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하비보스 제품들이 입고되어 리뷰 갈일이 바쁘네요~~ 계속되는 리뷰준비에 앞서 실기체 공부시간입니다.
오늘은 큼직한 넘을 골라봤습니다.
바로 센츄리 씨리즈의 마지막 기체인 미공군 가변익 전폭기 F-111 Aardvark 입니다.
미공군 최초의 가변익 전폭기 F-111 Aardvark
[General Dynamics F-111 "Aardvark" 는 센츄리 프로젝트의 제일 마지막 기체로 탄생된 가변익 공격기 이다]
개발배경
ㅇ 1960년 6월 미공군에서 새로운 전술전투기(TFX : Tactical Fighter Experimental) 개발요구에 따라 TFX개발계획을 추진하여 1964년 12월 최초로 거대한 전투기 F-111이 생산되었다.
[F-111 아드박크는 1960년대 미공군에서 새로운 전술전투기(TFX : Tactical Fighter Experimental) 개발요구에 따라 개발된 기체로 원래는 미해군과 미해병대의 소요량까지 통합된 통합전투기로 시작되었다. 사진은 처녀비행중인 시험기의 모습]
ㅇ F-111의 공식명칭은 길다란 기수부의 형태 때문에 남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개미 일종인 아드바크 (Aardvark)로 지어졌으며, 전자전기인 EF-111A는 레이븐(Raven)이라는 공식명칭과 함께 Electronic Fox라 불린다.
주요제원 및 성능
전장 22.4m(73.47ft) 익폭 후퇴각 16도 : 16.2m(62.98ft) 후퇴각 72.5도 : 9.74m(31.95ft) 기고 5.2m(17.14ft) 추력 11,385kg × 2 (25,100Ibs × 2) 최대이륙중량 45,359kg(99,998Ibs) 전투행동반경 897NM 최대속도 Mach 2.5 엔진 Pratt & Whitney TF30-P-110Turbofan 제작사 General Dynamics사 실용상승고도 59,040ft 항속거리 2,540NM 자 중 21,537kg 최대무장 적재 13,154kg(29,000lbs) 주요특성 및 성능개량
ㅇ특 성
[ F-111 Aardvark 가장 큰 특징은 가변익을 채용한 것이며, 이.착륙, 장거리 폭격 또는 전투 등의 임무에 따라 주익의 후퇴각은 16도부터 72.5도 까지 광범위하게 조절된다. 대형기체에 거의 폭격기에 준하는 14톤의 무장을 하고 마하 2 이상의 속도를 낼수 있고 6천킬로 이상의 항속거리를 가진 이 기체는 등장당시 그야말로 꿈의 전투기 였다]
F-111
항공기의 가장 큰 특징은 가변익을 채용한 것이며, 이.착륙, 장거리 폭격 또는 전투 등의 임무에 따라 주익의 후퇴각은 16도부터 72.5도 까지 광범위하게 조절된다. 또한 주익의 형태는 고익으로써 전연은 슬랫(Slat)으로 되어 있으며, 후연은 보조익(Aileron)이 없이 전체가 2중 슬롯 플랩(Slotted Flap)으로 설계되어 최대의 양력을 발생하도록 하였다.
[F-111 의 가장 큰 특징인 가변익의 기동모습 이.착륙, 장거리 폭격 또는 전투 등의 임무에 따라 주익의 후퇴각은 16도부터 72.5도 까지 광범위하게 조절된다. 다만 이 조정은 조종사가 일일히 수동으로 해줬어야 했고 자칫 고속이동중 주익이 부러질수도 있었다. 따라서 이후 같은 가변익을 장착한 F-14 톰캣의 경우 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컴퓨터가 가변익 각도를 조정해주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수평꼬리 날개는 전 작동(All Moving)식 테일러론(Taileron)으로써 기체의 피치 조종을 담당하며 저속에서는 주익의 스포일러(Spoiler)와 함께 롤(Roll) 조종도 담당한다.
[최초 양산기의 롤아웃당시 공개된 F-111 의 모습 환영인파가 상당한것이 당시의 인기를 알수 있다]
조종석은 횡렬식(Side-By-Side) 복좌이며, 비상탈출시 조종석과 그 주변이 캡슐(Capsule)식으로 사출됨으로써 착륙 후 조종사의 피난처로 사용되며 수면에 떨어지면 boat로도 사용된다.
[F-111 의 조종계통은 당시 최고 기술의 집합체였다. 특히 70미터 정도의 저공을 초음속으로 비행할수 있는 기체는 당시로는 이 기체가 유일하다 싶이해 이를 이용한 저공침투 능력은 상당히 우수한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조종석은 캡슐형태로 통채로 사출되며 바다에 착수시에는 그대로 보트로도 사용할수 있을정도의 고가의 조종시스템을 갖추었다]
[F-111의 2명의 조종사가 탠덤 방식으로 앉아 조종하며 뒤에서 봤을때 좌측이 조종사 우측히 항법사 및 폭격수 자리이다]
동체 내부의 넓은 공간에 TF30 터보팬 엔진 두 대가 장착되는데, 세계 최초로 전투기에 터보팬 엔진을 장착함으로써 항속거리를 연장하고, 고고도에서 마하 2.5, 해면고도에서 마하 1.2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ㅇ 성능 개량
F-111은 1967년 10월 실전에 배치되기 시작한 이후 성능향상계획이 계속 진행되어, F-111A후속으로 마하 2.2 이상의 고속에 적합하도록 엔진 및 공기흡입구를 개선한 F-111E형이 생산되었으며, 주익의 폭이 약간 연장되고 착륙장치가 보강된 호주 공군용인 F-111C형이 생산되었다.
또한 엔진 성능을 개선하고 항법 및 전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디지털 컴퓨터, APG-30 공격레이더, 관성 항법장치 및 HUD 등의 주요 항전장비를 개선하여 만든 F-111D형이 1973년 2월에 생산 배치되었다. 전투기로서는 마지막 모델인 F-111F형은 1976년 11월에 생산되었는데, 이 기체는 성능이 대폭 개선되었다. 1964년부터 배치가 시작된 FB-111A는 F-111D형과 동일한 항공전자장비를 탑재하였으며, 장거리 공대공미사일(SLAM : Stand-Off Land Attack Missile)을 최대 6발까지 탑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베트남전에 시험적으로 투입된 F-111A 는 이후 개량을 거쳐 사진의 E형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마하 2.2 이상의 고속에 적합하도록 엔진 및 공기흡입구를 개선한 F-111E형이 생산되었으며, 주익의 폭이 약간 연장되고 착륙장치가 보강된 호주 공군용인 F-111C형이 생산되었다. 또한 엔진 성능을 개선하고 항법 및 전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디지털 컴퓨터, APG-30 공격레이더, 관성 항법장치 및 HUD 등의 주요 항전장비를 개선하여 만든 F-111D형이 1973년 2월에 생산 배치되었다. 전투기로서는 마지막 모델인 F-111F형은 1976년 11월에 생산되었는데, 이 기체는 성능이 대폭 개선되었다. 1964년부터 배치가 시작된 FB-111A는 F-111D형과 동일한 항공전자장비를 탑재하였으며, 장거리 공대공미사일(SLAM : Stand-Off Land Attack Missile)을 최대 6발까지 탑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
한편 통신 및 레이더 방해용 전자전기인 EF-111A는 해군에서 운용되는 EA-6B가 항속거리 및 속도 측면에서 장거리 침투임무에서는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F-111A를 모체로 하여 Grumman사가 개조한 전자전 전용기이다.
[F-111 을 베이스로 전자전기로 개조된것이 바로 사진의 EF-111 으로 불리는 레이븐 전자전기이다. 이는 F-111의 높은 기동성과 탑재력을 살린 전자전 전용기체로 F-105F,F-4C 형에 이은 와이들위즐기로도 운용되었다. 특히 걸프전을 통해 많은 활약을 펼치기도 하였다]
당초 F-111은 미공군과 해군의 단일기종화 및 우방국의 소요로 수천대가 생산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개발과정 중 기체중량이 목표보다 훨씬 초과되고 가격 또한 상승하였으며, 전투기로서의 성능에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1976년 562대를 끝으로 생산라인을 폐쇄하였다.
운영개념
ㅇ 장거리 저공침투 및 전략폭격 임무 수행 ㅇ 전천후 전술/전투형 공격임무 수행 ㅇ EF-111항공기는 전자전 임무 수행
주요 탑재장비 및 무장
ㅇ 장 비
[F-111 은 거대한 기체에 AN/APQ-144 공격용 레이더 AN/AJQ-24 관성항법 및 폭격장비 INS 관성 항법장비, GPL 도플러 레이더를 탑재햇으며 총 14톤의 각종 폭장을 할수 있었다. 후기형에 이르면 AN/ALQ-137 잡음기만용 전자방해 장비, AN/ALQ-165 자체방어용 전자방해 장비 (ASPJ : Airborne Self-Protection Jammer) - AN/ALQ-62 적외선 경보 수신기 등을 탑재해 생존성을 비약적으로 늘리기도 하였다]
- 4km
까지의 지상목표물을 탐지하는 AN/APQ-144 공격용 레이더 - 공격용 레이더와 연동하여 전천후 자동목표 추적 및 폭격이 가능한 AN/AJQ-24 관성항법 및 폭격장비 - INS 관성 항법장비, GPL 도플러 레이더 - AN/ALQ-137 잡음기만용 전자방해 장비, AN/ALQ-165 자체방어용 전자방해 장비 (ASPJ : Airborne Self-Protection Jammer) - AN/ALQ-62 적외선 경보 수신기 등
ㅇ 무 장
[F-111 의 큰 장점중 하나는 총 14톤의 무장탑재력과 6천킬로에 달하는 항속거리 그리고 거의 모든 미공군의 무장을 탑재 운용할수 있는 공격기로는 거의 만능기체였다는 점이다. 이런 중무장을 하고도 100미터 이내의 저고도를 마하2. 이상의 속도로 돌파할수 있었다]
- AN/AVQ-26 Pave Tack 레이저 유도장비, Pave Mover 감시 및 방향 레이더를 장착함으로써 정확한 레이저 조사로 정밀 폭격 가능
-
공대공 무장 : AIM-9, AIM-7, AIM-54 - 공대지 무장 : AGM-130, AGM-142(Have Nap), AGM-65(Maverick) 등 - 폭 탄 : GBU-15를 포함한 Pave Way 레이저 유도폭탄, 듀란달(Durandal), GATOR 공중살포식 지뢰, CBU-58/75 확산탄 - 핵폭탄 : B-43, B-47, B-61 - 기 타 : M61A1 20mm 기총 1문 - FB-111A형은 내부 무장격실에 핵폭탄을 최대 5발까지 적재할 수 있고, 주익 하부를 포함하면 최대 15발의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으며, 그 외 순항미사일 또는 장거리 공대지 공격미사일 (SLAM : Stand-Off Land Attack Missile)의 운용도 가능하다.
운용국가 및 실전사례
[고속 비행하면서 MK-82 폭탄을 투하하는 F-111의 모습 사진으로 보면 D 형으로 보인다]
ㅇ 1964년 12월 최초 비행을 한 F-111의 계열기는 F-111A형 159대, E형 94대, D형 96대, F형 106대와 전략폭격기 FB-111A 76대가 생산되어 미공군에 인도되었으며, 1976년까지 호주 수출형인 F-111C 24대를 포함, 총 562대가 생산되었다. 또한 1981년부터 EF-111A의 개조가 시작되어 1985년까지 42대가 개조 완료되었다.
ㅇ 미공군에서는 전술공격임무에 F-111D/E/F 약 300대, 전략폭격임무에 FB-111A 60대 및 통신 및 레이더 방해용 전자전 임무에 EF-111A 약 40대가 실전배치된 바 있었고 이중 F-111F 2개 대대가 영국에 전개되어 항속거리 및 폭격능력이 열세인 NATO 공군력을 보완하기도 하였다.
[베트남전 이후 F-111의 활약을 펼친 전투는 1982년 있었던 리비아 폭격으로 영국에서 발진한 F-111 E/F 가 3번의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거의 지구 반바퀴를 돌아 리비아를 폭격한 일은 전설과도 같은 일화중 하나이다. 사진은 리비아 폭격을 위해 무장중인 제48 비행대 소속의 F-111F 의 모습]
ㅇ F-111은 1968년부터 월남전에 참전하여 월맹의 전략 목표물에 대한 야간 장거리 폭격 및 저공 침투 폭격임무를 주로 수행하였는데, 참전 초기에 기체 결함으로 4대가 손실되었고, 월맹의 지대공 미사일 및 대공포에 의해 6대가 격추됨으로써 전쟁기간 중 손실율 0.2%를 기록하였다. 이 손실율은 B-52폭격기의 2%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이었으며, 이 결과는 항공기의 속도와 ECM장비의 적절한 운용에 따른 차이로 판단된다.
ㅇ 한편 걸프전에서 미공군은 F-111F 100여대 및 EF-111A 24대를 배치하여 이라크의 주요 지휘 통제시설, 생화학무기 공장 및 주요 군수산업시설에 대한 정밀폭격을 실시하였는데, 당시 A-10 대지 공격기는 스커드(Scud)발사대 공격에 치중함에 따라 F-111은 탱크 킬러(Tank Killer)라는 A-10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이라크의 탱크를 파괴하는 전과를 기록하였다.
ㅇ 특히 EF-111A는 개전초기에 이라크의 레이더 제압임무를 수행하여 이를 무력화하였으며, 개전시를 포함하여 전쟁기간 중 다국적군 전술항공기를 엄호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퇴역진행
F-111은 총 562대가 전장 배치되어 작전을 수행하였으나 운용비용 과다와 정비소요가 커서 F-111A/D/E형 및 FB-111A형은 전량 퇴역이 완료되었다. 한때 미공군에서 2010년까지 계속 운용할 것으로 보고 레이더 계통, ECM, 지형추적 비행장치, 관성항법장비 등 항전장비의 성능개량과 경량화을 도모하고 강도와 부식저항이 강한 복합재료를 사용한 기체 개조작업및 F-14D에 사용된 General Electric F110 엔진으로의 교체등을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미공군이 추진중이던 F-22 Raptor 스텔스전투기의 구입에 예산을 집중키로 하면서 업그레이드 계획이 취소된 후 퇴역이 가속화되었다. 후임기체로 F-15E Strike Eagle이 배치가 급속히 추진되었다
기종별 퇴역시기를 보면 F-111A형은 1991년부터, F-111D형은 1992년부터, F-111E형은 1993년에서 1994년사이, 그리고 F-111F형은 1996년부터 퇴역처리하며 FB-111A 폭격기형은 1993년 퇴역하고 ㅣ중 15대는 F-111G로 개조되어 호주로 공급되었다. 최후로 퇴역한 기체는 EF-111 전자전기로 1998년 전량 AMARC에 치장 보관된다.
미공군 전술폭격기의 기대주였던 F-111 Aardvark
개발배경
[편대비행중인 F-111F 의 모습 이들 기체는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이 등장하기전까지는 최고의 공격기중 하나였다]
리퍼블릭사의 F-105 선더치프 전투기는 노스 아메리칸사의 F-107 수퍼 세이버 전투기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후에 TAC(전술공군사령부)에 배치되어 현역기로 활동 했다. F-105 전투기는 1960년부터 본격생산에 들어 갔으나 월남전투에서 전공을 쌓기도 전에 미공군은 이 전투기의 보완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으며 궁극적으로는 1970년부터 이 F-105 선더치프 전투기의 대체가 개시되기에 이르렀다. 미 공군은 실제로 F-105 전투기를 대체할 전투기와 설계, 개발을 업계에 요구하는 제 183호 SOR(특별작전요구조건)을 발표한 것은 1960년 6월 14일 이었다. WS(무기체계)-32A에 따라 제 183호 SOR은 실험용 전술전투기(TFX) 개발을 요구 했으며 SOR이 요구하는 완전한 무기체계는 다음과 같은 것 이었다.
1. 추진장치로서는 후연기가 달린 모델 JTF10-A(프랫 & 위트니제 TF30-P-1) 제트엔진 2대를 장착할 것 2. 승무원은 조종사의 무장조작장교(WSO)등 2명으로 할것 3.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무장은 기내에 장착하되 연료탱크 등을 장착할 기체 밖 무장장착대도 설치 할것 4. 자체연료에 의한 항속거리는 3,500 마일이며 공중연료 재보급이 가능할것 5. 미비한 활주로에서의 운용에 대비한 STOL(단거리이착륙) 능력을 구비할 것. 따라서 주날개는 고양력의 가변익이 되게 할 것. 6. M-61A-1 20mm 발칸 기관포를 1문 장착할 것. 7. 고공 최대속도 마하 2.5 및 저공 최대속도 마하 1.2일 것
이와 같은 TFX의 요구조건은 사실상 너무 과도한 것 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전투기가 실제로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비할데 없는 우수한 전투기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1960년, 미국의 35대 대통령으로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 되었고, 그는 1961년에 국방장관으로 로버트 S. 맥나마라를 임명했다. 맥나마라 장관은 국방예산의 감축을 목표로 업무를 추진함과 동시에 미국의 군사력을 비교적 강력한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했다.
[MK80 폭탄의 비를 뿌리는 F-111F의 모습 F-111 의 총 14톤의 다양한 무장을 할수 있어 거의 준 폭격기로 운용되었다]
그의 전략을 요약하면 그것은 각군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 한 예를 들면 미 공군과 해군 및 해병대가 다같이 사용할 수 있는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 이었다. 그의 이러한 방침과 케네디 대통령의 적극적인 뒷밭침을 받아 그는 TFX 전투기를 그의 삼군공용정책에 따라 개발할 것을 명령했다.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계획은 외관상으로는 건전한 것처럼 보였으나 TFX 프로그램의 경우는 애당초부터 실패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공군의 요구조건에 맞춰 개발되어 온 TFX 프로그램은 해군의 항공모함에 탑재하기에는 너무나 큰 전투기가 되었다. 관례로 보아 만약 해군이 어떤 기종을 거부하면 그 기종은 해병대에서도 구입하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엇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공군만이 TFX의 유일한 고객이 되었다.
[F-111중 다목적 전천후 기체로 운영되었던 F-111D 형의 모습 이는 E 형보다 나중에 나온 기체이다]
1961년 10월 1일에 미공군은 TFX의 제안요구서(RFP)를 업체에 발표했으며 12월 6일에는 7개의 항공기제작회사가 공군의 요구에 응해 개발계획에 참가 했다. 이들 업체는 보잉사, 맥도널 더글라스사, 록히드사, 리퍼블릭사, 노스 아메리칸사와 제네널 다이나믹스사 및 그라만사의 합작팀이었다.
컨베어사의 모기업인 제네럴 다이나믹사는 공군용으로 가장 발전된 항공기를 갖고 있었으며 그라만사는 기본적으로 해군형 전투기개발에 종사해 왔기 때문에 제네럴 다이나믹스와 그라만 합작팀의 노력은 TFX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두가지 장기적인 전략면에서의 적합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노력은 궁극적으로 그에 알맞는 대가를 받게 되었다.
TFX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적합한 설계를 제시한 업체가 나타나지 않아 수차에 걸친 설계경쟁이 있은 후에 보잉사의 TFX가 가장 우수한 설계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1962년 11월 24일에는 제네럴 다이나믹스와 그라만사의 팀이 TFX경쟁의 승자로 발표되었고 F-111이라는 명칭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업체 선정의 변경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미공군의 선정위원회의 모든 위원들은 경쟁기간중 시중일관 보잉사의 F-111 설계를 선호했기 때문에 제네널 다이나믹사가 주계약자로 그리고 그라만사가 주하청계약자로 결정될 것이라는 국방부의 발표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내용
F-111
은 미국 공군이 자랑하는 사상 최강의 장거리 전투폭격기이다. 1961년 초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기체는 적 레이다망의 탐지를 피해서 장거리 침투를 행할 능력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세계 최초로 가변후퇴익을 도입했다. 또한 충분한 항속거리와 큰 무장탑재량을 갖추고자 했기 때문에 총 중량 40톤이 넘는 이례적인 대형기가 되었다.
이 기체의 주익은 16도에서 최대 72.5도까지 변화하며 STOL성과 저공에서의 안정된 비행성능이 있다. 또한 전파고도계, 지형추적레이더, 관성항법장치, 여기에 자동조종장치와 완벽한 통신시스템이 결합되어 완전한 장거리 자립항법 공격능력을 자랑한다.
또한 폭탄탑재력도 커서 8.4~12톤 가까운 각종 일반폭탄, 유도폭탄, 핵폭탄을 장비할 수 있고 4.5톤의 페이로드에서도 연료탱크없이 무려 2,000km에 달하는 작전행동반경을 가진다.
이렇듯 침투용 공격기로서 큰 성능을 지닌 F-111은 미국을 비롯한 NATO의 보복공격전력의 핵심을 이루며 이미 미국 공군의 4개 항공단에 실전배치되었고 일부는 서유럽국가에도 파견되었다
길이 22.40 m 폭 19.20 m 높이 5.22 m 자체중량 20,943 kg 최대중량 41,504 kg 최대속도 마하 2.5 한계고도 18,200 m 행동반경 5,093 km 탑승인원 2 제작(개발) General Dynamics (글출처 : http://afbase.com/acdata/fig/f-111.php)
F-111은 세계 최초로 가변후퇴익(可變後退翼)을 채용한 복좌식 전투폭격기로 1964년 제1호기가 완성된 이래 제너럴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가 공군용 기체를 그러먼항공우주산업(Grumman Aerospace Corporation)이 해군형을 분담하여 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미 공군과 함께 플랫폼을 공유하는 다목적 전투기 확보로서 항공모함용 해군기도 개발계획이 진행되었지만, 계속적인 가격 상승과 무게제한 초과 이외에도, 제작된 7대의 시제기 중 2대가 추락하는 불상사로 인해 1968년 결국 해군용 F-111의 계획이 취소되고 공군용만만이 채택되어 배치하게 됩니다. F-111은 총중량이 36t(최대 45t)에 달하는 대형기체로 폭격용도로 운용하였습니다. 최대속도 마하 2.2, 실용 상승한도 1만 8,300m, 항속거리 6,300km, 전투행동반경 3,000km의 제원을 가졌다.
전쟁을 통해 수많은 무기가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그중에서 미 공군의 F-111 아드바크(Aardvark·사진)는 특이한 존재다. 무기체계의 성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실전 배치와 동시에 전쟁에 사용된 몇 안 되는 현대 무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실전에 투입돼 91년 걸프전쟁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퇴역했는데 이처럼 전쟁을 통해 등장하고 전쟁을 끝으로 퇴역한 무기는 F-111이 유일하다.
최초 완성기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미 공군 관계자들은 F-111에 대해 대단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총 중량이 36톤(최대 45톤)에 전투기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대형기가 돼 버렸지만 미 공군의 까다로운 작전 요구 성능을 완벽히 충족했고, F-111의 특기인 장거리 침투 공격 능력은 이러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특히 세계 최초의 실용 가변익 전투폭격기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완성된 F-111은 핵무기를 포함한 다종 다양한 폭탄을 장착하고 60m 이하의 초저고도를 고속으로 비행, 장거리 목표를 타격할 수 있었다.
F-111의 성능에 크게 만족한 미 공군은 실전 배치와 동시에 베트남전쟁 작전 투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F-111의 최초 실전 참가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최첨단 무기로 주목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겨우 55회의 출격 임무만 수행하고 본토로 소환된 F-111은 명성에 걸맞지 않은 졸전(?)으로 미 공군에서 퇴출될 위기까지 몰리게 된다. 그러나 미 공군은 F-111을 퇴출시키는 대신 개발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문제점들을 하나씩 개선하고 운용 전술을 보완하면서 명예회복의 기회를 노렸다.
[외부 파일런에 폭장을 하고 있는 F-111D형의 모습 F-111D형은 내부 폭탄창과 외부 파일런을 이용 총 14톤의 무장이 가능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체의 성능과 장단점을 철저히 다시 파악한 미 공군은 72년 F-111의 실전 투입을 재개한다. 그리고 동년 9월부터 작전에 투입된 제474전술전투비행단 소속 F-111A 2개 비행대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이듬해 3월까지 4000회가 넘는 출격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작전 기간 중 기체 손실은 단 7대에 불과했다.베트남전쟁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F-105나 F-4 등의 전투기에 비해 F-111은 높은 귀환율과 함께 월등히 우수한 폭탄 탑재력, 정밀 폭격 능력과 90% 이상의 폭격 명중률을 자랑했다.
특히 지원기가 불필요한 단독 작전 능력 등은 F-111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원한 퇴출이냐 화려한 부활이냐는 위기 상황에서 F-111은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 F-111은 리비아 공습 작전인 엘도라도 협곡 작전에서 편도 5000㎞ 이상의 거리를 비행, 주요 목표를 정밀 타격함으로써 장거리 폭격 능력과 침공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고 퇴역 직전인 걸프전쟁 당시에도 총 2417회의 출격을 통해 이라크군의 주요 군사 시설을 타격했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F-111를 운용중은 나라가 바로 호주이다. 호주는 1967년부터 영국의 캔버러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해 항속거리가 길고 폭장탑재력이 우수한 F-111C 형을 도입 현재까지 운용중인 유일한 국가이다. 이들 기체는 현대화 개수를 거쳐 최신 GPS 폭탄도 운용이 가능한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추후 F/A-18F 가 도입되면서 퇴역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최초 실전 투입 결과에 실망한 미 공군 수뇌부가 F-111의 퇴출을 결정했다면 이후 F-111이 거둔 승리와 영광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F-111은 퇴역하기 전까지 전투기 외형을 가진 미 공군 최후의 전투폭격기이자 핵심 전폭기 전력으로 운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