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병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서 노동의 강도는 줄어들었지만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시 섬유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영국의 수공업자들이나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펼친 적이 있다.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여기에 편승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기 마련이다. 자동화와 경영합리화의 여파로 실직한 어느 사람이 낚시터로 유원지로 전전하면서 하루해를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배에서는 꼬르록 소리가 수시로 신호를 보내왔다.
“삶은 계란이 왔어요~!”
눈이 번쩍 뜨였다. 고픈 배는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래, 삶은 계란…!’이란 말이 비수처럼 다가왔다. 그는 왜 이 말에서 전율을 느꼈을까. 그의 심중을 보다 정확히 헤아리기 위해 ‘삶은 계란’을 영어로 옮겨 본다. 계란은 알겠는데 ‘삶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boiled egg 혹은 fried egg, 아무래도 그 정도의 일에서 그가 큰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옮긴 영어는. “Life is an egg!” 였다.
‘삶은 계란’과 통하는 맥이 보이는가.
‘삶’은 아무래도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이라는 본질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는 뼈저리게 실직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 평소 보아왔던 계란에서 삶의 이치를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자, 그럼 그가 계란의 모양이나 속성에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깨달았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유추해 본다.
1. 계란은 왜 둥근가? 그리고 깨어지기 쉬운 계란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까. 인생의 운전대를 잡을 때는 세상사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조심조심 나아가야 한다.
2. 노른자와 흰자가 하나의 울타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상반되는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야 한다. 노른자가 중요하다 하여 이것만 취하면 삶에,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3. 열을 받으면 세상 만물이 녹아서 다 유연해지는데 계란만은 굳어진다. 사는 동안 어떤 경우에도 열 받지 말아야 한다. 굳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 유연하게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4. 값은 싸지만 계란만큼 완전한 식품은 없다. 연봉이 적고, 하잘것없는 직책의 삶을 산다 할지라도 사람은 존귀한 존재이다. 자존심으로 열등감에 대한 방어벽을 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존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5. 자율이냐, 타율이냐! 남이 깨면 후라이, 내가 깨면 생명이요, 부활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기에 언제나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6. 부화 시 어미닭은 고른 온도 유지를 위해 알을 가끔씩 굴린다. 이때 계란이 탁구공처럼 둥글기만 하다면 실수로 둥지를 벗어났을 때 계란은 멀리멀리 도망을 가버린다. 타원형인 것은 곧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일생을 살면서 어찌 일탈을 꿈꾸지 않으랴. 그렇더라도 곧 자신이 세운 가치, 자신이 있어야 할 본분의 위치로 되돌아가야 한다.
7. 부화 시 빈틈이 없는 계란 속에서 병아리가 꺼내달라고 껍질을 두드릴 때, 어미닭은 때맞추어 쪼아 주어야 한다. 이를 줄탁동시라 한다. 아무리 성공적인 삶을 위해 발버둥치더라도 당겨주는 이가 없다면 그는 성공할 수 없다. 반대로 선배가 아무리 끌어주어도 그가 열과 성으로 삶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성공을 거둘 수 없다. 건전한 맨토 또는 맨티의 역할을 유지해야 한다.
직장에서 중도에 밀려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그의 실직 사유는 어느 경우 때문일까. 남과 공존하지 못하고 모가 난 대인관계 때문인지, 혹은 이기적 행동이나 쉽게 열을 받는 성격 때문인지, 혹은 삶의 가치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탓인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으나 줄탁동시를 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세상을 창조한 이는 위대한 신이다. 그런데 이를 해석하는 쪽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은 신 못지않게 위대한 것이다. 시를 지은이는 시인이지만, 시가 보여주는 은유의 여백에 묘미를 살리는 이가 평론가이듯 말이다.
(대구일보, 2014. 7. 1)
장호병
죽순문학회장
계간문장주간
첫댓글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특히 5.!
참 재미있습니다. '삶은 계란'이 이렇게 깊은 뜻이, 역시 깨어 있는 자만이 세상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