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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울산대체의학봉사회 원문보기 글쓴이: 천부쥬신
친일파의 일제강점기 축복론(日帝强占期祝福論)의 허구를 벗겨보면...
한승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일본 우익성향의 시사잡지 ‘정론(正論)’ 2005년 4월호에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한반도 식민지화를 긍정하고 당시 일본 군대가 조선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성(性) 노예화한 일을 문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나아가 한국 내의 친일파 비판은 좌익, 용공 편에 서는 친북 공산주의 추종자들의 잘못된 행동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한 언행은 현재 국내에서 추진되는 과거사(科擧史) 청산 추진에 의도적으로 제동을 거는 친일파들의 반발이며 방해전술의 하나다. 그러한 억지성 주장의 허구를 벗긴다.
왜 그처럼 파렴치한 자세로까지 나오는가?
일제의 한국 침략 통치에 적극 협력하고 항일(抗日) 독립운동(獨立運動)에 헌신하던 애국지사들을 색출, 검거하는데 앞장섰던 친일파 매국노들이 해방 이후 미국 군정 시기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가지 국내의 기득권을 장악해 왔고,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면서 민족 정기가 쇠퇴하는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 친일파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그동안 친일파를 비판하고 민족반역행위의 죄상을 말하면 대개는 친북 공산주의 추종자, 즉 '빨갱이'로 몰렸다.
그 구체적 사례를 몇 가지 보자. 우선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께서 민족 분열을 염려해 행했던 우국 활동을 말살하기 위해 그를 친북 공산주의 추종자로 몰아서 죽인 것은 누구인가? 반민족행위 특별 처벌법을 무산, 좌초시키고 친일파 청산을 외친 사람들에게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죽인 자들은 누구인가? 조봉암(曺奉岩) 씨가 무력(武力)에 의한 북진 통일이라는 기만적이고 비현실적인 구호로 국민을 우롱한 이승만 정권에 대결해 평화적 통일을 주장했다고 해서 '국시위반’이라고 몰아붙여도 안 먹히자 결국 친북 공산주의자, 즉 '빨갱이'로 몰아서 죽인 것은 친일 부류가 아닌가? 1950년 6.25 동란(動亂)이 발발하자 친일파는 자기들의 자행해 온 민족반역행위의 죄상 때문에 겁을 집어먹고 '빨갱이'로 낙인찍어 감시하던 ‘보도연맹원’ 수십만을 집단학살했다. 그러한 무법적 폭거인 살인에 대해서조차도 ‘반공’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실정이다.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보다 노골적으로 일본 우익세력과 유착해서 반민족적 추태를 부려왔다. 박정희는 기시 노부스게[岸信介]로부터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에 이르기까지 옛날 만주국군 시절의 상전에게 충복 노릇을 하면서 굴욕적인 밀실외교를 자행하고 그들의 지도에 따랐다. 전두환과 노태우도 세지마 류조의 충실한 제자였다(이상 세지마 류조, 회상록 幾山河, 産經新聞社 발간 참조).
어찌 그 뿐인가?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 실행에 앞서서 일본 대사에게 미리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기록은 박선원 씨가 영국 웨릭대학교에 제출한 학위논문에서 나타나고 있고 국내의 2002년 국제정치 논총에서도 이미 소개되고 있다(박선원, ‘냉전기 한일협력의 국제정치-1980년 신군부등장과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국제정치논총 제42집 3호 2002년 한국 국제정치학회).
그러면 왜 지금 한승조와 같은 파렴치한 논의가 얼굴에 철가면을 쓰고 버젓이 등장하는가? 우리 내부의 사정을 보면 해방 후에도 일제 치하에 민족반역행위를 한 친일파가 60여년 동안 이 땅의 실권을 장악한 기득권 세력으로 행세해 왔다. 그들 친일파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그리고 입도 막고 바보로 순치시켜 왔다. 그런데 친일파가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그들로선 속이 터질 지경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그들에게는 국민들이 일제 잔재 청산의 여론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 못마당하다. 아니 겁부터 난다. 예전 같으면 그러한 이들에게 친북 공산주의 추종자, 즉 '빨갱이'라고 삿대질을 하며 한마디 매카시즘의 콧바람을 내면 찍소리도 못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들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무지렁이 백성들이 몰라도 크게 모르고(?) 겁 없이 날뛰고 있어서 속 터져 죽을 일이다.
그래서 수구 친일 언론은 교묘하게 친일파 찬양의 온갖 선전무드를 조성하는 우민정책을 써오고 있다. 수구 언론기관을 동원해서 친일파의 국가 경제발전 기여론을 외쳐대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냄새나는 추악한 행실에 분칠을 해서 소란을 떨지만 약발이 듣지 않는다. 여기서 미친 척하고 극약처방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일부 친일파이고 그들은 일본의 극우 파시스트의 격려와 지원을 받아서 일본식 모델을 따라 온갖 공작을 하고 있다.
한승조가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를 찬양해 온 것은 다들 알고 있다. 이번 경우는 친일파의 입장을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나섰다. 아마도 마지막 카드를 미친 척하고 들이댄 것이라 할까?
친일파가 내세우는 일제 침략 변호론(日帝侵略辯護論)의 허구를 보자.
한승조는 일본의 우익 월간잡지 ‘정론(正論)’ 2005년 4월호에 일제 군국주의 변호론의 아류격인 친일론을 전개하고 있다. 정론이란 잡지에 등장하는 논객이나 논조가 어떠한 것인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현 도쿄도지사의 단골메뉴는 극우적 수구 군국주의와 반한반중(反韓反中)의 배외주의 논조가 아닌가? 친일파가 어째서 이렇게 치사하고 치졸한 자태를 드러내기까지 되었는지 딱하기만 하다. 이 잡지는 일본 극우언론으로 산케이신문(産經新聞社)이 펴내고 있고 바로 그 배후에는 일본 중등 교과서의 가장 우익적 성향으로 침략주의를 미화하는 역사왜곡 출판사인 후소사(扶桑社)가 있다.
(1)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 찬성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한국이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논조는 한승조가 처음이 아니다. 박정희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이시하라 신타로를 만난 박정희의 측근인 박종규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現代史의 分水嶺,文藝春秋社(文春文庫) 1990年, 237쪽 이하).
나는 1990년에 이 책을 읽고 결국 친일파의 민족의식의 빈곤과 국제정세 분석의 유치함을 세삼 확인했다.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은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어 지원을 받고 미국의 후원 아래 극동의 영미제국의 헌병보조원으로 대리전쟁을 했다. 힘겨운 싸움에서 당시 일본 군사 첩보공작의 현역장교인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가 스톡홀름에 주재하면서 레닌에게 혁명자금까지 지원해 1905년 제1차 러시아 혁명에 불을 붙이도록 했다. 그는 후에 조선 주둔 헌병대 사령관으로 1910년에 부임해 한국 의병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장본인이다.
그렇다면 한승조의 논리대로 따지자면 아카시 모토지로는 1917년 10월 공산주의 혁명의 전주곡인 1905년 러시아 혁명을 일본 첩보부가 지원했으니, 일본 육군 첩보부는 공산주의자 '빨갱이'를 도운 이적(利敵)행위라는 논법이 성립되지 않는가? 정치학을 하지 않아도 역사를 제대로 보는 자라면 1904년대에 일본이 영미 제국주의 국가의 양해 없이 한국 식민지화가 가능할 수 없었고 그러한 영미 제국주의의 일본 비호는 러일전쟁에서 일본 제국의 영미굴종 예속의 대가였다. 그리고 만약 러시아가 일본에 승리했다고 해도 영미 제국주의가 러시아 남진을 저지하는 실세로 버티고 있어서 러시아의 식민지가 된다는 엉뚱한 가상은 통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일본 제국에 예속된 것을 기뻐하고 일본 제국의 한국 침략을 찬양하는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그러한 논법의 의도는 짐작 못할 바도 아닌가?
(2) 일본군 한국 여성 성(性) 노예제의 변호론의 망발.
일본 제국 군대의 성(性) 노예로서 조선 여성을 강제·연행한 것을 변명한 한국 사람은 한승조가 처음이 아니다. 일본에서 일본 제국의 침략을 미화, 정당화하며 일본극우 군국주의자들을 기쁘게 한 대가로 명사가 되어서 활약하며 몇 권의 책까지 내고 있는 오선화란 젊은 여인이 있다. 이 여자는 물론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세상을 살아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일본의 현재의 산업문명과 그 국력에 압도당하고 한국이 초라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녀는 전쟁에서 여인을 강간하는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 미국군이라고 예외였는가 하고 전쟁 중 민간인 여성 강간 불가피론을 전개하며 일본 제국 군대의 성(性)노예 제도를 변호한다. 이 철없는 여자는 일본 제국 군대가 성(性)노예제도를 여인의 강제 연행으로부터 관리유지에 이르기까지 제국 정부군대의 권한으로 한 것을 지나쳐 버리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 미국군이 여인을 강간하고 매춘공연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미국8군에서 관리한 것이 아니고 한국 정부가 제도운영을 한 것도 아니다. 특히 전시강간은 군법위반으로 처벌했기 때문에 잘못이고 금지되어 있었다. 이런 사정을 덮어둔 채 모두 하나로 뭉쳐 몰아쳐서 일제의 만행을 변명할 순 없다.
물론 한승조는 오선화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심정은 일본 제국 군대를 심정적으로 편들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일을 왜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그런데 백주에 처녀를 잡아다가 공창에 수용하는 만행을 국가 감독 하에 자행하고 사죄도 피해배상도 안하고 물론 배상 책임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데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그것을 묵인하고 봐줄 수는 없다.
(3)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일제강점기 찬양론
한반도가 36년(?)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발전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럴듯한 일제 침략 수긍론은 한승조의 독점상품은 아니다. 친일파가 대개 그 상품을 팔아먹으면서 일본의 수구우익 군국주의 및 국수주의 세력의 귀여움을 받아오고 있다. 한승조 이전에도 안병직 서울대학교 교수란 자가 일본에 몇 년 신세지고 있다가 그러한 논법으로 돌아서서 깜짝 놀라게 했다. 최근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과 비슷한 사례다. 한마디로 조선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깜짝 놀랄 것도 없다. 우선 그런 자의 역사관과 역사의식의 빈곤을 개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 기성세대가 역사교육이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해 시정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선 그러한 자국 민족 비하의식의 맹점을 보고 일본 우익이 노리는 점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일본의 대학에서 박정희의 평가를 두고 일본의 우익 교수와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일본 우익 교수나 일본의 극우인사의 주장은 박정희가 일본의 교육을 받은 일제의 충복이었기 때문에 잘했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는 박정희의 후속 전두환 시절로 군부 친일파의 문제를 마음대로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했지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끌면서 논쟁했다. 박정희의 권력으로 치부하고 득세하고 이익을 본 무리나 박정희 신화에 속고 있는 사람은 흔히 박정희의 공로를 들고 우겨댄다. 그들에게는 자기의 기득권 고수의 결사적 방어이기도 하다.
(4) 친일파를 비판하는 자들은 친북 공산주의자인 '빨갱이'란 매카시즘의 논법
친일파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지금까지 100년을 두고 써먹는 논법은 일제강점기는 민족중흥시대 일제 반대를 치안유지법의 국체(國體) 또는 국시(國是)위반이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도 그랬다. 특히 국가보안법이란 한국판 치안유지법 하에선 용공·친북 '빨갱이'라고 하는 매카시즘 몰이로 간단히 처리해 버렸다.
그런데 지금 천하의 악법 국보법의 공과를 실사하여 그 폐지가 눈앞에 다가오자 친일파는 나라가 망한다고 소란을 떨며 '빨갱이 타도' 타령과 친북 공산주의 추종세력 조성이라는 엉뚱한 모략중상을 한다. ‘김일성이 콩밥이 맛있다고 했는데 너도 콩밥이 영양가가 있다고 하니 똑같은 놈’이라는 식의 세상에서 누구나 웃을 억지로 사람을 잡으려 들고 실제로 많은 사람을 잡았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인사나 당파에게 할 말이 궁해지면 ‘말이 많은 놈은 빨갱이’라는 논리 아닌 억지를 쓰는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의 매카시즘에서부터 일본의 수구 우익의 논법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우익이 이론적 대부로서 나카소네가 찬양해 마지않은 일본의 외교관이자 해양세력 유착론이란 지정학(地政學)책인 ‘전략적 사고란 무엇인가?’(日本中央公論社)를 쓴 오카사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그가 펴낸 ‘요시타 시게루(吉田茂)와 그의 시대’(PHP文庫)에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을 패배하게 하기 위해 한 처분을 두고 그를 공산주의 추종자, 즉 '빨갱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일방적 양보로서(일본을 불리하게 하는 소련의 참전 결정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 인용자) 그 배경에는 루즈벨트와 그 측근에 대(對) 소련 친근감, 혹은 측근의 공산당원을 통한 컴민테론(communitarian 공산주의 사회단체의 일원)의 정략이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오카사키의 책 20쪽 인용).”
그들 일본 제국주의 우익 국수주의 세력의 비위를 거스르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도 '빨갱이' 내지는 그와 유착한 용공분자로 몰려버린다. 기막히게 편리하지만 궤변적인 논리를 결한 무지막지한 논법이다. 힘을 배경으로 한 이 논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고 망신시키고 괴롭혀 왔는가?
일본 제국주의 잔재의 청산과 일제 찬양 친일파 잔당의 청소가 안됐기 때문에 온갖 궤변이 난무하면서 사람들의 올바른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이것을 그저 친일파의 마지막 발악으로만 봐 넘기기엔 그 한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한상범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첫댓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