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이충식의</p><p> </p><p>'클래식은 영화를 타고'</p><p> </p><p>< 페인티드 베일 - The Painted Veil ></p><p> </p><p>어두운 갈색으로 풀어진... 영화 < 페인티드 <br>베일> 의 오프닝 장면은 자욱한 안개 속에서</p><p>항해하는 배들을 담아냅니다.</p><p> </p><p>이윽고 벼의 초록색 물결로 가득한 중국 오지의</p><p>농촌이 나타나며 주인공 부부가 그 모습을</p><p>드러내죠.</p><p> </p><p>한데 남편 월터(에드워드 노튼 분)는 양손을</p><p>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무거운 표정으로 무슨</p><p>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는 것 같고...</p><p> </p><p>아내 키티(나오미 와츠 분)는 월터와 120도 정도</p><p>틀어진 방향을 바라보며 서있는 뒷모습만</p><p>비춰집니다.</p><p> </p><p>이 첫 시퀀스만으로도 이들 부부가 심각한 <br>길항(拮抗)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p><p>있죠. </p><p> </p><p>1925년 영국 런던... 고고한 예술적 감성의 아가씨</p><p>키티는 숨막히는 듯한 런던의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p><p>화려한 사교 모임과 댄스 파티를 즐기며 지냅니다.</p><p> </p><p>그러나 세속적인 허영으로 가득한 키티의 엄마는</p><p>결혼은 생각도 없는 과년한 딸을 사뭇 못마땅해</p><p>하죠.</p><p> </p><p>도도한 키티는 그런 억압적인 시선을 견디다</p><p>못한 채, 결국 애정이 없는 결혼을 충동적으로</p><p>결정하기에 이릅니다.</p><p> </p><p>상대는 영국 정부 소속의 과묵한 세균학자</p><p>월터 페인였죠.</p><p> </p><p>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그노시엔느'가 몽환적으로</p><p>흐르는 사교 파티에서 월터는 첫눈에 반한</p><p>키티에게 곧바로 청혼을 합니다.</p><p> </p><p>청혼 후 키티와 함께 꽃집에 들른 월터는 그녀에게</p><p>꽃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죠..</p><p> </p><p>키티는 말합니다.</p><p> </p><p>"좋아하긴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p><p>우리 집에선 꽃을 사는 일이 드물어요.</p><p> </p><p>어머니는 그러셨죠. '공짜로 키울 수 있는 걸 뭐하러</p><p>돈주고 사니?'</p><p> </p><p>그렇다고 심고 가꾸는 것도 아닌데... 사실 맞는</p><p>말이긴 해요. 곧 시들어버릴 것에 시간과 정력을</p><p>들인다는 거 말에요."</p><p> </p><p>바로 그런 꽃처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월터의</p><p>진지한 청혼을 키티는 얼떨결에 받아들였지만 사실</p><p>공허한 현실 도피나 마찬가지였죠.</p><p> </p><p>자기중심적이고 외향적인 키티와 매사 너무 <br>진중하고 조용히 연구와 독서를 즐기는 내성적인</p><p>월터...</p><p> </p><p>성격과 취향이 이토록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p><p>결혼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합니다.</p><p> </p><p>월터는 착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지만 아내를</p><p>사랑하는 방법은 무척 서툴기만 하죠.</p><p> </p><p>그는 춤과 테니스를 좋아하는 키티의 취미를</p><p>헤아리지 못한 채, 아내를 위한다며 미술관으로</p><p>끌고 가기 일쑤입니다.</p><p> </p><p>비오는 날 키티는 창밖을 바라보며 비가 엄청나게</p><p>내리고 있다고 되뇌지만, 정작 월터는 타자기를</p><p>두드리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식이죠.</p><p> </p><p>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지만 다른 별에서 온</p><p>사람들처럼 서로 소원해져 갑니다.</p><p> </p><p>그러던 어느날, 이들 부부는 매력적인 외모의</p><p>부영사관 찰리 타운센트(리브 슈라이버 분)가</p><p>초청한 파티에 참석하죠.</p><p> </p><p>키티는 세련된 매너와 생각이 통하는 찰리와</p><p>겉잡을 수 없는 불륜에 빠져듭니다.</p><p> </p><p>급기야, 자신의 부정을 눈치 챈 월터 앞에서</p><p>키티는 찰리를 사랑한다며 오히려 이혼해 줄 것을</p><p>요구하죠.</p><p> </p><p>월터는 분노하며 키티에게 냉소적으로 답합니다.</p><p> </p><p>"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찰리가 자신의 아내와</p><p>법적으로 헤어지고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약속을</p><p>해야지만 조용히 이혼을 해주겠소."</p><p> </p><p>키티는 당연히 찰리가 아내와 깨끗이 결별하고</p><p>자신과 새로운 출발을 할 줄 믿었죠.</p><p> </p><p>그러나 교활하고 비겁한 찰스에게 그녀는 단지</p><p>하룻밤 연애 상대였을 뿐...</p><p> </p><p>결국, 키티는 샤를 페로의 동화 속 폭력적인</p><p>주인공인 '푸른 수염'(La barbe bleau) 행세를</p><p>자처하는 남편을 따라 연옥의 한가운데에 발을</p><p>내딛게 됩니다.</p><p> </p><p>월터는 드러나지 않는 잔인한 방법으로 키티에게</p><p>내밀한 고통을 안겨주죠.</p><p> </p><p>그는 절대로 키티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건네지</p><p>않습니다. 부부관계도 없죠...</p><p> </p><p>더군다나 월터는 콜레라가 번지고 있는 중국</p><p>남서부의 관서 지구 메이탄푸에 자원합니다.</p><p> </p><p>사지(死地)나 다름 없는 콜레라 소굴에 아내를</p><p>끌고 들어간 것이죠.</p><p> </p><p>믿음과 사랑을 배신한 댓가를 치르게 할려는, 마치</p><p>같이 죽자는 가학적 복수의 심사인 셈으로...</p><p> </p><p>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보이고</p><p>있는 이유입니다.</p><p> </p><p>자학(自虐)하듯, 굳이 2주나 걸리는 육로를 택해</p><p>힘겹게 오지 마을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맨먼저</p><p>콜레라로 죽은 시신을 목도하죠.</p><p> </p><p>" 우리가 덜 불행했으면 해요. 그렇게 내가 </p><p>경멸스럽나요?" 라 묻는 키티에게 월터는 </p><p>냉소적으로 받아칩니다</p><p> </p><p>"아니, 나 자신을 경멸해! 당신을 한때나마</p><p>사랑했으니까."</p><p> </p><p>키티는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월터를 향해<br>부르짖죠.</p><p> </p><p>“여자의 사랑을 못 받는건 남자 탓이지, 여자 탓이</p><p>아녜요!</p><p> </p><p>월터 또한 키티에게 쏘아붙이듯 내뱉습니다.</p><p> </p><p>"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걸 알면서도 당신을</p><p>사랑했어. 나중에라도 날 사랑해줄 줄 알았지.”</p><p> </p><p>그들이 거주할 곳은 전에 살던 사람들이 이미</p><p>콜레라로 사망한 좡족의 전통가옥이었죠.</p><p> </p><p>집엔 죽음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어두운</p><p>그림자만이 존재할 뿐으로,</p><p> </p><p>식사 중 "소금 좀 건네줄래요?" 라는 의미없는</p><p>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돌아오지 않습니다.</p><p> </p><p>키티는 다음날 인사온 지역 부책임자 워딩턴<br>(토비 존스 분)을 이웃들 중 한 분이 오셨다며</p><p>반갑게 맞이하지만, 그는 정작 영국인 중 자기</p><p>혼자 살아남았다고 토로하죠.</p><p> </p><p>수녀님들에게도 하루빨리 마을을 떠나라</p><p>설득했지만 순교자가 되고 싶어 그러는지</p><p>거절했다며 곤혹스러워 하는 워딩턴...</p><p> </p><p>시대가 시대인지라 마을 주민들 또한 "서양</p><p>살인마를 처단하라!" 는 전단지를 곳곳에 붙일</p><p>정도로 강제 침략자 모습의 서양인을 극렬하게</p><p>배척하죠.</p><p> </p><p>그들은 숱한 상채기의 고통이 만들어낸... 신음과</p><p>노여움이 짙게 배인 저주의 욕을 퍼붓습니다.</p><p> </p><p>"살인마들, 니네 땅으로 가!"</p><p> </p><p>워딩턴은 키티가 콜레라보다 국민당원들 손에 먼저</p><p>죽을지도 모른다며 그녀를 보호해줄 중국 군인</p><p>성칭을 배치해주죠.</p><p> </p><p>그렇게...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p><p>콜레라로 마을 사람의 태반이 죽어나가는</p><p>곳에서,</p><p> </p><p>월터는 키티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한 채</p><p>연구와 의료봉사에 미친듯이 매달립니다.</p><p> </p><p>그러나 무지와 피해 의식으로 인해 적대적인</p><p>마을 사람들로 괴로워하는 월터에게 국민당 장교</p><p>유대령은 충고하죠.</p><p> </p><p>"중국은 중국인들 것입니다. 한데 세상이 그냥</p><p>놔두질 않는군요. 인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대지 않고</p><p>평화롭게 해결했으면 좋겠어요."</p><p> </p><p>그럼에도, 월터의 헌신적인 치료로 마을 주민들은</p><p>조금씩 마음을 열어갑니다만...</p><p> </p><p>키티에게 메이탄푸에서의 유폐된 삶은 생지옥이나</p><p>마찬가지였죠.</p><p> </p><p>아는 사람도 전혀 없고 갈 곳도 없는 그녀는</p><p>집안에서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며 속절없이</p><p>타들어갑니다.</p><p> </p><p>키티는 자신들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워딩턴에게 <br>에둘러 말하죠. “여자는 남자의 장점을 보고</p><p>사랑하진 않습니다.”</p><p> </p><p>남을 위한 일이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 없던</p><p>키티였건만... 아수라도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br>위해 그녀는 수녀원이 운영하는 보육시설로</p><p>자원봉사를 나가죠.</p><p> </p><p>어느 교파를 믿냐고 묻고는, 키티가 신앙심이</p><p>그리 깊지 않다는 걸 확인한 원장 수녀는,</p><p> </p><p>보육일을 돕겠다는 그녀를 내심 탐탁지 않아 <br>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건네며</p><p>수락합니다.</p><p> </p><p>"사랑과 의무가 하나가 된다면 축복받은</p><p>거에요..."</p><p> </p><p>키티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p><p>알고 기쁨을 얻게 되고, 아울러 월터가 일하는</p><p>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며 그에게 측은한 감정을</p><p>느낍니다.</p><p> </p><p>나를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p><p>해주어야겠다는 키티의 생각은 서서히 두 사람</p><p>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뜨리죠.</p><p> </p><p>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흔연스레 어울리는 키티의</p><p>본성을 알게 된 월터는 마을 청년들의 공격을 받아</p><p>위기에 처한 키티를 성칭의 도움으로 무사히구해냅니다.</p><p> </p><p>이를 계기로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살아나게 된</p><p>두 사람...월터는 후회어린 속내를 털어 놓죠.</p><p> </p><p>"당신 말이 옳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에게</p><p>없는 것만 찾으려고 애썼어."</p><p> </p><p>두 사람은 그토록 사랑에 오만했던 자신들의</p><p>모습을 뉘우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깊이</p><p>깨닫게 됩니다만, 그 소중한 화합의 시간은 너무</p><p>짧기만 합니다.</p><p> </p><p>월터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강물을 공급하여</p><p>창궐하는 콜레라의 고삐를 잡는데 성공하죠.</p><p> </p><p>그런데, 운명은 더 이상 그들을 봐주지 않는</p><p>걸까요... 방역과 사랑이 그렇게 완성되려는 순간에</p><p>키티는 뜻밖에도 자신이 임신하게 됐음을 알게</p><p>됩니다.</p><p> </p><p>찰리의 아이일 것 같아 미안해하고, 또 괴로워하는</p><p>키티를 월터는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애써</p><p>달래죠.</p><p> </p><p>그날밤 월터는 잠든 키티를 뒤로 하며 원장</p><p>수녀에겐 아내가 상해로 돌아가길 원한다는 말을</p><p>남긴 채 도망치듯 떠나버립니다.</p><p> </p><p>콜레라를 피해 이주해온 이웃마을 주민 난민촌을</p><p>돌본다는 명분였습니다만... 월터는 그곳에서 그만</p><p>콜레라에 감염되고 말죠.</p><p> </p><p>그는 키티에게 이곳을 어서 떠나라고 강권하다시피</p><p>이르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남편을</p><p>간호합니다.</p><p> </p><p>윌터는 그런 키티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br>말하죠. ”용서해 줘“</p><p> </p><p>“당신은 잘못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p><p>키티의 눈물은 애절한 오열로 변하고... 월터는</p><p>아내의 곁을 홀연히 떠나갑니다.</p><p> </p><p>원장 수녀가 말했던 것 처럼, '사랑과 의무' 가 하나로</p><p>묶인 원작의 의도는 영화의 엔딩 신을 통해</p><p>투영되죠.</p><p> </p><p>화면은 어느덧 5살이 된 아들과 함께 런던 시내의<br>꽃집에 서있는 키티를 조명합니다.</p><p> </p><p>그녀는 꽃을 손에 주어든 아이를 보며 혼자말처럼</p><p>되뇌죠.</p><p> </p><p>“쓸데없는 일이야. 일주일이면 시들 텐데 돈이</p><p>아깝잖아?”</p><p> </p><p>이는 영화 초반부 키티가 청혼하는 월터에게<br>'어머니가 자신에게 늘상 했던 얘기' 라고 대답했었던</p><p>말에 다름 아닙니다.</p><p> </p><p>“그래도 예쁘잖아요?” 아들의 천진스런 한 마디에</p><p>그녀는 흡족해하며 장미꽃을 사죠.</p><p> </p><p>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들려지는 아이들의 노래는</p><p>담담하면서도 아련한 정감이 배어나옵니다.</p><p> </p><p>'맑은 샘물 곁에서'(A la claire fontaine) 라는</p><p>제목의 이 노래 속엔 반복되는 구절이 있죠.</p><p> </p><p>‘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br>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p><p> </p><p>키티는 그렇게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그 하나된</p><p>의무를 맘속 깊이 품게 됩니다.</p><p> </p><p>꽃을 든 아들과 함께 집에 돌아가던 키티는</p><p>뜻밖에도 찰리와 재회하게 되죠.</p><p> </p><p>아이가 몇살이냐며 여전히 작업을 걸어오는</p><p>찰리를 싸늘하게 밀쳐내는 키티...</p><p> </p><p>"누구에요, 엄마?" 라 묻는 아이에게 그녀는 방금</p><p>아침 세수를 마친 사람처럼 시원스레 말합니다.</p><p> </p><p>"아무도 아니란다!"</p><p> </p><p>1. < 페인티드 베일 - The Painted Veil > 예고편<br><a href="https://youtu.be/2omHxU_KeuQ"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2omHxU_KeuQ</a></p><p> </p><p>'제발 이승으로 돌아가시고 나면, 그리고 긴 여행의</p><p>여독을 푸시고 나면 저를 기억해주세요.</p><p> </p><p>저는 피아랍니다. 시에나에서 태어나 마렘마에서</p><p>죽었지요.'</p><p>- 단테의 < 신곡 > '연옥' 편</p><p> </p><p>인류 역사에서 잔혹한 남편의 손에 처절히 죽어갔던,</p><p>혹은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결국 파멸의 늪에서</p><p>빠져나오지 못했던...</p><p> </p><p>이른바 강요된 운명의 비극적 희생자 목록은</p><p>자못 긴 편입니다.</p><p> </p><p>보바리 부인,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단테의 <br>< 신곡 > '지옥' 편에 나오는 여성으로 시동생과</p><p>사랑에 빠져 남편의 손에 죽고 맘), 안나 카레니나,</p><p>그리고 피아 데 톨로메이 등등.</p><p> </p><p>단테의 < 신곡 > '연옥' 편을 보면 불행한 여인</p><p>피아는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남편에 의해 말라리아가</p><p>창궐하는 마렘마 언덕의 한 성에 유폐된 채 서서히</p><p>죽어가죠.</p><p> </p><p>이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중세 이야기가</p><p>한 소설가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모양입니다.</p><p> </p><p>영국 작가 서머셋 몸은 단테의 피아 이야기와</p><p>자신의 홍콩 여행기를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을</p><p>쓰기로 마음먹죠.</p><p> </p><p>1925년 < 인생의 베일 > 이란 장편은 이렇게 해서</p><p>탄생했습니다.</p><p> </p><p>콜레라가 창궐하는 또 다른 마렘마인...</p><p>1920년대의 중국 메이탄푸에서는 남자는 남자였고,</p><p>여자는 여자였던 시대의 향수와 미몽이 하늘하늘</p><p>물안개처럼 피어오르죠.</p><p> </p><p>원작 < 인생의 베일 > 에는 달콤한 연애담이 아닌,</p><p>세상 물정 모르는 한 여인이 지옥의 한가운데서</p><p>어떻게 자기 내면의 길을 발견해가는지에 대한</p><p>통찰과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p><p> </p><p>반면, 존 커란 감독이 영화화한 < 페인티드 <br>베일 > 은 인생의 베일을 벗어던지고 남자가</p><p>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여인의</p><p>이야기라기보다...</p><p> </p><p>운명의 불꽃에 산화(散花)한, ‘불운한 연인들</p><p>(star-crossed lover)’의 애틋한 연서를 닮아</p><p>있죠.</p><p> </p><p>영화 오프닝 크레딧은 아름다운 꽃송이와 현미경을</p><p>통해 보이는 박테리아가 교차 편집된 장면과 함께</p><p>시작됩니다.</p><p> </p><p>이는 존 커란이 미묘한 방식으로 두 사람의 순탄치</p><p>못한 결혼 생활을 암유하는 것이죠.</p><p> </p><p>커란의 시네마 버전에 의하면, 키티와 월터 <br>두 사람의 불화는 다른 두 세계에서 기원한 꽃과</p><p>세균, 즉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p><p>문제처럼 보입니다.</p><p> </p><p>그러므로 키티가 꽃이 만발한 런던의 화원을 떠나</p><p>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으로 떠나는 것은 오히려</p><p>자신의 세계를 떠나 월터의 세계로 진입한다는</p><p>의미로 여겨지죠.</p><p> </p><p>영화 속 내국인이 외국인을 배척하고 서로에게</p><p>살의를 품는 1920년대 중국의 근대화 과정은...</p><p> </p><p>남편과 아내로서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p><p>타자였던 두 사람의 조우 과정과 무척이나</p><p>닮아 있습니다.</p><p> </p><p>성실하고 강직한 인품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의</p><p>감정과 여자의 육체 모두에 서툰 월터에게</p><p>키티는 이렇게 말하죠.</p><p> </p><p>“인간은 바보 같은 현미경보다 훨씬 복잡해요.</p><p>예측하기도 어렵고 실수도 하고 실망도 한다고요.</p><p>그러니 그만 비난해요.”</p><p> </p><p>복수와 용서... 늘 사랑의 열정에 뒤처지기만 하는</p><p>이 덕목은 죽음의 한복판에서야 비로소 사랑의</p><p>가변차선을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p><p> </p><p>월터와 키티의 사랑이 조심스레 싹틀 때, 양쯔강의</p><p>넘실대는 물은 심지어 배우자의 불륜조차도</p><p>사소한 것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도도하게</p><p>흘러가죠.</p><p> </p><p>존 커란은 마치 대하소설을 읽듯 감정의 선을</p><p>정확히 조율해 매끈하면서도 아름다운 채색 판화</p><p>같은 영상미의 영화 한 편을 뽑아냈습니다.</p><p> </p><p>복고풍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 페인티드 <br>베일 > 은 소설 같은 영화의 향기를 품어내죠.</p><p> </p><p>원작에서 키티는 월터의 사랑을 확인한 뒤에도</p><p>찰스의 품에 다시 한 번 안깁니다.</p><p> </p><p>그리고 자신의 나약함과 욕망의 어지러움에</p><p>몸을 떨며 흐느끼죠.</p><p> </p><p>그러나 여기는 '할리우드' 고... 시대는</p><p>'2007년' 입니다.</p><p> </p><p>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력과 나오미 와츠의 매력은</p><p>이러한 감독의 재해석을 충분히 설득적인 얘기로</p><p>바꿔놓죠.</p><p> </p><p>에드워드 노튼은 현미경으로 러브레터를</p><p>써 내려간... 한 자의식 강한 세균학자의 일그러진</p><p>입술과 숨결을 모두 감쪽같이 체화해내죠.</p><p> </p><p>양산을 들고 서 있기만 해도 근사한 나오미 와츠의</p><p>고전적인 매력은 그녀가 어떻게 < 킹콩 > 의</p><p>히로인이 될 수 있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p><p> </p><p>< 페인티드 베일 > 은 말그대로 고색창연한</p><p>영화죠.</p><p> </p><p>왜 아니겠습니까. 원작이 고색창연하고, 그 원작의</p><p>원작은 더욱 그러하며, 이미 세 번씩이나 리메이크된</p><p>작품인데 말입니다…</p><p> </p><p>그레타 가르보가 주연을 맡아 1934년 < 일곱 번째</p><p>죄 - The seventh sin > 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p><p>이 작품은 1957년 엘리노어 파커 주연의 새로운</p><p>영화로 재창조됐죠.</p><p> </p><p>그리고 자그만치 50년이 지난 후... 나오미 와츠와</p><p>에드워드 노튼이 제작까지 하겠다고 나서 다시</p><p>영화화된 것입니다.</p><p> </p><p>화면에는 시종일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p><p>자리하죠.</p><p> </p><p>생명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로... 그리고 <br>두 사람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때에도</p><p>강물 위에 뜬 뗏목이 함께 합니다.</p><p> </p><p>월터의 목숨을 앗아가는 콜레라는 결국 탈수로</p><p>목숨을 잃는 병으로... 영화는 '물' 이 가지는</p><p>은유를 비감하게 그려내고 있죠.</p><p> </p><p>콜레라에 걸린 월터는 의사임에도 '수액' 을 구하지</p><p>못해 속절없이 죽어갑니다.</p><p> </p><p>죽음 앞에서야 '페인티드 베일', 곧 굳게 드리워진</p><p>장막을 걷어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남녀,</p><p>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p><p> </p><p>여전히 과거라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또 이국이라는</p><p>낯선 얼굴에서 할리우드는 그렇게,</p><p> </p><p>동시대, 자신의 심장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p><p>'진정한 사랑' 이란 판타지를 찾아 헤매죠.</p><p> </p><p>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오릅니다.</p><p> </p><p>< 인도차이나 > 의 로망이 되새겨지고, <연인> 의</p><p>관능이 느껴지기도 하며,</p><p> </p><p>앙드레 말로의 소설 < 인간 조건 > 에 등장하는</p><p>고뇌 어린 지식인들도 생각나기도 하죠.</p><p> </p><p>어찌 보면 < 페인티드 베일 > 에는 이 모든 것이</p><p>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p><p> </p><p>- 영화 < 페인티드 베일 >(2006) 트레일러<br><a href="https://youtu.be/9q8s4eKcqeQ"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9q8s4eKcqeQ</a></p><p> </p><p>영화는 속세와는 동떨어진, 유려한 풍광의 산수와<br>콜레라의 청궐로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마을의</p><p>현실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p><p> </p><p>광시 지구 양숴 현의 매혹적인 풍광 화면은</p><p>고요하지만, 깊고도 유장한 향취를 품어내며...<br>참사랑과 행복의 주소를 확인케 해주죠.</p><p> </p><p>한 폭의 수묵화 같은 선경(仙境)이 극에 희망을</p><p>불어넣은 걸까요... 두 사람은 종국에 이르러서야<br>서로를 향한 증오를 거두게 됩니다.</p><p> </p><p>존 커란 감독은 애정없는 부부가 파국으로</p><p>치닫던 길에 마주한, 얼룩진 행복의 섬광같은</p><p>순간을 섬세한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죠.</p><p> </p><p>2. 에릭 사티 '그노시엔느(Gnossiennes)'</p><p>제1곡 '렌트'(Lent : 느리게)<br><a href="https://youtu.be/YlNGACtIm1I"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YlNGACtIm1I</a></p><p> </p><p>< 페인티드 베일 > 주제가 격의 '그노시엔느' 1곡은</p><p>극중 두 차례 등장하죠.</p><p> </p><p>'렌트' 라는 표제처럼 단순한 듯 잔잔한 물결처럼</p><p>스며져오며 마치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늪처럼...</p><p> </p><p>음악은 광시 지구의 습한 공기 속으로 서서히</p><p>듣는 이를 침잠시킵니다.</p><p> </p><p>영화 초반부 키티가 월터를 무도회에서 처음</p><p>만나는 신에서 처음 나오는 이 곡은 화려하지만</p><p>왠지 딱딱하고 메마른 느낌으로 다가오지요.</p><p> </p><p>두번째로는 키티가 자원봉사에 뛰어들어</p><p>보육원 아이들을 가르칠 때 원장의 간청으로</p><p>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 흐릅니다.</p><p> </p><p>런던 파티장에서와는 너무도 달리... 매우 낡고</p><p>조율이 엉망인 피아노임에도 환상적인 신비의</p><p>에스프리가 살아 있는, 시정 넘치는 연주로 <br>울려오지요.</p><p> </p><p>같은 곡인데도 처한 상황에 따라 또 다른 뉘앙스로</p><p>들립니다.</p><p> </p><p>이때 마침 현장에 들른 월터는 키티의 연주를</p><p>들으며 운명의 첫만남을 떠올리게 되죠.</p><p> </p><p>그의 입술은 여전히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져</p><p>있습니다만...</p><p> </p><p>- <a href="https://youtu.be/t27rzTkFKmU"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t27rzTkFKmU</a><br>: 랑랑 피아노</p><p> </p><p>그리스 남쪽의 섬 크레타, 혹은 ‘크레타 사람의</p><p>춤’ 을 뜻하는 '그노시엔느'는 명상성보다는</p><p>풍자성에 좀 더 방점을 찍는 작품으로 읽혀지죠.</p><p> </p><p>도입부도 종결부도 없는... 때도 없이 사라지고</p><p>결코 끝나지도 않는 음악으로, 시간을 초월해</p><p>속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인식을 줍니다.</p><p> </p><p>3.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 페인티드 베일 -</p><p>The Painted Veil > 사운드트랙 모음곡<br><a href="https://youtu.be/M7On3OIIwYw"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M7On3OIIwYw</a></p><p> </p><p>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오리지널 스코어는</p><p>격정적으로, 때로는 내밀한 처연함으로 영화 전편을</p><p>감싸안죠.</p><p> </p><p>마치 수면 위를 적요히 떠가는 안개처럼 풀어지는</p><p>그의 음악은 드라마 속 깊게 패인 두 사람의 상흔을</p><p>어루만져 줍니다.</p><p> </p><p>2007년 제64회 골든글로브는 데스플라에게</p><p>음악상의 영예를 안겨주었죠.</p><p> </p><p>3-1. 'Promade' & 'Walter's Mission' &<br>'The Painted Veil'<br><a href="https://youtu.be/ZtAIZwJ9x4U"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ZtAIZwJ9x4U</a></p><p> </p><p>3-2. Kitty's Journey'<br><a href="https://youtu.be/R03_yrvlvDI"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R03_yrvlvDI</a></p><p> </p><p>3-3. 'The End of Love' <br><a href="https://youtu.be/56IvXHU8lmM"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56IvXHU8lmM</a></p><p> </p><p>5개의 음으로 구성된 짧은 선율의 '월터의 테마'는</p><p>장중한 오프닝 스코어인 '페인티드 베일'(The</p><p>Painted Veil) 에 이어,</p><p> </p><p>'키티의 여행'(Kitty's Journey)과 '프롬나드'</p><p>(Promnade), '월터의 미션'(Walter's Mission),</p><p> </p><p>그리고 월터가 콜레라로 죽어가는 결말부 스코어<br>'사랑의 종말'(The End of Love) 에 실려옵니다.</p><p> </p><p>4. 'Kitty's Theme'<br><a href="https://youtu.be/0erYbZIvBtQ"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0erYbZIvBtQ</a></p><p> </p><p>키티의 성격을 반영하듯 변덕스러운 카프리치오</p><p>풍의 '키티의 테마' 는 장중내내 '월터의 테마' 와</p><p>교차되며,</p><p> </p><p>그녀가 찰리와의 불륜 문제로 월터와 싸우는</p><p>'The Deal',</p><p> </p><p>황량한 오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외로운 감성의</p><p>목관악기 듀오로 편곡된 'Morning Tears',</p><p><a href="https://youtu.be/ohAPQMnJLXA"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ohAPQMnJLXA</a></p><p> </p><p>그리고, 어렵사리 생기를 되찾은... 화사하고</p><p>들뜬 키티의 마음을 담아낸 스케르초 풍의</p><p>'The Covenant' 로 엮어지죠.</p><p> </p><p>5. 'River Waltz'<br><a href="https://youtu.be/bIWAdO5FY_U"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bIWAdO5FY_U</a></p><p> </p><p>그러다 극 종반에 들어서며 '두 사람의 용서' 라는</p><p>터닝포인트를 계기로 미려함의 극치인 '강의</p><p>왈츠'(River waltz) 로 변주됩니다.</p><p> </p><p>6. 'The Water Wheel'<br><a href="https://youtu.be/VuuXvoQzCc0"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VuuXvoQzCc0</a></p><p> </p><p>월터는 콜레라 전염의 온상인 마을 우물과</p><p>하천 물 음용을 폐쇄하죠.</p><p> </p><p>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레방아를 이용해</p><p>강 윗목의 깨끗한 물을 퍼올려 대나무 관을 통해</p><p>마을로 흐르게 할 때 이 곡이 흐릅니다.</p><p> </p><p>눈이 부시도록 투명하고 경쾌하게 부서지는</p><p>물소리를 랑랑이 영롱한 터치의 피아노 연주로</p><p>표현해주고 있죠.</p><p> </p><p>7. '맑은 샘물 곁에서'('À la claire fontaine)<br><a href="https://youtu.be/IcSAd4Is-9g"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IcSAd4Is-9g</a></p><p><a href="https://youtu.be/pDQS2kWRqXQ"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pDQS2kWRqXQ</a></p><p> </p><p>'잃어버린 시간' 의 주제를 노래하는 프랑스 민요<br>'맑은 샘물 곁에서' 는 영화 엔딩 신과 함께 합니다.</p><p> </p><p>8. 'The Painted Veil' <br>- 바이에른 방송 관현악단<br><a href="https://youtu.be/W6eqn_LKRLY"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W6eqn_LKRLY</a></p><p> </p><p>9. 'From Shangai to London' <br>- 랑랑 피아노 :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br><a href="https://youtu.be/PxRFs8DBDNw9" target="_top" class="ke-link">https://youtu.be/PxRFs8DBDNw9</a></p><p> </p><p>- 李 忠 植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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