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대간선수로 답사 (1-2)

[최태영]

- 출발의 에너지  -

동진강을 꽉 막아 한껏 높아진 수위.

갑문 셔터 아래로 의기양양한 물길이 폭넓은 대간선수로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골 저골 물이 모이고 합해진 물, 거기에 섬진강에서 이끌어온 물이 동진강에 보태어졌습니다.

“서쪽 사람들도 농사짓고 살아야 할테니…” 흔한 섬진강 물 좀 빌려준다고 큰일 날 일 없을 것이라는 한 선각자의 예언이 서원이 되어, 그 염원이 일제의 기술과 시공으로 김제만경평야의 대간선수로로 구현되었다 - 그런 믿음을 가진 민족종교단체도 있다지요.

그런 모든 에너지가 갑문 위쪽에 모이고 쌓였다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대수로는 웬만한 자연하천에 비하면 큰 강물과도 같습니다.

수로 위에 걸린 한 다리를 건너면서 발걸음 수를 세어보니 서른 걸음입니다. 짧아도 21미터, 길게 보면 27미터. 대수로의 폭이 이 정도입니다.

만경평야 대수로보다 더 큰 스케일이고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저도 그 에너지에 힘입어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가능하면 오늘 중에 신태인읍까지 약 10킬로미터를 걷고, 시간이 더 나면 남쪽 옛 만석보 터까지 보고 돌아갈 생각입니다.

물은 넓고 깊고 흐름도 빠릅니다. 어디까지 이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합니다.

출발점에서 북쪽으로 3백 미터, 외이마을 경로당. 마을로 물을 공급하는 양수장이 있고, 수로 건너편에 원래부터 있었을 둥구나무 두 그루가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수로는 하천과 마을의 형태와 구조 등 많은 자연물을 삼키고 개조하면서 직선으로, 직선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그 결과 둥구나무는 동네 입구가 아닌 큰 수로 건너편에 있게 되었고, 아이들이 멱 감고 놀던 실개천과 어른들이 천렵을 하던 개울은 대수로에 편입되거나 폐수처리구(溝)로 바뀌었습니다. 농촌 낭만의 대표적 상징이던 구불구불 물길은 모두 일정한 폭과 깊이를 가진 직선과 직각, 설계도 위의 기하학적 획으로 바뀌었습니다. 농민의 애정과 살뜰한 손길 발길로 유지되던 논밭은 반듯반듯한 사각형의 ‘생산작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대수로가 관개용 수로로 기여한 그늘에는 '지도의 변경'만이 아니라 ‘사람’의 정서생활의 박탈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땅과 사람과 자연을 오로지 농업생산의 도구로 전락시킨.

그 과정에서 「관제 수리조합」의 횡포나 농민 상호간의 이해충돌 등 갈등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수로 주변의 둑길 땅을 점거해서 농사짓는 행위는 어쩌면 그때의 박탈감을 보상받으려는 농민들의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그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무턱대고 ‘무단점거’라며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것.

농기계까지 갖다 놓은 것은 그냥 애교에 불과하고,

고물상은 온갖 고물의 보관장소로 쓰고 있고,

(위 사진 : 작은 구멍으로 빼낸 물을 잠시 담아두는 웅덩이.)

심한 경우에는 대수로의 옹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물을 빼내어 역시 무단점거 중인 밭에 ‘완전자동 관수’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고,

(위 사진 1=닭장, 2=논.)

둑길에 논을 조성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양수모터로 대수로에서 직접 물을 뽑아서 대고 있지요.

수로 옆의 양계장에서는 계란을 둑길에 마구 버려두어 진동하는 악취와 창궐하는 곤충으로 숨쉬기도 힘듭니다.

어떤 공업사에서는 폐자재를 잔뜩 쌓아놓아 아예 통과하기가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만경강 대수로 변의 풍경과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