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청간정 여행기
안녕하세요!
207-3반에서 시작된 친목 모임 『이칠회(二七會)』입니다.
이번에 2박3일간 동해안 설악산으로 8월 정기모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울 무더위의 도심지를 벗어나 고산준령(高山峻嶺)의 설악자락 청간정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애기 눈처럼 초롱초롱한 별빛을 받고 밀려오는 파도의 시원한 바람 속에서 지난 미주의 생활을 추억하며 많은 이야기로 밤을 새웠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이라고 하는데 356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수미산(須彌山)의 천년과 같은 세월입니다.
언제 기회가 있으면 자리를 같이 하여 차라도 같이 하기를 희망하면서
이번 여행길의 이모저모를 소개 드립니다.
이번 여행 중에 디지털 카메라로 550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래 내용은 우선 이번 여행의 출발에서 돌아올때까지의 전체를 간략한 내용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양해를 구할 것은 총무가 우측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어 편집과 여행기가 매끄럽지 못함을 이해하여 주십시오.
참석자-김학용 김종곤 김창길 박덕웅 문종도 최영권 한세동
고제완씨는 23일 오후에88세 되시는 부친이 위독하시어 갑자기 전주로 가기 때문에 이번 모임에 못 가게 되었다. 고 선생님 춘부장(春府丈)의 쾌유(快癒)를 기원합니다.
8월22일 아침 9시:30분
노량진전철역 앞에서 최영권 회장님 문종도씨 차로 속초로 향하여 출발하다. 아침에 빗방울이 내리더니 시간이 지나가고 비는 그쳤지만 다시 덥기 시작한다. 모두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었다.
오전 11시경에 두물이 만나는 양평휴계소에서 커피를 한잔씩 하다.
양평군 양수리는 두 물줄기가 머리를 맞대는 곳이라고 하여 두물머리 양수두, 양수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용문산에 용문사가 있고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 가장 유명한 성리학자로 대원군의 정책에 반대한 이항로 (李恒老)의 유적이 있다
12:00경에 인제군(麟蹄郡) 어론리(於論里)휴게소에서 조각(彫刻) 화가 고명규(高明圭)의 에로 조각(ero sculpture)『그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을 구경하다. 자세한 내용은 사진을 보는 것이 좋다. 어론리(於論里)리 지명은 동리 사람들 중에 말다툼으로 싸움이 많아서 어론리(於論里)이라 했다고 전한다.
12:46분에 인제군 온천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다. 무더위에 자동차도 힘이 드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차구(車口)에서 화기(火氣)를 토한다. 주유소에서 조금 떨어진 용대리 쉼터에서 강원도 별미 옥수수를 사먹다. 1봉에 3000원인데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세상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진듯이 꼬이고 뒤틀리게 자란 소나나무 밑에 마련된 평상에 앉아 옥수수를 뜯으면서 발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과 간간이 불어오는 산속의 바람이 땀에 젖은 등을 식혀준다.
용대리(인제군북면)는 황태덕장 마을로 유명하다.
그리고 바로 계곡위에 사람이 우뚝 선 것 같은 선바우(立巖)가 시작되는 내설악의 신비를 말하고 있다.
13:46분에 미시령(彌失嶺)휴게소에 도착하여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해가 장관이다.
미시령(彌失嶺)이름의 유래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미시파령(彌時坡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가 조선조 영조때 지금의 미시령(彌失嶺)으로 불리고 있는데 시(時)자가 실(失)자로 바뀐 내용은 알수가 없고 다만 너무 험준하여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고개”라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고개 한쪽에 이승만 박사의 “미시령(彌失嶺)”이라고 쓴 호방(豪放)한 인상을 주는 친필 비석이 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데 비석은 비바람에 많이 훼손되어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 한 시대를 풍미(風味)한 인걸(人傑)과 무정한 세월의 조화(調和)인가!
14:36분에 속초(束草) 개포동 대성호횟집(011-9791-7473)에서 생선회로 출출한 점심 배를 채우다. 속초의 지명은 “묶을 속(束), 풀 초(草)”라고 쓰는데 영금정 옆에 솔산(松山)이 있을 때 바다에서 포구를 들여다보면 그 솔산이 소나무와 풀을 묶어서 세워 놓은 것 같은 형태라, 풍수 지리적으로는 속초 지형이 소가 누워서 풀을 먹고 있는 와우형(臥牛形) 형국이므로, 누워서는 맘대로 풀을 뜯지 못하므로 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은 후 최영권 회장님은 콘도에 좋은 방을 배정 받으려 먼저 가고 나머지는 낙산사 구경에 나섰다. 낙산사(洛山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다. 청간정에 맞난 어떤 여행객이 의상대(義湘臺)가 관동팔경이라고 하는데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의상대는 신라 고승 의상(義湘)이 낙산사를 창건할 때 좌선(坐禪)하였던 곳에 세운 정자(亭子)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관동팔경(關東八景)을 열거(列擧) 한다.
간성 청간정(淸澗亭), 강릉 경포대(鏡浦臺), 고성 삼일포(三日浦), 삼척 죽서루(竹西樓), 양양 낙산사(洛山寺), 울진 망양정(望洋亭), 통천 총석정(叢石亭), 평해(平海) 월송정(越松亭)이 그것이다. 이중 총석정과 삼일포는 북한 금강산에 있다. 필자는 관동팔경을 전부 답사하였다.
낙산사를 들어서는 순간 짐작은 하였지만 화재로 소실된 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홍련암 일부와 의상대를 제외한 그 넓은 낙산사가 완전히 잿더미의 참담한 현장이다. 재건 공사가 한창이지만 재건을 한다해도 절 다운 모습을 회복하려면 2~300년을 걸려야 될 것 같다.
낙산사는 다른 절과 다르게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인데 화재때 사리는 안전한지 궁금하다.
인재(人災)든 자연재(自然災)든 이시대의 우리는 후손에게 큰 죄업(罪業)을 남기고 있다.
낙산사가 있는 산 이름을 낙산(洛山)이라 한 것은 천축(天竺)의 보타(寶陀-관음보살을 모시는 산 이름)란 낙가산(洛伽山)에서 딴 것이라 한다. 의상대사가 7일 동안 기도하여 관음(觀音)의 진신(眞身)을 보게 되고 한 쌍의 대(竹)가 솟아나서 절을 짓고 이름을 낙산사(洛山寺)라 하였다. 낙산(洛山)이란 관음보살(觀音菩薩)을 모신다는 뜻이다.
낙산사를 구경하고 오후 6시경에 콘도에 입실(入室)하다.
청간정 해수욕장이 바로 연결된 풍경이 좋은 condominium이다.
저녁식사는 배낭 속에 준비한 재료로 만들어 먹기로 하다.
김창길씨의 음식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거기에
한세동씨 부인이 준비하여준 고기가루고추장, 생김치,
김학용씨 부인이 준비하여준 아몬드 호두 밑반찬, 멸치볶음,
고추장아찌, 마늘고추, 겉절이김치,
박덕웅씨 부인이 준비하여준 황태국, 고추장, 오이지, 멸치볶음,
그리고 각종 참치 김과 김창길씨의 생선매운탕등이 집에서 먹는 밥상보다 훨씬 풍성하다.
이태백은 술잔에 비친 달그림자로 벗을 하여 잔을 기울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청간정 모래사장, 맑은 물, 설악바람으로, 벗을 하여 밤이 짧게 취하였다
8/23일
새벽 5시에 동해 일출(日出)을 보려 나가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붉은 태양 !
이 장엄한 환희 !
萬里無雲(만리무운)-만리 청천 하늘에 구름 한점 없이 확 트이고
海天一碧(해천일벽)-바다와 하늘이 하나같이 푸르다
이칠회의 앞날이 창창하고 빛날 것이다
아침식사를 7시에 하고 설악산 비선대(飛仙臺)를 등산하였다.
비선대(飛仙臺)!
선녀가 계곡에 하강하여 목욕하고 날아 올라간 곳이다. 설악의 아름다움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하리요, 푸른 숲, 기암절벽, 청풍, 계곡의 맑은 물, 영겁(永劫)의 세월에 깎여달은 바위, 구슬같이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아 ! 오늘이 바로 처서(處暑)아닌가---
개성있는 차림과 각자의 행복을 담으려는 아름다운 여행객의 모습들을!
점심은 설악산 밑자락에 자리 잡은 “원조 김영애 할머니 순두부”로 점(點)을 찍었다. 단백한 순두부와 깔끔한 밑반찬 맛이 요즘 중국의 불량식품으로 텁텁해진 입속을 정신 차리게 청소하여 주었다.
13:30분경 식사를 마치고 화진포(花津浦)로 해수욕을 갔다. 먼저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김일성별장을 구경하였다. 이들 별장의 관광 소감은 지면이 허락 안 되므로 후일 별도로 사진과 같이 소개 하고자 한다.
화진포(花津浦) !
화진포이름은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옛 이름이 화담(花潭)이었다. 고성군의 군꽃(郡花)이 해당화(海棠花)이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화담은 맑은 물에 달이 빠진 듯하다. 고 평했다. 맑고 아름답다는 이야기다.
화진포의 모래사장은 마치 미인(美人)의 살결처럼 부드럽다. 청간정 모래사장이 발을 찌르는 듯한 굵은 남성미(男性美)의 모래와는 대조적이다.
모래가 훤히 보이는 맑은 바다로 첨벙 들어갔다 !
물장구를 치고 개헤엄 개구리 허엄을 친다. 아 시원하다,
바다위에 한가히 날 개짓하는 갈매기, 높이뜬 흰 구름 밀려드는
파도 하얀 비말(飛沫)을 날리며 바다를 가르는 모터보트.....
16:00경에 청간정(淸澗亭)을 구경하다.
현판(懸板)은 이승만 박사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친필로 일필휘지(一筆揮之단숨에 씀)의 인상을 주는 현판(懸板)이다.
최규하 대통령의 관동팔경(關東八景)을 찬(讚)하는 한시(漢詩)도 있다.
嶽海相調古樓上(악해상조고누상)-동해와 설악이 서로 조화로운
옛 정자 올라보니
果是關東秀逸景(과시관동수일경)-과히 관동의 빼어난 일경이로다.
17:00경에 화진포 선창(船艙)에 들려 생선회를 준비하여 콘도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다.
김학용씨가 준비한 나폴레온 꼬냑으로 모두 취하였다.
그리고 시원한 파도를 앞에 안고 밤하늘별과 같이 청간정 모래사장에서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시절 Campfire 처럼----
8/24일
아침 7시에 식사를 하고 9시에 콘도를 check-out 하고 백담사로 향하였다. 전설에 백담사는 본래 지금의 화천에 있던 비금사(比琴寺)였는데 절 근처에서 사냥꾼들이 자주 와 사냥을 하여 불도(佛道)에 어긋난 짓을 하므로 이곳 한계리에 옮겨지었다 한다. 옮긴 후에 9차례의 화재를 당해 이곳저곳에 옮겨 새로 짓다가 지금의 자리에 새 절을 짓고 이름을 붙이려 하는데 주지(住持)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청봉에서 이곳까지 못을 세어보아라” 선몽하여 그 말대로 못을 헤아리니 백 개가 되어서 백담사(百潭寺)라 했다고 한다.
백담사 오세암은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산실(産室), 전두환의 유배지(流配地), 백담사 앞 수심교(修心橋)밑을 흐르는 백담계곡물은 수도자(修道者)와 도망자(逃亡者)의 흔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히 흐르고만 있다.
12:40분 인제군 용대리 십이선녀탕쉼터에서 준비한 김밥으로 점심을 먹다. 매점에서 준비한 더덕주와 파전이 일품이다.
이집주인 전재곤(033-462-7135 011-365-7135 66세)씨는 경남 사천출신으로 육군상사로 제대한 태권도 공인9단의 실력자다. 이곳에 3000평을 마련하여 말년의 꿈을 이루고 있던 중 3년 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새부인을 맞이하였지만 본부인을 잊을 수 없어 지금은 인생의 즐거움이 없다고 한다. 아! 신선과 같이 절경 속에 사는 사람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구나----
십이선녀탕은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8탕밖에 없다고 한다. 가슴 아픈 쉼터 주인에게 아름다운 선녀의 하강을 기원하며 작별의 악수를 나누고 다시 서울로 향한다.
17:30분 오는 길에 옥천 함흥냉면 본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이집은 정말 오래된 이 마을의 냉면 원조라고 한다.
면발도 쫄깃쫄깃하고 돼지고기 수육이 참이슬과 궁합을 이룬다.
특히 음식점 여주인이 미인(美人)이다.
20:00경에 노량진 전철 앞에 집결하여 이번 청간정 여행을 마감하고 10월5일에 청계산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작별을 하다.
이번 청간정 여행에서 시종일관 알뜰한 계획을 세워 좋은 모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신 최영권 회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총무가 뜻밖에 골절상을 입어 불편한 몸으로 모임에 참석은 하였지만 제대로 심부름도 못하고 오히려 거동이 부자유하여 차에 오르고 내릴 때 일일이 부축하여주시고 음식을 먹을 때도 심지어는 머리까지 감겨 주시는 도움을 받게 되어 이번 여행에 여러 회원님께 큰 불편을 드렸음에도 한결같이 밝은 모습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셔서 감사 하고 연이어 송구한 마음을 드립니다.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