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중에도 한국공예 발전을 위해 투고해 주신 회원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공예가는 그 솜씨로 칭찬을 받고 ,민중의 지도자는 그의 말로써 명성을 얻는다 (집회서)”
하였습니다.
공예가들은 오랫동안 작품에만 거의 열정을 쏟으며 지내 왔습니다. 공예를 알리는 방식은 일찍이 변화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어떤 분은 아직도 옛날 공예가와 같이 세상을 등진 듯이 작업에 몰두하시는 분도 더러는 계십니다. 이 시대는 그렇게 살기가 어렵겠지요. 그럴 수만 있다면 복을 타고난 분은 아닐까요. 사람들 살기야 좋아졌지만 공예가가 옛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대접을 잘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급변하는 문화환경에서 공예가 옛날 같은 위신을 지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더욱이 새로운 것에 쉽게 빠져드는 한국적 상황은 옛 방식의 공예를 그냥 뒤로 돌아보지 않고 버려져도 좋은 것으로 취급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가면서 제일 많이 버리는 것들이 생활공예품들입니다. 공예는 이래저래 푸대접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옛 것을 산동네 재개발하듯이 버렸습니다. 공예 전부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정말 아직 아니겠지요.
현대사회에 와서 공예만이 다른 예술분야보다도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안일한 자세로 머물러 있었던 공예인들의 잘못이 아닌가 합니다. 늦었지만 공예가들의 사고도 바뀌어져야 합니다. 요즈음은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데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공예가들은 말도 못하고 글도 잘 쓸줄 모릅니다. 물론 작품을 하면서 논문을 또 쓰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어떤 교수님은, “저는 작품발표만으로 연구실적이 충분해요. 이젠 정교수가 되어 논문까지는 필요 없어요.”그러시더군요. 저는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이니까요. 그러나 그 교수님 같은 생각이라면 어느 세상이 와야 공예가들이 인정받을까요. 하기야 반 공예적인 것이 공예적인 것으로 착각되는 시대에 살다보니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공예는 문화라는 토양 속에서 자라는 시대적 인간의 창조물입니다. 이젠 새로운 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언어기록이 없는 먼 가족들은 한 때는 지구상에서 영화를 누리다가도 타민족들에 의해 모두 사라졌습니다. 언어와 역사기록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것들이 대부분 공예품 아닙니까. 만일 선조 공예가들이 기록으로도 많이 남겨 주셨다면 한국공예의 발전과 위상은 지금과 너무 다를 것입니다. 공예가 무조건 대접을 받자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작품만으로 공예를 알리기에는 클라이언트나 대학에서 교수방법도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말 잘하고, 논리적인 공예가들이 많이 나와주어야 공예가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는 차지 않으시더라도 꾸준히 한국공예발전을 위해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바쁘신 중에도 한 논문을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님. 이번에 논문집체재를 바꾸도록 이끌어주신 편집위원님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공예발전을 위해 흔쾌히 논문집을 발간해주신 「예경」한병화 대표님께 고마움을 표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