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라
조선시대 영의정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 합쳐서 총24년을 정승 자리에 있었던 황희 정승 일화를 보면 집안 노비 둘이 다투다가 그중 한 노비가 다른 노비가 잘못한 점을 고하자 황희 정승은 “네 말이 옳다"고 하고, 이어서 또 다른 노비가 와서 앞서 다녀간 노비의 잘못을 고하자 “네 말도 옳다”고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황희 정승의 부인이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고 하면 대체 어느 쪽이 틀렸다는 말씀입니까" 하자 "그 말도 옳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활하다 보면 '다른 것'과 '틀린 것'을 혼동해서 쓰는 것을 종종 들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 방송 오락프로에서 특히 젊은이들이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는 것으로 말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반대말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르다'의 반대어는 '같다'이고 '틀리다'의 반대어는 '맞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혼동해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무려 12년이나 국어를 배우는데도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쓰곤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에 깊숙이 깔려 있는 흑백 논리 사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 사회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나와 생각이 같지 않으면 틀린 것이고 그것은 문제 있는 것으로 취급해 왔습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나는 이것이 옳다고 하고, 너는 그르다고 한다면 누가 옳은 것인가? 현실에서는 나와 생각이 다른 너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깔아뭉개려고 하는데 과연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내가 아는 것, 내가 본 것, 내가 믿는 것 이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옳다고 하는 것은 온전하고, 완전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영원한 것이어야 할 텐데 그것이 과연 그런 것인가? 확실한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이고, 내 눈에 보이는 것도 '나'라는 통로를 통해서 걸러진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옳은 것인가?
내가 누구인가? 내가 완전하고, 온전하고,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허물이 크고, 부실하고, 실수투성이인 내가 나를 옳다고 하는 것은 진실로 나를 모르거나 아니면 안다고 하더라도 나의 모자람을 감추려는 것일 텐데 이것이 어떻게 옳은 것인가? 그런데도 서로 옳다고 다른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은 서로 죽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은 부분일 뿐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안다는 것, 본다는 것, 믿는다는 것은 내 눈에 보이는 것이고, 일시적이고, 부분적이고, 불확실하고, 유동적인데, 이것은 너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존중’ 입니다. 존중은
'상대를 받든다', ‘네가 훌륭하다’ 이런 뜻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둘이 서로 다른데 기준을 나로 잡아버리면, 이것은 옳은 게 되고, 저것은 그른 게 되고, 이것은 맞는 게 되고, 저것은 틀린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너가 틀렸다. 고쳐라’ 이렇게 말하지만 상대는 안 고칩니다. ‘고쳐라’하는 생각은 결국 내 식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가 안 고치면 화가 납니다. 그런데 화를 내면 나만 힘들어집니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다름을 인정하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둘이 한방에서 사는데 나는 ‘덥다’ 그러고 상대는 '춥다' 그럽니다. 그런데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아, 저 사람 입장에서는 덥구나' 그래서 내 마음에 괴로움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야당 대표가 19일 동안 단식으로 병원으로 실려
간 날 검찰은 구속영장으로 맞장구치는 놀라운 상황에 벌어졌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옳음으로는 풀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말하는 옳음은 이미 옳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려면 관점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곧 답인데 나부터 진실로 나를 내려놓으려 한다면 새 길이 열리고 너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면서도 나와 다른 너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나만 옳다는 것도 없고, 너만 옳다는 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다름일 텐데 다름은 대결이 아니라 합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이고, 다름은 공격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울린다는 것이고 평화인데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답답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온전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옳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옳은 말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럼 '다른 것'과 '틀린 것'을 바로 쓰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흑백 논리의 사고로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을 틀리다고 생각하기 보단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전제를 깔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토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세상의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경험하기 힘듭니다. 장님들은 서로 다른 장님의 의견을 인정하고 수렴했기 때문에 전체 코끼리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 삶의 태도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세계관은 더욱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알고 인식하는 모든 것은 지극히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할 때 우리의 관계는 변합니다. 갈등과 다툼은 줄어들고 새로운 관심과 사랑이 넘치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아름다운 세상 불국정토를 이루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