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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톨릭국악성가 원문보기 글쓴이: 옥피리
▶니체타(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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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케타(또는 니체타)는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 지방 아폴로니아의 주교였다. 그는 성상파괴자인 레오 3세 황제에 의해 박해를 받고 아나톨리아(Anatolia, 오늘날의 터키)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
▶데르푸타(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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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Alexandra), 성녀 클라우디아(Claudia), 성녀 에우프라시아(Euphrasia), 성녀 마트로나(Matrona), 성녀 율리아나(Juliana),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테오도시아(Theodosia), 성녀 데르푸타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마르코(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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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스콜리의 산타 마리아 디 몬테갈로 출신인 마르코(Marcus)는 페루자(Perugia)와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한 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 얼마 후부터 이들 부부는 각각 수도 성소를 감지하고는 합의하여 아내는 클라라회, 남편은 프란치스코회로 들어갔다. 그는 뛰어난 순회 설교가로 곧 명성을 얻었는데, 거의 40년 동안 놀라운 정렬로 활동하였다. 한번은 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에 “마르코 형제여, 사랑을 설교하여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 그의 설교 주제는 거의 항상 사랑이 되었다. 그는 늘 새벽에 일어나 편태하였고, 한밤중에는 고행을 함으로써 자신을 단련시켰다. 또 카메리노에서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사람들이 회개하면 즉시 극복된다는 예언을 하여 그대로 적중시킨 이후 그는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그는 비첸차(Vicenza)에서 운명했는데, 임종하는 바로 그날 그는 수난 복음을 읽어달라고 한 뒤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이제는 다 끝났다”는 말을 남기고 영면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를 흔히 ‘사랑의 샛별’이라고 부른다 |
▶마르티노(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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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기록에 의하면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당대의 최고 학자였고, 그리스도인 시인 포르투나투스는 그를 은혜를 수없이 입은 사람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원래 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 지방 사람인데, 팔레스티나(Palestina)를 순례한 후에는 에스파냐의 갈리시아까지 갔다. 그는 여기서 국왕 테오도미르를 개종시켰다. 그 결과 수많은 다른 아리우스파(Arianism) 사람들과 배교자들을 로마 교회와 화해시켰다. 그의 선교 중심지는 두미움이었다. 그는 ‘왕가의 주교’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자신의 생활은 지극히 엄격하여 은수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 후 그는 포르투갈의 브라가(Braga) 주교좌를 발전시켜 죽을 때까지 책임을 다하였다. 선교사의 직무 외에도 그는 저술로도 교회에 기여하였으니, “올바른 생활양식들”이란 저서를 비롯하여 “거친 사람들의 교화에 대하여”라는 윤리 서적도 있다 |
▶마우리시오(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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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티우스 크사키(Mauritius Csaky, 또는 마우리시오)는 헝가리 왕족이다. 어릴 때부터 그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했고, 성장해서는 수도생활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깨어지고 20세에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부부는 서로 극진히 사랑하고 또 이해할 줄 알았으므로, 불과 몇 년을 살고난 뒤에는 서로 헤어져서 수도원으로 가는데 합의하였다. 마우리티우스는 설교자회를 선택하여 성 마가레트 섬의 수도원으로 갔다. 이 부부의 수도원 입회는 큰 소문을 일으키게 되었으므로, 부다페스트의 행정관 라디슬라우스(Ladislaus)가 그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그는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었으나, 수도생활에의 꿈을 일생동안 버리지 못하고 성당지기가 되어 성체조배 하는 일로 여생을 지냈다. 그는 라압에서 운명하였으나 야바렝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
▶마트로나(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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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Alexandra), 성녀 클라우디아(Claudia), 성녀 에우프라시아(Euphrasia), 성녀 마트로나, 성녀 율리아나(Juliana),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테오도시아(Theodosia), 성녀 데르푸타(Derphuta)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바오로(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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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Paulus),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를 포함해서 7명의 순교자들이 로마인들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다른 것은 거의 없다. |
▶밥티스타(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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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은 에스파냐계이고 모친은 이탈리아계인 밥티스타는 만투아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혈통 때문에 ‘스파뉴올로’(에스파냐 사람)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많아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더니 커서는 철학과 수사학을 배웠다. 그는 가족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페라의 카르멜회에 입회하여 험난한 완덕의 길에 도전하였다. 그는 수도원에서 문학과 성서 등을 계속 연구하였는데, 그의 라틴어 문장과 시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인본주의 작품으로 손꼽혔다. 하느님은 그에게 상담자로서의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 그는 6번이나 개혁 카르멜회의 부총장으로 뽑혔다. 그는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지녔으며, 마리아 공경을 전파하는데 지칠 줄을 몰랐다. 그는 로레토(Loreto)의 기적을 노래하였으며, 좋은 글을 통하여 이교도들의 마음을 회개에로 인도하였다. 그는 16세기 최고의 그리스도교 시인으로서 높은 공경을 받아왔다 |
▶불프란노(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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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베르트(Dagobert) 왕의 관리 아들로 태어난 성 불프란누스(Wulfrannus, 또는 불프란노)는 일찍이 사제가 될 꿈을 안고 궁중을 떠났다. 그 후 그는 람베르투스(Lambertus)가 상스의 대주교좌를 떠날 때 그의 후임자로 대주교좌를 계승하였으나, 불과 2년 반 만에 물러나야 할 입장에 있었다. 그는 이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프리슬란트(Friesland)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는 일행과 더불어 해로를 통하여 프리슬란트에 상륙했는데, 국왕 라드보르의 아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 후 그는 퐁트넬(Fontenelle)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선종했는데, 그의 유해는 아베빌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
▶빅토르(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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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Samaria)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Photina)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세바스티아노(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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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Samaria)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Photina)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또는 세바스티아노),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아나톨리오(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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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Samaria)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Photina)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또는 아나톨리오),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아르키포(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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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이긴 하지만 성 아르키푸스(또는 아르키포)는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ia) 지방 콜로새의 첫 번째 주교였다. 그는 성 바오로(Paulus)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사명을 완수하라”는 권고를 받았다(골로 4,17). |
▶알렉산드라(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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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 성녀 클라우디아(Claudia), 성녀 에우프라시아(Euphrasia), 성녀 마트로나(Matrona), 성녀 율리아나(Juliana),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테오도시아(Theodosia), 성녀 데르푸타(Derphuta)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암브로시오(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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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에나의 최고 귀족 가문의 자제인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또는 암브로시오)는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컸고 또 손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로 태어났다. 어느 날 그의 유모가 도미니코회 수도원 성당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병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였으며, 주일마다 병원을 그리고 금요일에는 감옥을 방문했다. 17세 때 그는 도미니코 회원이 되고자 했으나 그를 미심쩍게 여긴 원장이 쾰른(Koln)으로 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여기서 성 대 알베르투스(Albertus)를 스승으로 또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를 친구로 만나게 되었다. 위대한 스승과 뛰어난 친구의 도움으로 그는 높은 학덕을 얻었고,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은둔생활을 갈망하여 장상의 허락을 얻었지만, 설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그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청중들은 설교하는 그의 머리 위에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계시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그는 성좌의 요청에 따라 성좌와 시에나의 정치적 알력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그레고리우스(Gregorius) 교황이 서거함에 따라 자기 수도원으로 은신해 버렸다.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고, 새벽 기도 후에는 2시간 동안 기도하였으며 나머지 시간은 공부하였다. 44년간의 수도생활에서 그는 매주 금요일에는 꼭 빵과 물로만 식사를 하였다. 그는 6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
▶에반젤리스트(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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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젤리스트와 페레그리누스(Peregrinus)는 이탈리아의 베로나(Verona)에서 학창 시절에 만나 우정을 나눈 이래 무덤에 갈 때까지 함께 생활한 보기 드문 친구이다. 두 사람은 수도원에 들어가 하느님만 섬기기로 결심하고 입회하였는데 그 수도회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 그들은 환시를 보게 되었고, 그때 받은 환시에 따라 베로나 교외에 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의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들의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원장이 어느 날 당신들은 왜 그토록 자주 문 밖에서 하늘만 응시하고 기도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천주 성자를 팔에 안고 계시는 성모님과 성녀 안나(Anna)를 그곳에서 뵈옵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그분들이 바로 자신들에게 은수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 분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받은 초자연적 은혜는 이 두 친구들에게 원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겸손한 자로 처신토록 하였으며, 가장 힘든 노동까지 자발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또 그들은 치유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은둔소를 찾아오는 환자들을 낫게 하여 그곳은 날로 유명해졌다. 에반젤리스트는 천사의 발현을 받고 머지않아 임종하리라는 말씀을 듣고는 무릎을 꿇고 감사드리자 그 천사는 평화로이 물러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페레그리누스도 하느님께 간청하여 친구와 같이 불러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에반젤리스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너도 곧 나를 따르리라고 말한 뒤에 페레그리누스가 운명하여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다 |
▶에우제니오(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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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Paulus),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를 포함해서 7명의 순교자들이 로마인들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다른 것은 거의 없다. |
▶에우페미아(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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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Alexandra), 성녀 클라우디아(Claudia), 성녀 에우프라시아(Euphrasia), 성녀 마트로나(Matrona), 성녀 율리아나(Juliana), 성녀 에우페미아, 성녀 테오도시아(Theodosia), 성녀 데르푸타(Derphuta)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에우프라시아(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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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Alexandra), 성녀 클라우디아(Claudia), 성녀 에우프라시아, 성녀 마트로나(Matrona), 성녀 율리아나(Juliana),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테오도시아(Theodosia), 성녀 데르푸타(Derphuta)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요셉(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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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Samaria)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Photina)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요한(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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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회의 제7대 총장인 요한 부랄리(Joannes Buralli)는 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으로 25세 때에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다. 그는 즉시 파리(Paris)로 가서 공부를 하고 사제로 서품된 후에는 볼로냐(Bologna), 나폴리(Napoli) 그리고 로마(Rome)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그의 설교는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곤 하였다. 1247년 그는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강인하고 배짱이 센 사람으로 인내심도 많았기 때문에 수도회 내외의 어려운 문제들을 잘 풀어나갔다. 그는 자주 부엌일하는 수사들을 거들어 준 것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침묵을 사랑하고 화해의 정이 깊어서 쓸데없는 말은 삼갔다. 그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국왕 헨리 3세가 문밖으로 나와 보잘것없는 그를 껴안아 영접했고, 프랑스의 상스(Sens)를 찾았을 때에도 국왕 루이 9세가 그의 기도와 축복을 청할 정도로 공경을 받았다. 또한 그는 교황으로부터 임명 받은 동방 황제의 교황 대사로서 봉사하기도 했다. 1257년에 그는 총장직을 사임하고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를 후임자로 뽑았다. 그는 그레치오의 은둔소로 은퇴하여 30여 년 동안 잊혀진 사람으로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
▶율리아나(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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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Alexandra), 성녀 클라우디아(Claudia), 성녀 에우프라시아(Euphrasia), 성녀 마트로나(Matrona), 성녀 율리아나,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테오도시아(Theodosia), 성녀 데르푸타(Derphuta)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치리아카(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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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Samaria)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Photina)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또는 치리아카)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치릴로(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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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Paulus),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를 포함해서 7명의 순교자들이 로마인들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다른 것은 거의 없다 |
▶쿠트베르토(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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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성 쿠트베르투스(Cuthbertus, 또는 쿠트베르토)가 아일랜드계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스코틀랜드계라고 하지만, 저명한 역사가인 성 베다(Beda, 5월 25일)는 영국 출신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어린 아이였을 때 고아가 되었고 얼마 동안 목동 노릇을 하였으며, 머시아(Mercia) 사람들과 싸웠던 경험도 있다. 성 쿠트베르투스는 영국 스코트랜드의 멜로즈(Melrose)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된 후 성 에아타(Eata, 10월 26일)를 수행하여 리펀(Ripon) 수도원으로 갔으나, 알크프리드(Alcfrid) 국왕이 이 수도원을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에게 넘겨주자 다음 해에 멜로즈로 돌아와서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661년에 멜로즈에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자신도 병에 걸릴 만큼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의 성덕은 너무나 뛰어나서 놀라운 치유 능력을 보였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주로 선교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성 콜만누스(Colmannus, 2월 18일)가 로마 전례 거행을 결정한 휘트비(Whitby) 회의의 결정을 거부하고 린디스판의 대부분의 수도자를 이끌고 아일랜드로 돌아가 버렸을 때, 성 에아타가 그의 후임 주교로 임명되었고, 성 쿠트베르투스는 린디스판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멜로즈에서 린디스파른 수도원으로 옮긴 그는 선교 활동을 재개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이 일은 그가 은수자로 생활할 허가를 받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은수자로서 생활하던 성 쿠트베르투스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새로 분할된 헥섬(Hexham) 교구의 주교로 선임되었다가 다시 헥섬 교구 대신 인연이 깊은 린디스판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2년 동안 자기 교구를 지도하다가 최후의 날이 임박한 것을 깨닫고 파르노(Farno) 섬으로 돌아가서 3월 30일에 선종하였다. |
▶클라우디아(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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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Alexandra), 성녀 클라우디아, 성녀 에우프라시아(Euphrasia), 성녀 마트로나(Matrona), 성녀 율리아나(Juliana),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테오도시아(Theodosia), 성녀 데르푸타(Derphuta)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성녀 클라우디아는 칼디아(Caldia)로도 불린다 |
▶테오도시아(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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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Alexandra), 성녀 클라우디아(Claudia), 성녀 에우프라시아(Euphrasia), 성녀 마트로나(Matrona), 성녀 율리아나(Juliana),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테오도시아, 성녀 데르푸타(Derphuta)와 그녀의 자매는 모두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 아미수스(Amisus)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파라스케베(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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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Samaria)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Photina)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페레그리노(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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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젤리스트(Evangelist)와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또는 페레그리노)는 이탈리아의 베로나(Verona)에서 학창 시절에 만나 우정을 나눈 이래 무덤에 갈 때까지 함께 생활한 보기 드문 친구이다. 두 사람은 수도원에 들어가 하느님만 섬기기로 결심하고 입회하였는데 그 수도회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 그들은 환시를 보게 되었고, 그때 받은 환시에 따라 베로나 교외에 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의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들의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원장이 어느 날 당신들은 왜 그토록 자주 문 밖에서 하늘만 응시하고 기도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천주 성자를 팔에 안고 계시는 성모님과 성녀 안나(Anna)를 그곳에서 뵈옵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그분들이 바로 자신들에게 은수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 분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받은 초자연적 은혜는 이 두 친구들에게 원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겸손한 자로 처신토록 하였으며, 가장 힘든 노동까지 자발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또 그들은 치유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은둔소를 찾아오는 환자들을 낫게 하여 그곳은 날로 유명해졌다. 에반젤리스트는 천사의 발현을 받고 머지않아 임종하리라는 말씀을 듣고는 무릎을 꿇고 감사드리자 그 천사는 평화로이 물러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페레그리누스도 하느님께 간청하여 친구와 같이 불러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에반젤리스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너도 곧 나를 따르리라고 말한 뒤에 페레그리누스가 운명하여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다 |
▶포시나(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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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또는 포시나)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포시오(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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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Samaria)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Photina)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또는 포시오),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포티스(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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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Samaria)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Photina)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
▶헤르베르토(3.20)◀ |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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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르베르투스(Herbertus, 또는 헤르베르토)는 성 쿠트베르투스(Cuthbertus, 3월 20일)의 제자 겸 절친한 친구로서 더웬트워터 호수의 한 섬에서 홀로 지냈다. 그는 매년 린디스판(Lindisfarne)에 있던 그의 스승을 방문하여 자신의 사도적 정열을 새롭게 하였다. 그러던 중 스승이 운명하기 1년 전부터는 아예 스승과 함께 지내며 스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두 성인은 기도와 고행으로 깊이 일치하였고, 거의 함께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성 헤르베르투스는 스승에 대한 사랑과 친구의 우정으로 인하여 높은 공경을 받는다 |
첫댓글 알고있는 축일자가 있네요. 축일자여러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