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1 동국대학교 문창과 수시 합격자 김승리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2021 수시에 동국대랑 서울예대 두 곳만 넣었는데 서울예대에 먼저 떨어지고 오늘까지만 해도 멘탈이 나가 있던 상태였어요. 동국대는 그냥 없다 치고 수능 공부에 몰두하고 있던 차였는데요……. 정말 붙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서 괜히 상심하지 않으려고 솔직하게 말하면 발표 날짜도 몰랐어요. 4시에 합불 확인하라는 문자 보고 알았는데 볼까 말까 고민하다 한 시간 훌쩍 넘기고서야 합격 확인해서 이거 쓰고 있네요. 얼떨떨하고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아서 꿈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는 운문부이고 1년 조금 넘는 기간 고도를 다녔어요. 처음부터 운문이었던 건 아니고 산문으로 시작했다가 운문으로 바꾼 경우예요. 산문은 한 번 쓰기 시작하면 호흡이 길어지는 게 답답해서 그만뒀었는데 배워보니까 개인적으로는 운문이 더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저는 올해 초랑 중반쯤에 슬럼프가 크게 왔었어요. 과제량만 봐도 제가 슬럼프 기간이 아닐 때는 일주일에 5편 이상은 쓰려고 노력하는데 슬럼프 기간에는 한 주에 하나만 보내거나 하나만 보내기 너무 민망해서 아예 안 보내거나 했어요. 창원에서 서울까지 4시간 버스 타고 딱 토요일 하루 수업받는데 돈도 아깝고 지금 내가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했었어요. 그런 마음이 더 자존감을 갉아먹고 방황 기간만 늘렸었던 것 같아요. 저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무식하게 그냥 계속 글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같은 내용인 시를 쓰고 또 쓰고 이건 정말 원장님께 한 말씀 듣겠다, 싶은 것도 과제로 올렸어요. 끝물에는 친구들이 이 정도면 원장님 몰래 너 혼자 원장님이랑 연애 중인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도 할 정도였어요. 과제를 20편 30편 올린 적도 있거든요. 사실 다 입시에는 못 쓰는 글이었지만요. 그래도 무작정 ‘한다’는 게 정말 중요해요. 원장님께서 수업 중에 하신 말씀이 있는데 ‘너희들은 단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그게 다 티가 난다.’는 말씀이셨어요. 너무 힘들 때 저는 그 말씀을 붙잡고 버텼어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실력이 단지 하루의 게으름만으로 없던 게 될 수도 있다는 거 만큼 무서운 사실이 없었으니까요.
사실 합격 후기를 쓰라는 말에 조금 고민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정말 좋은 예시가 아니거든요. 아무리 시집을 읽어도 독서일지 하나 쓴 게 없고 인장쓰도 산문 쓸 때는 나름 썼지만, 운문으로 전향하고 나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내신도 굉장히 낮아요. 4년제 입학할 성적이 전혀 아닌데… 참 신기하죠. 동국대라니. 저는 1년 내내 내신도 시늉처럼 챙기고 정말 시만 썼어요. 일주일에 수요일, 금요일 과제를 올리면 5개에서 10개는 올리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무슨 이상한 시가 나오든 간에 신경 안 썼어요. 사실 원장님께서는 합격에 있어 숫자를 믿지 말라고 자주 그러셨지만 저는 고도의 합격률을 내심 믿고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시를 쓰는데 설마 그 높은 고도 합격률이 나 한 명을 못 합격시키겠어? 하고요. 결과적으로는 꿈도 꾸지 못하던 동국대학교 수시 합격으로 이어졌지만, 확실히 좋은 예시는 아니죠.
하지만 제가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건 앞서 말했듯 저는 이상한 글, 정말 실패한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그냥 과제로 올릴 만큼 저를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솔직히 제가 고도 처음 들어와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게 내가 방금 쓴 작품을 그대로 프린트해서 모두에게 나눠주고 그걸 모두가 보는 앞에서 원장님이 하나하나 가감 없이 피드백해주시는 거, 과제도 가끔 애들 보라고 프린트해서 나눠주시는 거였어요. 그런데 저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내가 많이 늦었다는 자격지심이 있었고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 서울에서 창원 왕복 푯값과 학원비까지 충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스스로가 입시를 질질 끌어선 안 된다는 강박이 심했어요. 그래서인지 남들에게 내 시를 보이는 게 쪽팔리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그대로 덮여버린 거 같아요. 비단 태도에서만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도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꺼리지 않았어요. 다들 풍경 시 같은 거 써서 우수작을 받는 동안 저는 항상 한정적인 공간인 ‘방 안’만 썼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속에의 감정이나 나만의 느낌을 시적인 문장으로 풀어내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실패를 하려면 되도록 크게 실패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탄생한 제 우수작들을 보면 확실히 풍경이나 장면을 보고 묘사한 작품보다는 제가 느낀 바를 저만 알 수 있도록, 하지만 시적으로 쓴 작품이 더 많아요. 그것도 처음엔 너무 생각이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점점 쌓아 올리다 보니 나아졌어요.
서울예대 불합격 하고 울면서 원장님께 카톡 드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제가 동국대를 가네요. 사실 아직도 안 믿기고… 당장 누군가 그거 잘못 올라간 거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만큼 이해가 안 가요. 동시에 조금 아쉬움도 있어요. 서울예대 시험에서 쓴 작품은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정말 잘 쓰고 온 작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작품으로 서울예대에 합격했었으면 하는 미련이 남지만 그렇다고 동국대학교가 계속 아쉬울 학교는 아니잖아요. 저는 당연히 제 입시 결과에 만족하고 있고 이번 일이 제 꿈을 이루기까지의 아주아주 작은 초석이란 사실을 깨우치려고 해요. 사실 공부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거니까요. 합격 문구를 보는데 갑자기 원장님의 그 말씀이 떠오르더라고요. 서울예대 수시에 막 떨어졌을 때요. ‘너는 2020년 고도에서 가장 열심히 한 애야. 그러니까 너는 꼭 될 거야.’ 기억도 안 나실 듯한 그 말씀이 저한테는 내심 가장 피폐하던 시기에 큰 지지대가 되었나 봐요. 정말 감사합니다. 고도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 저마저도 알 수 없는 깜깜한 길을 보며 고도문예창작원의 그 누구도 불안정하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글을 쓰는 매일 자기검열을 거치고 원장님의 도움을 받아 저만의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창원에서 서울까지 길이 참 험하고 머네요. 서울에 살았다면 학원에 들러 직접 인사드렸을 텐데, 카톡으로만 전해드린 마음이 너무 아쉽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걸 보는 다른 문창과 입시 준비생분들도 모두 고생하신 만큼 좋은 결과 얻을 수 있으시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이상, 별거 없는 합격 후기였습니다. 총총.
첫댓글 먼길이 뜻깊은 길이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