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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기맥 1구간(대가마을-장성갈재)산행기**
-.일자 : 2014년 2월 24일
-.루트 : 대가마을-순창새재-영산기맥분기봉-장성새재-입암산-갓바위-시루봉-암릉-장성갈재
-.거리 : 15.km(접속3km, 기맥 12km)
-.시간 : 6시간 40분
진양기맥시 역행으로 인한 정보부족과 조금만 방심하면 사라져 버린 마루금 그리고 가시덤불 등을 헤쳐 나오느라 악전고투를 겪었고 근무 조의 상이로 날짜를 잡지 못해 기간이 장기화되어 가면서 몹시도 기력을 빼 놓았기에 휴식의 기간이 필요했는데 이 또한 지나간다고 이에 몸이 적응이 되어 안내산행에 길들여져 버렸다.
목표가 없는 일상적인 삶은 나태와 함께 자연스레 비대해진 신체변화까지 가져와 더욱 안락한 안주를 택하게 되는데 이는 모든 이들이 똑 같이 겪는 증상인지라 건강한 삶을 되찾아야겠다는 일념에 영산기맥팀이 쉬이 결성된다.
일단은 오랫동안 발을 안 맞췄기에 단합산행을 먼저 한 후 D-Day를 잡으려고 했으나 결국 이 무등산 산행이 출발일 이 되어 기맥길에 나서게 되었다.
이번 기맥산행의 산행대장 역은 비보이님이 맡기로 했고 비보이님은 그 책임감에 GPS며 전국지도까지 구입하는 열성을 보이며 들머리까지 상세하게 검색하여 순창의 대가마을로 향했으나 정작 차량 네비의 대용품인 핸드폰의 T-Map이 수신불량으로 자잘한 오차가 발생된다.
대가마을을 지나 저수지상부에 도착하였을 때는 2시간이 더 지난 시간인지라 테마산행을 나서기엔 좀 늦은 시간이고 따스한 햇살을 따라 노곤함이 파고들어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들머리에는 차량바리케이드가 있고 출입금지안내판이 붙어 있어 산객들을 위협하고 있다.
아예 산행을 하지 말라는 투인데 무차별적으로 세워 놓은 경고문은 벼가 익을 무렵 날아드는 참새들을 쫓아내는 공포총 역할 조차도 못함이다.
▲대가마을 대가저주지 상부의 산행들머리
▲금지구역을 들어서고 말았다.
확장된 임도는 포장과 비포장이 반복되고 대가저수지로 내려가는 길과 만나면서 끝을 맺고는 소롯길이 되는데 이젠 목책이 산객들을 저지한다.
왜???
무엇 때문에 무슨 용도로 출입을 금지시켰는지 명분이라도 있었으면 이해를 하련만 이건 행정편의주의란 느낌밖에는 들지 않음에 이에 게으치 않고서 들어선 등로 또한 아무런 특징도 없이 완만하게 이어지기에 그 의문점은 더욱 사라지지 않는다.
▲확장된 임도는 포장과 비포장이 반복된다.
▲대가저주지에서의 또다른 들머리와 합류되며 임도가 끝난다.
▲소시민들은 기맥잇기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백암산과 내장산을 잇는 소둥근재에 이르러서야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저기 붙여 놓은 경고판이 개방된 등로에 들어섰음을 역설적으로 알려 준다.
여기서는 아무 방향이나 가도 호남정맥길에 접하므로 선택에 대한 선택권은 전적으로 대장에게 있고 대장을 따라 자연스레 백암산방향으로 흘러 들어 순창새제에 올라선다.
호남정맥길이긴 한데 아직은 영산기맥분기점이 아니고 오른편으로 꺾어 올라 밋밋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 530봉에 올라서는데 호남정맥에서 분기된 영산기맥의 시발점임에도 초라함이 있다.
▲내장산과 백암산을 잇는 정상적인 등로와 접하는 소둥근재
▲호남정맥길과 접하는 순창새재
▲순창새재에서 우측으로 거슬러 올라 호남정맥에서 분기되는 영산기맥봉인 530봉
▲영산기맥길에 들었음을 알리고...
산신께 영산기맥 출발의 고함을 음복을 겸한 한잔술로써 대체하고 들어선 등로는 산죽이 도열하여 환영객으로 나섰고 거대한 암릉이 사절단을 자청하여 응접하는데 너무 과한 응대에 몸둘봐를 모르겠다.
과한 접대는 향응성이 짙은지라 반드시 댓가를 지불함을 알기에 암릉 우회길을 택하는데 세태의 주류에 순응하지 못한 고초도 만만치 않다.
▲시신제대신 음복으로 무사산행을 고한다.
▲산죽이 기맥길에 들었음을 환영한다.
▲암봉이 의지를 시험하고...
너덜지대와 다름없는 길은 미로처럼 변했고 기맥길을 사수하려는 각개전투형식으로 산개하여 능선에 올라서고 보니 누군가는 저 암릉지대를 지나왔음을 그곳을 향해 고스란이 이어진 등로와 표시기가 말해준다.
그래도 아무 탈없이 고지를 탈환했으니 목표지점인 장성갈재까지의 전력은 구축한 셈이다.
▲곧바로 오르는 길이 없어 우회하다 보니 각개전투가 되었다.
▲우회하여 뒤돌아 본 암릉과 백암산 능선들..
▲미세먼지로 흐릿하지만 내장산의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 등이 조망된다.
한차례 쏟은 땀은 몽룡해져 있던 정신을 맑게 해주어 무심코 흘러갈 수 있는 삼성산의 갈림길을 놓치지 않고 좌측의 비탈길을 잡고 내려선다.
비탐방로라서 그럴까?
묵힌 길이 자주 갈래를 쳐 가끔씩은 잡목 속으로 들어가고 눈을 크게 치켜 뜨고서 펄럭이는 표지기를 찾아 길을 수정하기도 한다.
▲삼성산 갈림길에서 좌측의 내림길을 택한다.
▲등로가 희릿하게 이어지고 있다.
임도가 갈래 치는 삼거리의 장성새재에 내려선다.
들머리를 담양의 남창골로 잡았을 경우 이곳을 통해 순창새재로 올랐다가 지금 것 왔던 길을 고스란히 더듬어 다시금 내려왔어야 하는 지점이다.
▲장성의 남창골 과 순창의 백함마을을 잇는 장성새재
입압산은 산성의 보존 때문인지 출입금지구역이다.
부러워만 하면 지는 것이 아니고 중단하는 것이 지는 것이다.
견고화게 구축된 목책을 우회하여 생태복원중인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오늘 최대의 난이도라 생각하고 미리 다리에 적색 경보와 함께 준비를 시켰지만 통제가 되지 않아 오름길이 몹시도 버겁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기억 못한다고 대장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역씨나 올챙이다.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비보이님의 대장권위에 억눌려 김하사 조차 감히 추월치 못하고 느릿느릿 뒤를 밟는데도 다리 짧은 올챙이님은 과감하게 추월하여 산성에 올라서 버린다.
전망이 트이는 바위에서 건너편의 내장산자락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토해내 사방에 뿌옇게 뿌려져 있는 연무를 더욱 짙게 만들어 놓고는 허물어진 성벽을 올라선다.
중국에서 날아든 미세먼지인지 연무가 자욱하게 깔려 입암산의 자태가 외국의 어느 산을 본 것처럼 사뭇 위압적이다.
▲이런....월은치
▲묵힌 임도를 따라 입암산성으로 올라간다.
▲전망바위에서 정읍의 내장산과 뜰을 관망하고..
▲새월의 흐름에 따라 성벽도 허물어져 간다.
산성을 따라 입암산을 향해 올라간다.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장악했던 징기스칸은 진지를 구축하지 않고 기동성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폐쇄적인 성은 돌맹이를 하나하나 날랐을 민초들의 고난만이 연상된다.
어쨌든 자연성벽과 아직도 견고한 성벽은 아래로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적을 제압 할 만하다.
입암산 정상은 특징이 없다.
▲성벽을 따라 간다.
▲입암산의 대표격인 갓바위가 조망된다.
봉우리 하나를 조금 더 진행하여 나뭇가지의 코팅지에 쓰여 있는 입암산을 확인하고서 전망바위에 내려선다.
남창계곡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을 듯한 산성골이 산자락을 끌어 모으고 있고 갓바위와 방장산이 조망되어 산행의 끝자락을 잡은듯한 기분에 이젠 하산주가 화재거리가 된다.
▲출입금지구역이다 보니 변변한 정상석하나 없는 임암산정상
▲흐릿하지만 들어난 산하가 꽤나 위암적이다.
통제목책을 넘고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는 북문에 내려선다.
이제 부터는 개방된 등로라 새가슴에 조급증도 없고 하여 발걸음도 가벼웁게 잘 정돈된 등로를 따른다.
계단이 나오고 거북바위 안내문이 있다.
바위는 가만히 보니 ET 모양으로 불뚝 솟아있는 바위가 머리부분이고 그 뒤 뭉텅한 부분이 몸통을 형성하여 거북이 같기도 하다.
▲입암산성북문
▲거북바위
▲이티 모양같은 바위로 거북바위의 머리에 해당되는데 얼굴바위라고도 불리운다.
이곳들의 지리가 익어서 인지 멀게만 보였던 갓바위도 쉬이 올라서고 갓바위전망대에서 주변을 둘려 보는데 찥은 연무에 이젠 시루봉뒤로 방장산 마저도 숨어 버렸고 해변처럼 넓게만 펼쳐진 정읍뜰과 고창은 안개에 휩쓸린 듯 흐믈흐믈 사라져 버리고 고속도로와 국도변을 내달리는 차 소리만이 들려온다.
어찌 되었던 간 오늘은 쭉 뻗어 있는 저 도로까지만 가면 되니까 걱정거리도 없다.
▲갓바위
▲갓바위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입암산성과 백암산 방향..
▲갓바위 전망대
▲진행해야 할 방향의 시루봉 능선..
▲해안처럼 너른 들판에 들어 난 선운산은 볼 수가 없다.
더위까지 느껴지는 한갓진 전망대에서 노닥거리다 시루봉을 향해 내려선다.
등로는 완벽자체고 예전에 제 흥에 겨워 빠짐없이 오르락 내리락 했던 바위는 패스다.
▲비박하기에 적합한 바위
쉼터가 있고 은선골과 남창골로 내려서는 갈림길에는 이곳의 상징처럼 출입금지안내문이 걸려 있어 산객들을 또다시 위협한다.
그러나 이곳부터는 미지의 길이라 기대감도 있고 또 선답자들이 악명 높아하는 암릉지대도 빨리 탐하고 싶다.
통행의 흔적은 없어도 길은 뚜렷하고 가끔씩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를 가로 막지만 우회로가 잘 뚫려 있어 발걸음을 붙잡진 못한다.
▲남창골에서 올라 오는 등로와 접한다.
▲영산기맥길은 당연하게 직진이나 경고판이 붙어있다.
▲쓰러진 나무들로 인해 등로가 휘어진다.
시루봉을 옆에 두고서 마루금은 장자봉으로 흘러 버린다.
직진길이 지도나 사전 공부가 없다면 아무 생각없이 흘러가 버릴 요주의 구간이긴 하나 김하사님이 지참한 개념도와 몰빵님의 감각이 이를 감지해 우측으로 급회전하여 시루봉으로 향하는데 첨단기기에 의지한 비보이님은 움직이지 못하고 기계의 눈치만 보고 있다.
언제 부터인가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우리의 감각과 지적인 영역을 잠식하여 인간이 로봇화가 되어 간듯하여 별 유쾌하진 않다.
공단에서도 표지기들을 제거하여 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시루봉에 올랐으나 봉우리로서의 기계는 없고 그저 밋밋한 형상이라 시루봉의 이름이 아까울 정도다.
▲시루봉 직전의 갈림길로 직진은 장자봉으로 빠져버린 요주의 지점이다.
▲시루봉은 아무런 표시가 없다.
내림길이 시작된다.
앞에 암릉은 곧바로 올라도 될 것도 같은데도 선답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잔설에 잔돌들이 깔려 있어 보기에도 위험스러워 보이는 우회로를 선택했는데 방심하던 김하사님이 기어코 이곳에서 엉덩방아를 찍고 마는데 뒤에서 봐도 그 충격이 커 보여 평소 웃던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금방 일어나니 다행이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바위를 올려다 보며 저 바위를 타는 게 더 안전했지 않겠냐는 의문들을 표하지만 그것이 오산이란 걸 아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회로를 빠져나 와 암릉과 마주했는데 그 칼날 같은 바위군락을 올라갈 땐 어떻게든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내려오는 데는 오금이 떨려 내려오진 못하겠다.
▲암릉을 직등하지 못해 우측의 산비탈로 우회한다.
▲잔설과 살아있는 돌로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우회하여 뒤돌아 본 암릉
▲바위지대는 계속 이어진다.
바위들을 벗어나며 길은 좋아졌지만 수풀이 우거져 성장기엔 이 또한 어려움이 많겠다.
두 발과 팔이 자유로우니 진행속도가 갑자기 빨라진다.
▲수풀의 성장기엔 진행하는데 복병이 될게 틀림없다.
▲뒤돌아 본 암릉이 고흥의 첨산처럼 날을 세웠다.
임도처럼 넓은 협곡으로 내려선 곳이 노령이고 아래로는 고속도로며 기차터널이 통과하고 있다.
요즘 걷기가 트랜드화 되어 가면서 이곳 역시도 명품길이 조성되어 있어 살짜기 호기심이 동한다.
▲노령
갈재라고 하는데 백양사역과 암암면사무소를 잇는 갈재길문화생태탐로 환골탈퇴하였다.
묵힌 헬기장을 두어 군데 지나고 군용 벙커가 있는 헬기장에 선다.
뒤돌아 본 시루봉능선은 저렇게나 뾰족했나 싶게 솟아 위압적이고 역행을 할 경우 기를 질리게 할 만큼 우뚝하다.
▲몇개의 헬기장을 지나 방커봉에서 바라 뒤돌아 본 시루봉 방향의 암릉지대
철탑을 지나면서 예전에 성벽이 진화해 규모는 조그마해졌지만 돌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방공호가 산허리를 따라 같이한다.
이것도 걸었다고 조금은 종아리가 빡빡하게 올라서고 출입금지 목책을 지나 또 어김없이 걸려있는 출입금지안내문을 보며 장성갈재로 내려선다.
▲장상갈재 직전의 출입금지 목책
▲장성갈재
조그많게 만들어진 공원이 있고 도로는 지나가는 차량을 셀 만큼 한적하다.
오랫만에 기맥팀이 결성되었지만 짧은 산행을 통해 어느 정도 체계를 만들어 놓는 계기가 되었고 목포의 유달산까지 쭉 이어갈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산행이 되었다.
택시를 불러 차량을 회수하는데 남창골을 택했을 때보다 조금은 더 시간이 소요 되었지만 이 또한 감내해야 할 과정들 중에 하나다.
▲장성갈재 통일공원
▲순천으로 이동하여 족발을 안주 삼아 하산주를 나눈다.
첫댓글 올 일년은 영산기맥으로 체중관리를 하고 ...안산,즐산하며 즐거운 산행길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