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빨강선을 따라가세요!
이 이야기는 필자가 쓴 한 청년의 슬픈 실화(實話)입니다.
내용이 좀 길지만 단편소설이라 생각하시고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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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태평양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1943년 팔월 말경, 한여름이 고비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8월의 늦더위는 등골에 땀을 흘러내리게 한다. 멀리 후지산이 아련히 보이는 야마나시현 산자락의 한적한 농촌의 밭두둑 길을 허민은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수강을 끝내고 학우들이 권하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거절하기 어려웠지만 가난한 유학 생활을 하는 처지에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서둘러 숙소로 행하고 있는 길이다. 차라리 숙소 뒷마당에 심어놓은 배추를 뜯어 잡곡밥에 배를 채우고 바위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 허민은 편안하다고 생각 하였다.
전쟁으로 인하여 농촌의 어디에도 사람 보기가 어려워 밭에 심은 고구마 넝쿨 옥수숫대가 그대로 방치되어 마치 유령이 사는 동네 같다. 허민은 여러 가지 상념 속에서도 뱀처럼 구불구불한 밭길을 부지런히 걷고 있다. 우측 200m쯤 전방에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허민은 공동묘지의 좌측 계곡 옆 산길을 가야 한다. 허민은 항상 이곳을 지날 때는 공동묘지를 안 보려고 고개를 돌리고 거의 뛰다싶히 걷는다.
산길은 풀이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항상 듣는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에도 가끔 등골이 오싹 할 때가 있다. 지금 허민이 향하고 있는 숙소는 산속에 있는 빈 절간이다. 전쟁 중이라 스님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절이 이곳저곳에 있다.
고향이 경남 김해인 허민은 평소 일본 유학을 동경해 왔지만 가정 형편으로 미루어 왔는데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징용을 피할 수 없어 유학을 택한 것이다. 평소 집안 살림이 어려운데다 전쟁으로 공출을 당하게 되어 집으로 부터는 학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유학 생활을 고학으로 버티니 힘든 생활은 비참 그대로다. 밤에 일을 하지만 학비와 숙식비를 해결할 방법이 너무 힘들어 같은 처지의 친구 3명과 의논하여 이곳 빈 절간을 숙소로 택한 것이다.
우선 방세 걱정이 없고 빈터에 채소도 심고 산속의 먹을 수 있는 산채나 열매 등이 있어 끼니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빈 절간이 무서워 밤에 변소도 셋이 같이 다녔지만 이곳 생활도 1년 8개월이 되니 마음도 안정되고 때로는 달밝은밤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를 보면서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되었다.
오늘은 밤일이 없는 날이라 숙소에 일찍 와서 저녁을 먹은 후 친구 두 사람은 담아놓은 과일 주를 한잔씩 하면서 전쟁에 대한 열변을 토하고 허민은 학기말 시험으로 공부에 들어갔다. 짧은 여름밤이라 두 사람은 먹은 술에 곯아떨어져 코를 골고 허민은 자정이 넘어서도 책에 눈을 심고 있다. 밖에는 달이 휘영청 밝고 절간은 쥐죽은 듯 조용한데 간혹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만 들리고 미풍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마치 승무(僧舞)같이 창문에 비친다.
이때 이 숨 막히는 정적 속에
또르르 탁 달가닥~ ~
돌멩이가 구르는 듯 한 소리가 들린다. 평소에 귀에 익은 새소리 벌레 소리 물소리 숲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아니다.
달가닥 달가닥~~
멀리서 아련히 들린다. 허민은 순간 귀가 쫑긋해 진다.
게다 끄는 소리 같기도 하고 돌멩이가 구르는 소리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 절을 찾거나 산길을 지나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이 밤중에는--
머리끝이 쭈삣해지고 어깨가 오므라든다
같은 소리는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달가닥 달가닥 게다 끄는 소리가 분명하다.
허민은 침도 못 삼키고 숨소리도 내지 못하며 손을 뻗어 잠든 두 친구를 흔들어 깨운다.
그러나 한잔 술에다 짧은 여름밤의 달콤한 잠에 빠진 친구는 아무 반응이 없다. 허민은 엉겁결에 등불을 훅 불어 끄고 옆에 있는 담요를 둘러쓰고 담요구멍에 눈동자를 맞추었다. 몸은 완전히 새우처럼 오그라들었다.
달가닥 달가닥 휘 휘--
천천히 들리는 발걸음 소리는 절 큰문을 지나 허민이 자는 문 앞에서 뚝 멈춘다.
심장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다.
순간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돈다.
끼 찌익 끼이 익~~
녹쓴 쇠롤라 소리를 내며 미닫이 방문을 여는 소리―
곧이어 성큼 방으로 들어서는 물체--
뱀 껍질처럼 스르르 스며드는 산속의 섬뜩한 기운
순간, 퍅! 하는 성냥 켜는 소리와 밝음,
내려다보는 엄청난 괴물 !
으흐 흐--- 허 ? ?
? ? ?
숨 막히는 정적
허민이 담요를 움켜쥔 손은 돌같이 굳었고 온몸의 피는 멈춘 상태다. 시간이 얼머나 흘렀는지 모른다.
다 탄 성냥개비 머리가 희미한 불빛을 그으며 유성(流星)처럼 아래로 떨어진다.
끼찌익 끼이 익 탁 !
문 닫는 소리
달가닥 달가닥--
멀어져 가는 게다 끄는 소리---
악몽에서 살아난 허민은 친구를 두들겨 깨웠다.
두 사람은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투덜거린다.
허민은 조금 전까지의 일을 말을 더듬으며 두서없이 설명 하지만 입만 벌리고 말이 나오지를 않아서 도저히 상황 설명이 안된다.
친구들은 멍하니 허민의 모습과 말도 안 되는 설명에 하품을 하며 눈만 비비고 있다가 “야 ! 시험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 좀 생각해라. 영양부족 빈혈에 순간적인 헛것이 보인 것이다”
열사람이 한사람 바보 만들기는 쉽다.
“내가 정말 헛것을 보았나?”
내일 밤은 공부고 뭐고 잠을 안자고 괴물을 확인하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은 곧 잠이 들었지만 허민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날 다시 날이 저물자 세 사람은 저녁밥을 일찍 먹고 야구방망이 몽둥이 등 무기를 준비하고 괴물을 기다린다.
허민은 오히려 여유가 있고 두 사람은 새삼 초조하고 조급한 눈치다.
자정이 지날 시점이다.---
달가닥 탁 탁 달가닥 멀리서 들려오는 게다소리.
순간 세 사람은 말문이 막히고 서로의 눈길이 고정된다.
목구멍으로 “꼴딱” 침넘어가는 소리와 아담의 사과만 굼틀거린다.
달가닥 달가닥 따르르--
절 큰문을 넘는 소리
순간 한 친구가 훅 하고 불을 끄고 세 사람은 담요를 뒤집어썼다.
야구방망이 몽둥이를 움켜쥔 채로--
끼 찌익 끼이 익-- 방문 열리는 소리
성큼 방안으로 들어서는 물체--
방안에 깔리는 산속의 묘한 기운, 퍅! 성냥 켜는 소리와 함께 불빛 속에 내려다보는 엄청난 괴물!
으 흐흐--허
숨 막히는 정적--
불빛을 그으며 아래로 떨어지며 숨져가는 성냥불 유광(流光)!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끼 찌익 끼이 익 탁, 문 닫는 소리--
다시 달가닥 달가닥 달빛 속에 멀어져가는 게다 끄는 소리--
나락(那落지옥)에서 깨어난 세사람 ??--
다음날 아침 담요를 개는데 마치 밤알 크기의 선지 핏덩이 같은 것이 담요위이 떨어져 있다. 필시 어젯밤 괴물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핏덩이다.
세 사람은 하교에 가서 지난 이틀간의 사건을 이야기 하고 핏덩이는 실험실에 분석을 의뢰하였다. 절간의 괴물 출현은 단번에 학교에 큰 화재거리가 되었다.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가라데 유단자인 한 단기 있는 학생이 괴물의 정체를 잡기 위해 절간의 세 학생과 합류하여 절간에서 자기로 하였다.
달 밝은 밤 자정시각 예의 괴물은 네 학생이 자는 방에 들어와 성냥불을 켜고 내려다 본후 방문을 열고 나간다. 달빛아래서 네학생들은 몸을 숨기면서 괴물의 뒤를 먼발치로 뒤따른다. 괴물은 상당히 큰 키로 보인다. 걸으면서 팔을 휘젓기도 하고 춤추듯 걷는다.
간혹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산속을 벗어난 괴물은 공동묘지로 오른다. 학생들도 숨을 죽이고 뒤를 밟는다.
공동묘지의 이곳저곳을 다니던 괴물은 한 묘지 앞에서 뚝 멈춘다.
한참 멍하니 묘지를 바라보던 괴물은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묘를 파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괴물의 위쪽에 위치한 한 묘의 뒤쪽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동태를 살핀다.
흙이 손으로 잘 파지는 것으로 보아 새 묘지 같다. 한참 후에 시체를 끄집어낸 괴물은 입으로 시신을 물어뜯고 얼굴은 피로 물들었다.
괴물은 손에 살점을 들고 달빛아래서 괴성을 지르고 춤을 춘다.
순간 긴장한 한 학생의 발밑에 있던 돌멩이가 굴러 괴물 쪽으로 내려간다. 시신을 물어뜯고 춤을 추던 괴물은 하던 행동을 탁 멈추고 고개를 학생들 쪽으로 홱 돌린다. 그리고 들고 있던 살점을 팽개치고 증오에 찬 몸짓으로 학생들 향하여 올라온다.
이판사판의 순간이다.
가라데 하는 학생이 묘지위에 우뚝 섰다. 바로 발밑에 오는 괴물의 턱을 향하여 앞차기를 가한 후 네 학생들은 공동묘지 산 밑을 향하여 죽을힘으로 달렸다.
다음날 아침 이 사건은 경찰에 의하여 죽은 괴물이 확인되고 학생들도 깨어났다.
풀잎과 나뭇가지 칡넝쿨 등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괴물은 보통 사람이었고 더욱 놀랍게도 확인된 신분은 조선의 유학생으로 경남 함안이 고향인 정진호(가명)라는 사람이었다. 유복한 집안의 정진호는 장래가 촉망되는 유학생이었다.
하루는 감기 몸살기가 있어 학교를 일찍 나와 하숙집에서 몸조리를 하였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열이 났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사다준 약을 먹고 밤을 새웠지만 아침에 일어나도 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얼굴에는 열이 나고 피부는 홍역처럼 작은 반점도 몇 개 돋아났다. “차라리 병원에 가서 의사 처방을 받고 아예 주사를 한 대 맞고 끝내야 겠다” 고 생각하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체온기 청진기 등으로 진찰을 하고 눈도 까집어 보고는
“집안 선대에 크게 열병 앓은 사람이 있어요?” 하고 묻는다.
정진호는 별로 들은바나 기억이 없다고 대답하고 감기 몸살이 아니냐고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끄떡이며 감기 몸살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그냥 참고로 물어본 것”이라고 하며 약을 지어주며 이약 먹고 차도가 없으면 다시 오라고 한다.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3~4일이 지나도 감기는 낫지를 않아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다시 진찰을 하고 혈청검사를 위해 채혈을 한 후.
간호사! “leprosy test 준비를 해요” 하고 지시한다. 의사는 악성 열감기 검사를 한 것이므로 3일후에 결과도 볼겸 치료차 병원에 오라는 것이다.
“레프러시 테스트”가 무슨 말인가? 새로 나온 독감 검사인가?
3일후
“우리 병원의 leprosy test가 잘못 나올 수도 있으니 다른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보세요. 그러나 내 진찰이 오진(誤診)이기를 바랍니다.”
예?
내가 천형(天刑)을 받다니요? 내가 대풍나(大風癩)라니오?
이런 청천벽력이, 정진호는 땅속으로 깊이 빠지는 심정의 순간이다.
정진호는 하숙집으로 돌아오면서 김동리의 단편소설 “바위”에 나오는 천형(天刑)을 떠올렸다. 천형(天刑)이란 문둥이 병을 말한다.
대풍나(大風癩) 레프러시(leprosy) 한센등은 나병(癩病)의 의학명(醫學名)이다.
정진호는 죽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막상 죽을 생각을 하고 손발을 보고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아직 멀쩡하다. 어려운 천형은 쉽게 와도 간단하게 죽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문둥이들은 어린애를 잡아먹으면 병이 낫는다 더라”
아련한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여름밤 모깃불 멍석위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옥수수를 뜯으며 하던 말이 기억에 난다. “말 안 들으면 문뎅이가 잡아간다. 빨리 자거라”
사람이 어찌 산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죽지 나는 그리는 못한다.
“그러나 병이 낫는다면--”
밤에 몰래 공동묘지를 찾았다. 어제 장사지낸 묘지를 택했다.
한번 가고 두 번가고 --
아예 산속에서 살며 칡넝쿨로 몸을 감았다. 제정신이 아니다. 인간이 시체를 먹는 악마의 괴물로 변한 것이다.
나병이 한 청년의 인생의 길을 도리킬수 없는 절망의 길로 갈라놓은 것이다.
병중에도 나병은 우리 인간으로부터, 아니 신으로 부터도 너무나 큰 저주받은 죄이다.
우리는 보리피로 유명한 나병시인 한하운(韓何雲1919~1975)을 알고 있다. 한하운은 베이징 북경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로 함경남도 함주 태생으로 한때 경기도청의 공무원이었는데, 한센병을 얻어 고향에서 요양하다가 남쪽으로 내려 와서 1949년에 첫 시집 《한하운시초》를 펴냈다
참고로 한하운의 시 “전라도 길”을 소개 한다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등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문둥병”이라는 병고를 지고 걷는 인생길은 목숨만 붙어 있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천형의 길을 걸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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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전남 광주에 근무시 나병환자와 악수도 하였고 고흥 녹동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과 수녀님들과 점심도 한상에 같이 먹은 경험이 있습니다.
나병환자와 밥을 한상에 먹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로서 50여 년 전 필자가 국민학교 5학년 때 겨울 공부가 끝나는 해질 무렵 우리들의 이야기 졸음에 못이긴 선생님께서 친구 분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을 필자가 기억으로 정리하여 8~9년 전에 모방송국의 “이야기속으로” 원고모집에서 채택된 시나리오입니다. 시나리오 내용을 이야기조로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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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이처럼 중요하다.
병은 종류에 따라서 한 인간의 소중한 일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을 수 도 있다
필자는 병자의 어려움을 볼 때마다 1991년에 타계하신 청량리 뇌병원장 최신해 박사의 수필집 “심야의 해바라기”를 읽은 기억을 떠올린다. 수필가이면서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고뇌와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내용이다. 필자는 이책을 보면서 얼마나 눈시울을 적시었는지 모른다.
인류의 많은 은혜로운 사람들은 인간을 병마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여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편작 허준등---
예수님의 갈릴리 주변의 행적중 가장 구원을 행하신 일은 병자를 고쳐주는 일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길을 걸은 것도 병자의 고통을 대신 짊어진 길로서 당신의 몸을 희생의 제물로 바쳐 고통 받는 인류의 병을 대신 받은 것이다.
싯다르타의 사문출유(四門出遊)은 또한 어떻한가?
고생을 모르는 부유한 왕자의 신분으로 카필라성(城)의 동·남·서·북 4문 밖에 나가 인생의 4고(四苦)를 직접 보고 생노병사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고행의 길인 고집멸도(苦集滅道)의 길을 걸으며 중생의 가장큰 고통인 병과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것이다. 그 숙제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웃음의 황제 이주일이 폐암으로 구겨진 휴지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세상의 연인으로 세계를 화려하게 주름잡던 시나트라가 에이즈로 초라한 몰골로 인생의 막을 내리는 것도 보았다. 한창 일할 나이의 국내 재벌 총수도 평생을 메밀국수와 씨름하다가 병으로 돌아 가셨다. 병원비가 없어서 죽었을까?
죽고 나서 애통하고 추모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물주는 인간에게 영광과 고통을 같이 주는 모양이다.
천도복숭아 세 개를 훔쳐 먹은 동방삭은 삼천갑자를 살았다고 한다. 기록상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중국의 팽조다 800년을 살았다고 한다. 병 없는 사람은 대체로 오래 살더라. 또 병이 없어야 큰일을 할 수 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도 무려 48가지 병으로 고생하였다고 한다. 그분시대의 위대한 업적은 임금의 결단력도 중요했지만 대부분 훌륭한 참모들의 노력이 컸다고 하였다.
병도 병나름이지 생사의 기로에 처한 병이 든 사람과 그 가족의 아픈 심정은 당사들 이외는 잘 모른다.
신장 이식수술, 간이식수술, 심장이식술의 순서를 기다리는 본인과 가족의 기다리는 마음은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다. 장애자의 부모의 심정은 겉으로는 웃어도 마음은 새까맣게 탄 숯검정이 되어 있다.
필자도 가족 중에 생사를 넘나드는 중병환자가 있어 강남성모병을 내 집처럼 드나들든 경험이 있다.
병원의 바닥에는 노랑 파랑 빨강줄이 그어져 있다. 그중 빨강줄을 밟고가면 맨 끝에 MRI 동위원소 단층 촬영소가 있다. MRA촬영을 하는 사람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중병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촬영소를 찾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표정은 거의 어두운 모습이다.
“걸어가면서 주기도문을 외우세요. 혹시 반야심경을 아시면 외어보세요. 아니면 하나부터 100까지를 세어 보세요. 한결 마음이 편해 질것입니다”
중병환자가 안타까워 간호사가 위로하는 말이다.
“그것을 외우면 내 마음이 편안해 진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
당신이 내 마음이 되어 보았느냐?”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건강한 사람의 어떤 위로의 표현과 배려도 아픈 사람의 깊은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
아파보지 않으면 절대로 모른다. 그것도 평생을 병마와 싸우는 사람에게는---
부부 자식 간이라도 병자본인외는 그 슬프고 외로움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니 덜 아파야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병자를 보살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람의 의무다.
한자(漢子)에 병을 의미하는 병(病)자는 기댈역(疒)자와 +병(丙)=병(病)자가 합성된 글자로 이 뜻은 아픈 사람은 건강한 사람에게 항상 기대어(도움을 받고) 산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돈없는 사람이 아니라 건강이 나쁜 사람이다.
“환자님 빨강선을 따라 끝까지 가세요”
갑자기 간호사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잡고가던 환자의 손을 보호자에게 마끼고 다른 간호사에게 “CPR”이라고 외치고 흰까운을 날리며 빠른 것을 으로 복도로 사라진다.
그러나 빨강선을 밟고가는 환자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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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회(詠懷)가을 달 11-17
三千里外美人在(삼천리외미인재)-삼천리나 먼 밖에 그리운 님 계시온데
十二樓中秋月明(십이누중추월명)-열 두 누각엔 가을 달이 밝도다.
安得此身化爲鶴(안득차신화위학)-어찌 이 몸 화하여 학(鶴)으로 될 수 있다면
統軍亭下一悲鳴(통군정하일비명)-님 계신 통군정 아래 한 번 슬피 울어나 볼 것을.
정철(鄭澈)
사계절이 있는 곳의 가을은 항상 사람의 마음을 처연(凄然)하게 하나 보다. 더구나 평소와 같은 달, 같은 강이면서 가을에 보는 달과 강은 사람들의 느끼기에 따라서 때로는 쓸쓸하게 외롭게 하염없이 보여, 자기가 처해 있는 분위기에 억지라도 끌어들여
같은 처지의 감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KBS 전원드라마 “산 넘어 남촌에는”에서 이장 봉춘봉의 며느리이자 종갓집 막내딸인 김승주(조은숙)는 남편과 사별 후, 추억이 있고, 친정과 시댁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들 하나를 데리고 홀로된 시아버님과 괴팍스런 시아주버니(배도환)와 살면서 속 썩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편의 제사가 되어도 마음대로 술 한 잔 올릴 수 없는 본인의 신세를 가을달 아래서 눈물을 흘린다.
오행(五行)으로 봄은 바람(풍風), 여름은 열(熱), 가을은 건조(조燥)하고, 겨울은 차다(한寒)고 하였다. 바람과 열은 밖으로 내어 뿜는 성질이 있어 속엣 것을 다 털어놓지만 건조함과 차가움은 안으로 끌어당겨 보관하는 습성이다. 가을은 받아드리고 내어 뿜지를 안는 속앓이 하는 계절이다. 또 가을을 금(金)이라 하여 폐병(肺病)이 많은 계절이다.
오행으로 가을은 백색(白色)이다. 그래서 가을 달은 희게 보인다.
마치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메마른 심정이 가을 달빛과 같은 것이다.
위의 정철이 쓴 시는 산사(山寺)에서 가을밤의 정취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만물이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가을 달을 보는 심사--
이런 때 친구가 한 병의 술을 들고 찾아온다면 도리어 분위기가 깨질 것이 아닌가--
세상(世上)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길거리에 있는 돌 하나에도, 이름 모를 한 포기 잡초(雜草)도 휘영청 가을달도 보는 대로 느끼게 한다.
불교경전 화엄경(華嚴經)에
추월춘화무한의(秋月春花無限意)이란 구절이 있다.
가을밤에 뜬 달과 봄에 피는 한 송이 꽃 속에도 형용 할 수 없는 깊고 많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늙으면 잠이 적어 밤중에도 곧 잘 일어난다.
전세걱정, 과년한 아들딸 결혼걱정, 건강이 안 좋은 가족걱정,
마음속 정인(情人)생각, 집떠난 가족 기다리는 마음-----
끝없는 상념(傷念)위에 가을빛이 깔리고 있다.
조선조 영조때 남원의 여류시인 김삼의당(金三宜堂)은 가을 달을 아껴서 아래의 시를 지었다
且莫下重簾(차막하중렴)-방에 친 긴 발을 내리지 말아라
恐遮窓間影(공차창간영)-창가의 달그림자 가리울까 두렵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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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강대도도(秋江待渡圖) 가을강 나루터 11-18
山色空濛翠欲流(산색공몽취욕류)-아련한 산 빛깔 흐르는 듯 비취빛
長江淸澈一天秋(장강청철일천추)-사무치게 맑은 강물 온 하늘에 가을 가득
茅茨落日寒煙外(모자낙일한연외)-차운 안개 저 멀리 석양 한 줌 띳집 한 채
久立行人待渡舟(구립행인대도주)-오래오래 나룻배 기다리는 나그네여!
전선(錢選)
가을은 하늘 높고 맑으며 달만 휘영청 밝은 줄 알았는데 가을강도 깊이를 알수 없을 정도로 맑고 조용하다. 가만히 내려다보면 바닥에 깔린 모래와 자갈 사이에 송사리 두 마리가 미동도 없이 서 있다.
창공에 떠있는 깃털 같은 구름이 비치지 않으면 물이 흐르는 지를 알수가 없다. 순간 부유(蜉蝣하루살이) 한 마리가 수면위에 부딪쳐 동그라미를 그리며 물에 비친 단풍잎이 흔들리며 숨 막히게 고요하던 정적이 깨어 질 때 비로소 가을강도 살아 있음을 알게 한다.
가을 강물은 겉으로는 맑고 조용하게 보이지만 소리죽여 흐르고 있다. 마치 종갓집 종부(宗婦)처럼!
거문고 줄처럼 요란하고 취하여 흔들리는 봄바람같이 (사관취춘풍絲管醉春風)
흙탕물을 휘몰며 수소뿔같이 강둑을 받고 넘치는 여름홍수 처럼(탕탕홍수방할湯湯洪水方割)
가을 강은 자기를 나타내며 내색을 하지 않는다.
마치 아궁이에 불을 살리며 부지깽이로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어머님같이!
지나온 길이 불같은 여름과 천둥치는 벌판의 전선을 뚫고 온 전사(戰士)답지 않게
단풍잎 그림자로 두 눈을 만들고
강둑의 갈대 잎으로 머릿결을 만들어
인고의 세월을 걸러낸 가을 강에 담아
성내지도 말고 들뜨지도 말며 그렇다고 한숨도 쉬지 말고 깊은 성찰(省察)의 하늘 뜻이 그대로 투영되는 가을 강물에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비치고 조각구름(片雲)이 떠 있는 그 곳에 내 마음도 같이 얹어 가을 강물에 소리 죽여 흐르기로 하자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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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시(七步詩) 11-19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콩을 삶는데 콩대로 불을 때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솥 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
조식(曹植)
동서양의 역사 속에는 형제끼리 잘 지내는 미담(美談)도 많지만 반면에 형제사이의 불화로 평생을 마음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이 역사속이나 현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위의 당시(唐詩)를 쓴 조식(曹植)은 나관중(羅貫中)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위(魏)의 영웅 조조(曹操)의 둘째 아들로서 문장이 뛰어나며 큰아들 조비(曹丕)와 함께 중국 후한(後漢) 헌제(獻帝)의 건안(建安)(196∼220)때에 건안문학(建安文學)을 형성한 중심인물이다.
건안문학(建安文學)이란 조조의 삼부자와 건안칠자(建安七子)라고 일컬어지는 7명의 문인(文人)들로 형성된 문인학파(文人學派)를 말한다.
위(魏), 촉(蜀), 오(吳) 3국이 패권을 다투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를 읽어보면 의(義)와 명분(名分)으로 구분되면서 촉(蜀)의 유비(劉備)에게 의(義)의 비중을 두고 위(魏)의 조조(曹操)는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삼국지의 중심인물은 단연 조조(曹操)다.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의 취향(趣向)이 다르겠지만 필자가 보는 조조는 난세를 리드해 나가는 경세치국(經世治國)의 능력도 중요하였지만 창검이 번득이고 목숨이 처참하게 버려지는 비정한 전쟁터에서 나타나는 그의 시문학적 소양(素養)에 크게 매료되었다.
전편(全篇)에 흐르는 삼국지에서 처해진 굽이굽이의 상황아래서 시로서 심경을 토로한 조조의 시가 여러 편 있지만 오나라와 적벽대전(赤壁大戰) 을 앞두고 선상(船上)에서 지은 횡삭부시(橫朔賦詩)는 특히 유명하다
대주당가(對酒當歌)-술을 들면서 노래 부른다.
인생기하(人生幾何)-인생을 살면 얼마나 사는가?
비여조로(譬如朝露)-아침이슬 같으니
----- 하략(下略)-----
이와 같은 조조의 문학적 감정 못지않게 당대 최고의 시작(詩作) 칭송을 받은 사람이 조조의 둘째 아들인 조식(曹植)이다. 조식이 그의 아버지를 위하여 지은 동작대부(銅雀臺賦)는 매우 유명하지만 문장이 너무 길어 다음에 소개할 생각이다.
이런 문학적 재능이 높은 조식을 아버지 조조는 맏아들 조비(曹丕)보다 더 사랑하였다. 이로 인하여 정치적이나 형제간에 사랑이 없어지고 서로를 적대시 하게 되는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형제간의 적대 의식)를 갖게 되고 조조가 죽은 뒤 위왕(魏王)을 물려받게 된 조비는 인기가 좋은 동생 조식을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핍박하고 기회있는대로 제거할 명분을 찾게 된다.
송(宋)대의 유의경(劉義慶)이 편집한 명사들의 일화집인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아버지 조조가 사망 시에 형 조비(曹丕)의 위협을 느껴 장례식에 불참한 조식(曹植)을 불러 불효에 대한 문책으로 자신이 일곱걸음을 걷는 사이에 시를 지어 내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명령한다. 이때 지은시가 위의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로서 형을 콩대에, 자신을 콩에 비유하여 형이 동생을 미워하는 형의 몰인정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내용이다.
즉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렇게 자기를 들볶는 것이냐”는 뜻이다. 위왕(魏王)인 형 조비(曹丕)는 이 시를 듣자 민망하여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여 동생 조식(曹植)을 용서하여 주었지만 이후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의 말은 형제 불화와 싸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식(曹植)은 평생을 우울히 지내다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천재적 재능을 펴보지도 못하고 한을 품고 죽어갔다.
형제일기연(兄弟一氣連)이란 말은 형과 아우는 한 어머니의 자궁(子宮)에서 같은 기운(氣運)을 받았기 때문에 촌수(寸數)가 있는 부모 자식과는 다르게 한 몸이나 같다는 말이다.
이런 형제가 화목해야 되는 것은 천리(天理)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이 갖게 되는 불행의 업보(業報)인 것이다.
형제간 사이도 하나의 인연인데 잘못만난 형제는 평생의 불행을 동반하고 있다. 재산문제 정신적인 갈등 만나면 다정해야 할 형제가 마치 개와 원숭이 같은 사이의 형제들은 차라리 남보다 훨씬 못하다. 오죽이 형이 동생을 못살게 괴롭혔으면 “콩을 삶는데 콩대로 불을 땐다” 라고 하였겠는가!
세상이 많이 변하여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뿌리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형제나 친척 혈연(血緣)의 이유만으로 자아(自我)를 침해당하면서 수직적으로 얽매이지 않겠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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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양자기원대교서(初發揚子寄元大校書) 친구와 헤여지면서 11-20
凄凄去親愛(처처거친애)-슬픈 마음으로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
泛泛入煙霧(범범입연무)-두둥실 배타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노라.
歸棹洛陽人(귀도낙양인)-돌아가는 뱃전에서 낙양사람이
殘鐘廣陵樹(잔종광릉수)-희미한 종소리 속에 광릉성 수림을 바라보노라.
今朝此爲別(금조차위별)-오늘 이렇게 헤어지면
何處還相遇(하처환상우)-어느 곳에서 다시 상봉하게 될련지.
世事波上舟(세사파상주)-세상일이 파도 위의 배와 같으니
沿洄安得住(연회안득주)-오르락내리락할 뿐 어딘들 정착할 수 있겠는가.
위응물(韋應物)
위응물(韋應物737~804)은 중국 당대(唐代)의 왕유(王維)와 함께 자연파시인의 대표자이다. 위의 시는 가을 무렵에 양자강 어느 나루터에서 친구와 헤어지면서 쓴 시다.
이 시(詩) 가운데 특히 4구 5구인 귀도낙양인(歸棹洛陽人) 잔종광릉수(殘鐘廣陵樹).“친구와 헤어지면서 돌아가는 뱃전에 쓸쓸히 서서 멀리 절에서 들리는 희미한 종소리 속에 광릉성 수림을 바라보노라.” 는 표현은 친한 친구와 헤어지는 심사를 자연에 조화시킨 명구(名句)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고 있다.
우리는 세상사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정처 없이 떠도는 배와 같고 나그네 같아서 힘든 여정(旅程)에 고달픈 심사를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런 인생을 같이 걸어가는 동행인(同行人)들과 언젠가는 하나 둘 헤어질 것이다. 생각하면 허전한 마을 가눌 길 없다.
좋은 친구가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상대방을 공경(恭敬)하는 마음과 효(孝)를 하는 정성으로 받들어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친구이다.
공자는 말하기를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겠는가? (相識滿天下知心能幾人) 라 하였고
술이나 음식을 함께할 때 형제 같은 친구는 많으나, 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다. (酒食兄弟千個有急難之朋一個無)라고 말하여 참된 친구를 알기가 쉽지 않음을 가리키고 있다.
또 공자는 말하기를 “좋은 친구와 동행하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않더라도 때때로 윤택함이 있고 선(善)한 사람과 같이 거처하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나 곧 그 향기와 더불어 동화(同化)된다고 하였다.
산삼을 찾는 사람들은 길일을 택하여 입산(入山)날을 정하고, 수일 전부터 몸가짐을 정갈하게 해야 한다. 살생 등 부정한 행동은 특히 금했고, 술과 비린 음식을 삼가하며, 심지어는 부인과의 잠자리도 피한다고 했다. 꿈도 좋은 꿈을 원하고 지팡이가 부러지는 등 나쁜 꿈을 피하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한다.
내 앞에 좋은 친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마음을 정갈히 하여 산삼(山蔘)을 찾는 심마니(山蔘人)가 되어 자기를 낮추면 좋은 벗을 만날 것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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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일야작(小雪日夜酌) 소설(小雪)에 스스로 술을 따르고 11-21
鏡裡容顔漸覺衰(경리용안점각쇠)-거울 속 얼굴은 노쇠해지는 걸 깨달으니
寒天落木亦堪悲(한천락목역감비)-겨울날 떨어지는 잎도 슬퍼할 만 하여라
孤燈却伴孤村夜(고등각반고촌야)-외로운 마을 밤은 등불과 오히려 짝하고
小酒仍開小雪時(소주잉개소설시)-소설(小雪) 무렵이라 작은 술동을 열었다
隣婦擣砧風響急(인부도침풍향급)-이웃집 아낙네 다듬이에 바람소리 급하고
釣翁移艇月華隨(조옹이정월화수)-낚시하는 늙은이 배를 옮기니 달이 따라간다.
遙知亦老閑無事(요지역노한무사)-어렴풋이 알겠네! 그대도 한가히 일이 없어서
點改金剛舊日詩(점개금강구일시)-금강산에서 지은 옛 시를 고치고 있음을
남용익(南龍翼)
내일이 11월 22일 소설(小雪)이다.
바램으로는 가을단풍이 좀 길었으면 했는데 절기와 자연의 조화는 어김이 없어 소설(小雪)을 앞두고 전국이 한파로 몸을 움츠리게 하고 폭설(暴雪) 주의보까지 발령하고 있다
아마 강화에 소설때마다 부는 “손돌이”의 넋인 “손돌이 바람”이 그냥 지나가기가 아쉬운 모양이다.
가을 초목의 조락(凋落)과 인생의 황혼(黃昏)은 언제나 나란히 그림자를 같이하여 절기(節氣) 한번 바뀌는 언저리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처연(凄然)하게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시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계절이 바뀌면 인생의 늙어가는 슬픔을 탄식하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영원함에 비하여 인생의 덧없음이 마치 뜬구름 같고 한여름에 잠깐 낮잠에서 깬 꿈과 같음이리라.
언제 내가 이 나이까지 왔지--
위의 한시(漢詩)에서 외로운 마을과 등불,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한적함과 날이 갈수록 주름살로 깊게 파인 거울 속의 얼굴이 한해의 마지막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설(小雪)의 풍경을 한층 적막(寂寞)하게 한다.
술이라도 없었으면 이 황량한 마음을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시(詩)속에서 들려오는 한밤중에 마을 아낙네의 다듬이소리는 밤의 고요함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
노인의 낚싯배가 흘러감에 달도 따라 간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외로운 등불 아래 스스로 따르는 술잔에 달그림자가 말없이 찾아온다.
먼 길을 여행할 때 봄에 떠나는 사람과 초겨울에 길을 떠나는 사람은 감정이 서로 다르다.
봄의 산등성에는 꽃과 푸른 초목이 기다리고 있지만 초겨울의 끝자락에 기다림은 깊은 침묵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소설(小雪) 초겨울이 꼭 슬픔의 계절만은 아니다.
소설(小雪)을 지나 대설(大雪)로 가는 무렵에는 첫눈이 내리기
마련이다.
첫눈은 상처받은 사랑도 황혼길 늙은이의 마음을 덮어준다.
가난한 무허가 비닐지붕도 고급 빌라도 하얀 이불로 고루 덮어주기 때문이다.
첫눈은 젊음과 늙음, 사랑과 미움을 구분하지 않는다. 초설무사(初雪無私)!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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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고슬(膠柱鼓瑟) 아교풀로 붙여 버린 기러기발 11-24
芻豢人之所同嗜也(추환인지소동기야)-기름진 고기는 사람마다 즐기지만,
至於久病之人(지어구병지인)-오랫동안 병을 앓은 사람에게는
雖全鼎大羹(수전정대갱)-비록 솥 안이 전부 고깃국일지라도
聞臭虛嘔(문취허구)-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날 수 있고,
雖艸根木實(수초근목실)-비록 풀뿌리와 나무 열매라도
欣然接味(흔연접미)-반가이 입맛에 맞을 수도 있다.
雖有善唱一曲(수유선창일곡)-비록 노래 하나를 잘 부르는 자라도
恒歌則(항가칙)-그 한 곡조만 항상 부르면
座者皆起(좌자개기)-듣는 이들이 지루하여 자리에서 일어설 것이요,
法久弊生(법구폐생)-법이 오래 되면 폐단이 생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不知更張者(불지경장자)-이것을 고칠 줄 모르는 것은
謂之膠柱鼓瑟(위지교주고슬)-이를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 이르는 것이니,
此乃(차내)-이것은 바로
人情之所同然(차내인정지소동연)-누구나 그렇게 느끼는 바일 것이다.
망양록(忘羊錄)
위의 글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속에 있는 망양록(忘羊錄)편에 있는 내용이다.망양록(忘羊錄)의 내용은 연암이 중국인 학자들과 조선과 중국의 음악문화에 대해 토의를 한 기록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학계의 콜로키움(colloquium토론회)같은 내용이다.
이글에 교주고슬(膠柱鼓瑟)이란 말이 있는데 이말은 거문고에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이다. 기러기발은 거문고의 음율을 맞출 때 위치를 옮기는 장치인데 음률을 한 번 맞추었다 해서 기러기발을 아예 아교풀로 딱 붙여 버린다면 다시는 새롭게 다른 음률을 조정할 수 없음에 비유하여 한 말이다.
즉 하나에 집착하여 변통(變通)할 줄 모르는 고지식한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운동량이 부족하여 병이 난사람은 운동시간을 늘려야 하고 너무 과하게 운동하여 병이 난 사람은 운동량을 줄여야 한다. 과식으로 병이난 사람은 소식을 해야 한다.
이처럼 모든 일은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불교 경전 중에 백유경(百喩經)이 있다.
백유경이란 아주 재미있고 쉬운 비유를 들어가며 이해하기 어려운 부처님의 교설(敎說)을 쉽고 자연스럽게 이야 기식으로 풀이 되어있는 책으로, 화두(話頭)를 모은 공안집인 벽암록(碧巖錄)과 같이 스님들이 설법할 때 많이 인용하는 경전(經典)이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백유경(百喩經)에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비단을 파는 장사꾼이 있었다.
낙타 등에 짐을 싣고 먼 나라에 가서 물건을 파는 무역상 (貿易商)이었다.
어느 때인가 그는 하인들을 데리고 장사를 떠났는데 도중에 낙타 한 마리가 죽었다. 그 낙타는 많은 비단과 보물 잡화 등을 싣는 운반수단 있었으므로 입장이 매우 난처했다.
주인은 소중한 낙타가 죽자 불쌍하여 하인들에게 가죽을 벗기고 나머지는 버리게 한 뒤 이렇게 당부했다.
“낙타가죽을 잘 보관해서 젖거나 썩게 하지 말고 관리를 잘해라.”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하인들은 주인이 낙타가죽이 젖거나 썩게 하지 말라고 당부한 터라 비단을 꺼내 낙타가죽을 덮었다. 이로 인해 비싼 비단은 모두 젖어 못 쓰게 되었다.
주인은 화가 나서 “이 고지식한 사람들아. 낙타가죽과 비단 중 어느 것이 더 비싸고 소중한가? 내가 언제 비단 으로 낙타가죽을 덮으라고 했단 말인가.
비단으로 낙타가죽을 덮어서 비싼 비단이 못 쓰게 되지 않았는가.”
주인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망연자실했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고지식한 것이 미덕(美德)일 때도 있지만 악덕(惡德)일 때도 있다.
고지식한 것이 미덕일 때는 순수하고 정직한 때이며 그 분위기가 필요한 시기다. 세상이 온통 위선과 부도덕으로 변절이 득세할 때, 정의로운 일을 지킨다는 것은 본받을 일이다.
권세나 재물을 따라 철새처럼 움직이는 사람보다는 지조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한눈팔지 않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주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하나만을 향한 일편단심과 답답할 정도의 고지식은 또한 큰 오류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변해야 될 일이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숟가락 잡는 법을 배우는 철부지가 오른손으로 잡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오른손이 다쳤는데도 왼손을 쓰지 않고 오른손만 쓰려고 한다면 그것은 융통성 없는 행동이다.
고지식한 사람을 비유할 때 남산골샌님이라고 한다.
가난해서 곧 굶어죽어도 자존심만 강한 선비를 놀림조로 남산골샌님 이라한다.
샌님의 품위를 지킨다고 처자가 굶어도 땅을 파거나 일을 하지 않았다. 남산골샌님의 기준으로 보면 그런 행동이 자랑스러울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주위가 고생을 한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모르는 사람은 평생 고생문을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 사람과 같이 사는 사람은 죄도 없이 같은 고생을 하게 된다.
우리사회는 3~40년 동안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신문 TV 컴퓨터등 혁명적인 IT산업영향과 이로 인한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를 통한 다양한 문화의 영향으로 개인은 물론 가정이나 사회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은 거역할 수 없는 변화를 요구 받고 있다.
이제는 기성세대(旣成世代)란 단어가 존재할 의미가 없다.
길들여진 오른손잡이를 왼손잡이로 바꾸는 사고의 전환을 요구받는 시대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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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 스님의 사랑과 꿈11-25
快適須臾意己閑(쾌적수유의기한)-즐겁던 한 시절 자취 없이 가 버리고
暗從愁裏老蒼顔(암종수이노창안)-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어라
不須更待黃梁熟(불수경대황량숙)-한 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 하리
方悟勞生一夢間(방오노생일몽간)-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인제 알았노라
일연(一然)
일연(一然)은 고려(高麗) 25대 충렬왕(忠烈王) 때의 고승(高僧)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 3권 조신조(調信條)편에 아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신라시대, 서라벌 세규사(世逵寺)에 속해 있는 논밭이 명주군에 있어 본사(本寺)에서 중 조신(僧 調信)을 보내어 그 장원을 맡아 관리하도록 했다.
이곳에서 우연히 명주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본 조신스님은 그녀의 미모에 매혹되어 사모의 정을 가누지 못했다. 일종의 짝사랑이다. 조신 스님은 애타는 마음으로 영험 있는 낙산사 관세음보살께 태수의 딸과 부부연(夫婦緣)을 맺을 수 있도록 간곡히 빌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께 빈 정성도 소용없이 얼마 후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 버렸다. 조신스님은 아픈 마음으로,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은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애타게 울다가 관음상 밑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때, 문득 그토록 사모했던 태수 딸이 기쁜 낯빛으로 닥아 와서는 반가이 웃으며 말하기를
“저는 일찍이 스님을 뵙고난후 마음속 깊이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스님을 그리워하였지만 부모님의 명에 못 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죽어서라도 스님과 한 무덤에 묻히고 싶어 이렇게 찾아온 것이니 거두어 주십시오.”
조신스님은 기쁜 나머지 그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다.
행복으로 출발한 이들 부부생활도 어느덧 40년이 지나,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나물죽조차 넉넉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 가족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구걸로써 목숨을 연명해야 했다.
그런 세월이 10년이 지났을 때, 열다섯 살 먹은 큰아들이 명주 해현령 고개를 지내다가 굶주림에 지쳐 죽고 말았다.
통곡을 하며 큰아들을 묻은 후, 남은 아이들과 함께 우곡현으로 와서 띠풀로 집을 짓고 살았지만, 그들 부부는 이미 늙고 병들고 굶주려서 자리에서 일어설 기력이 없었다.
겨우 열 살 된 딸아이가 구걸해온 음식으로 온 식구가 연명을 하였지만, 그 딸도 마을의 개에게 심하게 물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고 슬피 울었다.
그때 문득 부인이 울음을 그치며 조신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습니다.
나는 음식이 생기면 당신과 나누어 먹었고, 작은 옷감이 생겨도 당신과 함께 옷을 지어 입었지요. 그렇게 살아온 지 50년, 정(情)은 들었고 깊은 사랑도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몸은 늙고 병은 깊어져 추위와 배고픔을 견딜 수 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수치심을 참고 집집마다 구걸하여 보았지만 아이들의 배고픔조차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형편에 부부의 사랑이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고운 얼굴, 예쁜 웃음은 풀잎의 이슬과 같고, 굳게 맹세한 마음도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제는 당신에겐 내가 있어 짐이 되고, 나 또한 당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요?
좋을 때 함께 하고 어려울 때 헤어지는 일은 차마 못할 짓이지만, 아이들을 보아서라도 차라리 지금 헤어져 사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마침 조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부부는 아이들을 둘씩 나누어 데리고 갈라서게 되었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시오.”
아내의 이 말을 듣고 잡았던 손을 놓으며 돌아서는 순간, 조신스님은 꿈에서 깨어났다.
관음상 밑의 어스름한 등불은 홀로 너울거렸고,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이튿날 아침, 조신스님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흰색으로 바뀌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태수의 딸에 대한 사랑도 눈 녹듯 사라졌다.
조신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우러러보며 깊이 참회하고, 해현령 고개로 올라가 꿈에서 큰 아들을 묻었던 곳을 파 보았다. 뜻밖에도 그곳에서는 돌미륵이 하나 나왔다.
돌미륵을 깨끗이 씻어 부근의 절에다 모신 스님은, 세규사로 돌아가 논밭을 관리하는 일을 그만두고, 정토사(淨土寺)라는 절을 지어 부지런히 불법을 닦았다.
관세음보살은 승려 조신의 불타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조신의 애타는 사랑을 꿈으로 풀었고, 인생이 한바탕의 꿈인 줄을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생각하면 지난날 아옹다옹 하면서 남보다 먼저 출세할려고 더 많은 재물을 모으려고 바동거리다가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지금의 우리 모습니다.
천하의 명예도 태산 같은 재산도 어리석은 인간이 만들어낸 한편의 부질없는 모두 지나간 꿈인 것이다.
혹시나 꿈을 깬 이 순간이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숨을 쉬고 있다” 는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이 설화는 1947년 춘원 이광수에 의하여 “꿈” 이라는 제목으로 “조신의 꿈”을 소설화 하였다.
-농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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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주(千日酒)를 마시고 11월을 보내면 어떨까? 11-27
綠蟻新倍酒(녹의신배주)-부글부글 소리에 새 술이 익었고
紅泥小火爐(홍니소화로)-조그마한 화로(火爐)에는 숯불이 빨갛네,
晩來天慾雪(만래천욕설)-때는 저녁 하늘에 흰 눈이 내리려 하는데
能飮一盃酒(능음일배주)-어찌 한 잔(盞) 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장화(張華)
세계적으로 인도 사람만큼 엄살과 과장법(誇張法) 을 심하게 쓰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 관념 속에는 수미산(須彌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산은 인도인들의 우주관속에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상상의 거대한 산이다.
산의 제일 아래는 둘레가 바람으로 쌓여있는 풍륜(風輪)이 있고 그 위에는 물로 되어있는 수륜(水輪)이 있고 그 위에가 반석(盤石)으로 되어 있는 금륜(金輪)으로 둘러쳐져있고 그 위에 9개의 산과 8개의 바다, 4개의 큰 대륙이 있고 그 가운데 16만 유순(由旬-3백 20만km)높이로 솟아있는 것이 수미산(須彌山)이다.
이 수미산 반석(盤石)의 표면을 반질반질 하게 윤기(潤氣)를 내기 위해서 선녀가 일겁(一劫100년)만에 한 번씩 내려와 앉았다가 가면서 치맛자락으로 쓸고 간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겁(劫)이란 영원한 세월을 말하며 대겁(大劫), 중겁(中劫), 소겁(小劫)이 있는데 소겁(小劫)이 1680만년이라 한다. 이것이 인도불교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마하(摩訶)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인도사람들 못지않게 중국 사람들 엄살도 보통이 아니다.
장자(莊子)의 소요유편(逍遙遊篇) 1장에 기록하기를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라 하며 곤(鯤)의 크기는 몇 천리인지를 모른다. 이 물고기가 새로 변하면 붕(鵬)이라 하는데 그 크기가 몇 천리가 되는지 알수가 없고 날개를 펴고 날면 하늘이 검은 구름에 덮여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중국 서진(西晉)의 학자 장화(張華)가 저술한 전설집인 박물지(博物志)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중산(中山)땅에 적희(狄希)라는 사람이 술을 잘 빚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 잔을 마시면 천 일(千日)을 취하게 되는 천일주(千日酒)를 빚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애주가로 이름난 유현석(劉玄石)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천일주를 달라고 하자, 적희는 그에게 아직 덜 익은 천일주 한 잔을 먹여 보냈다.
유현석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졌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자 가족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장례를 치렀다. 천일(千日)이 지나서, 적희가 이제는 유현석이 깨어났으리라 생각하고 그 집을 찾아가 물으니 가족들은 그가 이미 죽어 장례를 치렀고 3년 상도 마쳤다고 말했다.
적희가 크게 놀라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급히 무덤을 파니, 마침 유현석은 술이 깨어 눈을 떴는데 관 안에는 땀이 가득하였다. 유현석은 자기가 잠시 자고 일어난 줄만 알고 말했다. “당신의 술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엊저녁에 겨우 한 잔 마시고 잠들었는데, 벌써 해가 중천에 떴군요. 지금 몇 시나 되었습니까?”
듣고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는데, 그들은 유현석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고는 모두 잠들어 석 달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친구여!
그대와 나 천일주 한잔 하고 지상낙원을 거닐면서 세상사 티끌처럼 발아래 흩으면서 올해를 보내는 아쉬움에 서글퍼 하지 말고 긴 꿈에 깊게 잠들어 새해 초봄에 잠을 깨면 어떨까---
-농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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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가(寒雨歌) 겨울부채 11-28
막괴융동증선지(莫怪隆冬贈扇枝)-엄동설한에 부채를 선사하는 이 마음을
이금년소기능지(爾今年少豈能知)-너는 아직 나이 어려 그 뜻을 모르겠지.
상사반야흉생화(相思半夜胸生火)-그리워 깊은 밤에 가슴에 불이 일거든
독승염증육월시(獨勝炎蒸六月時)-오뉴월 복더위 같은 불길을 이 부채로 식히렴!
임제(林悌)
어제 신정동 인라인 트랙에서 레이스를 즐기는데 한사람이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이 보였다. 인라인은 중심이 필요한 운동이어서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많이 넘어지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벤치에 앉아서 화가 난 얼굴로 담배를 연속 피워 대는 것이었다. 하도 담배를 많이 피우기에 필자가 말을 걸었다.
『건강해 지라고 운동을 하는데 그렇게 줄담배를 피우면 운동 의미가 없지 않아요.
인라인 타다가 넘어지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인데--』
『예, 속 썩는 일이 있어서 술을 마셔도 해결이 안 되어서 자전거로 이곳을 몇 번 지나다가 여러 사람들이 인라인 타는 것을 보고 특히 어르신이 흰머리 날리며 타는 것이 멋이어 보여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될 가해서 시작 했는데 마음대로 안되네요』
하면서 속사정을 약간 털어 놓는데 그 가슴 아픈 사연에 “줄담배”를 피우는 것이 이해가 갔다.
참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연으로 속 썩고 괴로운 사정들을 저마다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화병(火病)이라는 다른 나라에 없는 고유한 병을 많이 갖고 있다. 화병(火病)에는 심화병(心火病)이 있고 울화병(鬱火病)으로 크게 나눈다.
넓은 의미로 심화(心火)나 울화(鬱火)는 전부 마음에서 오는 병이지만 꼭 병소(病所)별로 구분을 한다면 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화병(心火病)은 심장(心臟)에 영향을 미치고 울화병(鬱火病)은 간(肝)에 부담을 주어 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병의 저변에는 필연적으로 “한(恨)”이라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情緖)가 자리하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 부부간, 자식에 대한 소망과 좌절, 고부간의 갈등, 건강, 가난에 대한 한(恨),
이런때 즐겨 먹는 한방처방이 소요산(逍遙散)이다. 글자그대로 산책과 소풍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뜻의 약이다.
위의 한시는 조선의 대표적 멋쟁이요 한량(閑良) 시인 임제(林悌)가 재색을 겸비하고 시서(詩書)와 거문고 가야금에 뛰어난 기생(妓生) 한우(寒雨)와 맺은 연정(戀情)의 한시다. 그리움에 지쳐 화병이난 한우(寒雨)에게 겨울에 부채를 보내면서 오뉴월 복더위 같이 그리움에 불타는 가슴을 식혀주라는 것이다.
백호 임제(白湖林悌)는 39세로 일생을 마친 절륜(絶倫)한 시의 천재(天才)로 알려져 있다. 서도병마사(西道兵馬使)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라는 시조를 지어 읊고 제사를 지내주었다가 임지(任地)에 부임하기도 전에 파면을 당한 이야기와 기생 한우(寒雨)와 시로 화답한 사랑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겨울 부채와 여름 화로, 동선하로(冬扇夏爐)!
오리털 재킷으로 몸을 감싸도 추운겨울에 오죽 가슴속에 한(恨)이 쌓여 여름날 화로 같았으면 겨울에 부채로 가슴을 식힐까.
죽기 전에 해야 될 일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한해 두해 몸은 늙어 죽음은 가까워 오니 마음만 안타깝다. 세상사 부질없다 생각하고 부처님처럼 하루에 열두 번도 마음을 비워보지만 돌아서면 다시 차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잠못이루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술을 사러 외등이 켜진 골목길을 그림자도 떼어놓고 혼자 쓸쓸히 걸을 때가 한두 번이었나. 그런 밤에는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차라리 눈사람이라도 되면 가슴이 차가워 겨울에 부채질을 안 해도 좋으련만--
이것이 인생인가 !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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