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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 荀子曰 士有妬友則賢交不親하고 君有妬臣則賢人不至니라
(순자왈 사유투우즉현교불친 군유투신즉현인부지)
순자가 말하기를 “선비가 친구를 투기하는 일이 있으면 어진 벗과 친할 수 없고,
임금이 신하를 투기하는 일이 있으면 어진 사람이 오지 않느니라.”고 하였다.
⋇ 妬友(시샘할 투. 우) : 벗을 투기함.
⋇ 不至(부지) : 오지 않음. 이르지 않음.
(해설)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이라도 자기를 좋아 하는가 싫어하는가를 알고 싫어하는 사람은 피한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상대방에게 진실로 전달되었을 때 비로소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다. 흔히 하는 말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 하지요.
내가 주어야 상대방도 나에게 줍니다. 상대를 질시하고 싫어하면서 자신을 좋아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꿈에서도 가능하지 못한 환상이 되겠지요. 모름지기 유유상종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현명하고 올바르게 처신하면 그러한 사람들을 친구로 삼을 수 있지만 자신이
악하고 남에게 지탄 받는데 현명하고 의로운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여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단장을 한다고 하지요. 믿음과 신뢰는 상대를 기쁘게 하고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요. 내건 내 것이고 너에 것도 내 것이다 여기는 사람은
받기만 할 뿐 줄줄 모르기에 처음에는 모르고 다가서지만 실상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유유상종이라 하지요. 상대방을 알려면 그의 친구를 보고 어느 집안을 보려면
그 집안의 자식들을 살펴보라 했습니다. 어질고 유능한 신하를 거느리려면 그러한 신하가
모이도록 덕을 쌓고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충언을 멀리하고 아부에 귀 기울이며 오락과 가무에 빠져들면 奸臣(간신)이 득세하고 현신과 충신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초야에 묻혀
살게 되니 국가가 위태로워지며 백성들의 원망과 호시탐탐 노리는 외적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빌미가 됩니다.
생선은 아무리 포장해도 비린내를 풍기게 마련이고 향은 멀리 있어도 향기롭게 느끼는 것처럼
자신이 어떠한 삶과 생활을 하여왔는가에 따라 결과는 확연하게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배운다는 자세로 낮추는 겸양과 솔직함이 상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됩니다. 말만 앞세우고 실천을 하지 못하면 또한 안 되겠지요.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약속은 아무리 하찮고 쓸모가 없는 것일지라도 그를 지키고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모든 일은 커다란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이 모여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높고 튼튼하며 길게 쌓은 둑도 작은 개미가 뚫은 자그만 굴로 인하여 무너지듯이
작은 일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어찌 크고 중대한 일을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옳고 바른 길은 희생과 절제 그리고 확고한 신념 없이는 지켜나가기 어려운 고난과 자기와의 싸움인데 비해 나쁘고 잘못된 길은 유혹과 환상을 자극하며 나태와 무절제한 생활을 갖게 합니다.
스스로 잘못된 길임을 알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 나오기 힘든 치명적인 중독성을 지니고
있어 뼈를 깎는 고통과 살을 발라내는 아픔보다 더한 신념 없이는 중단하지 못합니다.
나와 대립하거나 경쟁상대에 있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공생하는 길을 찾는데 노력한다면 상대
또한 그러한 진정을 알고 상호협력관계가 형성되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굴욕 또는
나약함을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여 짓밟고 올라서야 이기는 것으로 확신하고 사회의 분위기
또한 그렇게 인정하기에 늘 쌍코피 터지는 이전투구의 꼴불견을 연출하게 된다.
친구를 사귀건 사업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하며
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할 줄 알아야 상대방 역시 나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가장 혹독하고 엄격해야 하며, 남에게는 배려와 이해
그리고 존중을 하여야 합니다.
제3의 맛
이 세상의 가장 원초적인 맛은 소금 맛이었다. 육류건 야채건 곡물이건 소금만 치면 먹을 수 있었다. 이 소금 맛을 제1의 맛이라 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보다 더 맛있게 먹고 싶어 한다. 그것이 각종 소스 맛, 우리말로 양념 맛이다. 이 소스 맛을 제2의 맛이라 한다. 유럽 사람들은 위스티 소스, 핫 소스, 화이트소스, 브라운소스, 마요네즈, 캣첩, 각종 드레싱 등 소스로 맛을 내는 소스 문화권을 못 벗어나고 있다.
한데 세상은 서서히 제3의 맛 시대로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 미래학자 토플러의 탁월한 지적이다. 제3의 맛이란 서양 사람에게는 새로운 맛이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옛날 옛적부터 맛보아 온 발효 맛이다. 제2의 맛은 소스를 첨가해 내는 맛인데 비해 제3의 맛은 식품 자체에서 우려내는 맛이라는 데서 보다 문명적이다.
바로 우리 한국 사람이 예부터 일상적으로 먹어왔고, 또 그것 없이는 맛이 없어 먹지 못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장류와 김치, 깍두기, 물김치 같은 김치류 그리고 새우젓, 조개젓, 식해 같은 젓갈류가 전형적인 제3의 맛이다. 김치는 이미 파나마나 브뤼셀의 식료품점에서 까지 살 수 있게 되어 있고, 간장도 “맛으로의 모험”이란 캐치프레이즈로 구미의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리만큼 국제식품이 돼있다.
토플러가 예견한 “제3의 맛”의 시대를 실감나게 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유엔 산하의 유엔대학 주최로 젓갈류 등 발효식품에 대한 학술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 참석한 구미의 식품학자들은 한국의 수산발효식품인 각종 젓갈류는 단백질 분해 작용으로 보나 풍부한 유산균, 비타민, 무기질로 보나 그 특유한 발효 맛으로 보나 국제적으로 뛰어난 식품이라고 하고 20% 함유된 소금을 8%까지만 줄일 수 있다면 국제적 식품으로 널리 보급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예부터 외국 사람들로부터 고려취라 하여 코를 막게 했던 그 젓갈류가 제3의 맛 시대를 맞아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이랄 “爾雅(이아)”에 젓갈을 뜻하는 “鮨(지)”가 나오고 또 말레이반도의 어장인 “부쑤우”, 인도네시아 어장인 “뇨감”, 보르네오 어장인 “자크토”, 일본의 어장인 “쇼쓰루”등 아시아 지방에는 젓갈도 많지만, 우리 한국의 젓갈이 가장 국제적 입맛에 들어맞는다고도 평가하기도 했다. 옛날 법도 있는 집 마님은 서른여섯 가지의 김치, 서른여섯 가지의 장, 서른여섯 가지의 젓갈을 담글 줄 알아야 했을 만큼 발효식품의 최선진국이었다. 그래서 그 작은 물새우의 미세한 알만을 따내어 담글 정도로 젓갈문화가 발달돼 있었던 것이다. 혓바닥에는 짜고, 달고, 시고 쓰고 맵고 하는 오미를 자각하는 味域(미역)이 따로 발달돼 있다 한다. 한데 서양 사람의 혓바닥에는 전혀 발달돼 있지 않은 맛난 맛-곧 발효 미 지각마역이 우리 한국 사람에게 가장 발달돼 있다는 것도 발효문명국의 생리적 입증이랄 수 있다. 국제화사회에서의 존재증명으로 예상 못했던 우리의 젓갈까지 부각되듯이 앞으로도 적지 않은 고유문화가 부각될 것이 기대되는 것이다.(이규태 코너 1987년) ※ 鮨(젓갈 지).
樂道吟(악도음) - 李資玄(이자현) -
家在碧山岑(가재벽산잠) 산중에 조용히 살고 있는데
徒來有寶琴(도래유보금) 전부터 내려오는 거문고 있네
不妨彈一曲(불방탄일곡) 때로는 한 곡조 타고 싶건만
祇是小知音(기시소지음) 어느 누가 내 곡조 알아주리오.
※ 岑(산봉우리 잠), 妨(해로울 방), 祇(클 기, 땅 귀신 기).
11-47. 天不生無祿之人하고 地不長無名之草니라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하늘은 녹 없는 이를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 祿(복. 행복. 봉록 록) : 관리의 봉급.
⋇ 不長(부장) : 기르지 아니함.
(해설)
우리 어른들의 말씀 중 多産(다산)하는 때 태어나는 아이보고 “제 먹을 복은 갖고 태어난다.”라는 덕담을 하신다. 사람으로 태어남은 그 누구라도 이 세상에 이로운 무언가를 하라는 운명을 갖고 있기에 하나의 특기를 지니고 있으며 하찮은 것일지라도 무언가에 쓸모가 있기 때문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러한 사명을 망각하고 소중하고 귀한 자신을 함부로 굴리고 오히려 타인에게 득을 주지 못하고 해를 입히거나 피해를 입히는 용납하지 못할 과오를 저지름은 태어난 뜻을 거역하고 거스르는 일이라 피하여야 한다.
사형제도의 폐지를 논하는 근본이념은 바로 인명의 소중함과 뜻을 벗어나기에(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 그에 부합하지 않는 사형은 금지 되어야함이 옳다 주장한다. 신만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을 때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태어나게 한 취지나 목적에 위반되더라도 그를 최종 판단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으로서는 행하지 말아야 하는 최악의 잘못을 범하여(소위 짐승보다 더한 흉악하고 악랄한 행위)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할 가치를 상실한 사람에 대하여서도 인정을 베풀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지만 그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여 일반인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영구적인 종신형)으로 대체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받은 소명 내지는 사명의 완수를 위한 여정은 어떠한 일을 하여야 하는가에 따라 순탄한 길을 걷기도 하고 험난하고 고통의 길과 실패와 배신 그리고 성공과 협조 등의 다양하고 상상도 못할 일들을 겪으며 성장이란 긴 통로를 거쳐 한 몫을 하는 어른으로 거듭나며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데 매진하게 된다. 그 다양하고 복잡하며 어지러운 삶이 가치가 있건 가치가 없건 연결고리가 되어 쌓여지고 겹쳐지고 헤쳐 나가며 성과를 이루게 된다.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빠지면 연결고리에 공백이 생겨 원활하고 원만하게 작동이 되지 않아 혼돈과 무질서와 제자리를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부작용이 벌어진다. 그러하여 상당기간 동안의 공백기와 진공상태는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보내기도 하며 목표를 잃고 방황하게도 하며 작은 일에도 싸움으로 번져 확대되면서 난전으로 얽혀 이득도 전혀 없는 소모전을 연출하기도 한다.
산천에 나는 초목들 또한 같다. 길거리에 어지럽게 자생하는 잡초라 할지라도 무언가 쓰임새가 있고 나름대로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나 사람들은 하찮게 여겨 천대하거나 목적하는 양식을 얻는데 방해가 된다 하여 제거하는데 열중한다. 그들도 자연의 일부로서 질서를 유지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존재임을 망각하거나 아예 모르는데서 기인하는 무지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 문명의 발달과 함께 자취를 감추거나 멸종됨으로 간접적이건 직접적이건 나쁜 영향을 주는 현상을 경험하지 않는가? 특히나 환경오염과 건강식으로 혹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고 집중적으로 몰살시킨 예는 얼마나 많은가. 그로인한 먹이사슬의 파괴로 천적이 사라지며 그를 대신하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별반 효과를 얻지 못하는 작금의 사태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동식물도 세계화가 되어 어떠한 경유를 통해 들어오면 천적이 없다보니 왕성한 번식과 기존 생태계를 교란시키기에 억제하거나 잡아 없애는 수고를 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황소개구리, 베스, 부르길 그리고 돼지 풀 등을 들 수 있다. 전염병도 같은 맥락이다. 조류독감이니 사스니 구제역이니 아직도 진행 중인 신종 플루 등 어느 한나라에서 발생하면 이제는 전 세계가 공동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아일랜드 화산재의 영향으로 항공기 대란이 벌어지고, 지진피해에 대한 전 세계의 성원이 답지하고 인명구조를 위한 구조요원의 지원 등.
탓
중국에 “陣家(진가)의 결혼식”이라는 寓話(우화)가 있다. 진가에서 혼인잔치가 있어 거위를 잡으려 하자 “나는 알을 낳지 않소, 알도 못 낳는 저 수탉이나 잡을 것이지.”했다. 수탉이 이 말을 듣자 “내가 아침을 알리지 않으면 백주에 잠을 깨시려 합니까, 저기 먹이만 축내는 양으로 하십시오.” 양이 듣고 “나의 털을 깎아 추운 겨울을 나지 않소, 짖기만 하는 개나 치우십시오.” 개가 양을 보고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늑대로부터 너를 지켜주는 것이 누구냐, 말을 잡는 것이 좋은 듯합니다.” 말이 듣고는 “먼 나들이에 뭘 타고 가시렵니까, 같은 등이라도 소등과는 격이 다릅니다.” 소가 듣고 “나 없이 누구더러 밭을 갈게 할 참이요, 놀고먹는 돼지가 제격입니다.” 이에 돼지가 “밭만 갈면 다이냐, 걸게 해주는 것은 누군데, 밤낮 꽥꽥거리는 거위를 잡는 게 타당하오.” 이렇게 핑계는 핑계를 꼬리 물고 원점 회귀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南道雜歌(남도잡가)”에도 이 같은 내 탓이 아니라는 핑계노래가 있다.
“엄마 엄마 추야장 긴긴밤에/ 실꾸리나 감을 일이지/ 날 만들어 놓고/ 이리 고생 다 시키시오”하고 고생하는 딸이 엄마 탓을 하자, 엄마는 “추야장 긴긴밤에 네 아배 기어들어 너를 만들었지 내가 만들었나.”한다. “아배아배 추야장 긴긴밤에/ 멧 방석이나 만들 일이지/ 날 만들어 놓고/ 이리 고생 다 시키시오.”하자 “북망산 조상들이 제삿밥 못 먹을까 싶어 아들 하나 낳으라고 해서 네가 생겨났지 내가 만들고 싶어 만들었나.”한다. “조상무덤 찾아가 제삿밥 못 먹는다고 한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고 탓하자 “風水龍(풍수룡)이 혈을 못 찾아 딸을 낳았지 낳고 싶어 낳았느냐”한다. 못되면 팔자 탓, 못살면 조상 탓, 패가하면 무덤 탓…그래서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탓은 책임으로부터의 自己疎外(자기소외)다. 이렇게 전가에 전가만 거듭하다 보면 책임은 허공에 뜬다. 공산주의 경제는 統制經濟(통제경제)이기에 책임이 계열화돼 있어 그 중 어느 한 분야에서 탓을 하면 그 핑계가 연쇄되어 책임이 공중에 뜨게 돼 있다.
귀순한 북한 외교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만년필 탓이 그렇다. 북한의 고급경제정책회의에서 만년필을 생산 못하는 공장지배인이 힐책을 받자, 철강을 대주지 않은 제철소 탓을, 제철소지배인은 철광산 탓을, 철광산지배인은 철도 탓을, 철도지배인은 枕木(침목) 탓을, 침목지배인은 원목을 대주지 않은 산림서 탓을, 산림서 지배인은 원목 수송할 휘발유 탓을 했다고 한다. 만년필이 휘발유까지 변신하는 기나긴 탓의 歷程(역정)이 아닐 수 없다.
魏(위)나라의 吳起(오기)는 핑계 대는 부하를 두지 않았다는 단지 그 하나만으로 역사에 손꼽히는 명장이 됐음이 새삼스럽기만 하다.(이규태 코너 1991년)
山行(산행) - 馬尙遠(마상원) -
浮生百年內(부생백년내) 뜬세상 구름 같고 백년도 꿈이러니
以生能幾何(이생능기하) 이 가운데 사는 우리 풀끝에 이슬일세
中宵彈鋏處(중소탄협처) 옛사람 한밤중에 칼집 치며 노래하니
萬事一長歌(만사일장가) 부귀영달 누리기도 허튼 장난일세.
※ 彈(퉁길 탄), 鋏(칼 협).
11-48. 大富는 由天이요 小富는 由勤이니라
(대부 유천 소부 유근)
큰 부자는 하늘에 달려있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한데 달려있다.
(해설)
성공 했다고 말하는 뜻 속에는 목적하던 부와 권력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과 가혹할 정도의 자기 절제 그리고 왕성하고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얻는 부산물로서의 부와 권력이라면 누구나 존경과 흠모를 할 것이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손가락질과 욕만 먹게 된다. “되는 놈은 넘어져도 떡판에 넘어지고,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덕과 선을 많이 쌓았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명예는 얻게 된다. 富(부)의 자원을 보면 하늘이 내려 준 가득 찬 항아리란 뜻이다. 하늘이 어떻게 재물을 내려주어 항아리를 가득 채워줄까? 순응하고 뜻을 거스르지 않고 최선을 다한 보답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게 한 사람이 하나 둘도 아닌데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늘 실패의 구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요인이야 여러 가지가 존재하리라. 목표설정, 추진방향, 사람과의 관계, 시기와 환경, 지구력과 인내력, 혁신과 안주 등등.
부지런함은 누구나 하면 된다. 그러나 그 부지런함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부자를 만드는 비밀이 숨어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나름대로 일반인과는 다른 성공인자를 지니고 있는데 확고한 목표, 열정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저돌적인 추진력, 인맥관리, 개혁정신, 사소한 것에 충실하고 절약과 절제를 생활화하고, 끊임없는 배움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며, 자투리 시간의 활용으로 24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으며, 스트레스나 위기 등을 즐기는 등등 차별화된 특성을 지니고 실천한다. 그러나 성공했다고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분야에 따라 성공이란 의미는 다르기 때문이다. 즉 뜻을 이룬다고 하는 성공의 목표가 어느 분야에서 최 정점에 서는 것을 말할 때 그것이 재물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 大富(대부)를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한 수준을 말하는 것일까? 시대에 따라 경제규모가 다르지만 적어도 한 시대의 총 경제규모와 비례하여 평가될 수 있으리라. 한 때는 백만장자란 말이 유행했으나 이제는 억만장자도 명함을 못 내미는 경제규모라 적어도 백억 원 대의 부를 소유해야 할 것이고 대부는 兆(조)단위의 부를 소유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적인 부호일 경우는 천억 달러 이상의 무지막지한 부를 소유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 아니한가. 부의 크기도 시장경제의 크기에 따라 커지기에 선진국일수록 부자의 재산 보유액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을 유지한다. 세계 제1의 부호가 누군가 하며 발표되는 랭킹을 보면 늘 미국에서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장수도 필요하지만 3가지 요소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하지요. 천, 지. 인으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같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승리를 한다고 하듯이 큰 부자도 그러한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작은 부는 부지런하고 절약하며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겠지요. 소위 말하는 성공이란 목표치를 달성하는 노력의 결실이 되기도 하겠지요.
자원입니다.
勤(부지런할 근)은 어려움 속에서도 끈기 있게(堇 : 찰흙 근) 힘쓰다(力). 부지런하다.
교수형
우리나라 욕 말 가운데 형벌용어의 비중이 꽤 높다. 오라질 놈-하는 오라는 죄인 잡아오는 포승이요, 주리 틀 놈-하는 주리는 두발을 아래위로 묶어놓고 그 사이에 지렛대를 박아 틀어대는 고문 형이며, 경칠 놈-하는 黥(경)은 얼굴에 전과자임을 표시하는 문신 형이다. 박살낼 놈-의 박살은 멍석말이로 패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이요, 오살할 놈-의 오살은 인신을 다섯 토막 내어 죽이는 참형이며, 육시할 놈-의 戮屍(육시)는 시체를 꺼내어 가하는 참형이다. ※ 黥(묵형할 경), 戮(죽일 육).
이들은 모두 法外(법외)의 형들이요, 고려시대 이래 법으로 정한 사형방법은 참형과 교형 두 가지였다. 법전에 없는 형으로 사약이 있는데, 왕족이나 사대부의 체면을 배려, 독약을 내려서 자결케 하는 사형이다. 烹刑(팽형)이라 하여 종로 네거리에 큰 솥을 가설하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범인을 솥 속에 넣어 증살한 체하고 실은 죽이지 않는 이상한 사형방법도 있었다. 팽형을 당한 사람은 평생 아이를 낳아선 안 되고 죽은 사람으로 행세해야 하는, 숨 쉬는 죽은 사람이다. 塗貌刑(도모형)이라 하여 기둥에 묶어 놓고 물에 적신 조선종이 몇 겹을 얼굴에 밀착시켜 질식시키는 사형이다. 주로 가문에서 사형을 베풀 때 쓰였던 가장 덜 잔인한 방법이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絞刑(교형)이다. 지금의 서린동에 있었던 좌포도청의 옥사에 붙여 교수형장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붉은 올가미 밧줄을 대들보의 도르래에 걸어 판문에 뚫린 구멍을 통해 밖에서 끌어당기게 되어 있었다. 고종 3년 이 좌포도청에 갇혀 있던 프랑스 선교사 리데의 “幽囚記(유수기)”가운데 교수형 집행 광경이 이렇게 적혀 있다.“5월3일 저녁밥 먹을 무렵 옥졸이 강도 감방에 들어가 한 죄수에게 오늘밤 교수라고 통고하면서 끌고 나갔다. 교수방의 판자문 소리가 닫히자 네 명의 옥졸이 마치 닺을 끌어 올리듯 올가미 끈을 끌어대더니 방지막대에다 묶어 놓는다. 처형이 끝난 것이다. 그런지 두어 시간 후에 나타나 속을 들여다보더니 아직도 발이 꿈틀거린다면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역사에서 사형을 폐지한 시기가 없지 않았는데 형살 당한 원혼이 날을 가물게 하거나 왕실에 불행을 몰고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지 휴머니즘 때문은 아니었다. 사형폐지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가정파괴의 흉악범과 살상 폭력배등 7명이 교수형을 받았다. 흉악범죄 척결의 의지 표현과 일벌백계를 노린 것일 게다. 노린 대로 된다면 좀 좋을까마는 그 결과는 미지수이다. 사형폐지론의 논리적 근거만 만들어 주는 교수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이규태 코너 1989년)
別恨(별한) - 金應河(김응하) -
天涯各南北(천애각남북) 하늘 끝 남북으로 서로 나뉘어
見月幾相思(견월기상사) 달 바라보며 몇 번이나 그리었든가
一去無消息(일거무소식) 가고는 소식조차 없으니
死生長別離(사생장별리) 죽고 살고 기나긴 이별이런가.
11-49. 成家之兒는 惜糞與金하고 敗家之兒는 用金與糞이니라
(성가지아 석분여금 패가지아 용금여분)
되는 집 아이는 똥 아끼기를 금과 같이 하고, 망하는 집 아이는 돈 쓰기를 똥처럼 한다.
(해설)
전통과 절도 있는 집안이라 칭송하는 유수한 역사를 지켜낸 가문들을 보면 나름대로 철통같이 지켜 내리는 가훈이 있고, 그를 이어가는 엄한 어머니의 숨은 노력이 함께한다. 그래서 오랜 기간을 대가없이 지켜오고 또 자식들의 처세와 성장에 하자 없이 현세에 맞추어 꾸준하게 맥을 이어간다. 한 가정의 성패는 그 가정을 지탱하여 주는 가훈이랄까 전통적 관습이랄까 하는 모든 가족들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법도가 존재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좌우된다. 명문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함께 후세들이 선조들의 높은 뜻과 영명을 받들어 지켜나기는 한편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발전된 더 높은 가치를 지닌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데 온 힘을 다하였을 때 세세손손 이어지며 명문가로 자리를 잡게 된다.
되는 집안이란 그런 법통과 전통을 철저하게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고 머리로 생각하며 생활 속에 실천함으로써 사회에 빛이 되는 훌륭한 업적과 가치를 남기는 위대한 삶을 굴하지 않고 실현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절약과 겸손 부지런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높은 꿈과 엄격한 修身(수신)을 통한 인격체를 완성하고 그 인격을 통한 만인에 대한 이익과 건강한 삶을 위하여 헌신 분투하는 정의롭고 용감하고 희생정신이 투철한 이상적이며 본받을만한 여정을 걸어간다. 사소한 일에 충실하며 낭비를 지양하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늘 반성과 혁신의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흔히 말하길 눈빛이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무언가 이루기 위한 강렬한 희망과 즐거움으로 매사에 적극적이며 후회 없는 나날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무엇이 남을 위한 길인가를 생각하며 열정을 다해 봉사합니다.
태산도 먼지가 쌓여 만들어지듯이 작은 돌 하나 하찮은 개똥도 소홀하게 여기지 않고 아끼는 근검과 절약정신은 잘사는 지름길이 되고 성공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소위 부자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보면 한 푼도 쓸데없이 허투루 쓰지 않는 철저한 구두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찮은 작은 것에 연연할 때면 “죽을 때 가져가나, 쓸 때는 써야지”하며 속으로 놀리지만 정작 당사자는 당연한 것이라 어색하지도 않고 그렇지 못한 주위사람이 오히려 이상하다 생각합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말하지만 정작 쓸 때 못쓰고 엉뚱한 곳에다 낭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망하는 집안이나 회사의 경우 거의 비슷한 경로를 밟아간다고 합니다. 크건 작건 낭비가 심하고, 아끼지 않으며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며 막연하게 내일은 잘되겠지 하며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이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고, 주변이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난잡하고 어지럽혀 있으며, 산만하고 질서가 없어 보이며 맥없어 무기력하게 보인다 합니다.
되는 집안과 자신의 성공을 바란다면 자신을 닦고, 덕을 쌓으며, 남에게 베풀고 나누고 아끼며 사소한 낭비를 없애고 모든 일에 충실 하는 습관을 지켜야 하며 입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래서 뒬 성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하지 않습니까?
자원입니다.
惜(아낄 석)은 지난(昔 : 옛 석)일이 마음(忄)에 남아 아쉬워하다. 석(昔)은 풀(艹)이 난 지평선(一)아래로 해(日)가 들어가 날이 저문 저녁. 지나간 과거.
⋇해가 저무는 저녁은 석(昔), 희미한 달이 뜨는 저녁은 석(夕), 해가 잡초 덤 풀(茻 : 풀 무성할 망)사이에 들어가 날이 저무는 것은 막(莫 = 暮), 지평선 아래로 해가 들어가 하루해가 간 것은 석(昔).
감나무
감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밖에서는 아무리 옮겨 심어도 살지 않는, 고집 있고 주체성이 대단한 동양의 나무다. 그래선지 감나무를 칭송하는 예찬도 많다. 이를테면 감나무에는 사람이 따를 수 없는 오절. 오상이 있다 했다. ① 壽(수)-몇 백 년을 사니 목숨이 길고 ② 無鳥巢(무조소)-새가 깃을 들이지 않으며 ③ 無蟲(무충)-벌레가 꾀질 않고 ④ 嘉實(가실)-열매가 달길 그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 ⑤ 木堅(목견)-나무가 단단하길 역시 비길 나무가 없다는 것이 오절이다.(一壽, 二多陰, 三無鳥巢, 四無蠹, 五霜葉可翫, 六嘉實, 七葉肥大, 木中根固者 惟柿爲最, 俗爲之柿盤 : 일수, 이다음, 삼무조소, 사무두, 오상엽가완, 육가실, 칠엽비대, 목중근고자 유시위최, 속위지시반. - 첫째는 장수하고, 둘째는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셋째는 새들이 둥지를 틀지 않고, 넷째는 벌레를 먹지 않으며, 다섯째는 붉게 물든 잎을 감상하며 즐길 만하고, 여섯째는 열매가 달고 맛있다. 일곱째는 잎이 커서 글씨를 쓸 수 있어 좋고, 나무가운데 뿌리가 튼튼한 것으로 감나무가 으뜸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시반이라 부른다) ※ 蠹(좀 두), 翫(가지고 놀 완), 嘉(아름다울 가).
또 단풍진 감나무 잎을 柿葉紙(시엽지) 또는 自然箋(자연전)이라 하여 글을 쓰는 종이가 되므로 “문”이 있고, 또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쓰였다 하여 “무”가 있으며, 만천하의 과실 가운데 속과 겉이 다르지 않고 똑같이 붉은 것은 감밖에 없다 하여 표리부동의 “충”이 있고, 이 빠진 노인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과실이라 하여 “효”가 있으며, 또 서리를 이기고 만추까지 유일하게 버티니 “절”이 있다 했다.
문. 무. 충. 효. 절 이것이 감나무의 五常(오상)이다. 또한 나무가 검으며(흑) 잎이 푸르고(청) 꽃이 노라며(황) 열매가 붉고(적) 말린 곶감에서 흰 가루(백)가 난다 하여 오색. 오행. 오덕. 오방을 고루 갖춘 유일한 나무라 하여 우러러 보기도 했다.
감나무를 둔 우리 민속도 다양했다. 100년 된 감나무에는 1,000개의 감이 연다 하여 감나무 고목은 자손의 번창과 아들 낳길 비는 신앙의 대상-곧 祈子木(기자목)이 되고 있다.
오뉴월에 노란 감나무 꽃이 떨어지면, 처녀나 부녀자 할 것 없이 감꽃 주어다 실에 꿰어 목걸이를 하는 습속이 있었는데, 감꽃 목걸이 역시 아들 잘 낳길 비는 주술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한량들은 붉게 물든 감나무 잎을 말려 두었다가 그 시엽지에다 시나 연문을 써서 보내는 낭만도 있었다.
감나무를 베면, 木理(목리)-곧 나무무늬가 다양하여 혹은 그림도 되고 글자도 되곤 하는데, 이로써 세상의 앞날이나 풍흉이나 가운의 앞날을 점치기도 했다. 그래서 세상이 흉흉해 지거나 수상하면 감나무 베어보고 앞날을 점쳐보는 습속도 있었다.
감나무에 대한 가장 오래된 중국기록은 한나라 때 사전인 “說文解字(설문해자)”에 나오고 또 일본에서는 6세기 후반에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감나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문헌상으로는 고려 숙종 때(1103년) 송나라에서 편찬된 고려 말 사전인 “鷄林類事(계림유사)”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의서인 “鄕藥救急方(향약구급방 : 고려 고종)”에 감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허균의 “屠門大嚼(도문대작)”에는 넓적 감은 온양 紅柿(홍시)가, 뾰족 감은 남양 角柿(각시)가 그리고 검은 감은 지리산 烏柿(오시)가 유명하다 했다. 감나무의 실용적 가치로는 앞서 오절. 오상에도 나왔듯이 단단한 특성 때문에 망치의 머리 부분으로 감나무를 제일로 쳤다. 단단할 뿐 아니라 탄력까지 있어 사람이 들이는 힘보다 강한 타력을 내기에 십상이다. 들은 바로 골프채의 우드헤드로 묵은 한국 감나무 이상 좋은 것이 없다 하여 많은 고목들이 벰을 당하고 있다던데 감나무 무상이다.
(이규태 코너 1986년) ※ 屠(잡을 도), 嚼(씹을 작).
11-50. 康節邵先生이 曰 閑居에 愼勿說無妨하고 纔說無妨便有妨이니라 爽口物
(강절소선생 왈 한거 신물설무방 재설무방변유방 상구물
多能作疾이오 快心事過必有殃이라 與其病後能服藥으론 不若病前能自防이니라
다능작질 쾌심사과필유앙 여기병후능복약 불약병전능자방)
강절소 선생이 말하길 “한가롭게 살 때 삼가 거리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겨우 거리낄 것이 없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자 문득 거리낌이 생기리라. 입에 상쾌한 음식이라고 해서 많이 먹으면 병을 만들 것이요. 마음이 쾌한 것이라 해서 지나치게 하면 반드시 재앙이 있으리라. 병이 난 후에 약을 잘 먹는 것으로는 병이 나기 전에 스스로잘 예방하는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 愼勿說(신물설) : 삼가서 ~라고 말하지 말라.
⋇ 無妨(무방) : 꺼릴 것이 없음. 거리낄 것이 없음.
⋇ 纔(겨우, 방금 재) : 겨우. 조금. 약간. 잠깐.
⋇ 爽口物多(상구물다) : 입에 맞는 상쾌한 음식도 많으면.
⋇ 與(더불어 여, 미칠 여, 줄 여) : 미치다. “及(미칠 급)”과 같은 뜻.
⋇ 不若(불약) : 같지 못함.
(해설)
달도 차면 기울고, 물도 가득 차면 넘치며,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도 가끔은 까먹어 버린 채 잊고 산다. 세상사 모두가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입에 달고 살면서도 눈앞에 닥치는 급박한 일들에 치어 되돌아볼 시간조차 녹녹치 않다. 그러나 막상 한가로운 시간이 되면 할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들이 일시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엇부터 하여야할지 감이 잡히지도 않거니와 급박하게 하였든 일들이 모두 허망하고 부질없이 허둥거렸음을 깨달게 되는데 촌각도 걸리지 아니 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비로소 평소에 하찮게 여기고 무심결에 넘어갔던 것들이 모두 소중하고 참된 작은 행복을 선사하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욕심이란 한이 없다.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더 높은 것, 더 많은 것, 더 편안한 것, 더 어여쁜 것, 더 호화스러운 것, 더 맛있는 것을 탐하게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과시하며 채찍질을 한다. 악마의 속삭임이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살아 숨을 쉬는 동안에는 피해갈 수 없는 굴레다. 작금의 세태에서는 더하여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시대에 따른 느낌이지 예나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일부라고 치부하며 위안을 삼아보지만 씁쓸한 심정은 왜일까?
입에 쓴 것이 몸에 좋고, 귀에 거슬리는 말이 몸을 이롭게 한다고 하지만 凡人(범인)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건강을 위해 먹은 산해진미들이 몸을 살찌우게 하였지만 도를 넘어서니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유행은 명품이란 짝퉁을 양산시키며, 대중매체에서 어느 식품이나 제품이 건강에 좋다고 방송이 되면 그날로 쑥대밭이 되거나 싹쓸이 되고 마는 현상이 일어난다. 풍요로움에 넘쳐나는 기름진 음식과 의료수준의 발달은 평균수명을 늘려가지만 자연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명연장을 위한 사투 아닌 정성이 안락사를 인정하여야 하는가? 하는 논쟁을 유발시키며,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체외수정을 거쳐 복제에 까지 성큼 가까워지니 신에 대한 도전이란 명제를 떠나 윤리적이고 도덕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상상황에 따른 재해가 부쩍 많아졌다. 우리나라뿐 만 아니라 지구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쓰나미”요 아이티의 대지진 참사 또한 맥락을 같이 한다. 하나 뿐인 병든 지구를 살리자는 녹색환경운동이 들불처럼 전 세계의 화두로 등장하였다. 예방이 우선이란 점은 모두가 알고 있는데 자국의 경제력을 키우기 위하여 폐해를 무릅쓰고 모른 척 외면한다. 경제대국일수록 소모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들이니 한 목소리를 낸다 해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점차 규제하고자 국가별 배출량을 정하고 잘 이행하면 그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는 등 정책을 펴지만 실질적으로 불이행시 대처하는 방법에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함께하는 세계화가 이룩되기까지는 숱한 난관을 극복해야만 한다. 모두가 공감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변하지 않는 최상의 목표가 설정되어 한마음으로 실천하는 그 날까지는.
자원입니다.
愼(삼갈 신)은 마음(忄)을 참되게(眞)하는 것. 경거망동하지 않고 진중하게 조심해서 삼가다.
妨(방해할 방)은 여자(女)가 출입하는 쪽(方)을 막고 안자아 통행을 방해하는 것.
물이나 적이 들고나는 쪽(方)을 막은 방벽(阝)은 防(방)
疾(병 질)은 독화살(矢)을 맞고 침상에 누워 앓고 있는(疒 : 병 역) 모양.
快(쾌할 쾌)는 마음(忄)이 탁 터지는(夬 : 터질 쾌) 느낌. 시원하다.
殃(재앙 앙)은 죽음(歹 : 살 바른 뼈 알)과 형벌(央)보다 더한 재앙은 없다.
金曜(금요) 13일
십 수 년 전에 일이다. 어느 영국신사가 런던의 한 호텔에 투숙하는데 13층 13실을 달라고 했다. 이 호텔은 10층 밖에 없다고 하자 어느 층이라도 좋으니 13호실을 달라고 했다.
호텔에 13호실을 두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 7층 6호실(7+6=13)을 달라고 해서 들었던 것이다. 만인이 기피하는 13을 집요하게 요구한 이유는 이렇다. 장사꾼인 그는 칠빌리시聖(성) 차즈가 13번지 상가주택에서 장사를 해 왔는데 장사도 번창하고 집안일도 막히는 일 없이 잘 풀렸고 모든 사람이 기피하는 지번이라 임대료도 거져다시피하여 만족하고 살았다. 한데 도시계획의 변경으로 지번이 115번지로 바뀌면서부터 사고가 연발, 파산을 하고 빚쟁이에 쫓겨 도망쳐 다니는 신세라 했다. 이 이야기가 “모닝 포스트”지의 기자 귀에 들리자 관심을 갖고 런던시내에 13번지나 13호에 사는 사람을 찾아 헤맸지만 그 넓은 런던시내에 그 지번에 살고 있는 것은 겨우 두 집뿐이었다. 가게를 하는 그 한 집은 개업 이틀 만에 집 앞을 지나가던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앞발을 들여 놓는 바람에 박살이 났고, 버킹엄 인근에서 하숙집을 하는 다른 13번지에서는 개업 첫 주에 커피포트가 폭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신문에 보도했던 것이다.
우리 한국에서는 발음이 “死(사)”와 같다 하여 “4”수를 싫어하고, 일본사람들은 “苦(고)”와 발음이 같은 “9”수를 싫어하며 서양 사람들은 “13”수를 기피한다.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에서 배신자 유다가 13번째 의자에 앉았다 해서 기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H.G 웰즈에 의하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물건을 헤아리는데 둘이나 셋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13이란 수를 불길하게 여겼던 흔적이 있다 했다.
금요일은 낙원에서 아담이 추방당한 날이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로 알아왔으니 13 금요일은 최악의 불길한 날일 수밖에 없음직하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13수를 기피한 것은 아니었다. 음악가 바그너는 그의 이름 철자수가 13자요, 태어난 해가 1813년이라 하여 13자를 무척 좋아했으며 평생 동안 작곡한 오페라 수도 13편이요, 작품 완성일도 13일로 했고 죽는 것도 13일로 날을 잡았다. 약소민족 해방을 부르짖어 3.1운동에 불을 붙인 윌슨대통령도 13수를 좋아하여 중대한 결정을 13일에 하고 연회석도 13석을 채우도록 분부할 정도였다 한다.
미국의 행동과학자 도널드 도시 박사는 13 금요일에 모든 행동을 삼가는 미국사람 수가 2천백만 명에 이르며 13 금요일 하루를 나들이와 구매활동하지 않는 경우 7억5천만 달러의 손실이 된다고 하였다. 주식시장을 비롯 음성-양성 할 것 없이 모든 금융시장이 얼어 붙은 13 금요일이다.
중국에서 약제를 판매할 때 최상품을 十三太保(십삼태보)라 했다. 당나라 말기 李克用(이극용)에게 열세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태보 벼슬에 올랐다 해서 최상을 뜻하는 형용사가 된 것이다. 13수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흉수는 아니었다. 고종 때 조선팔도를 13도로 늘렸는데 흉수라면 13분할을 했을 리 없다.
석가모니 다비 처 에다 세운 최초의 불탑은 13층이었다. 일본에서 군고구마를 十三里(십삼리)라고 하는데 “밤보다 맛있다.”는 말인 “九里(구리)四里(사리) 우마이”의 구리와 사리를 보태 십 삼리가 된 것이다. 13리 기피문화가 일본에도 없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13을 붙이면 낫 모양이 되고 그 낫으로 난관을 헤쳐 나간다 하여 고대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13이란 숫자는 번영과 희망의 길수였다. 대표적인 미국인인 프랭클린이 좌우명으로 삼은 13덕목이 있다. 절제, 침묵, 규율, 결단, 절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양으로 한 덕목 당 1주일씩 1년에 네 돌림으로 실천에 심신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12덕목으로 하였다가 13수가 난관이나 곤경을 헤쳐 나가는 실천의 상징이기에 한 덕목을 늘렸다 했으니 히브리 전통이 애오라지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텔이나 병원, 빌딩에 13호실이 없다. 7층의 6호실이나 9층의 4호실도 합쳐서 13이 된다 하여 기피한다. 학교에서도 답이 13으로 나오는 문제는 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우연히 13명이 모인 만찬이 끝나면 구령에 의해 동시에 일어나는 관행까지 있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죽는다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가인 바그너는 13수를 좋아했다. 죽은 날이 2월 13일인 것은 우연.
1990년대에 13일의 금요일이 열두 번 있었는데 이중 하루 빼놓고는 주가가 평균 7.29포인트나 하락했으며 최고 32.32포인트까지 떨어진 날도 있었다. 가공할 징크스 변수다.
어제가 바로 그 미신 사대주의 강도를 가늠해 볼 흉일임에도 14.49포인트의 폭등을 보였으니 징크스를 압도하는 변수가 있거나 미신 사대주의만은 아직 덜 심각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이규태 코너 1997년)
反哺鳥(반포조) - 朴長遠(박장원) -
士有親在堂(사유친재당) 어버이 집에 모신 사람으로는
貧無甘旨具(빈무감지구) 조석 공양 잘못 함에 애를 태우네.
微禽亦感人(미금역감인) 까마귀 하찮은 날 새 이건만
淚落林哺鳥(누락임포조) 어미 은혜 못 갚는다 서러워 운다오.
※ 哺(먹일 포), 旨(맛 지, 뜻 지).
출처-http://cafe.daum.net/sungho52
박광순선생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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