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읍면동 | 면적 | 세대 | 인구 | 법정동리 |
---|---|---|---|---|
함창읍 | 43.36 | 3,097 | 7,301 | |
사벌면 | 57.37 | 1,912 | 4,488 | |
중동면 | 51.69 | 800 | 1,902 | |
낙동면 | 91.10 | 2,141 | 4,822 | |
청리면 | 39.59 | 1,486 | 3,499 | |
공성면 | 89.29 | 2,214 | 5,018 | |
외남면 | 33.22 | 854 | 2,058 | |
내서면 | 80.66 | 946 | 2,181 | |
모동면 | 70.50 | 1,238 | 2,903 | |
모서면 | 84.99 | 1,234 | 2,727 | |
화동면 | 56.15 | 989 | 2,358 | |
화서면 | 59.52 | 1,336 | 3,077 | |
화북면 | 99.40 | 814 | 1,772 | |
외서면 | 88.08 | 1,379 | 3,002 | |
은척면 | 53.95 | 916 | 1,890 | |
공검면 | 39.50 | 1,246 | 2,668 | |
이안면 | 52.35 | 1,156 | 2,429 | |
화남면 | 54.39 | 454 | 911 | |
남원동 | 27.83 | 4,806 | 12,507 | 남성동, 낙양동, 개운동, 연원동, 남장동 |
북문동 | 14.45 | 2,699 | 6,596 | 무양동, 만산동, 죽전동, 부원동, 초산동, 남적동 |
계림동 | 11.75 | 3,484 | 8,445 | 냉림동, 계산동, 화산동, 낙상동, 중덕동 |
동문동 | 18.14 | 4,027 | 10,181 | 복용동, 화개동, 외답동, 헌신동, 병성동, 도남동, 서문동,
서성동, 인봉동 |
동성동 | 11.78 | 1,837 | 4,542 | 성하동, 성동동, 서곡동, 인평동, 거동동 |
신흥동 | 25.77 | 3,484 | 9,713 | 신봉동, 가장동, 양촌동, 지천동, 오대동, 흥각동 |
2009 |
1,254.83 | 44,549 | 106,990 |
1. 함창읍(咸昌邑)
시의 동북단에 위치한 읍으로 면적 43.37㎢, 인구 7,456명(2008년 현재)이며 읍 소재지는 구향리이다.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고도(古都)였다. 그 뒤 신라에게 병합되어 고동람군(古冬攬郡) 또는 고릉(古陵)이 되었고, 경덕왕 때 고령(古寧)으로 고쳤다. 964년(광종 15)함녕군(咸寧郡)이 된 뒤, 1018년(현종 9)상주(尙州)에 속하였다. 뒤에 함창(咸昌)으로 고친 다음 1171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그리고 1413년(태종 13)에 함창현으로 되었다. 1895년함창군(咸昌郡) 지역으로 함창현청이 있었으므로 현내면이라 했고, 교촌·구아·금취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東面)의 8개 리, 북면(北面)의 15개 리와 인근 4개 면의 일부를 병합해 함창면이라 하였다. 1980년 읍으로 승격된 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해 새로운 상주시가 탄생하자 상주시 함창읍이 되었다.
읍의 동쪽 경계는 낙동강의 상류인 영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이안천이 읍의 중앙을 동류해 영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합류지점에 충적지가 발달해 함창평야가 형성되었고, 남부와 북부는 100∼200m 내외의 구릉으로 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7.76㎢로 41.0%, 임야면적 16.85㎢로 38.9%, 기타 20.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3.94㎢로 78.5%를 차지하고, 밭이 3.82㎢로 21.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명주, 쌀, 단무지, 생오이, 친환경농법농산물(우렁이농법 9호 9㏊)이다. 사과·배 등과 밤·대추·은행·산수유·토석류 등의 임산물 생산이 많으며, 젖소·돼지·사슴·닭의 사육과 양봉도 이루어진다. 한편, 광업은 소규모의 석탄광구 2개가 있고, 공업은 직조공장과 석재가공공장이 있다. 또한, 가내수공업으로 재래식의 인견직조가 행해지는데 이 지방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이 곳은 문경시와 인접해 있어 상주시보다는 문경시의 경제권에 속한다. 교통은 김천∼문경간의 국도와 경북선이 읍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군도 및 지방도가 동서로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한편, 조령(鳥嶺)과 황령(黃嶺)의 길목에 위치해 일찍부터 대로(大路)가 개통되어 해륙(海陸)의 교역이 편리하였다. 따라서, 산업과 문물의 발달이 용이한 입지적 여건이 조성되어 예로부터 팔달(八達)의 구(衢)·추노(鄒魯)의 향(鄕)으로 불렸다.
문화유적으로는 증촌리 석불 좌상, 증촌리 석불 입상, 전 고령가야왕릉, 오봉산 고분군, 함창향교, 증촌리 입석, 용화사, 봉황대, 임호서원, 용화사 탑, 남산 고성 등이 있다. 종교시설로는 기독교 7, 불교 3, 천주교 1로 총 11개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2. 공검면(恭儉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9.50㎢, 인구 2,723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양정리이다.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영역이었으며, 신라시대에는 고동람군(古冬攬郡)·고릉(古陵)·고령(古寧)에 속해 있었다. 964년(광종 15)함령군의 관내였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상주목에 속했다가 함창현에 귀속되었다. 그 뒤 1171년(명종 2)에는 함창감무(咸昌監務)의 관할 아래 있었다. 1413년(태종 13)함창현에, 1895년(고종 32)에 함창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였다. 율곡·법구·부곡 등 16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상면(水上面)의 상흘·하흘 등 10개 리와 수하면(水下面)의 여물리(余勿里) 일부, 상주군 외서면(外西)의 이촌리(泥村里)와 가산리(佳山里) 일부를 병합해 ‘공갈못(恭儉池)’의 이름을 따서 공검면이라 하고 상주군에 편입되었다. 1987년하흘리가 은척면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에 속하였다. 면의 동부는 구릉지와 평지가 교차하는 복잡한 지형을 이루며, 서부는 비교적 높은 산지로 되어 있고, 중앙에 국사봉(國師峰, 338m)이 있다.
서부 산지 사이를 이안천이 감입곡류를 형성하면서 북류하고, 그 활주사면(滑走斜面)에 소규모의 평지가 있다. 동부에는 동천(銅川)의 상류가 구릉들 사이에 수지상(樹枝狀) 하계망을 펴고 충적평야를 형성하며, 오태리에 오태저수지가 있어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총경지면적 12.44㎢로 31.5%, 임야면적 20.27㎢로 51.3%, 기타 17.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8.34㎢로 67.0%를 차지하고, 밭이 4.10㎢로 33.0%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사과·배·복숭아·감 등의 과수와 콩·깨 등의 특용작물이 많이 생산된다. 그 외 밤·호두·대추·버섯 등의 임산물도 생산되는데, 그 중 밤은 군내 1위를 차지한다. 축산업으로는 닭의 사육이 많으며, 한우·돼지·산양 사육과 양봉도 활발하다. 광업으로는 계림광산·함원광산·상원광산에서 무연탄이 채광된다.
면의 동부에 경북선과 김천∼문경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고, 서부에는 내서∼농암과 공검∼음척을 잇는 군도가 남북으로 통과할 뿐이어서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양정리에 삼한시대에 수축된 저수지인 공갈못의 터가 남아 있고, 지평리에 효자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양정(楊亭)·부곡(釜谷)·동막(東幕)·병암(屛巖)·오태(五台)·역곡(力谷)·화동(華洞)·율곡(栗谷)·예주(曳舟)·지평(支坪)·중소(中所) 등 11개 리가 있다.
3. 공성면(功城面)
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9.29㎢, 인구 5,192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옥산리이다. 신라 때의 대병부곡(大幷部曲)인데, 고려 초에 공성으로 개칭한 뒤 1018년(현종 9)상주에 속하였다. 한말에 이르러 공성의 동쪽이 되므로 공동면(功東面)이라 명명한 다음 학산·옥산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서면의 금계·양곡 등 20개 리, 청남면의 18개 리를 병합해 19개 리로 개편한 뒤 옛 현의 이름을 따서 공성면이라 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에 소속되었다.
지형상 낙동강의 지류인 남천 상류의 침식으로 형성된 모식적 산간분지이다. 그래서 기양산·국수봉(793m)·성봉산(星峰山, 572m)·백학산(白鶴山, 615m)·서산 등의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분지상에는 남천의 상류가 수지상 하계망을 이루며 마름모꼴의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총경지면적 22.52㎢로 25.2%, 임야면적 57.60㎢로 64.5%, 기타 10.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5.46㎢로 67.3%를 차지하고, 밭이 7.36㎢로 32.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그 밖에 사과·감·깨 등의 생산이 많고, 밤·버섯·사료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도곡리는 인삼재배에 적합한 토질이어서 농가소득 증대의 전망이 밝다. 한우 사육은 군내 2위이며 그 외 개·거위 사육과 양봉이 이루어진다.
교통은 경북선과 김천∼문경간의 국도가 남천을 따라 나 있다. 그리고 모동∼선산간의 지방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횡단하고 있으며, 옥산∼상주간의 군도가 면의 북부를 통과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초오리에 사지(寺址), 무곡리에 폐탑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종교시설은 총 22개소(기독교 17개소, 천주교 2, 기타 3)가 있다.
4. 낙동면(洛東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91.10㎢, 인구 4,911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상촌리이다. 고려시대까지는 상주목의 장천부곡(長川部曲)이었다. 그런데 한말에 이르러 장천면(長川面)이라 한 뒤, 문현·문산 등 7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외동면(外東面)의 장곡·덕촌 등 18개 리를 병합해 17개 리로 개편하고, 낙동강의 이름을 따서 낙동면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동부는 여러 개의 구릉과 낙동강의 범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서부는 병풍산(屛風山, 366m)·갑장산(甲長山, 806m)·수선산(修善山, 684m) 등을 잇는 산릉이 경계를 이루며, 남쪽에는 삼봉산(三峰山, 448m)·복우산(伏牛山, 509m)이 면의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낙동강이 동북부 경계를 따라 흐르며, 서남단 산지에서 발원한 장천이 면의 중앙을 관통하면서 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된다. 그래서 하천연안에 상당히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21.85㎢로 24.0%, 임야면적 54.42㎢로 59.8%, 기타 16.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5.79㎢로 72.3%를 차지하고, 밭이 6.06㎢로 27.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농업으로는 축산, 과수, 시설원예 등이 매우 발달되어 고소득 작목 중심으로 영농하고 있으며 특히 한우사육은 5,434두로서 상주시 전체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낙동면 농촌지도자회를 중심으로 상주게르마늄 일품쌀을 생산하여 타 지역과 차별화된 고품질의 쌀 생산으로 농업경쟁력을 제고하고, 낙동면 장곡리를 중심으로 한 시설원예재배는 면적이 확대되고 있어 시설원예단지로 발전하고 있고, 양계·양돈 등 축산업은 시설현대화와 고급육 생산으로 농가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교통은 진해∼청주간의 국도가 면의 북쪽을 동서로 지나고, 선산∼상주를 잇는 지방도가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운평리에 의암고택, 승곡리에 양진당과 오작당, 화산리에 김일(金鎰) 장군의 전적비, 내곡리에 김일 장군 딸의 효녀각이 있다. 운평리에서 채석되는 구상화강암은 거북돌로 불리기도 하는 천연기념물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2개교가 있다.
상촌(上村)·낙동(洛東)·장곡(長谷)·구잠(九潛)·물량(物良)·분황(分皇)·성동(城洞)·신상(新上)·화산(花山)·내곡(內谷)·운평(云坪)·비룡(飛龍)·용포(龍浦)·수정(水晶)·신오(新梧)·유곡(柳谷)·승곡(升谷) 등 17개 리가 있다.
5. 내서면(內西面)
시의 중앙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0.66㎢, 인구 2,207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신촌리이다. 신라 때부터 상주에 속해 있었다. 한말에 상주가 군으로 될 때 상주의 서쪽이 되므로 내서면이라 했고, 유정·내동 등 6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1개 리는 상주면으로, 2개 리는 외서면으로 할양하였다. 그 뒤 외남면의 이동(梨洞)을 병합해 11개 리로 개편했으며, 1986년 상주읍의 시승격에 따라 연원리(蓮院里)와 남장리(南長里)가 상주시로 편입되어 9개 이를 관할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지형이 동서로 장방형을 이루고, 북부와 남부에 산지가 발달해 남부에는 백학산(白鶴山, 615m), 북부에는 소머리산·노음산 등이 솟아 있다. 면의 중앙에는 북천이 동류해 낙동강의 지류인 남천과 합류한다.
총경지면적 9.98㎢로 12.4%, 임야면적 65.83㎢로 81.6%, 기타 6.0%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5.92㎢로 12.4%를 차지하고, 밭이 4.06㎢로 40.6%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그 외에도 탈피 표고, 곶감, 과수, 축산 복합영농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곶감의 경우는 수확량의 상주시의 20%를 차지한다.
교통은 진해∼청주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또한, 내서∼농암간 및 황간∼내서간의 군도가 북부와 남서부 지방을 각각 지난다. 문화유적은 북장리에 북장사(北長寺)가 있고, 낙서리의 천제당(天祭堂)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신촌(新村)·능암(綾巖)·북장(北長)·고곡(古谷)·서만(西灣)·서원(西院)·낙서(洛西)·평지(平地)·노류(蘆柳) 등 9개 동이 있다.
6. 모동면(牟東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70.50㎢, 인구 2,862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용호리이다. 본래 신라의 도량현(刀良縣)인데, 경덕왕 때 도안(道安)현으로 고쳐서 화령군에 속하였다. 그 뒤 1018년(현종 9)중모현(中牟縣)으로 고쳐 상주에 소속되었다. 한말에 이르러 상주가 군이 될 때 중모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모동면이라 했고, 원산·송산 등 45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남면의 신안리(新安里)와 공성면의 신기리(新基里)·우하리(于下里) 일부를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동·서·남부는 성봉산·백학산·포성봉(捕城峰, 933m)·지장산(芝庄山, 772m) 등을 잇는 산지로 에워싸여 있고, 북부는 틔어 있다. 중앙은 저지대로, 석천(石川)과 신천(新川)이 Y자형으로 관류한다. 그리고 합류하는 부근과 그 하류에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2.13㎢로 17.2%, 임야면적 52.02㎢로 73.8%, 기타 9.0%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8.09㎢로 66.7%를 차지하고, 밭이 4.04㎢로 33.3%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사과·배 등의 산출이 많고, 호두·도토리·은행 등 임산물도 많이 생산된다. 돼지 사육은 군내 1위로 그 외 개·오리도 사육한다. 특히, 이동리의 윗배울에서는 고추·인삼 등의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아랫배울에서는 사과를 많이 생산한다. 용호리에는 우시장이 선다.
교통은 김천∼마성간의 지방도가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모동∼현서간의 지방도가 동부지방과 연결한다. 문화유적은 백화산에 신라 때 백제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금돌성, 용호리에 삼층석탑, 수봉리에 옥동서원, 정양리에 세심석(洗心石)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7. 모서면(牟西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5.06㎢, 인구 2,733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삼포리이다. 본래 신라의 도량현(刀良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도안현으로 고쳐서 화령군에 속하였다. 그 뒤 1018년(현종 9)에 중모로 고쳐서 상주에 속하게 되었다. 1895년상주가 군이 될 때 중모현의 서쪽이 되므로 모서면이라 하고, 노산·대표 등 4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2개 리로 개편되었다. 1966년정산리(井山里)에 서부출장소를 설치하고, 득수·백학·정산·호음 등 4개 리를 관할하게 한 뒤 1987년유방리(柳坊里)를 득수리로 개칭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동부 산지 동단에는 백학산이 솟아 있고, 서부 산지에는 팔음산·천금산(千金山, 465m)을 포함한 소백산맥과 포성봉(捕城峰, 933m)·주행봉이 있는 백화산맥(白華山脈)이 마주 보고 있다. 두 산맥 사이에 금상천(錦上川)이 남류하면서 좁고 긴 곡저평야를 형성한다. 중앙의 구릉들 사이에는 석천과 그 지류가 흐른다. 그래서 이들 하천이 형성한 평지와 구릉이 교차해 복잡한 지형을 나타낸다.
총경지면적 16.17㎢로 19.0%, 임야면적 62.76㎢로 73.8%, 기타 7.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79㎢로 60.5%를 차지하고 밭이 6.38㎢로 39.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밤·호두 등 임산물 생산도 활발하다. 게다가 한우·돼지·개·산양 등의 가축 사육도 행해진다. 득수리에 흑연광산인 득수광산과 월명광산이 있다.
교통은 동서로는 황간∼내서간의 군도가, 남북으로는 김천∼마성간의 지방도가 지나 삼포리에서 교차한다. 문화유적은 정산리에 정효각(旌孝閣)이 있고, 그 밖에 백학리에 수령 500년 가량의 느티나무가, 득수리에 수령 700년 가량의 느티나무가 있다.
학교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종교시설은 교회 6개(개신교5, 천주교1)와 사찰(암자) 5개가 있다.
8. 사벌면(沙伐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7.38㎢, 인구 4,449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덕담리이다. 신라 초기에는 작은 부족국가(部族國家)로, 사양벌(沙梁伐)·사불(沙弗)·사벌(沙伐) 등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 뒤 신라 첨해왕(沾解王)에게 멸망당해 주(州)가 된 사벌주(沙伐州)의 동북부이다. 또한, 신라 경명왕 3년(919) 왕의 제5자 사벌대군(박언창)이 후백제 견훤의 침공으로 본국과의 교통이 두절되면서 고립무원(孤立無援)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벌대군은 사벌국을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어 항전을 계속하던 중 930년(경순왕 3) 견훤의 기습으로 패망하였다. 당시 사벌국의 도읍지가 바로 이 곳이라 전한다. 한말에 상주의 북쪽에 위치하므로 외북면이라 한 뒤 백담·덕평 등 18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외북(外北)면의 일부와 중북(中北)면의 14개 이, 대평(大坪)면의 3개 이를 병합해 사벌국의 옛 이름을 따서 사벌면이라 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동부는 대부분 구릉성 산지이고, 낙동강이 흐르며 경계를 이룬다. 또한, 남동단에 낙동강의 범람원이 자리잡고 있다. 서부에는 외서천과 동천의 연안에 보기 드문 대규모의 사벌평야가 산지와 병행해 남북으로 펼쳐진다.
총경지면적 24.56㎢로 42.8%, 임야면적 21.54㎢로 37.5%, 기타 19.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9.53㎢로 79.5%를 차지하고, 밭이 5.03㎢로 20.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쌀, 배가 유명한 고장으로 한국 농업을 선도하는 농업의 중심지(벼, 배 재배면적 상주시에서 1위)이다. 쌀과 배의 전국적인 명품화(브랜드화) 추진으로 농가소득을 증대시켜 머물고 싶은 복지 농촌 건설에 면민모두가 앞장서고 있다.
교통은 경북선과 사천∼초산간의 국도가 면의 서쪽 경계를 지난다. 그리고 상주∼풍산간의 지방도가 면의 남동부를 통과하며, 이 사이를 화서∼사벌간의 군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화달리에 사벌왕릉·삼층석탑, 금흔리에 정기룡 장군의 묘와 충의사(忠毅祠)·신도비 및 유물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매호리에 전경세의 유허비와 조우인의 사당이 있고, 매호리에 창녕조씨(昌寧趙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9. 외남면(外南面)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3.22㎢, 인구 1,919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신상리이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모두 상주에 속해 있었다. 한말에 이르러 상주군의 남쪽 바깥 면이 되므로 외남면이라 했고, 흔평·수동 등 5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동(梨洞)을 외서면으로, 왕상(旺上)·왕하(旺下)·왕서(旺西)·왕신(旺新)을 공성면으로, 상두동(上杜東)·하두서(下杜西)를 청리면으로 이관한 뒤 8개 리로 개편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동부일대는 남천의 지류가 수지상 하계망을 펴고 동류하면서 그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그리고 서·남·북부는 산지로 되어 있어 서산 등 500m 내외의 높은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총경지면적 8.98㎢로 27.0%, 임야면적 20.55㎢로 61.9%, 기타 11.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00㎢로 66.8%를 차지하고 밭이 2.98㎢로 33.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다. 감, 사과, 복숭아,포도, 배 등 각종 과일이 잘 자랄 수 있는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감, 포도, 복숭아 재배는 고소득을 올리는데 기여한다.
구서리에 수출용 화강석의 채석장이 있다. 교통은 면의 동남부를 상주∼옥산간의 군도가 통과해 도심지와 연결될 뿐이어서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신상리에 옥성서원, 신촌리에 주현원의 효자각이 있으며, 소상리에는 약 450년 된 은행나무와 팽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가 있다.
10. 외서면(外西面)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8.08㎢, 인구 2,950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가곡리이다. 신라 때부터 사불(沙佛)·사벌국(沙伐國)·사벌주(沙伐州)·상주(上州)·상주(尙州)·상주목(尙州牧) 등 상주의 관내에 속해 있었다. 1895년상주군으로 개편될 때 상주읍내 서쪽이 되므로 외서면이라 해 고지·연봉 등 4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서면의 3개 리, 함창군 남면(南面)의 2개 리 및 수상면(水上面)의 상흘리 일부를 병합해 13개 리로 개편되었다. 뒤에 다시 내서면에 서만리, 공검면에 양정리와 화동리의 일부, 그리고 상흘리를 할양했고, 1986년남적리(南積里)를 상주시로 편입시켰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는데, 남쪽 경계에 노음산, 북쪽 경계에 남산이 솟아 있다. 이 산지를 외서천이 남북으로 양단하면서 동류하는데, 연안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평야는 사벌평야에 연결된다. 서부에는 이안천이 북류하면서 산지를 개석하고 좁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총경지면적 13.16㎢로 14.9%, 임야면적 69.16㎢로 78.5%, 기타 6.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83㎢로 59.5%를 차지하고, 밭이 5.33㎢로 40.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좀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특히 친환경쌀이 유명하다 그 외에도 연봉배, 야콘, 고추, 표고버섯이 주요 농작물이다. 이천리에서는 고공제품(藁工製品)을 생산한다.
교통은 면의 동부에 경북선과 사천∼초산간의 국도가 통과하고, 내서∼농암간 및 화서∼사벌간의 군도가 중앙부에서 교차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백전리에 도요지, 우산리에 대산루·병암고택·우복종가·우산동천(愚山洞天), 연봉리에 연봉정(蓮峰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2개 교가 있다.
11. 은척면(銀尺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3.96㎢, 인구 1,850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봉중리이다. 신라 초기에는 사불국(沙佛國)과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각 일부 영역이었다.
그 뒤 사벌주(沙伐州)와 고동람군(古冬攬郡)·상낙군(上洛郡)과 고릉(古陵)·상주(尙州) 및 고령(古寧) 등으로 변천을 거듭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는 상주목의 관내에 있다가, 1895년상주군으로 개편될 때 은척산의 이름을 따서 은척면이라 하였다. 그리고 수예·어운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함창군(咸昌郡) 수상면(水上面)의 4개 리와 상서면(上西面)의 일부를 병합한 뒤 은척면이 되었다. 1987년공검면 하흘리를 편입해 10개 이로 개편했으며,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북동부와 중앙부에 평지가 조금 분포할 뿐 대부분 산지로 되어 있다. 서북부에 칠봉산(七峰山, 600m), 남단에 남산(南山, 822m), 북단에 작약산(芍藥山, 763m)이 솟아 있다. 서부 산지에서 발원한 이안천이 면의 중앙을 동류하므로, 하천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하였다.
총경지면적 8.89㎢로 16.5%, 임야면적 40.80㎢로 75.6%, 기타 7.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5.67㎢로 63.78%를 차지하고, 밭이 3.22㎢로 36.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보리·콩 등도 생산된다. 감이 많이 산출되며, 특산물로 참기름이 유명하다. 밤·호두·도토리·버섯·약초·사료·산나물 등의 임산물과, 산양·토끼·한우 사육과 양봉도 활발하다.
교통은 면의 북부에 농암∼함창을 잇는 지방도와 농암∼내서를 잇는 군도가 동부에 치우쳐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황령리 칠봉산에 황령사(黃嶺寺), 명승지로는 두곡리에 수령 350년에 둘레가 3m나 되는 뽕나무가 있다. 또한, 우기리 옻샘걸마을에는 피부병이나 옻에 효험이 있는 샘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12. 이안면(利安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2.34㎢, 인구 2,468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양범리이다.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영역이었으며, 신라에서는 고동람군(古冬攬郡)·고릉(古陵)·고령(古寧)에 속해 있었다. 964년(광종 15)함령군의 관내였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상주목에 속했다가 함창현에 귀속되었다. 그 뒤 1171년(명종 2)에는 함창감무(咸昌監務)의 관할 아래 있었다. 1413년(태종 13)함창현에, 1895년에는 함창군에 속하였다. 그리고 이안천의 아래쪽에 위치했으므로 수하면(水下面)이라 했고, 모정·율정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함창군이 상서면(上西面)의 18개 리와 상주군 은척면의 하신리(下新里) 일부를 병합해 이안부곡(利安部曲)이라 했던 옛 이름을 따서 이안면이라 했고, 상주군에 편입시켰다. 1973년에 저음리(猪音里)를 문경군 가은읍으로 이관하고 12개 리로 개편했으며,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남부는 대가산(大佳山, 325m)·숭덕산(崇德山, 228m) 등의 낮은 산지이며, 북부는 작약산(芍藥山, 763m)·수정봉(水晶峰, 487m) 등이 솟아 있는 높은 산지이다. 남부 경계 가까이 이안천이 동류하고, 그 지류는 북북서∼남남동 방향으로 면의 동부를 관류해 함창읍과의 경계를 이루며, 하천 연안에 넓은 함창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1.55㎢로 22.1%, 임야면적 34.10㎢로 65.1%, 기타 12.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8.36㎢로 72.4%를 차지하고, 밭이 3.19㎢로 27.6%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지역특산물로는 명주, 오이, 토기가 유명하다. 삼한시대 지배계급이 입어왔고 예로부터 동서양을 불문하고 의류소재중 최고의 옷감인 전통 명주의 주생산지 이며 또한 깨끗한 물과 자연친화적 유기농법으로 재배 생산하고있는 이안 오이는 이지역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며 소득 구심작목이다.
교통은 경북선과 김천∼문경간의 국도가 면의 남동 경계를 따라 통과하고, 증평∼문경간을 잇는 지방도가 면을 동서로 관통한다. 문화유적은 양범리에 함양김씨 효자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분교 1개 교가 있다.
13. 중동면(中東面)
시의 동단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1.61㎢, 인구 1,875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오상리이다.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의 영토였고, 신라 때는 사벌주(沙伐州)에 속해 있었으며, 그 뒤 계속 상주목(尙州牧)에 속해 있었다. 한말에 이르러 상주목이 군으로 개편되면서 중동면이라 칭했고, 회상·회화 등 2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단남면(丹南面) 정곡리(鼎谷里)를 병합해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서부 경계를 따라 낙동강이 흐르고 북부에 건지봉이 솟아 있다.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낙동강 곡류의 매상부에만 범람원이 있다.
총경지면적 10.39㎢로 20.1%, 임야면적 29.91㎢로 58.0%, 기타 21.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35㎢로 70.7%를 차지하고, 밭이 3.04㎢로 29.3%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평야지 농업중심 고장으로 대표 농산물로는 지난 2001부터 죽암지구 번개들 70여ha의 우렁이 농법 무공해쌀이 명성을 높여가고 있으며, 또한 중동배영농조합법인을 줌심으로한 1400여톤의 중동배와 주민들의 고소득작물이 되고 있는 잎담배 생산 그리고 한우사육이 지역의 주요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98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전국 제일의 덕암산 상주활공장이 회상리에 위치하여 주말이면 전국의 패러글라이딩 동호인과 모형항공기 동호인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MBC창사 40주년 기획드라마 상도 셋트장이 낙동강변에 자리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교통은 낙동∼단양을 잇는 지방도와 낙동∼함창간의 군도가 면의 동부와 서부를 각각 남북으로 통과한다.
이 곳은 이른바 이수(二水 : 낙동강·위강) 삼산(三山 : 속리산·팔공산·일월산)이 취정(聚精)한 명승지라 한다. 문화유적은 우물리에 수암종택·청룡사(靑龍寺)·봉황성(鳳凰城)이 있으며, 간상리에는 동구 밑에서 정월 보름부터 3일간 동신제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14. 청리면(靑里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9.59㎢, 인구 3,566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원장리이다. 신라 때 음리화현(音里火縣)으로, 경덕왕이 청효현(靑驍縣)이라 고쳐서 상주에 속하게 하였다. 그 뒤 고려시대에 청리현(靑里 또는 靑理縣)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상주목의 청리현이었다. 한말에 이르러 청리현의 남쪽이 되므로 청남면이라 했고, 마공·봉계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지(古支)와 회룡(回龍)의 2개 리를 공성면(功城面)에 할양하였다. 그리고 청동면(靑東面)의 43개 리와 외남면(外南面)의 상두동리(上杜東里)와 하두동리(下杜東里)를 병합해 12개 리로 개편한 뒤 옛 현의 이름을 따서 청리면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동·남·서부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면계에 조양산(485m)·수선산(修善山, 684m)·기양산·서산 등이 솟아 있다. 남천이 서부에 치우쳐 북류하고, 북부의 남천 연안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청상지(靑上池)·매락지(梅洛池)·정오리지(停烏里池) 등의 저수지가 있어 농업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총경지면적 13.52㎢로 34.2%, 임야면적 20.40㎢로 51.5%, 기타 14.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77㎢로 72.3%를 차지하고, 밭이 3.75㎢로 27.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쌀·보리 등의 식량작물 생산고는 낮은 편이다. 사과·배 등의 과수재배와 축산, 원예 등 복합영농으로 전환하며, 곶감이 특산물이다.
교통은 경북선과 김천∼문경간의 국도가 남천을 따라 면의 서부를 통과하고, 국도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외남간의 군도가 면의 중부를 동서로 지난다.
문화유적은 청하리에 수선서당, 하초리에 서산사, 삼괴리에 삼괴정, 가천리에 화당(華堂)과 상주증손향약·월간창석형제급난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원장(遠墻)·청상(靑上)·월로(月老)·청하(靑下)·마공(馬孔)·가천(佳川)·하초(下草)·수상(水上)·덕산(德山)·율(栗)·삼괴(三槐)·학하(鶴下) 등 12개 리가 있다.
15. 화남면(化南面)
시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4.38㎢, 인구 910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평온리이다. 본래 신라의 답달비(答達匕)·답달건비(畓達建匕) 또는 영달비현(苓達匕縣)으로, 경덕왕 때 화령군(化寧郡)으로 고쳤으며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시대는 1413년(태종 13) 현으로 고쳐서 상주목에 귀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화북면(化北面)이었는데, 그 곳에 설치되었던 남부출장소(南部出張所)가 1950년화남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소백산맥에서 뻗어나온 높고 험한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서쪽에 형제봉(兄弟峰, 803m), 북동쪽에 봉황산(鳳凰山, 741m), 동쪽의 천택산(川澤山, 683m) 등이 있다. 특히, 북서쪽은 소백산맥의 중간지점에 해당하며,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위치한 소백산국립공원에 접하고 있다. 하천으로는 금계천(錦溪川)이 면의 중앙을 동서로 흐르고 있다.
총경지면적 5.26㎢로 9.7%, 임야면적 46.86㎢로 86.2%, 기타 4.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2.46㎢로 46.8%를 차지하고, 밭이 2.80㎢로 53.2%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미작 중심에서 고소득작목으로 탈바꿈하는 상태로 과수(포도, 배, 사과) 농사와 인삼, 더덕, 담배, 고추 등으로 농가소득을 높이고 있다.
교통은 상룡·평온·적암의 국도가 동서방향으로 면의 중앙을 통과한다. 그리고 평온에서 동관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의 군도와 상곡·동관·상오·화북으로 이어지는 남동방향의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소곡리에 노후(盧珝)·노홍(盧鴻)의 2개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또 동관리와 화서면 하송리 사이의 대궐터에는 성산산성(城山山城)이 있다. 교육기관은 없다.
16. 화동면(化東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6.15㎢, 인구 2,291명(2008년 현재)이며 면소재지는 이소리이다. 신라의 답달비(答達匕)·답달건비(畓達建匕) 또는 영달비현(苓達匕縣)으로,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고쳐서 상주목에 속하게 하였으며 1895년(고종 32)상주군으로 개편될 때 4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동면으로 되어 9개 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면의 대부분은 소백산맥에서 뻗어나온 산지와 구릉지로 되어 있으며, 서남단에 팔음산(762m)이 있고, 중앙을 석천 및 그 방사상 지류가 개석해 좁고 긴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1.90㎢로 21.2%, 임야면적 39.34㎢로 70.0%, 기타 8.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43㎢로 62.4%를 차지하고 밭이 4.47㎢로 27.6%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그밖에 팔음산 포도, 오이, 인삼, 감자, 택사, 천마, 배, 사과 등이 있다. 특히 팔음산 포도는 2004년도 소비자가 뽑은 7대 농산물에 선정되었다.
교통은 동서로 내서∼평산을 잇는 군도가 통과하고, 남북으로는 김천∼마성간의 지방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선교리에 봉암서원·응암서원, 반곡리에 어만각(御挽閣)이 있다. 판곡리 일대는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왜가리가 많이 찾아와 서식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이소(以所)·선교(仙橋)·판곡(板谷)·어산(於山)·신촌(新村)·반곡(盤谷)·보미(甫尾)·양지(陽地)·평산(平山) 등 9개 리가 있다.
17. 화북면(化北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99.40㎢, 인구 1,667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용유리이다. 신라의 답달비(答達匕)·답달건비(畓達建匕) 또는 영달비현(苓達匕縣)으로,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에 이르러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고친 뒤 상주목에 속하게 하였다. 1895년상주군으로 개편하면서 중화(中化)의 북쪽에 위치하므로 화북면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상봉·소곡 등 3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11개 리로 개편하였다. 1961년 21개 리로 나뉘었으며, 1966년평온리에 남부출장소, 용유리에 서부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시내에서 가장 큰 면으로 남북이 길고, 전면이 산지로 되어 있다.
동부는 청화산(靑華山, 970m)·도장산(道藏山, 828m) 등을 잇는 산릉이 면의 경계를 이루며, 서부는 묘봉(妙峰, 874m)·관음봉(觀音峰, 985m)·문장대(文藏臺, 1,033m)·비로봉(毘盧峰)·천황봉(天皇峰, 1,058m)·형제봉(兄弟峰, 803m) 등이 솟아 있어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도계를 이룬다.
남쪽은 이안천의 상류로 금계천(錦溪川)과 그 지류들이 흐르며, 북쪽은 화양천(華陽川)의 상류가 거의 직선으로 산지 사이를 북류하면서 좁고 긴 곡저평야를 형성한다.
총경지면적 6.95㎢로 7.0%, 임야면적 88.87㎢로 89.4%, 기타 3.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3.50㎢로 50.4%를 차지하고, 밭이 3.45㎢로 49.6%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행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그 외에도 문장대복수박, 꿀배, 자두, 담배, 오이, 가지, 호박, 오미자,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문장대송이, 청화포도, 청화산청정채소, 속리산 한봉, 인삼이 농가소득증대에 한 몫하고 있다.
교통은 김천∼마성간의 지방도와 노평∼점촌간의 지방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한다. 그리고 장암리에서 분기한 군도가 운흥리에서 거창∼문산을 잇는 국도에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장암리에 견훤산성, 상오리에 칠층석탑, 용유리에 늑천정·원적사(圓寂寺)가 있다. 또한, 운흥리에는 용화온천(龍華溫泉)이 있다. 명승지로는 장각폭포(長角瀑布)·옥량폭포(玉樑瀑布)·병천정사(甁泉精舍)·왕비암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18. 화서면(化西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9.52㎢, 인구 3,030명(2008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신봉리이다. 신라의 답달비(答達匕)·답달건비(畓達建匕) 또는 영달비현(苓達匕縣)으로,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도 그대로 따랐다. 1413년(태종 13)화령현 상주목에 속하였다. 1895년상주군으로 개편할 때 중화(中化)의 서쪽에 위치하므로 화서면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4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북면의 서산리(西山里)와 내서면의 율원리(栗院里) 일부를 병합해 11개 리로 개편하였다. 1995년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된 새로운 상주시 소속으로 되었다.
속리산의 남맥(南脈)이 분수령을 이루는 지대이다. 따라서, 남서부에 석천이 형성한 충적평야가 있을 뿐 대부분 산지로서, 경계상에 봉황산(鳳凰山, 741m)·천택산(川澤山, 683m)·원통산(圓通山) 등이 솟아 있다. 봉황산 남쪽은 석천 연안의 평야를 분지상으로 하는 하나의 모식적인 산간분지이다. 면의 서쪽 경계의 산지는 금강과 낙동강 양 하계(河界)의 분수령에 해당된다.
총경지면적 12.87㎢로 21.6%, 임야면적 42.65㎢로 71.7%, 기타 6.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99㎢로 54.3%를 차지하고, 밭이 5.88㎢로 45.7%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와 더불어 고추, 감, 오이 등 특수작물이 있다. 특히 "문장대 포도"와 "화령(화서)사과"가 유명하다. 그리고 수백년 이상의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과 송이버섯이 자생하기 좋은 날씨와 환경으로 화령지역의 자연산 송이버섯은 전국에서 최고로 인정 받고 있다.
교통은 진해∼청주간의 국도가 면을 동서로 관통한다. 그리고 김천∼마성간의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하며, 화서∼사벌간의 군도가 북동부로 나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신봉리에 석조보살입상, 사산리에 옥간사·노소재문적·기영회도, 봉촌리에 화령고성(化寧古城), 상현리에 백운암(白雲庵)·반송, 하송리에 청계암(淸溪庵) 등이 있다. 상곡리 쇳골에는 조선시대 봉수대의 유적이 있으며, 마을입구에 상주향교의 제향기(祭享器)를 구웠다는 사기그릇 가마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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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동 | 한자 | 세대 | 인구 | 면적 | 법정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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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읍 | 聞慶邑 | 3,439 | 7,700 | 156.68 | 상리, 하리, 교촌리, 요성리, 지곡리, 마원리, 진안리, 각서리, 상초리, 하초리 고요리, 팔영리, 당포리, 갈평리, 용연리, 평천리, 중평리, 관음리 |
가은읍 | 加恩邑 | 2,166 | 4,477 | 152.42 | 왕능리, 작천리, 갈전리, 성저리, 수예리, 민지리, 전곡리, 성유리, 하괴리 저음리, 상괴리, 죽문리, 원북리, 완장리 |
영순면 | 泳順面 | 1,342 | 2,976 | 38.54 | 의곡리, 김용리, 포내리, 사근리, 금림리, 왕태리, 오룡리, 달지리 이목리, 말응리, 율곡리 |
산양면 | 山陽面 | 1,724 | 3,743 | 32.65 | 불암리, 존도리, 녹문리, 현리, 부암리, 과곡리, 형천리, 위만리, 우본리 진정리, 반곡리, 연소리, 송죽리, 평지리, 신전리, 봉정리 |
호계면 | 虎溪面 | 1,461 | 2,899 | 53.25 | 막곡리, 견탄리, 호계리, 부곡리, 선암리, 지천리, 가도리, 구산리 우로리, 봉서리, 별암리 |
산북면 | 山北面 | 1,573 | 3,217 | 111.21 | 대상리, 서중리, 대하리, 이곡리, 우곡리, 석봉리, 김용리, 거산리, 전두리 호암리, 창구리, 가좌리, 소야리, 종곡리, 내화리, 약석리, 회룡리, 가곡리, 월천리 지내리, 흑송리 |
동로면 | 東魯面 | 921 | 1,844 | 15.6 | 적성리, 석항리, 노은리, 생달리, 명전리, 수평리, 마광리, 인곡리, 간송리 |
마성면 | 麻城面 | 2,021 | 4,132 | 74.77 | 마성리, 모곡리, 신현리, 오천리, 외어리, 남호리, 상내리, 하내리, 정리 |
농암면 | 籠巖面 | 1,520 | 3,034 | 103.46 | 농암리, 종곡리, 연천리, 궁기리, 내서리, 화산리, 율수리, 갈동리, 사현리 지동리, 선곡리 |
점촌1동 | 店村洞 | 2,674 | 6,464 | 0.87 | 점촌동 일부, 모전동 일부 |
점촌2동 | 3,576 | 8,483 | 4.58 | 점촌동 일부, 영신동, 윤직동, 모전동 일부 | |
점촌3동 | 3,919 | 10,211 | 8.94 | 흥덕동, 우지동, 창동 | |
점촌4동 | 1,731 | 3,822 | 29.6 | 공평동, 유곡동, 불정동, 신기동 | |
점촌5동 | 5,094 | 14,931 | 2.09 | 모전동 일부 |
※진하게 표시된 리는 읍·면사무소 소재지이다.
2010년 현재
동경 127°52′∼128°22′, 북위 36°30′∼36°52′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충청북도 단양군·제천시·충주시, 동쪽으로 예천군, 남쪽으로 상주시, 서쪽으로 충청북도 괴산군과 접한다.
동쪽의 태백산맥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나온 소백산맥의 중앙부에 속하는 험준한 지형으로, 동북부는 험산준령이 둘러 있고,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분지상으로 평지를 이루며, 동남부는 석회암 지역으로 카르스트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산세가 험준하고 고도가 높아서 대략 700m 이상의 기복차를 나타낸다.
주요한 산령들은 남에서부터 오정산·부운령·단산·조항령·운달산·마전령·대미산·황장산·사불산·천주봉 등으로 이 산령이 형성하고 있는 산맥은 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체로 이 능선은 아치형의 분수령을 형성하여 문경분지를 이룬다. 북·서부에는 황연산·주흘산·백화산 등의 산지가 있다.
수계는 총연장 35㎞인 영강과 32㎞인 금천으로 크게 이루어져 있으며, 영강은 점촌 남쪽에서 이안천과 합류하여 낙동강에 유입되고, 금천은 영순면 달지리에서 내성천과 만나 삼강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하천은 산계를 따라 발달하였으며, 속리산에서 발원한 영강은 농암의 쌍용계곡을 거쳐 가은읍 왕능리에서 양산천과 합류하고, 마성면 신현리에서 조령천과 합류하여 점촌 도심지역의 경계를 흐르면서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금천은 동로의 황장산에서 발원하여, 운달산과 사불산에서 시작되는 대하천과 산북면 대하리에서 합류하여 산북·산양면을 관류하여 영순면 달지리 삼강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한편 동로면 면전리 명전천과 가은읍 관장리 불란지천이 충주댐으로 함유하여 한강으로 유입된다.
지질은 화강암 및 편마암계가 대부분이며 무연탄·석회석·철 등의 매장량이 많아 경상북도 제1의 광업산지이다. 현재는 석탄산업의 사양길로 그동안 광산개발로 훼손된 자연환경 등을 복원하고 폐광지역에 관광휴양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영강과 각 하천 주변은 충적지가 발달하여 전작지로 이용된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1.9℃, 최고기온 34.2℃, 최저기온 -12.4℃이고, 강수량은 1,205.4mm(평년값 기준), 평균 적설량은 215mm로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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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고로 ㅡ 고향에 인구 입니다 ㅡ
80년대 초에는 인구가 거의 지금 배가 되었는데 ㅡ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인천으로 대전으로 등등 ㅡ 타향살이 ㅡ 정들면 고향이라지만
어릴때 자랐고 정든곳은 잊지못할겁니다
내고향의 귀중한 자료 고맙습니다
유고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내고향:이 발전할려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자존심 버리고. 친절하고. 내고향상품 홍보많이하고. 개발 해서.타지역과 경쟁력을 갖춰어야
타지역민이 스스로찿아오는곳으로 만들어야 ...그러면 옛날 80년대의전성기가 다시찿아올것으로 ..
51회 대전 박종복 선배님!!
상주시 ㅡ 문경시 주택 인구수~~
고향의 주택과 인구 조사를 다 하셨네요~
귀한 자료 감사 합니다~고생 하셨습니다~행복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