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토진종을 넘기를 학수고대했다 개인적으로 정토진종의 교리가 맞지않은것도 일부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이유는 내가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할수 없었다
난 아직 신심결정은 하지않았으나 그끝은 본것같다
그끝을 본순간 부처와 중생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같은 미타의 제자일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처와 중생은 충실히 자신의 삶을 살뿐이다
둘다 미타가 만들어준 세상에서 사는것이다
중생중에는 부처가 되기위해서 애쓰는 중생이 있구 부처라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한 중생도 있다.
어렸을때 부처를 몰랐어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커가면서 어렸을때 놀았던 놀이는 유치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세상의 더큰 즐거움을 위해서 새로운것을 만끽하기 위해서 살고 있다.
부처를 아는 사람들중에도 전부 제각각이다.
대부분 부처놀이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허나 대부분은 깨달은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이구 어떤인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거 같다.
수행의 단계를 논하고 누가 얼마나 이해했느냐를 논하기에 급급하다.
그끝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거기에 집중하고 그것을 목표로 나아간다.
그끝을 본사람도 계속해서 나아가지만 생각은 전혀 다르게 한다.
수행의 단계가 높던 적던 간에 둘다 똑같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의 단계의 높낮이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안쓴다.
아미타불의 연이 와서 그를 높은단계로 이끌면 높아 지는것이구 연이와도 그를 높은단계로 이끌 필요가 없으면 그자리에 있게 하는 것이다.
모두 선택받느냐 안받느냐의 차이일뿐이다.
물론 낮은단계의 사람들은 왜 나는 선택못받았느냐고 할수도 있는 문제다.
허나 그것은 타고나야한다.
타고난 인이 강하면 숙선이 강하면 금방 올라가는 것이고 숙선이 약하면 언제나 제자리인것이다.
그렇다고 숙선이 강한사람과 숙선이 약한사람의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둘은 각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다.
숙선이 강하든 약하든 나쁜연이 오면 아무 힘도 밝하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일 뿐이다.
중생은 좋은연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만을 밝하는 시한부인생에 불과하다.
중생은 더큰 행복을 쫓는 무리이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자기보다는 다른이를 쳐다보게 된다.
그래서 보살이나 부처가 되면 중생구제에 온힘을 쓰는 것이다.
보살이나 부처는 자신의 영달보다는 희생의 삶을 산다.
중생은 희생보다는 영달을 위해서 산다.
보살이나 부처는 희생의 삶이 더 행복하고 기쁨이 크기에 그렇게 사는 것이구
중생은 자신의 영달에 더 큰 행복을 느끼기에 그렇게 사는 것이다.
둘은 맞은바 역할을 충실히 할뿐이다.
나자신도 나보다는 중생을 위해서 사는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신심결정을 받게 될것이다.
다만 미타께서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자신은 중생을 위한 삶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재 내모습은 더이상 경계를 높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다만 나는 정토진종의 일부이론중에 잘못된 것을 알고 오류를 아는 정도이다.
물론 그오류도 방편일뿐이다.
경계를 넘어서니 보일뿐이다. 처음 입문하는 자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친다면 정토진종의 오류는 없다고 하겠다.
첫댓글 잘 읽었읍니다.
왜 ...눈물이 나는걸 까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