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완공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성동 단독주택. |
강남이 아프다. 강남 부동산의 불패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강남 재건축 가격은 3년 전 국제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거래도 올스톱 상태다. 예컨대 지난 2001년 1억5000만~1억6000만원 선에 거래되었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전용 77㎡)의 경우 2006년 말에는 11억6000만~11억7000만원 이상을 호가하기도 했으나 최근 들어 다시 7억9000만원대로 급락했다. 잠실주공5단지 112㎡(34평형) 아파트도 최고 13억원까지 거래됐지만 최근 10억1000만원으로 떨어졌다. 강남불패 신화의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압구정의 몰락은 가히 충격적이다.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115.5㎡는 16억원의 최고가를 뒤로한 채 12억원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추락의 백미는 역시 개포 재건축단지를 빠뜨릴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건축 속도 조절, 소형주택 공급확대 정책의 후폭풍으로 가격 급락 및 거래 두절이라는 이중고의 직격탄을 맞았다. 박 시장 취임 후 강남 재건축은 시가 총액 2조원이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초토화되었다.
강남의 대굴욕
고가 대형아파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때 강남 부자촌의 대명사로 불린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집값은 최고가 대비 8억원 이상 하락한 상태다. 경매시장에서 고가 대형아파트의 반값 낙찰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강남 부동산은 지금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면서 붕괴위기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강남의 대굴욕이다.
가격이 급락한 대치동 은마아파트. |
불황기임에도 신규분양은 비교적 높은 청약경쟁률로 조기 마감되고 있다. 금융결제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 1월까지 강남3구에서 분양된 11개 아파트 중 7개 단지가 1~3순위 안에 청약 마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분양물량 1315가구 모집에 3369명이 신청, 평균 2.56: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침체된 주택시장에서 한 줄기 빛이 아닐 수 없다.
단독주택의 급부상도 주목된다. 국민은행 조사자료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강남권 단독주택 평균가격은 7억5892만원으로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주택 통틀어 전국 평균 매매가격 중 가장 높았다. 단독주택 가격이 아파트 평균가격을 앞지르는 역전현상도 나타났다.
연예인 등 소위 잘나가는 스타들의 강남 건물 매입열풍도 이채롭다. 한류스타 비와 장근석, 서태지와 고소영을 비롯해서 박찬호, 신동엽, 이미연 등 국내 정상급 스타들이 청담동, 논현동, 신사동, 압구정동 등 소위 강남지역의 오피스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꽤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삼성그룹의 강남 부동산 매입도 예사롭지 않다. 얼마 전 삼성생명이 한국감정원 건물을 매입하였으며 이건희 회장의 사저로 활용될 단독주택 부지도 역시 삼성동에 마련됐다. 롯데그룹의 제2롯데월드 건설과 함께 삼성그룹의 삼성동 부동산 투자가 주목을 끌고 있다.
투자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강남권 부동산시장은 현재 극과 극이 교차하면서 명암이 엇갈리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재건축시장은 지고 신규분양시장은 뜨고 있다. 초고층 주상복합은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저층 단독주택은 각광을 받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를 비웃듯 오피스시장은 최대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역별로도 명암이 세분화되면서 전통도시인 대치·도곡·개포지구는 쇠퇴하는 반면에 청담·압구정·논현·신사·삼성지구는 명품거리, 명품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강남 부동산시장에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근본 이유는 뭘까.
추측건대 전환기 혹은 변혁기에 나타나는 신호로 판단된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저금리, 고령화시대의 도래로 인해 투자 패러다임이 바뀌고, 트렌드 변화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남 부동산도 그 빛과 그림자가 변하고 있다.
강남 개발 중심축 이동
첫째, 투자 패러다임의 변화다. 투자가치의 중심이 자본이득에서 소득수익으로 바뀌고 불확실한 미래가치보다는 현실적인 현금수익을 선호하는 이른바 수익중시형 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아시다시피 재건축은 미래가치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자본이득형 투자이며, 오피스빌딩이나 상가건물은 현실적인 임대가치를 중시하는 소득수익형 투자이다.
셋째, 강남개발의 중심축 변화다. 지난 1960년대 강남권 개발이 시작된 이후 강남지역은 뛰어난 학군을 지닌 고급 베드타운인 대치·도곡·개포지구가 그 중심이었다. 하지만 서울이 국제관광도시로 업그레이드되고 패션, 미술, 문화, 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글로벌도시로 급성장하면서 강남 개발의 중심축이 청담·압구정·논현·신사·삼성·잠실지구로 확 바뀌고 있다. 이러한 중심축의 변화 배경은 국제관광자원 개발, 명품도시 건설 등 새로운 도시계획은 물론이고 대기업 투자 집중, 대중교통망 개선, 복합타운 조성 등 여러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끝으로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강남권 양극화 현상은 현재로선 일과성 패션이나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트렌드 변화로 해석된다. 그중에서 강남 재건축 몰락의 핫이슈는 서울시 정책리스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재건축 집값은 구체적 정책향방에 따라 부침이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적으로 강남권 투자지형이 급속히 바뀌고 있는 만큼 부동산 투자의 전략, 지역 선택, 상품 등 대대적인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