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2일 월 흐리고 더움 (다시 세워야 할 기초들)
몸이 좀 회복된 것 같다. 기운이 없었지만 천천히 달리기도 했다. 날이 흐려 바닥에서 올라오는
우레탄 냄새도 덜했다. 지난 토요일에 영치한 사진들과 기사들을 받아 보니 강정마을에서 진행했던 평화의
인간띠잇기의 격동하는 분위기가 가슴에 북소리처럼 울린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쏟아준 그 마음의 힘이
제발 강정마을이 평화의 마을이 되도록 씨알들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성철스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스님이 된다는 것이 참 힘든 결단이고 어려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목사가 된다는 것이 오늘날 얼마나
허술하고 수월한가? 따지고 보면 스님은 물론이고 불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일 아닌가? 살생금지라는 한 계율만 하더라도 식사습관의 변화로부터 전쟁의 포기까지 전 인생과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는 혁명적인
규율이 아닌가? 그러나 내용은 빼먹고 껍데기만 그럴 듯이 포장하기는 기독교나 불교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일반 불자들뿐 아니라 스님들도 계율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 호랑이 같이 무서운 성철스님의 해인사 입구 중국집에서스님들이 계란을 얹은 볶음밥에 탕수육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드시는 것을 보고 절간 앞이라 눈치 보면서 고기 안 들어가는 스님자장을 시켜먹는 우리들만 무색해진 느낌이었으니까.
아무튼 진짜 중이 되려면 출가를 해야 한다. 부모도, 친구도, 애인도 다 반대하는 그 인연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랴. 그 후에도
행자로서 밑바닥에서부터 절간 살림살이를 다 하면서 홀로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절간이라는 곳이 지금은
좀 편해지기도 했지만 원래 산중 암자에서 한 겨울을 나는 것은 얼마나 혹독한 일이었겠는가? 저녁 9시에 잠들어 새벽 3시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예불을 드리는 생활의
반복이며 삼천 배, 만 배를 시도 때도 없이 드리는 고달픈 생활을 견디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야반도주도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붙잡지도 말리지도 않는 불교의 전통에는 굳은 심지가 깊이 박혀있다. 기독교도 원래부터 오늘날처럼 어중이 떠중이를 불러 모아 대극장에 모셔 놓고 온갖 감언이설과 각종 쇼로 청중몰이를
하지는 않았다. 세례를 받기도 어려웠고 예배의 참석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좀 상상하기 힘들지만 알란 크라이더(Alan Kreider)같은
신약학자는 성도들이 예배 때 입술을 맞추는 인사를 드렸으며 세례 때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물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수치와 타인에 대한 거부의지가 없는 이들의 관계는 도대체 어떤 관계였는지 나도 가히 짐작이 어렵다. 자기의 소유를 포기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도록 나누었고 귀족과 천민으로 엄격히 구분된 신분사회에서 그 계급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한 형제와 자매가 되게 했다. 가히 무서운 혁명적인 동지들이요 반역적인 동맹이었다. 무엇보다도 신자에 대한 처형이 공고된 살벌한 사회에서도 목숨을 걸고 이 ‘이단적이고
반사회적인 신앙’을 받아 들였다. 나는 불자가 되는 좁은
길을 읽으면서 다시금 나 자신의 허망한 불철저함과 나태함을 반성하게 된다. 내가 개척자들로 돌아가면
다시금 개척자들의 신앙과 신조를 정비하고 더 철저한 규율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호령을 듣는 것 같다. 엄격한
계율로 신앙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관용이란 이름의 나태함과 묵인이란 이름의 불성실함으로
공동체의 기초는 부식되고 파쇄되어 버리는 것일 거다. 개척자들과 함께 공생적인 관계를 맺어갈 기초공동체의
성격을 잘 규정하면 개척자들이 엄격한 신조와 정신을 따르는 공동체가 될지라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비전이 이끌어가는 수도자들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처음부터는 제대로 하지
못했을지라도 그 길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