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 좀 싸게나
- 草雨堂(1)에서 -
빈 창자도 그리움 알런지 모르지 않는가
시원하게 똥 좀 싸게
그래서 새벽 똥을 누는데 안개비가 내립니다. 안개와 안개 사이는 여백도 경계도 없는 듯 합니다. 수묵의 번짐처럼 겸허함이 소리없이 자리 합니다.
안개비
보여도 보여지지 않더니
어느새 새벽으로 와서는
어머니 치맛단에 살며시 엉기네
아마도 아득함일 듯 하네
겸허함 보다 아득함을 택하였는가 봅니다. 안개 낀 날이나 맑은 날이나 비오는 날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일찍 일어나시어 식구들을 위하여 밥을 지으셨지요. 당신께선 항상 허기진 채로 말입니다. 마른 대지가 질펀해 지기는 멀었는데도 저 안개비가 아득하여 어머니마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지난 봄, 만첩수양백도(2)의 너울진 꽃다발은 시인의 노래가 되더니, 오늘 새벽에는 안개비로 내리는가 봅니다.
연암과 홍대용이 술잔을 맞들고, 멀리 있는 친구는 연잎에 이는 바람소리를
듣고 찾아 올 것만 같습니다. 그리하여 닭 울음 소리보다 먼저 일어나 밭을 가는 농부를 위해 같이 축배라도 들고 싶습니다. 초우당이 비에 젖습니다.
비에 젖는 초우당에라도 나가 보렵니다.
초우당에 나오니 호박이 덩굴째 순수를 키우고 있습니다. 노랑꽃나팔로 보란 듯 우렁차게 새벽을 열면서 부지런한 벌들은 어머니 자궁같은 펑퍼 짐한 열매를 접신시키기 위해 온 몸에 꽃가루를 칠 합니다. 어쩌면 진한그리 움도 함께 묻혀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금새 새순인 듯 하였더니 어느새 저 만치 자라서 열매를 부풀려 놓는 줄기는 자연스런 몰입에 빠진 경이로움입니다.
호박줄기
빈 자궁에 알알이 씨를 박기 위해 침묵하는 그대여
생명의 응축 된 정지를 위해 너의 마디 손은 용수철이
되었구나.
비움 속 채움과 채움 속 비움을 아는 그대여
어진이는 만월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 하나니 ※ (만해의 시에서 인용)
새벽에 일어나 앞치마에 시린 손 닦는 어머니를 닮았구나
뻗치던 줄기 땅에 내려 놓고 잠시 쉬려무나 그대여
호박에서 눈길을 떼면 가지런히 은행나무들이 보입니다. 매년 가을이면 은행 알을 주워 와 새생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용문사의 천년을 간직한 은행 알, 김천 조룡리의 역사와 선산 농소리의 굽이 진 세월과 수도암과 백흥암의 이끼 낀 물소리를 담은 은행알들이 초우당 으로 와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또한 서리가 내리면 긴 겨울을 대비하는, 여백의 마음자리를 선사해주는 고마운 은행나무 들입니다. 천연덕스러운 초록과 노랑은 사랑하되 사랑에 빠지지 말고 미워하되 미움에 빠지지 말라는 나무거울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해 가을 수다사(3)에서 노랑에 맘껏 물들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노랑 속에 박힌 한점 붉은 단풍은 그대로 한편의 시였더랬지요.
인연과 그리움을 키우면서 가슴에 노란 잠(箴)을 새기고 나무가 가슴으로 들어오는 날, 그런 날은 정다운 벗이라도 불러 잔 가득 술 가득 채우고 싶을 따름입니다. 비우고 채움 또한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1) 초우당 : 작가의 농막을 초우당이라 이름지어 부름
(2) 만첩수양백도 : 순수 우리 토종 나무로 봄에 잎이 나기 전 흰꽃이
겹겹이 무리지어 피며 아래로 약간 늘어진 모습에
수양백도라 불려지는, 곱고 예쁜 꽃을 가진 복숭아 나무를 일컬음.
(3) 수다사 : 경북 선산 무을리에 있는 신라의 고찰.
첫댓글 늘 그림만 올리시다가 글을 올리셨는데 와아~ 저는 못 알아듣겠습니다.
집에 가서 여러차례 읽어 보고 뜻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