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전쟁기념관, 거여 3단지 아파트의 건축가 이성관이 경기도 양평에 자신이 살 집을 지었다. 한정된 도심에서는 누릴 수 없는 교외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낸 곳, 그 집에 들어갔다.
▶양평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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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함박눈이 내린 다음 날, 꽁꽁 얼어붙은 길을 조심스레 더듬어가며 양평을 찾아갔다. 헷갈리는 갈림길마다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한 끝에 저 멀리 마천석으로 마감된 주택을 찾을 수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반겨주었던 것은 12마리의 개. “시베리안 허스키 수컷을 한 마리 키웠었는데, 어느 날 암컷을 한 마리 선물 받았어요. 둘이 6마리의 새끼를 낳아 8마리가 되었고, 길 가다 버려진 개를 보고 가여워서 데려오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12마리로 늘어났어요.” 집채만 한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는 통에 제대로 된 인사보다 개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됐다. 한울건축의 이성관 대표(57세)가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1년 전. 자신이 살던 동부이촌동의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는 바람에 이주를 하게 되었는데, 그 무렵 양평에 주택 설계를 의뢰 받아 다니다 주변 풍경이 맘에 들어 자신도 살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이유의 60%는 개들 때문이에요. 이전에는 12층 아파트 옥상에서 놀게 했는데 이제 서울에 그럴 수 있는 곳이 더 이상 없잖아요.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40%는 우리를 위해서지요. 재건축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도 좋지만, 50~60대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집 문제로 고민하며 낭비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마침 인근 부동산에 강 바로 앞의 땅이 나와 선뜻 구입했다. 예전에 과수원을 하다가 나무를 베어내고 농사를 짓던 땅. 이렇게 해서 집터 군데군데에 밤나무와 모과나무가 정겹게 남아 있는 양평으로 오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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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축을 하는 이성관 소장과 작품 사진을 찍는 황숙정 씨는 서로의 예술 세계를 존중하는 친구 같은 사이. 2.주방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마리오 보타 식탁&조명 세트. 남편과 같은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어 이사 올 때 구입했다. 식탁 위에 놓여진 주전자 역시 건축가 알도 로시가 디자인한 작품. 3.침실 정면은 벽 전체가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직 산과 하늘만 바라다보여서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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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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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과 슬롯머신의 숫자를 연상시키는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던 중 ‘평창동 419.8’을 발견하고 그제서야 감이 잡혔다. 동네 이름과 번지를 결합해 이름을 지었던 것. 건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location’이다. 이성관 소장은, 수입리 777번지는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유니크한 장소이므로 그곳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고유한 건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지었다고 했다. 수입777은 대지면적 67평, 연면적 1백 평의 3층 주택. 서울에서 1백 평 빌라를 소유하려면 수십억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데, 양평에서는 평당 5백50만원으로 훨씬 풍성하고 자신들에게 꼭 맞는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오각형의 작고 못생긴 땅이지만, 6m, 4.8m짜리 길다란 상자 2개를 어슷하게 겹쳐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활용했다. 그리고 두 상자의 중간을 유리로 연결해 그 사이로 빛과 시선이 통과하게 만들었다.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유리를 통해 맞은편 하늘이 고스란히 보이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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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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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777은 30여 년을 함께 살다 보니 반건축쟁이가 되어버린 아내, 자신의 뒤를 이어 건축 설계를 하는 아들과 함께 지었다. 나름대로 건축에 대한 깜냥이 있는 세 사람이 모여 지으니 완성되기까지 보통 집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던 편. 실내에 들어서면 각 층마다 공간이 둘로 나누어져 있는데, 벽으로 각 공간을 막지 않아 시각적으로 열려 있는 느낌을 준다. 두 아들은 장가가고 부부만 거주하기 때문에 서로 인기척을 느낄 수 있도록 오픈시킨 것. 덕분에 건너편 공간까지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져 실제 면적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1층은 사진작가인 아내 황숙정 씨를 위한 장소.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넓은 방은 사진 스튜디오로 블랙 스크린을 내려 암실로 활용한다. 도심에서는 공기 탁한 지하실을 빌려 작업을 해야만 했는데 이제는 한쪽 구석에서 늙은 호박을 말려가며 자연 속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편 이곳은 두 사람의 추억을 되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스튜디오의 나머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노란색 드럼과 그랜드 피아노와 기타…. “서울대 공대(당시 문리대) 재학 시절, 그룹사운드에서 드럼을 쳤어요. 한동안 손을 놓았던 악기인데 이곳에 와서 구입했지요. 열심히 연습해서 칠순 기념 발표회를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랜드 피아노와 기타는 집사람의 몫이에요. 경기여중과 이화여고를 다닐 때 합창단 지휘자를 했을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많거든요. 이대 법대 시절에는 카니발에서 기타 연주를 하기도 했어요.”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대학 3년 때. 해마다 그룹사운드 공연을 하느라 카니발 한 번 제대로 못 즐기던 이성관 소장이 큰맘먹고 친구들과 이대 정문 앞에 파트너를 구하러 갔다. 그때 마침 황숙정 씨는 사진반 모임을 끝내고 학교에서 내려오던 중이었고, 일행 중 한 사람과 아는 사이여서 자연스레 인사를 건네게 된 것. 친구 같은 부부의 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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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진 스튜디오에서 서재로 넘어가는 공간. 검은색 매킨토시 체어가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살린다. 2.계단실 옆에 놓인 벽난로. 3.2층 계단에서 바라본 주방과 1층. 시선을 차단하지 않아 공간이 더 넓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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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성관 초등학생 이성관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4학년 봄 즈음이었어요. 사람을 그리고 있었는데 중학생 누나가 왜 사람 머리를 검은색으로만 칠하냐며 햇빛 아래로 데려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비춰 보여줬어요. 갈치 비늘 같은 은색, CD 디스크의 은보라색, 나무껍질처럼 따뜻한 갈색…. 까맣다고만 생각했던 머리카락에서 수많은 색이 보이더군요. 어린 나이였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단단한 고정관념을 하나 둘씩 버리게 되었어요.” 실제로 이성관 소장의 건축 작품은 천편일률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것이 대부분이다. 영업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 건물에 공익성을 불어넣어 이슈가 되었던 데이콤 사옥, 소형 임대 아파트에 혁신적인 디자인과 배치 기법을 적용해 현재까지도 살기 좋은 아파트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거여 3단지, 오래된 창고의 뼈대만을 살려서 레노베이션한 부산 PSB 방송국 사옥…. 수많은 작품으로 건축가협회상, 건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은 역시 용산 전쟁기념관이다. 오랜 외국생활(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정림건축에서 잠시 일하다 독립을 했는데, 그때 맡게 된 첫 작품이었기 때문. “처음으로 응모한 공모전에 운 나쁘게 당선됐지요. 5~6등으로 입선해서 경험도 쌓고 약간의 주목을 받는 정도이길 바랐거든요. 이렇게 큰 작품은 몇 년 더 일한 뒤 좀 더 자신의 역량이 커졌을 때 맡고 싶었어요. 1등은 사회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 아닌가요? 고작 직원 1명이 전부였던 제게는 과중한 일이었죠.” 그렇지만 이미 결정된 상황, 조금 일찍 찾아온 기회를 잡기 위해 자기 자신을 걸고 최고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 “당시에는 ‘전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어요. 좋은 땅에 막중한 예산을 들여 건축을 하는데 한 푼도 헛되이 할 수 없지요.” 그 결과, 용산 전쟁기념관은 이성관 소장의 40대를 고스란히 바쳐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된 통일의 장으로 탄생했다. 그는 건축가이기 전에 장인이다. 무작정 설계비를 낮춰 대충 많이 짓기보다는 제값을 받는 대신 3~4배 열심히 일하려 한다. 그리고 무조건 일임하는 건축주보다는 까다로운 건축주가 더 좋다고 한다. 건축은 작은 차이에서 달라지는 것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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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