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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 지난여름, 소백산小白山 자락길 - 부석사. 소수서원. 선비촌. 안동 하회마을. 도산서원 -
이글대는 태양과 양 떼를 몰고 가는 바람 그리고 물속처럼 깊은 산. 여행을 떠난다는 건 어쩌면 깃발을 꽂는 일이다. 잡다한 일상들로 공허한 저 세월의 들판에 나름 자유와 의미의 깃발을 꽂는 일이다. 지나온 세월이 궁금해질 때마다 나는 세월의 측량사가 되어 저 들판에 펄럭이는 깃발을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너무 앞서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더디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높게 날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낮게 날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알아볼 것이다. 벌써 저 세월의 들판에 그리움으로 펄럭이고 있는 딩동댕 지난여름.
여행의 첫 째날. 오늘은 소백산 자락길을 따라 내리며 유서 깊은 사찰 부석사浮石寺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소수서원과 우리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선비촌을 둘러볼 참이다.
깊은 산자락에 누굴 기다려 저리도 설레이고 있는 것일까?
몇 번 와본 절인데 봐도 봐도 이렇게 그림이 안 되는^^ 일주문은 처음 본다. 부석사浮石寺 일주문. 절에 오르는 길 왼쪽에 늘어선 탱자나무 울타리.
절 입구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길은 이처럼 누각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오르는 재미가 있다.
봉황산鳳凰山 자락을 등받이 하고 우뚝하게 서있는 안양루. 고풍스런 멋이 넘친다.
잇닿은 지붕들이 정겹다. 언제 한가한 시간이 오면 그림을 그려볼 량으로 렌즈에 담아보았다.
[정답] 부석사 무량수전. 학창 시절 수도 없이 보았던 시험문제의 주인공 국보 18호 무량수전無量壽殿. 앞에 서있는 석등 역시 국보 17호로 가장 오래된 석등이란다.
무량수無量壽라~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에 의지해 천 년을 넘겨 화엄사상을 지켜왔다.
부석浮石이라~ '뜬돌'이란 뜻인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는가 조선시대 쓰여진 이종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바위 틈새로 실을 넣어 당기니 실이 엉킴이 없어 과연 뜬돌임이 분명하였다"고 전한단다.
무량수전 뒤뜰에 있는 선묘각善妙閣. 화엄종을 연 의상대사와 중국 당나라 처녀 선묘 낭자의 로맨스가 전한다. 신라 문무왕 1년(661년) 경의 일이니 그놈에 사랑타령은 국경을 넘어 시도 때도 없이 예나 지금이나...^^
신룡이 되어 의상대사의 귀국선을 풍랑으로부터 지키고, 급기야는 부석사 창건 시 이교도들의 훼방을 부석을
부석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목에 소수서원을 찾았다. 역시 단골 시험문제.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말 유학자 안향을 모시고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우리나라
명종 5년(1550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주청으로 왕의 친필이 담긴 액額을 하사 받는 소위 사액 서원의 시초가 되는데, 이때부터 "무너진 학문을 다시 닦게 함"이라는 뜻이 담긴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불리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S대쯤 되는 곳이니... 여기에 들어오려면 또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했을꼬^^ 죽계천 옆으로 오래된 연못이 운치를 더한다. 부처꽃 사이로 칠월의 하늘이 연못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수련꽃이 연못과 여간 잘 어울리는 게 아니다.
죽계천 둑에 피어있는 해당화. 벌써 열매가 실하게 익었다. 하얀 해당화는 난생처음 본다. 그래도 꽃이라면 관심 있게 보고 다니는 사람인데...^^
소수서원에서 죽계천 다리를 건너면 선비촌. 조선시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민속촌이 자리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 선비촌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도열해있는 장승, 표정들이 경상도 장승답다^^
선비촌에 들어서면 만나는 "영주 선비상". 찍은 사진이 없어서 다른 분의 사진을 빌려온 것인데... 사진으로 보아도 맵씨 있는 조선의 선비 모습은 아닌 듯^^
옛날 집 몇 채에 민속품 매점이 즐비한 그렇고 그런 민속촌쯤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다. 가운데 솟을대문이 있고 왼쪽은 아마도 머슴이 기거하던 행랑채 그리고 오른쪽은 이 집의 일꾼 소가 기거하던 외양간이렸다.
대문을 지나서 마당을 지나면 안채로 연결되는 작은 대문이 나온다.
아마도 주인어른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아닐까 하는데...?
전통 "ㅁ"자 한옥. 안주인이 기거하는 안채 마당 한가운데 햇살이 따사롭다.
안채 뒤로 마치 소품처럼 장독대가... 이른바 뒤꼍.
뒤곁으로 돌면 장독대가 있고 담장이 있고, 꽃밭에는
호기심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을 것 같은 안뜰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선비촌을 죄다 둘러보고 돌담길을 걸어 나오는데 눈 익은 꽃이 눈에 띈다. 인동초忍冬草.
여행의 둘 째날. 예천에 있는 친구 집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엊저녁 예천한우로 실컷 에너지를 충전했으니 오늘은 하회河回마을과 도산서원을 둘보기로 한다.
하회河回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드문드문 피어있는 참깨 꽃이 정갈하다.
고소한 참기름을 연상하기엔 너무 담백해 뵈는 꽃잎이다.
하회마을을 돌아나가는 낙동강변 쪽으로 하얀 연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현대판으로 재해석된^^ 하회탈이 무더위에 찾아오는 손님을 반긴다. 양반탈, 백정탈, 부내탈.... 천민의 고단한 삶을 닮은 표정들이 외려 정겹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올렸다는 차림상. 아마도 옥돔이 아닐까 하는데 오색 고명 빛깔이 너무 예쁘다.
참 이상도 하지...? 대궐 같은 기와집보다 이런 초가집을 더 좋아하니... 나의 전생은 머슴이었나 보네^^
오래된 한옥의 빛깔과 배롱나무 붉은 꽃잎의 매치가 절묘하다. 서로 안 어울릴 것 같은데...
행세 께나 하던 양반집 대문. 이리 오너라~~~ 내가 알기로 규수들 바람난다고 해서 붉은 꽃잎 계통의 나무는 마당에 안 심었다던데...
좁은 골목길로 한낮의 태양이 지난다. 야트막한 감나무 가지에서는 매미가 울고 있었지 아마... 산등성이와 초가지붕이 어쩌면 저리도 닮았을꼬...
하회마을을 감싸고돌아나가는 낙동강.
나는 이 사진을 하회마을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대표작"^^으로 꼽는다. 하회마을은 처음도 끝도 하회마을이어야 하는데.....
저녁 무렵이 다되어서 도산서원陶山書院에 겨우 도착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엄살로 겨우 관람을 허락받았는데... 나무 사이로 독특한 풍경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시사단試士壇.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본 자리를 기념하여 세운 비각이라고 하는데 안동댐 수몰 당시 터를 돋아서 비각을 옮겼다고 한다.
가뭇가뭇한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의 도산서원 전경. 왠지 사서삼경이 절로 외워질 것 같은^^
조선시대 대학자 이황 퇴계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편액은 석봉 한호가 썼다고 전한다.
서원에 오르는 계단.
서원에서 내려오는 계단.
아마도 당시 학생들의 책을 보관했던 요즈음으로 말하면 도서관이 아닐까 하는데...
학생들 기숙사나 주방쯤 되지 않을까 싶다.
도산서원 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노을이 질 무렵 조금 쉬었다 갈 겸해서 청량산 입구 강가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 아쉽지만 거기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청량산 자락에 걸쳐있는 노을. 아쉬운 내 마음을 아는지 노을도 화답하는 듯 붉게 물들고... 안뇽~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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