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V.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형식으로서의 영원
1. 성경적인 하나님 이해 - 생명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적인 관점에 따르면 시간이란 생명의 존재형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시간의 상대적인 개념인 하나님의 영원성이 과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성경적인 하나님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한 성경의 여러 가지 정의들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야웨 하나님 바로 오직 그 분만이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이라는 것이다. 이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다른 신들, 곧 죽은 우상들로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구별하신다(cf. 시 115:4-8; 렘 10:3-16). 예레미야 10:10에서,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고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창조세계와 구속역사, 그리고 그의 백성과의 언약관계 속에서 특별히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스스로를 계시하신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독특하게 스스로를 “YHWH”(야웨, Yahweh)로서 계시 하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 WHO I AM, YHWH)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또한 모세에게 스스로를 “야웨”(YHWH)라고 계시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이 바로 이전 조상들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셨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5; cf. 6:2-3). 성경에 따르면, 야웨(Yahweh)는 하나님의 고유한 성호이다: “하나님 여호와 .....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5 cf. 사 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I am Yahweh; that is my name!).”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사 45:5, cf. 46:9-10)고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가장 고유한 하나님의 성호인 야웨(YHWH)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참 살아있는 하나님으로서의 자기-정체화(self-identification)이다. 현대 성경신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 독특한 하나님의 성호인 신성4문자(tetragrammaton), “YHWH”(출 3:14)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된다: “I am who I am,” “I am he who is,” “I will be who I am / I am who I will be,” 혹은 “I will be who I will be.” 먼저 이것은 하나님의 자존성(aseity), 즉 절대적인 자존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언명, “나는 존재한다”(I AM)는 것의 천명이다. 그는 영원히 존재하시며, 따라서 시작도 끝도 없는 그 자신의 본질적 생명을 소유하는 “절대적인 자존자”(the absolute self-existent Being)이시다(cf. 시 102:27). 그리고 그것은 또한 구속역사의 전개 가운데 그의 백성과의 언약관계 속에서 그의 전능한 역사하심의 임재를 의미하는 바, 곧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출 3:12, cf. 마 1:23, “임마누엘”)는 의미이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출 6:6-8).
야웨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과의 언약 형식은 다음과 같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출 6:7). 이러한 언약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계속하여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습 3:17). 이러한 의미에서, 야웨는 언약의 하나님, 곧 구속자 하나님의 성호이다.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3, 11, 44:6, 24, 48:17, 49:7, 26).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에서 “야웨”(YHWH)의 본질적인 의미를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성경적이라는 것을 제의하고자 한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자존”(YHWH, “I AM”)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럼으로써 구속역사 가운데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I am / I will be with you) 구속자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성경이 증거하는 유일하게 참된 하나님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 야웨(Yahweh) – 곧 “생명의 하나님”(the God of Life, chai elohim, theo zontos, cf. 삼상 17:26; 시 42:2; 마태 16:16)이시다. 하나님은 그 스스로 생명(Life), 곧 참되시고 “영원한 생명”(the eternal Life)이시다(cf. 렘 10:10; 살전 1:9; 히 12:22; 계 7:2). 생명의 하나님이시자 생명의 주인이신 야웨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창조자”(the Creator of life, cf. 창 1:1; 요 1:1-4)이시며, 또한 “생명의 구원자”(the Savior of life)이시다.
그토록 많이 논의되어진 하나님의 이름인 야웨(Yahweh)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는 것이 아주 가능성이 있다: “내가 곧 너와 함께한 그로라. 나는 생명이다”(I am he who is with you; I am life). 신적 임재는 즉각적인 창조이며 해방이다. “나는 생명이다”(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그러한 분이 곧 야웨(Yahweh)이시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생명의 기원 혹은 원천에 대한 생각을 만난다.
하나님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생명에 의해, 그리고 살아있는 존재로 특징 지워진다. ..... 하나님이 죽으실 수 있다는 것은 적절한 생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 본질적인 것이며, 신적 본질에 속하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생명에 대하여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도(욥 9:21; 고후 1:8),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 ..... 살아계심은 하나님의 고유한 본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의 근원으로 적절하게 인식되어져야 한다. ..... 요한복음서에서 성부 하나님은 “그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을 주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요 5:26). .....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시작도 없고 또한 끝도 없다. 살아있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기 이전에, 오직 하나님만 살아계셨다(창 1:1ff). 그리고 이 세상이 없어진 그때에도 살아계실 것이다(눅 1:33; 히 7:3).
이와 같이 구약성경에서 스스로를 “야웨”(YHWH, “I AM”)로 계시하신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 혹은 “생명의 하나님”(the God of Life)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자기-정체화(self-identification)하는 것에서 확증된다. “나는 생명이다”(I AM the Life, 요 14:6) 그리고 “나는 살아있는 자라”(I AM the Living One, 계 1:18). 요한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예수님의 “I AM”(ego eimi) 형식문은 바로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절대언명인 “야웨”(YHWH, ‘I AM’)의 반영이다(e.g., 요 6:48 – “나는 생명의 떡이라”(I AM the bread of life); 8:12, 9:5 – “나는 세상의 빛이라”(I AM the light of the world, cf. 10:7, 14, 11:25, 14:6, 15:1, 5, etc.).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곧 영원한 “생명의 말씀”(the Word of Life, 요일 1:1-2; cf. 요 1:1-4)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의 주”(the author of life, 행 3:15)이시다. 참으로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리라(I AM)”고 하셨다 (요 8:58).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다”(요일 5:20, 이것은 바로 렘 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의 반복이다). 따라서 존 프레임(J. M. Frame)은 “그리스도는 일반적인 의미에 있어 신이 아니라, 바로 구약의 언약의 하나님 곧 야웨(Yahweh)이시다”라고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I and the Father are One)라고 선언하심에서 분명해진다(요 10:30). 성경이 말하듯이, 정확하게도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히 1:3; cf. 골 1:15-17).
그러므로 성경이 밝혀 발하는 바와 같이,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요 5:26). 그리고 그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곧 육신이 되셨다(요 1:14; cf. 빌 2:6-8). 이것은 영원한 생명, 곧 영원(eternity)이 육신의 생명, 곧 인간의 시간(human time)이 되셨음을 말한다. 그는 그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예수”(Jesus, cf. Joshua)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고, 이것은 구속의 하나님 야웨(YHWH)의 반향이다(마 1:21). 그러므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몬 베드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의 질문에 대하여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 i.e., Yahweh)의 아들”이시라고 했다(마 16:16). 베드로의 이 고백은 기독교 기독론의 정화요, 기초석 역할을 한다. 예수는 약속의 메시야, 곧 그리스도시요, “임마누엘”(God with us) 곧 우리에게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언약의 성취이다(마 1:23, cf. 사 7:14; 야웨(Yahweh)는 “내가 너와 함께 한다”[I AM with you]는 언약이다). 따라서 우리를 위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음, 곧 모든 성경 메시지는 다음의 한 구절에 집중되고 요약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요일 5:20)이시기 때문에, 그는 바로 “생명의 길”(the path of life)이시다(행 2:28). 우리에게 그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를 다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다(cf. 행 2:32-33, 3:15; 롬 1:4, 8:11, 34). 성경이 명확하게 언명하듯이, “마지막에 멸망받을 원수가 바로 죽음”인데(고전 15:26), 참으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 마지막으로 멸망받을 “죽음의 죽음”(the death of death)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참 생명과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20-21, cf. 15:22-2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6-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 [그러므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전 15:54). 따라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했다(롬 6:23). 그리고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곧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a life-giving spirit)이 되었다”(고전 15:45).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바울 또한 말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 . .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했다(골 3:1-4; cf. 갈 2:20). 이것이 바로 “생명의 주인”(the Lord of Life)이신 성부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으로부터 “생명의 영”(the Spirit of life)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생명의 말씀”(the Word of life)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 곧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하나님은 영”(God is Spirit)이시라고 정의하며(요 4:24; 고후 3:17, 18), 그리고 성령은 특별히 “생명의 영”(the Spirit of Life)으로 정체화된다(롬 8:2). 무엇보다도 먼저, 구약에서 성령은 “야웨의 루아흐”(Yahweh’s ruach)이시며, 그것은 죽은 우상들로부터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구별하는 것이다(cf. 합 2:19).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the Living God [i.e., Yahweh])으로 불리신다(고후 3:3). 몰트만에 따르면, 루아흐(ruach)라는 단어는 “죽은 어떤 것과 대비하여 항상 살아있는 어떤 것, 혹은 석화되고 고체화된 어떤 것에 반하여 항상 살아 생동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야웨의 루아흐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또한 모든 살아있는 것으로써 삶을 즐거워할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의 위격인 성령 하나님이시다.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Yawheh)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야웨의 루아흐(Yahweh’s ruach)는 제2의 위격이신 야웨의 다바르(Yahweh’s dabar) 곧 그의 말씀(the Word)과 더불어 함께 하셨다(cf. 창 1:2, 3-30; 시 33:6; 골 1:16-17). 특별히 하나님의 인간 창조 기사에 따르면, 흙으로 빚은 사람(the dust-man)이 “생명의 숨결”(the breath of life)이신 야웨의 루아흐에 의해 “살아있는 존재”(a living being, a living person, 혹은 a being-as-life)가 되었다(창 2:7; cf. 고전 15:45). 생화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진흙 사람(the dust-man)은 문자 그대로 수소, 탄소, 산소, 질소, 인 등과 같은 몇 가지 화학 원소들이 뭉쳐진 진흙(the dusts) 덩어리일 뿐이다. 그것에다 생명이시자 살아계신 하나님, 곧 야웨께서 그의 루아흐(ruach)를 불어넣으심으로 그 진흙 사람을 “살아있는 존재” 곧 “생명의 존재” 혹은 “생명인 존재”(a being-as-life)로 만드셨다(창 2:7). 이것은 인간에 대하여 최소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1) “살아있는 존재” 혹은 “살아있는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the imago Dei)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또한 동시에 (2) 그의 전인적인 생명은 그 자신 스스로의 소유, 즉 자존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a gift of God)이며, “창조된 생명”(a created life)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의 영”이시며, 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주인이시다(cf. 창 1:2 욥 33:4).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욥 34:14-15)고 했다.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우리로부터 거두심은 우리의 영원한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죽을 육신이 됨이라”(창 6:3)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창세기 3:19에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이 저주의 성취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생명나무가 온전한 영생을 위한 “형식적 조건”(formal condition, 육체적 생명)이라면, 야웨의 루아흐 곧 생명의 영은 영생을 위한 본질적인 혹은 “질료적 조건”(the essential or material condition, 영적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cf. 창 3:22-24; 시 104: 29-30; 사 32:15). 그러므로 요엘 2:28-32에서, 야웨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주시기를 마지막 날에 다시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만민에게 그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죽음으로 향한 우리의 생명에 대한 메시야적 희망이며, 우리를 위한 궁극적인 구원의 선포이다.
신약성경에서 이제 “하나님의 영”(창 1:2)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신다(cf. 마 1:18, 3:16).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은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사역과 불가분리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사실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는 그가 하나님의 영을 가져오며 또 나누어 주는 자이다. 이제 그 언약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 요 14:16, 15:26)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그 스스로 “성령을 받으라”하시며 숨을 내어쉬신다(요 20:22).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고후 3:3)이신 야웨의 루아흐는 이제 “예수의 영”(the Spirit of Jesus, 행 16:7),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Christ, 롬 8:9; 벧전 1:11, cf. “예수 그리스도의 영,” the Spirit of Jesus Christ, 빌 1:19), 그리고 “그의 아들의 영”(the Spirit of His Son, 갈 4:6)이라 불리워진다. 마지막으로, 오순절 날 성령은 만민에게 쏟아 부어졌고(cf. 행 2:1-4), 이것은 구약에서 선지자 요엘을 통해 주신 약속의 성취이다(cf. 욜 2:28-32; 요 15:26; 그리고 행 2:16-21). 따라서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고 한다. 성부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생명으로 일으키신 바로 그 동일한 성령을 이제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의 보증이다(고후 5:4-5).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생명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뿐만 아니라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생명의 유대”(the Bond of Life)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로버트 젠손에 따르면, 신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시간은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임할 때 발생하는 것”(Time is what happens when the Holy Spirit comes from the Father to the Son)이라고 정의된다. 그것은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일어나는 것인데, 왜냐하면 생명의 영이신 그는 생명이자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생명을 창조하셨고, 또 재창조하시기 때문이다(cf. 시 104:30).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통하여 참 생명이신 그의 아들 안에서 죽음으로 향한 우리의 시간으로서의 타락한 시간을 영원한 생명의 시간으로 구원하심에 다름 아니다. 젠손은 우리의 시간이 종말 이후에 하나님의 시간으로 신격화(deification; i.e., 영원한 시간, everlasting time) 된다고 보는 것에 반하여, 필자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새로운 존재형식, 즉 “새로운 시간”(new time)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하고 싶다(계 21:1-2; 벧후 3:13 cf. 사 65:17, 19).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그곳에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계 21:4)고 말한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I am making everything new!)고 선언 하신다(계 21:5).
이와 같이 오직 참된 성경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곧 그 스스로 “생명”이시며 또한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주인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에 따르면, “참 생명”(the true Life)이신 살아계신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the Word of Life)인 성자를 “낳으셨고”(begot), 또한 양자는 동일한 “생명의 영”(the Spirit of Life)이신 성령을 “내어쉬셨다”(breathed). 참으로, “낳으심”(발생, begetting)과 “숨쉼”(발출, breathing)의 사역은 살아있는 존재(the Living Being), 즉 “생명”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따라서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동일본질(homoousios)의 하나의 영원한 생명(the one and the same eternal Life)을 서로 공유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구별되는 삼위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생명 안에서 하나의 통일체(the one unity)를 이루신다. 말하자면,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생명 그 자체로서 살아계시며 행위하시는(vita pura et actus purus) 하나님이시며, 그 자신 안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다. 참으로 성경의 하나님, 곧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 스스로 참된 영원한 생명(vita vera et aeterna)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의 하나님은 추상적이고 정태적인 존재(Actus Purus, Ipsum Esse)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서 살아 생동하고 역동적인 존재(Actus Purus, Ipsum Vita)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