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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북한 지하교회에 전하는 A.개혁주의 구원론
사진 설명 : 한반도 사진처럼 일본은 한국보다 6배 크고 중국은 비교가 안되는 큰 나라이다.
이시대 한국은 작은 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남.북 통일이 완숙되면 한국은 섬나라가 아니다.
추석특집 북한 지하교회에 전하는
A. 개혁주의 구원론
1. 서른
개혁주의 교의학은 구원론이 시작이고 구원론에 이르러 그 절정에 도 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구원론은 삼위 하나님의 속성과 경륜과 은혜에 대한 계시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의 사역을 통하여 가장 선명하게 드리 나는데 이 계시의 결정체를 다루는 것이 구원론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삼위일체의 신비와 삼위 하나님 의 성품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났으며,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완벽 하게 조화를 이룬다. 따라서 개혁교회가 항시 전하는 복음의 해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의 구원이며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다. 그러므로 구원론 은 개혁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곧 을 바른 구원론의 정립은 교회의 사활이 달린 문제가 된다.
특별히 개혁교회는 로마교회의 잘못된 구원론을 개혁함에서부터 출범 하였기에 다른 교회와 구별되는 독특성이 구원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 성경적인 구원론이 설교되는 교회는 개혁교회임을 중명하는 표징처럼 여겨 왔으며, 바른 교회와 이단을 구분하는 척도로 삼아왔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구원관과 거리가 먼 메시지가 전파되는 교회는 진 정한 개혁교회라 볼 수 없다. 오늘날 개혁교회임을 표방하면서도 전혀 성 경적 구원론을 전하는 않는 교회가 많은 실정이다.
특히 교회에 만연한 무율법주의적 페단을 불러온 값싼 은혜의 복음, 즉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적 개혁주의 구 원론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잘못된 가르침이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 으로 오는 기독교 윤리와 도덕의 해이 곧 방종에 대한 반작용으로 거룩한 ー 삶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또 다른 극단적인 새로운 율법주의 시비로 치우처 바른 신학을 무너지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 구원론의 개혁이 시급하다. 올바른 구원의 진리가 강단에서 선포될 때, 우리 교회는 진정한 개혁교회의 모습 을 회복하게 된다.
2. 성령의 사역
기독론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객관적으로 이루신 구속을 다룬다면, 구원론은 객관적으로 성취된 예수의 구속사역이 성령의 사역으 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을 다룬 신학이다.
전자 가 '과거(past)' .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Christ for us)' 행하신 일을 조 명한다면, 후자는 '현재(present)'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Christ in us)' 행하시는 일을 고찰한다. 곧 구원의 객관적인 면(objective)에서 구원의 주관적인 측면(subjective)을 다룸으로 진환한다.
개혁 교의학에서는 이 전환이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런 특징은 칼빈의 구원론에서부터 확실하게 나타 난다. 칼빈은 구원론을 다루고 있는 기독교 강요 제 3 권 서두를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속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 혜택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과거 예수께서 이루신 사역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효력이 있게 되는가? 칼빈 의 대답은, 우리가 주님과 분리된 채 주님께서 우리 밖에 계시는 한, 주 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아무 효력이 없는 것으로 남아있게 될 뿐이라는 것 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효력 있
12)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는 이단 사설이다.(행 15:1)
ー 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빈은 이 신비로운 연합이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칼빈 이후 대부분의 개혁 교의학자들은 이런 패턴을 따라 구원론을 전개하였 다. 그래서 성령의 사역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개혁주의 구원론의 특징 으로 형성되었다.
개혁주의 구원론은 이렇게 구원의 적용 과정에 있어서 먼저 성령의 사역을 강조함으로써, 구원이 주관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우선적으로 인간 의 자유의지나 결단, 노력 등 행위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원 전에서 차단하였다.
특별히 구원의 적용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보다 인간의 자 유의지를 앞세우는 알미니안13)적 오류를 효과적으로 배격한 것이다.
13) 알미니안 주의의 구원론은? 1. 인간의 자유의지 ー 인간에게는 자유의지, 흑 은 인간의 능력이 있는데 이는 인간이 타락의 영향을 받긴 했어도 영적 선 (善)을 전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얻고자 하 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주장,
그러면 -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 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자 않고는 아버지께로 을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는 말씀이 거짓이 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 그리스도 예수님의 대속사역이 필요 없게 된다.
2. 조건적 선택 - 이는 하나님께서 복음에 응답하리라고 알고 계신 각 개인들을 축복하신다는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로 또 본래의 타락한 상태에서 (물론 알미니안주의 제 1교리에 의하면 완전히 타락한 것은 아닌) 구원을 받 고자 하는 자들을 선택하셨다는 주장이다.
3. 보편적 구속 - 이는 그리스도께 서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돔아가셨다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재 적으로만 그러할 뿐이다.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것은 그들이 믿을 때에 한해서이다.
4. 중생에 있어 성링 의 역사는 인간 의지의 제한 받는다 「 이는 성령이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 끌기 위해 역사하기 시작할 때 실제로 거역을 당할 수 있으며, 성령의 뜻이 좌절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죄인이 자진해서 생명을 받겠다고 하지 않는 한 성링은 이 생명을 줄 수 없음 것이다.
5. 은혜에서 떨어짐 - 이는 구원받 은 사람도 중국에 가서는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ㅡ 구원이 우리 각각의 자신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는데 성령의 은혜가 선재하지 않고는 앙수것도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최 사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 심으로 구원이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전적 으로 타락(부패하고 무능)하여 이 구원의 선물을 자신의 것으로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댁함이 있어야 한다.
물론 구원이 우리 안에 주관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할과 책임이 따른다. 이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성령의 이끄심에 반응하 는 반응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 스스로의 의지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 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로 죄인 됨을 깨닫게 되고, 죄에서 돌이켜 예수를 믿지 않는 한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지만 회개와 믿음이 인간 안의 생래적인 선함이나 종교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하나님께 스 스로 나아갈 자율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주님을 믿기로 선택 하기 위해서는 죄의 결박에 매여 있는 그의 의지를 자유하게 하는 생명의 성령의 능력 곧 성령의 역사가 반드시 선재해야 한다. 이렇게 성령 사역 을 강조함으로써 개혁주의 구원론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전적 부패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적이면서도 선재적인 은 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동시에 은혜의 바탕 위에서 믿음 과 회개의 참된 의미와 가능성을 밝혀준다. 성령의 사역14)은 예수님의 구 속사역에 근거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과 함께 당신의 지상사역의 열매인 그리스도 십 14) 성령이 오신 궁극적인 이유는? 요 15:26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리의 성령 이 오실 때에 성령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다.'
- 자가의 도를 세상에 전달하며 역사의 무대 가운데 실현시킨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성령을 통하여 세상 속에 내재하고 여사하신 다. 그러므로 성령의 오심은 어떤 의미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다시 오심' 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은 예수님의 또 다른 존재 방식이다.
15)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와 '성령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 에'와 '성령이 우리 안에'라는 표현을 상호 교체적으로 사용하였다. 구원과 성화의 모든 과정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공재와 동역 속에서 진행된다. 그리하여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는 신비가 실현되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심으로 얻게 되는 모든 효력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심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구체적으 로 실현될 수 있다.
중생과 칭의, 그리고 양자됨과 성화와 성령 충만 등 구원의 모든 은혜 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Christ in us) 계심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실 현된다. 따라서 성령을 통하여 임하시는 주님 곧 우리 안에 오직 그리스 도만 계심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16) 구속의 은총을 누리는 길이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신비로운 연합되지 않고는 구원의 은혜를 결코 누럴 수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그 효력을 믿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부패한 인간은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과 혜택은 원하지만 주님 자신의 임재는 환영하지 않는다.
15) 우리는 이런 표현을 사용할 때 바르트(Karl Barth)나 헨드리커스 벨코프 (Hendikus Berkohf)의 금에서 감지함 수 있는 양태론적 위험을 경계해야 한 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존재론적인 구별성을 확실히 하는 바탕 위 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16) 갈 2:20
- 3. 그리스도와의 연합 따라서 구원의 전 과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곧 그리스도와 의 신비로운 연합의 바탕 위에서 진행된다. 전통적으로 개혁주의 구원론 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구원 서정의 모든 단계보다 앞서 배치된다. 그 것은 구원의 모든 은혜가 이 연합에서부터 출발할 뿐 아니라, 이 연합 안 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존 머레이 (John Murray)가 말했듯이, 이 연합은 단순히 구원이 적용 되는 과정의 한 국면이 아니라 모든 국면의 기초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개혁주의 구원론의 핵심이다. 예밀 부룬너(Emil Brunner)는 이 교리가 '모든 칼빈주의 사상의 핵심'이라고 하였다. 특별히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근간으로 하여 구원론을 발전시키는데 획기 적인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에밀 부분녀(Emil Brunner)는 「기독교 강요」 3권에서 구원론을 그리 스도와의 연합을 논함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는다면 속죄 사역의 혜택에 전혀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 다.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만 새 언약의 중보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새 언약의 모든 은혜가 흘러나온다고 하였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와 연합의 진리를 다양한 표현과 비유를 통해 중 거하고 있다. 특별히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 었다. 그의 서신에만 이 용어(유사한 표현까지 합쳐)가 164번이나 등장한 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문구는 바울의 가장 특징적인 문체이다. 공관복 음서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할 때는 주로 예수님과 "함께"(with)라 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바울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in)라는 전치사를 사 용하였다. 이는 바울의 독창적인 표현양식이다.
그리스도와 연합의 사상은 요한의 기록에도 풍부하게 나타난다.
요한 복음 14장 20절에서 주님은 보혜사 성령이 임할 때 주님과 우리가 상호 내주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곧 이어 요한복음 15장 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이 연합의 신비를 알기 쉽게 풀 어주셨다. 거기서 "내 안에 거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바울의 연 합 사상도 이 주님의 말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3-1. 그리스도와 인간이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논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어떻 게 거룩하고 완전한 하나님이 부패하고 유한한 인간과 하나가 된 수 있는 가이다.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불같은 연단과 고난을 통해 정화되는 질고 험난한 과정을 거져 신자가 성결해지야만 신인합일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 친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앙생활의 목표이며 영 성의 목표(goal)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기독교 신앙의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며, 영성의 근원이다. 신비주의적 전통에 대응하여 개혁 주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구원과 성화의 전 과정의 바탕으로 본 것은 신앙의 특성과 영성의 색깔을 뒤바꾸어 놓은 영적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3-2,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는 노력과 수양을 통해 신인합일의 경지에 이르기를 힘쓰는 고역스럽고 율법주의적인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 됨에서 흘러나오는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풍성한 삶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 근거와 자격 조건을 우리 안에서- 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평생 성결하기 위해 노력 하고 불같은 고난을 통하여 정화될지라도 그런 자격을 조금이라도 갖출 수 없다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 혈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할 수 있는 정결한 신부의 자격을 갖추게 한다.
그 피가 우리를 십자가의 경계 안으로 이끌어 들이고 성도의 삶에 서 짖는 낱낱이 지은 모든 범죄들을 깨끗하게 하고 의롭게 하여 그리스도 의 순결한 신부가 되게 한다. 이 연합의 근거는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통 하여 이루신 율법의 의로움이다. 개혁신학에서 이 연합을 '법적 연합'(judicial union)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개혁교회에서 칭의를 법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했기에 이런 연합 의 교리가 가능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경건의 부단한 노력과 신비체험과 결단이나 헌 신 기도 등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영적인 높은 경지가 아니라, 오직 예수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것이 복음의 진수이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면 주님의 의로움과 거룩함, 그리고 영광에 참여 하게 되며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 예수님과 감이 아들의 특 권을 누리며 하나님을 아버지(파테르 pathvr)라고 부르며 아버지 집의 풍 성한 것들을 누린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므로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가 되며 추한 자가 아름다운 자가 되고, 빈곤한 자가 부요한 자가 된다.
이 연합은 법적인 연합일 뿐 아니라 실질적인 연합, 즉 생명적이며 유 기적인 연합이다. 성경은 이러한 연합의 성격을 머리와 몸, 그리고 포도 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 합함으로 그의 생명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끊임없이 부활의 생 명력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의 형상과 성품에 참여하며 그의 마음을 본받 는 자가 되었다.
3-3.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과 오늘 우리와의 시간격차가 있는데 어떻게 연합될 수 있는가는? 연합에 관한 논의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의문은 어떻게 시공간의 무 한 간극으로 분리된 두 존재가 실질적으로 연합할 수 있는가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은 연합의 영이다.
성령 은 하늘에 있는 주님과 땅에 있는 신자, 무한자와 유한자, 의로운 이와 불의한 자의 무한 간극을 극복하고 완전히 이질적인 두 존재를 인격적으 로 결합시킨다. 그러나 성령은 둘을 긴밀히 연합하는 동시에 구별되게 함 으로써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에 그 어떤 "잡스러운 혼합"도 허용하지 않 는다. 성령은 이 연합의 매개체와 방편인 동시에 이 연합의 모든 혜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통로이다. 성령은 연합의 매개체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우리가 예 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교제하는 만남의 장으로 제공하신다. 그래서 신 약성경은 성령의 사역을 묘사할 때 주로 성령 "안에"(in) 라는 전치사를 사용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안에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하늘의 영역에 존 재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바 되었다고 말했다(엡 2:6), 거기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늘의 영역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되었다(엡 1:3), 그러므로 우리의 정체성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다. 곧 하늘 시민이다(빌 3:20),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것은 지극히 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 사건과 계획 속에 참여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으로 말미암 아 이루어진 우주의 새로운 상황과 질서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3-4. 그리스도 안과 아담 안 성경은 "그리스도 안"과 "아담 안"을 서로 대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지 못하며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의 새 시대가 도래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는 죄에서 자유 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워진 새사람의 반열에 서게 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 물"이라고 했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 진행되는 새 창조에 참여한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이 포괄하는 반경을 우주적 차원까지 확장 하였다. 죄로 오염되고 와해된 우주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고 통 합되는 종말론적인 비전이 실현되는 것을 궁극적인 구속의 목표로 보았 다.
그러므로 먼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 로 충만하여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 편입되지 않은 세상의 영역들을 그 반 경 안으로 복속시키는 중대한 책무를 떤 것이다.
글 편저자 : lim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