 이 아이에게서는 기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순간에
모든 기쁨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그가 잘못을 저질러서 더 이상 교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자간의 관계마저 끊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자 관계는 출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자간의
귀한 교제가 어린아이의 잘못된 행실로 인하여 중단되었을 뿐입니다.
이 아이가 뉘우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자초지종을 부모님께 자백할 때에 용서해
주고 달래 주며 위로해 주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때에야 비로소 이
아이는 다시금 부모와 스스럼없는 교제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충신이었던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그를 죽인 사건에서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뒤에 다윗은 “주의 구원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주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옵소서.”(시51:12)라고 간구했습니다. 바로
이것은 이 진리를 잘 나타내 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시무룩해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불이야!” 하는 소리가 났다고 합시다. 그럴 때에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아들이 불에 타 죽도록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지요? 아마 당신은
그 아이를 제일 먼저 데리고 밖으로 나갈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관계를 통한 사랑과
교제가 주는 기쁨이 이처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원만한 영적 교제가 중단되므로 그가
자백하기까지 즉 자신을 반성하고 통회할 때까지는 결코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분명한 통회와 자백이 있었다면 죄들의 용서가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9).
하나님과 맺은 생명의 관계보다 더 강한 것은 없으며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힘과 지옥의 세력이 힘을 합쳐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
그렇지만 불순종의 생활은 쉽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어 놓으며 당신의 기쁨을
앗아갑니다. 만일 당신이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거듭난 것이 확실한
데 잠깐이라도 심령이 답답하며 기쁨이 없어 고민하고 계시다면 주님 앞에 마음을
낮추시고 자신을 반성해 보십시오. 당신에게서 기쁨을 앗아간 도둑을 발견했을
때에는 즉시 빛 가운데 그것을 드러내십시오. 다시 말씀드려서 왜 내가 기쁨을
잃게 되었는가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당신의 죄를 자백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도둑이 들어와서 노략질 하도록 부주의 하고 나태했던 자신을 깊이 뉘우치기 바랍니
다.
또한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성도라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불신자들보다 다소 관대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신자나 불신자를 불문하고 죄 문제에 관한 한 절대 공평하게 다루십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죄는 낱낱이 하나님 앞에 드러났고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을 때 이미 그 죄 값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신자들의
죄 문제는 단번에 그리고 영원토록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은 영원히
확정되었습니다.
오직 이 사람은 [그리스도는]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히10:12)
[그분은]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벧전2:24)
주 예수님을 끝내 믿지 아니한 사람은 죄의 대가로 영원토록 불 호수에서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면에 구원 얻은 사람은 다시금 죄의 대가로 지옥 형벌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음으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거나 원만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달밤에 한 친구가 연못에 비친 달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연못에는 눈부실 듯 빛나는 은빛 보름달이 찬란하게 비쳤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느닷없이 돌멩이를 연못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쟁반 같은 보름달은
순식간에 일그러져 버렸습니다.
“달이 산산조각 나버렸군!” 하고 중얼거리는 친구에게 한 친구가 응수했습니다.
“달이 깨어지다니! 무슨 소릴 하고 있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나. 달의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네. 변했다면 연못 속에 비쳤던 달의 모습이 변한 걸세. 안
그런가?”
이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마음은 이 연못과도 같습니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으면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위로와 기쁨과 평안을 당신의 심령에
비춰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때에는 평안과 기쁨이 사라지고 내
마음은 돌멩이가 날아든 연못처럼 어지럽게 흔들리게 됩니다. 이때 당신은 하나님을
근심하게 한 죄들을 자백하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이키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평화롭고 즐거운 교제가 회복될 것입니다.
이처럼 평안과 불안이 교차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공로도 연못에 비친 달처럼
수시로 변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공로가 변하지 않는 한 당신의 구원도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심령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활동이 변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심령이 그리스도의 영광과 주님께서 합당히 여기실 것으로 채워지지 아니하고
죄의 욕심으로 채워져 있다면 성령님께서 근심하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정죄하시고 대적하시는 죄악에 대하여 당신도 마찬가지로 정죄하고
대적하지 않는 한 당신은 위로와 기쁨을 체험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엡4:30).
이 말씀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사랑하는 독자여 !
당신의 믿음이 아무리 연약할지라도 당신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신 주님은 결코
변치 아니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고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공로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거니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영원하리라. 그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그것에서 무엇을 뺄 수 없나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시는 것은 사람들
이 자신 앞에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라(전3:14).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벧전1:24-25).
당신의 구원의 확신의 터가 되시는 주 예수님께서 결코 변치 아니하시기에 당신의
구원은 안전합니다.
나의 사랑은 자주 식으며 나의 기쁨은 자주 흔들려도
주님의 공로는 변함이 없고 내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네.
나와 세상은 늘 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어
내 평생 의지할 구원자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네.
나의 사랑은 늘 식어도 주님의 사랑이 내 안식처
온 천하 만물이 다 지나가도 주님의 진리가 날 붙드네.
이제 끝으로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어느 대열에 서서 인생의 여행을 하고 계십니까? 이제 진정 하나님께로
돌이키심으로 영원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롬3:4).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께서 진실하시다고 자기 도장에 새겼느니라
(요3:33).
이 글을 읽으시는 가운데 당신도 이제부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구원의 확신을
누리며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요일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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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교회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교회의 존재 목적 중 가장 큰 목적은 ‘영혼
구원’(Soul winning)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먼저 복음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그것을 논리적으로 확신 있게 제시해야 합니다.
이 글은 믿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믿고 구원받으신 분들은 다시 한
번 복음을 확인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안의 내용을
잘 정리하고 숙지한 뒤에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제시하면 매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구원받지 못한 분이 이 글을 읽으시면 부디 오늘 예수님을 구원자로, 주님으로
받아들여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느끼시기
바랍니다. 다른 영혼을 구원하려는 사람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 사람의 힘만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지혜이심을 기억하고 사명에 임하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영혼을 사랑하
여 구령의 열정을 가진 성도들에게 복음 선포의 권능을 충만하게 부여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하나님과 함께 시작됩니다! 따라서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도록 그분의 복음을 제시하기에 앞서 당신은 먼저
하늘과 땅의 창조주 되시는 저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성경의 첫 구절이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로 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창1:1; 행4:24; 골1:16; 계10:6). 지금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전능자 하나님께서 손수 계획하시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시계나 핸드폰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이 우연히 생겼다고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시계나 핸드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우주 만물
그리고 사람은 결코 우연히 생길 수 없으며 고도의 설계자가 정교한 청사진을
만들어 창조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말씀으로 해와 달과 별들과 동물, 식물 등 온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을 엿새 동안에 친히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물 중
으뜸이 되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魂)이 되니라.”(창2:7)
하나님께서 친히 온 우주 만물을 만들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곧 당신과 온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바로 그분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당신을 지탱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히1:3). 하나님은 당신과 온 세상과 상관없이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시
지만 당신과 온 세상은 매 순간 그분께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드셨으므로 당신은 그분의 소유이며 그분께서 당신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창조의 진리는 다른 많은 진리에 다다를 수 있는 초석이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그렇다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먼저 그분은 절대적으로 영원하신 존재입니다(신33:27; 시90:2; 93:2). 다시 말해
그분께는 시작이 없으며 또한 생명이 다하는 때도 없습니다. 욥은 그분의 연수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욥36:26). 이것은 곧 그분께서 하나님이 아니신 적은
결코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사야 대언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니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나 외에 신이
있느냐? 참으로 신은 없나니 나는 다른 신을 알지 못하노라(사44:6, 8).
그분은 항상 존재해 오신 분이며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영원 무궁히 계실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하나님은 영이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4:24).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영적 존재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인격체의 본질은
곧 영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물질적 요소가 없는 분이십니
다. 이 말은 곧 그분께서 본질적으로 우리같이 눈에 보이는 몸을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민23:19; 사31:3; 눅24:39; 요4:24).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므로 눈에 보이지 않으며(롬1:20; 딤전1:17) 따라서 그분의
형체를 그려 볼 수도 없고(신4:15-23; 사40:25) 물리적 수단으로 그분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요4:24; 행17:25). 또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며 한 곳에만 묶여 있을 수도 없습니다(왕상8:27; 행7:48, 49; 17:24).
또한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므로 그분의 앞을 떠나 숨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시139:7-12; 렘23:23-24). 당신이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에나 계시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보시며 다 알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물을
다 알고 계십니다(시139:1-6; 잠15:3; 사46:10; 요일3:20).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 중에는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우리의 유한한 지각으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며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히 알고 이해한다면 하나님이 더 이상 하나님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확실한 말씀인 성경은 한 하나님이 존재함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신6:4; 사43:10; 44:6, 8; 45:5, 6, 21, 22, 46:9; 막12:28-32;
고전 8:4; 딤전2:5; 약2:19). 그런데 한 하나님은 세 분 즉 아버지, 아들(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이십니다(마28:19; 요1:1, 2, 14; 5:18; 20:28; 행5:3, 4; 요일5:7;
요이9).
이 세 분은 본질, 권능, 영광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이신데 세 하나님이 아니고
한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시간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며 과거도 시간이며 현재도 시간이고 미래도 시간입니다.
그런데 결코 세 개의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단 하나입니다. 동시에 이
셋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분이 다 하나님이며 이 세 분 중 하나라도 없으면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개념이 조금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의존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그대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작가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진리를 가리켜 ‘크리스천 신앙의 최종적이고도 지고한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쥐고 계십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분으로서 자신의 창조 세계, 자연 만물, 사람과 그들의
행동을 다 다스리시며 심지어 사탄 역시 그분의 권능과 제재 하에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생기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일어남을 보여 줍니다(욥1:7-12;
시107:25-29; 잠21:1, 31; 단2:21-22; 나1:3-6; 마4:10, 11; 엡1:11). 성경의 하나님께는
그 어떤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언자 다니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땅의 모든 거주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 안에서든지
땅의 거주민들 가운데서든지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나니 아무도 그분의 손을 멈추게
하거나 그분께 이르기를, 당신이 무엇을 하나이까? 하지 못하리라.”
(단4:35; 참조 시115:3; 렘32:17; 마19:26; 눅1:37)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거룩함입니다. 거룩하다
는 말은 구분되어 있음을 뜻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함은 곧 그분께서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들과 다르고 그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분은 순수하며 선하며 의로우십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전혀 어둠이 없다는 것이라.” (요일1:5)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므로 차마 악을 보지 못하시며
또 차마 불법을 보지 못하시므로 더럽거나 악한 것은 결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합1:13).
정결하게 씻을 것을 규정한 모세의 율법체계; 성막의 구분; 하나님께 나아갈
때 짐승의 희생물을 바칠 것;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신
것(출3:5; 수5:15); 고라, 다단, 아비람의 죽음(민16:1-33);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레10:1-3) 등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심을 보여 주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그분의 거룩함을 새겨 주기 위한 교훈들이다(R. A.
토레이).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의 왕좌 위에 서 있는 스랍들은 계속해서 밤낮으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사6:3; 계4:8).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친히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공평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롭게 행하여야 하지 아니하리이까?”(창18:25)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공의로우시며 그분께서 행하시는 일은
다 의롭습니다. 이처럼 공의로우시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와 불법을 징계하십니
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거룩하지 못한 죄와 불법을 묵과하지 아니하시고 공의롭게
판단하시고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정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사45:21; 요5:30; 행17:31; 계15:3).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제 당신이 또 다른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크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친절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심지어 자신의 원수들에게도 선을 베푸시며 사랑을 보이십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엡2:4-5; 참조 마5:45; 요3:16).
사람과 첫째 죄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완전한 곳에 두셨습니다. 그들은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 알아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것만이 유일한 제약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엄숙하게 명령하였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그런데 이브는 그 나무가 먹음직도 하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으며 지혜롭게 할
만큼 좋은 것을 보고 그 열매를 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거슬러 행한 첫째 죄요, 반역이었습니다. 바로 이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온 인류는 죄성을 지닌 채 태어나 영적으로 죽었으며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게 되었고 결국 육체적인 죽음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롬5:12, 18; 엡2:1).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소위 십계명이라 불리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은 선하고 거룩한 것이며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
2.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라.
3. 너는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너는 살인하지 말라.
7. 너는 간음하지 말라.
8.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9. 너는 네 이웃을 대적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
10. 너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죄는 한 마디로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이런 율법 조항 중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입니다(롬3:20; 갈3:10-12; 요일3:4; 약2:10-11).
예수님께서는 신약성경에서 율법을 더 엄격하게 해석하셨으며 율법의 두 가지
핵심 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눅10:27; 참조 마5:21-32; 막
12:30-31).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이제 십계명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이 열 가지를 다 어기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어겼음을 곧 인정하실 것입니다. 죄 문제의 심각성은
당신이 고의로 이런 율법들을 어겼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이며 본질적으로 죄인이고 또한 의도적으로 이런 일을 행한 사람입니다
(시51:5; 사64:6; 롬3:9-19, 23; 엡2:2,3). 당신의 죄들로 인해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며 당신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이 같은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치유할
수 없습니다(사64:7; 렘10:23; 13:23; 요1:12, 13; 롬7:18).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죄인들에게 분노하고 계심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죄를 범하는 혼은 반드시 죽습니다(시7:11; 겔18:4,
20; 롬6:23).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롬1:18)
따라서 당신이 죽기 전에 그분의 진노를 되돌리지 않으면 당신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호수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진노를 맛볼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마25:31-46; 요3:36; 롬1:18; 계20:11-15; 21:8).
지옥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다 없어지고 만다고 말하며 어떤 이들은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연옥을 마련해서 죽은 이후에 다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중 어떤 의견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9:27)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영화롭게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눈앞을 떠나 영존하는 파멸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사람이 영원토록 형벌 받는 장소를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 지옥은 사실입니다. 지옥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상상해서 만들어 낸 곳이
아닙니다. 성경은 천국보다 지옥에 대해 더 상세히 말하며 그곳이 실제 장소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성경은 지옥의 정죄와 또 지옥에 갈 사람들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 지옥은 두려운 곳입니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요, 용광로요, 꺼지지 않는 불이
영원토록 타는 곳입니다. 이곳은 고통을 받는 장소로서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 또 이곳에는 밤낮으로 영원히 안식이 없습니다. 참으로 지옥은
무서운 곳이며 지옥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모든 좋은 것에서부터
격리되어 안식과 평안이 없이 거할 것입니다.
● 지옥은 최종 장소입니다. 지옥에 이르는 길들은 다 일방통행입니다. 다시
말해 출구가 없습니다. 신약시대의 경우 천국과 지옥이 전혀 다른 곳에 있으므로
아무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지옥의 공포나 외로움 혹은 고통은
사람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징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 지옥은 정당한 곳입니다. 성경은 세상을 심판하는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라
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분께서 믿지 않는 죄인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은 아주
의로운 일인 것입니다.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곳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을 거부했으며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그들을 거부하실 것입니
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기 원하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이 선택한 것을
영원토록 확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옥에 대한 이 같은 사실들을 고려해 보면서 이제 당신은 신약시대의 어떤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 (마23:33)
종교가 해결해 주지 않을까요?
사람은 종교심이 많은 존재입니다. 「종교 및 윤리 백과사전」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들의 종교적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백 가지 방법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해, 달, 별, 지구, 물, 불을 숭배해 왔으며 또 돌, 나무, 금은
등으로 우상을 만들어 그것들에게 경배해 왔고 또 물고기, 새, 짐승 등을 숭배해
왔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수많은 신이나 영을 상상해내어 그것들을 숭배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희생물, 예식, 성사, 봉사 등을 통해 참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아무리 진지하다 해도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사람의 죄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 첫째로 종교는 결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종교는 사람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거기에는 흠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받으실 수
없으며 따라서 사람의 이 같은 노력은 허사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사64:6). 거룩하신 하나님은 완전한 것을 요구하시며 사람의 종교는 결코
이것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 둘째로 종교는 결코 죄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선행은 결코 악행을
없애지 못합니다. 당신의 미덕은 결코 당신의 악을 취소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려 해도 행위를 통해서는 불가능합니다. 유아 세례,
견진 성사, 침례, 세례, 주의 만찬, 교회 참석, 기도, 헌금, 성경 읽기 등과 같은
종교 행위나 경험은 결코 여러분의 죄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 셋째로 종교는 결코 사람의 죄성을 바꾸지 못합니다. 사람의 행위는 죄로
인한 현상이지 죄 문제 자체가 아닙니다. 사람의 문제의 핵심은 사람의 속마음에
있으며 본질적으로 사람의 속마음은 부패되고 변질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 교회에
가서 종교 행위에 참여하면 기분은 좋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행위가 당신을
선한 사람으로, 의인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누가 정결한 것을 부정한 것 가운데서
가져올 수 있나이까? 아무도 없나이다.”(욥14:4)
위에서 언급한 종교 행위 중 어떤 것은 그 자체만으로 보면 좋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가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받
은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당신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행위들을 통해 구원받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행위들
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가 없으며 이런 것들을 의지하면 오히려 당신의 죄와 저주만
늘어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처한 상태가 이처럼 비참하기 때문에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남자 없이 마리아의 태 속에서 기적적으로
수태되시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처녀 탄생).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는 완전한 하나님이었으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마1:18-25; 요1:1-14;
딤전3:16).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애의 대부분을 나사렛이란 이름 없는 촌에서 사셨습니다.
비록 그분께서 사람들 가운데 사셨고 사람들처럼 사셨지만 그분은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으며 그분 속에 죄가 없으셨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전적으로 달랐습니
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을 수도 없었고 짓지도 아니하셨으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든 법을 성취하였습니다(히4:15; 7:26; 벧전2:22).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이 되셨을 때에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 곳을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시며 많은 기적들을 행하시고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통해 계속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헛된
종교를 버리고 자신을 향해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이같이 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죄와 또 죄로 인한 형벌에서 그들을 구해내려고 계획하셨
기 때문입니다(마1:21; 요8:23; 행2:22)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과 놀라운 일을 행하셨지만 그것이 곧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근본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당신은 죄를 범했고
당신의 죄로 인해 당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모든 죄를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다루시기 위해 두 장소를 지정하셨습니다.
첫째 장소는 사람들이 자기 죄들로 인해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곳으로 지옥이며
최종적으로는 지옥이 통째로 던져지게 될 불 호수입니다.
둘째 장소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고통을 당하고 죽으신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죄가 되셔서 하나님의 저주를 다 당하시고 세상의 죄들을
제거 하셨습니다(엡2:16; 골2:13, 14; 벧전2:24).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복된 소식을 뜻하는 복음은 매우 복된 것이요, 값진 것입니
다. 구약시대에는 죄지은 사람을 대신해서 죄 없는 짐승이 희생물이 되어 죄 값을
지불하고 대신 속죄 즉 대속(代贖)을 이루었지만 그런 희생물은 완전하지 못하므로
매해 계속해서 희생물을 드려야했습니다. 그런데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자신의 죄가 아니라 온 인류의 죄로 인해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일시에 완전하게 충족시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세상의 죄들을 제거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
셨으며 이러한 화해 헌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사53:5, 10-12; 롬3:25; 고전15:3; 갈1:4; 딛2:14; 히1:3; 9:26-28; 10:12;
요일4:10).
이러한 완전 속죄로 인하여 당신과 나 같은 죄인들이 정죄와 저주의 상태에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화해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벧전3:18; 참조 롬5:10; 고후5:18; 히2:17).
이것이야말로 엄청나게 복된 소식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속죄물로 지정하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모든 사람을 위해
세상 죄들을 제거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밝히 보여 주셨으나 사람이 이런 선물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런 엄청난 은혜가 은혜가 되지 못하며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가 남아 있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일을 안 해도 사랑으로 거저 주는 선물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넘치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롬4:4-5).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예수님께서는 대신 속죄를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후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했습니다. 이 부활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역에 대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셨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살아났음을 절대 확실한 증거들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
다. 예수님께서 부활해서 나타나자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을 영(靈)으로 생각했습니
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 참조 마28:6; 행1:3; 롬4:25;
벧전1:21).
부활하신 뒤 사십 일이 지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분께
서는 자신의 제자들의 눈앞에서 올리브 산을 떠나 승천하셨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가 되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행1:11; 딤전2:5;
3:16; 요14:6).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이
세상일들에 깊이 관여하십니다.
그분께서 성취하고 계신 직분 중 하나는 대언자의 직분입니다.
대언자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에게 그들이 구원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동행해야
함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가르치시며 내적으로는 성령님을 통해서 가르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대언자
가 되시며 지금도 하늘에서 살아 계셔서 직무를 수행하고 계시므로 오늘날에는
더 이상 대언자가 없습니다(신18:15; 마21:33-46; 요7:40; 행3:22-26; 히1:1,2).
그리스도께서 성취하고 계신 또 다른 직무는 대제사장의 직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자기 자신을 죄로 인한 희생물로 드림으로써 제사장의 직무를
완수했으며 지금 이 시간에는 하늘에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중보 역할을 하시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유대교나 천주교에 존재하는 제사장이나 제사장 체계가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계속해서 대제사장으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요
17:20; 히3:1; 7:21-25; 히8:1-6; 벧전1:5).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
이제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어떻게 내게 적용됩니까?
어떻게 내가 구원받을 수 있으며 내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내 죄들이 많은데 과연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받아 주실까요?
구원받기 전에 무슨 의식이나 예식 같은 것을 행해야만 합니까?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어떤 특별한 감정의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까?
이런 질문들은 다 좋은 질문들이며 성경적인 대답을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구원의 문은 들어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지 못할 정도로 추하고 더러운 죄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은 돈 주고
구원을 사거나 죄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구원받기 전에 무슨 황홀경에
이르는 감정 같은 것을 경험할 필요도 없고 무슨 예식이나 의식을 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며 오직 주님께로부터
옵니다(욘2:9; 롬6:23; 엡2:8-9; 빌2:13; 딛3:5).
구원받기 원하신다면 당신은 먼저 당신이 죄인이며 죄의 형벌이 있음을 인정하
죄들을 회개하며 예수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원자로, 주님으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
회개란 죄에 대해 완전히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먼저 당신이 죄인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적한 반역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마음의 변화가 있어서 당신의 더럽고 추한 죄에 대해 수치를 느끼고
슬퍼해야 합니다. 그 뒤에 당신은 죄를 기꺼이 버릴 태세가 되어야 하고 당신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회개에 합당한 일들을 행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당신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께서는 당신이 버리고자 하지 않는 죄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는
삶의 방향을 180도 틀어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전심을 다해 걷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
‘믿음’(Faith)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요소는 ‘아는 것’(Knowing)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그들의 죄들로부터 구원하
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당신을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믿음의 둘째 요소는 말 그대로 ‘믿는 것’(Believing)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알아야 하며 또한 그분께서 당신을
구원할 수 있고 하시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의 셋째 요소는 ‘신뢰하는 것’(Trusting)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구원자라 불릴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으면서 당신은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 즉 당신을 구원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는 일을 그분께서 하실 수 있다고 신뢰해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당신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개념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고 죄 값을 치르셨다는 '대신 속죄'의
개념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대속(代贖)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만심이 있고 고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내 자신을 부인하고 완전히 예수님만을 신뢰하여
구원자로, 주님으로 맞아들이게 될 때 당신은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배구 시합에서 한 쪽이 공을 ‘서브’(Serve)하면 다른 쪽이 공을 ‘리시브’(Receive)하
면서 게임이 진행됩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공을 서브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이 그 공을 ‘리시브’하지 않으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서 선물을 마련하시고 큰 은혜를 베푸시려 해도 사람이 그것을 받지 않으면 은혜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의롭게 되는 것
어떤 사람이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시며 동시에 의롭게 만드십니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법적인 용어로서 ‘의로운 사람으로 판정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서는 그리스도께 믿음으로 나오는 죄인을 보시고 그를 의인으로 받아 주시며 그
시간부터 의인으로 부르겠다고 선포하시는데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칭의(稱義)라
합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모든 죄인들을 위해 그들이
지불해야 할 죄 값을 십자가에서 다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한자 ‘의’(義)를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의(義)입니까? ‘양’(羊) 밑에 ‘나’(我)라는
존재가 있을 때 의롭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믿음으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그리스도께 나오면 그들의 죄들을 제거하시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시켜 주십니다.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1:29).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가 없이는 아무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들어갈 수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날에 당신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누구의 의를 갖고 싶습니까? 불완전하여
더러운 누더기와 같은 당신의 의입니까?(사64:6), 아니면 모든 면에서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의입니까? 바울 사도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3:8-9).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칭의(稱義)로 인해 우리는 이러한 의를 소유하게
되며 이러한 완전한 의가 당신 자신의 의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100% 확실한 사실
궁극적으로 당신은 죽을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죽은 이후에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9:27;
행17:31)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여 그분의 의를 덧입지 않으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호수에 들어가 영원토록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예수님을
당신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오직 그분만을 신뢰하면 영원토록 하늘의
영광과 존귀를 누릴 것입니다(계20:10-22:5). 이제 당신은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구원받기 원하십니까?
이만큼 읽은 시점에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구원받기 원하십니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싶습니까? 이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읽은 것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
로 앞으로 되돌아가서 지금까지 읽은 부분을 다시 천천히 주의 깊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진리를 보여 주실 것을 간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의 필요를 보여 주셔서 구원받아야겠다는 갈망을
주셨으면 곧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하며 가장 좋은 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룩한 일입니다. 당신은 이제 죄에 싫증이 났습니까? 죄를 떠나 거룩한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앞으로 다가올
심판을 피하고 지금 이 시간 죄 용서를 받아 기쁨을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구원자로 주님으로 친구로 맞아들여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싶지 않으십니까?
풍성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금 이 시간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부르고 싶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유창한 말에 관심을 두시지 않으며 겸손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먼저 당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십시오.
당신의 죄들로 인해 영원히 형벌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십시오.
당신 스스로 당신을 구원시킬 수 없음을 고백하십시오. 회개하고 주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구원하고 당신 삶의 주인이 되어달라고 주님께 간구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다음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행16:31).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의를 신뢰하는 사람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분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스스로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어떤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
요, 다른 하나는 세리더라.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는 자들과 불의한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9-14).
구원받은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구원받은 뒤에는 다음의 세 가지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이 없으면 성경을 구해서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해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신 책으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행의 유일한 기준이 되는 책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먼저 신약성경의 넷째 책인 요한복음과 끝 부분에 있는 요한일서를
몇 차례 읽기 바라며 또한 구약성경의 창세기를 읽기 바랍니다.
그 뒤에 전체 성경을 꾸준히 정독하기 바랍니다.
둘째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인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당신은 경배를 드리고 성경 말씀을 배우며 크리스천 친구들을 만나 좋은 교제를
나누고 은혜 안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신약교회는 이 책자 안에 담겨
있는 복음의 진리들을 가르치고 영혼 구원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만일 그런 교회를
발견하기 어려우면 이 책 뒤에 있는 주소로 연락하기 바랍니다.
셋째로 당신은 물속에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침례는 결코 여러분을 구원시키지 않으며
죄를 씻어 주지도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침례의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침례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아 옛사람이 죽었고 묻혔으며 새사람으로 살아났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침례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천사들에게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 알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구원받은 이후에 마귀는 종종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심하게 합니다. 이때마
다 다음의 글을 읽고 성경 말씀만을 신뢰하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갑판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네와 몹시 대화를
나누고 싶었네. 자네는 구원받은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하던데….”
“예, 저는 구원받은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구원받은 것보다
더 분명한 사실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좀 교만한 말이 아닌가? 사실 나도 한때는 성실하게 교회에 다녔네.
하지만 내가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나는 진정 그리스도인이 아니거
든.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지만 사실 위선자가 많아. 그래서 나는
교회에 나가는 일을 그만 두었지.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가끔 기독교에 어떤 진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하지.”
“저는 그 말씀에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았다는 말과 구원받은
것을 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반장님, 이 배수구의 둘레는 얼마입니까?”
“배수구의 둘레는 50센티미터가 아닌가! 그런데 왜 그것을 묻지?”
“반장님은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 책에 의거하여 확신할 수 있지. 이 책은 본사에서 보내온 것으로 이 배에
대한 설명서가 아닌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구원받은 것을 아는 방법과 같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에 의해서 구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은 하늘의 본부에서 보내 온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 말씀 안에서 제가 정죄 받은 죄인이라는
것과(롬3:23) 지옥의 불 호수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계21:8).
하지만 저는 또 하나님께서 죄인인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과(롬5:8) 그래서 자신의
유일한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저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벧전2:24). 저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이 말씀대로 저는 지금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으며 장차 있을 심판에 이르지
않으며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저는
제가 구원받았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교만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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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
1. 영원한 생명은 말 그대로 영원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요10:28).
만약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영원한 생명이 어떤 이유에서든 중간에
끝을 맞는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영원한 생명이 아니다. 영적인 생명이 신자의 죄악
된 삶이나 믿음의 변화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다. 진정으로 영원한 것이려면 끝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2. 영존하는 생명은 말 그대로 영존하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위에서 언급한 대로 영존하는 생명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중간에 끝을 맞는다면
그것은 그 단어의 분명한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처음부터 영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시는 영존하는 생명은 아무리 오랜 후에라도 끝을 맞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영존하는 생명이 아니다.
3.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구원을 잃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니라(요6:39).
에베소서 1장 11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이므로 그분의 뜻은 당신의 구원을 보존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4. 당신은 이미 천국에 예약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사라지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하늘에
마련된 상속 유업을 받게 하셨나니(벧전1:4)
마태복음 19장 29절에 의하면 이 상속에는 영존하는 생명도 포함되어 있다.
5. 당신이 상속받은 구원은 썩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사라지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하늘에
마련된 상속 유업을 받게 하셨나니(벧전1:4)
당신이든 사탄이든 그 어느 누구든 하나님께서 부패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신
것을 부패하게 만들 수 없다.
6. 당신이 상속받은 구원은 더럽혀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사라지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하늘에
마련된 상속 유업을 받게 하셨나니(벧전1:4)
당신이든 사탄이든 그 어느 누구든 하나님께서 더럽혀질 수 없다고 선언하신
것을 더럽힐 수 없다.
7. 구원에 관한 한 당신은 성령님에 의해 봉인되어 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엡
1:13).
하늘이나 땅에 있는 그 어떤 힘으로도 전능하신 분에 의해 봉인된 것을 깨뜨릴
수 없다.
8. 성령님은 당신이 부활 혹은 휴거될 때까지 당신을 봉인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엡4:30).
구속의 날이란 신자인 당신이 영광스럽게 된 몸을 입게 되는 부활의 때를 가리킨다.
*봉인된 고대의 파피루스: 봉인은 완전히 둘러싸는 것이다.
구원 받으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꽁꽁 둘러싸신다.
9. 성령님께서 영원히 당신과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나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라(요14:16-17).
죄인이 구원받을 때 신자 안에 거하기 위해 오시는 성령님의 내주는 영구적인
것이며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다.
10. 당신은 영원히 보존된다.
주께서 판단의 공의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성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나니 그들은
영원히 보존되나 사악한 자의 씨는 끊어지리로다(시37:28).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모든 이들을 ‘성도’(saints)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분의 성도들은 영원히 보존된다.
11. 당신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기에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1:12-13).
구원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육적 출생에 비유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것을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부르셨다.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어떤 사람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가 버린다면 그분의 이러한 비유는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12. 당신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기에 창조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창조주는 오직 한 분이시며 그분께서 이미 창조하신 것이 창조되지 않은 상태가
될 수는 없다.
13. 당신은 우주 정권이 안전한 것보다 두 배는 안전하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단수]에
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사9:6).
또 그가 그것을 찾은즉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집에 돌아와서 자기 친구와
이웃들을 함께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기뻐하자. 내가 잃어버린 내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눅15:5-6).
성경은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한쪽 어깨’(shoulder)에 전 우주의 정권을 지고
계신 것으로 묘사하는 한편 그분의 ‘양쪽 어깨’(shoulders)에 구원받은 자를 메고
계신다고 묘사한다. 성경의 계산법에 의해서 당신은 전 우주 정권이 안전한 것보다
두 배는 더 안전하다.
14. 당신은 하늘 왕국에 이르기까지 보존된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자신의 하늘 왕국에 이르기까지
보존하시리니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후4:18).
이것은 성령님의 영감에 의한 사도 바울의 간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기에 이것은 또한 우리의 간증이기도 하다. 그분께서 사도
바울을 보존하신다면 당신도 보존하실 것이다.
15. 당신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를 보고 있다.
너희는 마지막 때에 드러내려고 예비된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벧전1:5).
당신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잃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단
말인가?
16. 예수님께서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셨기에 당신의 구원은 안전하다.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아들 하나님께서 당신이 안전하게 지켜지도록 기도하셨다면 당신은 그분의 기도가
응답되리라고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17. 구원은 은혜에 의한 것이기에 행위가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롬11:6).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롬3:28).
미래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 것에 의해서 구원을 잃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하면 행위는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위는 구원을 획득할 수
없다. 행위는 구원을 유지할 수도 없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18. 당신은 당신의 일들을 이미 그친 상태이다.
그분의 안식에 이미 들어간 자는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그치신 것
같이 이미 자기 일들을 그쳤느니라(히4:10).
구원의 안식에 들어가서 그리스도께서 끝마치신 사역을 의지할 때 당신은 구원을
위한 혹은 그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스스로의 모든 노력’에 의지하는 행위를 이미
그쳤다.
19. 아무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당신을 떼어놓을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롬8:38-39).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구원을 묘사한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바로
그 사랑이다.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사랑을 우리가 알았고 또 믿었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
미래에 지을 어떤 죄로 인해서 구원을 잃게 될까 봐 걱정이 되는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성령님께서는 ‘장래 있을 것들’ 곧 미래의 어떤 일이 당신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신다. 사탄 혹은 심지어 당신 스스로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당신을 끊을까 봐 걱정이 되는가? 성경이 어떤 창조물이라도 당신을 그리스
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마귀와 더불어 당신 자신도
포함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언급된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우주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가 한번 얻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
20. 구원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나는 감사의 목소리로 주께 희생물을 드리며 내가 서원한 것을 갚겠나이다.
구원은 주께 속하나이다, 하니라(욘2:9).
내가 알거니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영원하리라. 그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그것에서 무엇을 뺄 수 없나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시는 것은 사람들
이 자신 앞에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라(전3:14).
구원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당신을 구원한 분이 바로 그 주님이시라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영원할 것이다.
21. 당신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
이런 까닭에 나도 이 일들로 고난을 당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알며 또 내가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하노라(딤후1:12).
당신의 영원한 혼을 주님께 맡길 경우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늘에서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그날까지 당신을 능히 지키실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22. 하나님은 당신이 정죄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만일 구원받은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건 다시 정죄에 이른다면 이 약속은
거짓이다.
23.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10:27-28).
그분께서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지를 조건으로 해서 위와 같이 약속하지 않았음에
주목하라. 분명히 그분께서는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24. 당신은 결코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께 주셔서 돌보도록 하신 이들 중 어떤
사람도 어떤 이유에서든 결코 쫓아버리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신다.
25. 구원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당신을 위해서 선을 이룬 것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구절은 오직 신자들에게만 해당된다. 잃어버려진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요일4:7). 당신이 구원을 잃게 된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선을 이룬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한번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그를 위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당신이 구원을
잃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26. 당신은 그리스도의 손 안에 감싸여 있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요10:28).
어떤 이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끝까지 붙들고 버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의하면 당신의 구원을 붙들고 계신 분은 주님이시다.
27. 당신은 아버지 하나님의 손 안에 감싸여 있다.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능히 그들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요
10:29-30).
이것은 이중 안전보장이다. 당신은 아버지 하나님의 손과 아들 예수님의 손 안에
이중으로 싸여 있다. ‘아무도’에는 당신 자신도 포함된다. 따라서 당신 스스로도
하나님의 손과 예수 그리스도의 손으로부터 미끄러져 나갈 수 없다.
28. 당신은 예수님께 속한 양이고 언제까지나 그분의 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요10:27-28).
성경은 일관되게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은 개로,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은 돼지로
묘사한다. 구원받은 신자들은 이방인과 유대인에 상관없이 ‘새로운 창조물’이 되고(고
후5:17) 그들은 양으로 묘사된다. 개가 양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기적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양 즉 구원받은
사람이 개 즉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으로 바뀔 수 없다. 이것은 당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29. 구원의 은혜는 결코 다함이 없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
3:5)
시편 136편은 26회에 걸쳐서 ‘그분의 긍휼이 영원하도다.’라고 기록한다. 당신의
구원은 그분의 긍휼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긍휼은 일정 기간 지속되다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히 지속된다.
30.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셨다면 그것은 반드시 성취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 (민23:19)
아들 하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가졌다.’고 약속하셨다(요
6:47). 그분의 말씀은 신실하시므로 그분께서 약속을 지키시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31. 당신의 모든 죄들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그분께서 우리의 범법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그분께서 다시 돌이키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의 불법들을 누르시리니
주께서 그들의 모든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리이다(미7:19).
내가 네 범법들을 빽빽한 구름을 지우듯 지웠고 네 죄들을 구름같이 지웠으니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느니라(사44:22).
보옵소서, 평안을 얻으려고 내가 큰 쓰라림을 받았거니와 주께서 내 혼을 사랑하사
부패의 구덩이에서 건져 내셨으니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로 던지셨나이다
(사38:17).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17).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리이다’, ‘네 죄들을 구름같이
지워버렸으니’, ‘모든 죄를 주의 등 뒤로 던지셨나이다’,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등과 같은 이 모든 표현은 당신의 모든 죄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음을 증언한다.
32. 성경은 당신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처럼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되리라.’는 말은 그렇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에 대한 진술이다.
33.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미 영화롭게 된 것으로 치신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30),
어떻게 이미 영화롭게 된 사람이 구원을 잃을 수 있는가?
34. 당신은 썩지 아니할 씨로 태어났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당신의 새로운 출생은 썩지 않을 씨에 의한 것이기에 사탄이나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썩지 않으리라고 선언하신 출생을 썩게 만들 수 없다.
35.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리라(골3:4).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곧 당신의 미래를 모두 아심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그분만이 위의 성경 말씀이 성취되리라는 것을 미리 약속할 수
있으셨다. 그분은 모든 신자들에게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셨다.
36.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
너희는 죽었고 너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3:3).
하나님의 평가에 의하면 당신의 자연적 생명은 죽었다. 이제 당신에게 있는 유일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이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사탄이 찾아낼 수
없는 방법으로 숨겨져 있다.
37. 당신은 죄에 대해서 죽어 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롬
6:2)
죽은 자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느니라(롬6:7).
분명히 당신은 죄를 지을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지는 않았다. 위의 구절은 신자와
그리스도가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서 언급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으므로
죄가 미치는 영원한 효력으로부터 죽었다. 따라서 우리의 그 어떤 죄도 우리의
영원한 안전보장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38. 주님께서 현재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므로 당신은 안전하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히
7:25).
주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중재하고 계시므로 당신의 구원은
끝까지 즉 그리스어의 의미대로 ‘완전히 끝까지’ 이른다.
39. 하나님은 자신이 시작한 것을 끝마치실 것이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이것을 나는 확신하노라(빌1:6).
당신의 삶에서 구원의 일을 시작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이루어 가신다.
40. 당신의 구원은 주님께서 얻어 당신에게 주신 것이다.
[그분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히9:12).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의 피로 한 번 영원한 대속을 이루셨다. 우리는
단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대속을 받았을 뿐이다. 그분께서 한 번 그것을
획득하셨으므로 그것을 영원히 얻으셨다.
41. 당신의 생명과 주님의 생명은 하나이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리라(골3:4).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주목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생명을 다시
잃지 않는 한 어떻게 우리가 우리 생명을 잃을 수 있는가? 주 예수님께서 결코
죽지 않으시고 그분께서 우리의 생명이시라면 당연히 우리는 결코 종말을 고하지
않을 생명을 가지고 있다.
42. 하나님께서 당신과 맺으신 언약은 영원히 지속된다.
이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영존하는 언약의 피를 통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선한 일에서 너희를 완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자신의 눈앞에서
매우 기쁜 것을 너희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히13:20-21)
언약은 상호 간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신자들과 맺으신 약속은 바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당신에게 영존하는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43.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실 수 있다.
이제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넘어지지 아니하게 하시고 넘치는 기쁨으로 자신의
영광이 있는 곳 앞에 흠 없이 너희를 제시하시는 분(유24)
주님께서는 당신이 넘어지는 것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3:9). 이것이야말
로 ‘은혜에서 떨어지면 구원을 잃게 된다.’고 넌지시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답변이다.
44.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을 때 당신의 모든 죄들은 미래의 죄였다.
또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내게 있으므로 그들도 내가 반드시 데려오리
니 그들이 내 음성을 듣겠고 이로써 한 우리와 한 목자가 있으리라(요10:16).
주님께서는 여기서 당신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미래에 속한
어느 날 구원받을 이방인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유대인의 양무리가 아닌 다른
양들을 자신이 소유하고 계시다고 하신다. 당신이 구원받은 이후에 짓는 죄들이
당신의 구원을 잃게 만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평생 사는 동안 지을 죄들은
이천 년 전 주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신 시점에서는 모두 미래의 죄였기
때문이다. 그때에 당신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45.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다.
[바울은]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딛1:2)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하실 수 없다. 그분은 모든 신자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요10:28),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다고 하셨다(요3:36).
46. 구원은 취소될 수 없는 선물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롬6:23).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2:8-9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롬11:29).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다’(without repentance)는 것은 그리스어로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영원한 생명을 한 번 선물로 주신다면
그것은 다시 무를 수 없는 것이다.
47. 당신은 전가된 의를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다윗이 행위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를 인정하시는 사람의 복된
일을 묘사하여 이르되, 자기 불법들을 용서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롬4:6-7)
여기서 의를 ‘인정한다’는 말은 ‘전가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간주에 의해
의가 증여된다는 말이다. 당신의 의가 당신 스스로 번 것이라면 당신이 행하는
불의한 행위에 의해서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바탕으로 해서 당신에게 전가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불의하게 되실
경우에만 당신의 의를 잃을 수 있다.
48. 당신은 그리스도의 신체의 일부분이 되었다.
우리는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들이니라(엡5:30).
구원받는 순간 우리는 하늘에 계신 신랑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 이것은
영적인 면으로 사실이며 성경적으로도 글자 그대로도 그 사실을 부인할 근거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한다.’(행17:28)는 성경의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고후5:17) 이들에게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살과 뼈는 그들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로 인해서 끊임없이 찢어질
수 없다.
49.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구원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시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믿음을 시작하신 믿음의 창시자이실 뿐 아니라 그 믿음을
끝맺으시는 완성자이시다. 만일 당신이 중도에 어디선가 당신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면 당신의 삶에서 그분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분이 될 수 없다.
50. 성경의 권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요일5:13).
주를 찬송할지로다. 그분께서 친히 약속하신 모든 것에 따라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
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분께서 자신의 종 모세의 손으로 약속하신바 자신의
모든 선한 약속 중 한 말씀도 이루지 아니하신 것이 없도다(왕상8:56).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사40:8).
앞에서 제시한 이유들 즉 구원받은 사람이 절대로 구원을 잃을 수 없는 49가지
이유는 지금 말하는 50째 이유 곧 성경의 권위에 대한 증거들이다. 성령님께서는
영감으로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멈추지 않을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하신다.
성경은 그 자체가 스스로의 권위이다. 위의 50가지 성경적인 이유로 인해서 구원받
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을 수 없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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