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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티-외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1972)
들뢰즈와 가타리, 최명관, 민음사, 1994(원 1972) 608쪽.
Deleuze et Guattari, 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Minuit, 1972, p. 494.
제1장 욕망하는 기계들 Les machines désirantes 7-59 [몸의 기능] [의식의 역량]
제2장 정신분석학과 가족주의: 신성가족 Psychanalyse et familialisme : La Sainte famille 60-162.
* 들뢰즈가 주제로서 제기한 목차(2장 2절) 속의 내용들을 소개한 것과 달리 2장 2절의 제목이 이 절의 내용 전체를 말해준다. 프로이트가 스스로 범한 착오들을 세 가지를 지적한다. 들뢰즈가 프로이트를 세가지 문헌을 가지고 비판하면서, 간단히 말하면 정신분석학은 자기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본다. 여기에 벗어나는 것이 스키조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살아가는 과정이 틀 속에 갇혀서 또는 그 틀에 따라서 사는 것, 즉 회고적 삶을 사는 것, 지시와 계율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다. 삶 또는 생명의 흐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산과 창조의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이 삶이 꼭 대상으로서 완전과 절대를 필요로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 사는 길, 달리 말하는 길, 달리 행동(실천)하는 길이 널려있다는 것이다. 이런 삶, 의식의 내재성이 달리 해보려는 아우성(함성)이 실재성이며, 현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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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fantasme)은 기원이 없는 존재, 원인이 없는 사건으로 등장하는 것과 같다. 닮음(상동)과 달리 비슷함(상사)이 있다고 여긴다. 생물학적으로 상동과 상사로 구별하는 것으로 맞대응 시킬 수 없지만, 의식에서 원본 없이 모방체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원본을 닮은 모방체와 달리 자기 생성과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속하는 실재성으로서 개인 또는 개체의 것이라기보다 종 또는 집단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환영과 모방체(simulacre)는 같은 것이 아니다. 둘 모방체는 그래도 상상작용 범위 안에서 스스로 생성과 지속이 있지만, 환영은 의식의 대상화로서 상징 또는 추상의 형체를 띨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 주의자들의 오류는 이 환영을 추상적 대상화의 가능성을 실재성에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외디푸스 삼각형은 이런 의미에서 환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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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이트의 세 텍스트 91 - Trois textes de Freud 66-80,
[* §2.2.1. 첫째 텍스트(1911): 슈레버 사례(Le Président Schreber)]
2.2.1.1. 오이디푸스화 L'oedipienisation. -
2.2.1.2. 법원장 슈레버의 망상의 분쇄 Ecrasement du délire du président Schreber -
2.2.1.3. 정신분석이 아직도 경건한 점 En quoi la psychanalyse est encore pieuse -
문제가 우선 실천적이라는 것, 무엇보다도 치료의 실천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맹렬한 외디푸스화의 과정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 (66) - [외디푸스와 또는 외디푸스 제국은 치료사례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들뢰즈는 3가지 텍스트를 분석한다. 세 작품이란 ‘슈레버 사례’(1911), ‘한 아이를 때린다’(1919), ‘끝난 분석과 끝날 수 없는 분석’(1937)이다.]
플레히지히(Paul Emil Flechsig, 1847-1929) [슈레버의 주치의]
슈레버 사례의 막대한 정치적, 사회적 및 역사적 내용에 대해서는, 마치 리비도가 이런 것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양,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성적 논증와 신화적 논증만이 원용되고 있는데, 전자는 성욕과 가족 콤플렉스의 용접을 조작하는 것이요, 후자는 무의식의 생산적임과 “신화들 및 종교들의 교화하는 힘들”의 적합을 정립하는 것이다.(67)
이 후자의 논증에서... 그러면 이렇게 가정된 적합이 “상층(haut)”으로 향하는 비유적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는 반대로 “하층(bas)”으로 분석적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67)
이 전제[가정된 적합]으로부터 융(C. G. Jung, 1875-1961)은 가장 확산되고 가장 영적인 종교성으로 인도되고, 프로이트는 가장 엄격한 무신론을 확고히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공통으로 가정된 적합을 해석하기 위하여, 융은 신적인 것의 본질을 긍정하는 것 못지않게, 프로이트는 신의 존재를 부인할 필요가 있었다. (68)
(그리고 사람들이 무의식의 것으로 간주한 유명한 죄책감의 감정들이 없다면 프로이트의 분석은 무엇인 되겠는가?) (68)
그(프로이트)의 등 뒤에는 교회와 정신분석의 화해를 준비하는 데로 나아갔다. 그 순간에 교회는 자기 자신의 정신분석가를 형성하게 될 것이고, 또한 사람들은 운동의 역사 속에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아직 경건하다! 맑스(Marx)의 위대한 선언을 상기하자: 1]신을 부인하는 사람은 이차적인 것만을 행한다. 그는 인간의 존재를 제시하기 위하여 또 신의 자리에 인간을 놓기 위하여 신을 부인하고 있다. 2]그러나 인간의 자리가 완전히 다른 곳에, 즉 인간과 자연의 공연성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낯선 존재, 자연과 인간을 저 넘어 존재”에 근거하는 물음의 가능성을 여전히 존속하게 하고 있다. 이 자는 더 이상 매개물, 즉 신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매개를 통해서 신의 존재의 부정에 이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무의식의 자가생산의 영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68) - [1)전자의 무신론자는 상층의 신의 지위에 인간을 올려놓으려 하며, 신적 지위를 누린다고 여기는 조작능력에 힘입어서 기계론에 빠진다. 그러나 2)후자의 무신론자(범신론자)는 자기 생성이기에 자기의 활동의 영역의 새로운 위상(관계의 상황)에서 형이상학적(메타담론 - 사건담론)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이 위상은 개인의 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생기는 그 넘어는 유신론자의 절대자와 다른 것이다. 1)전자의 입장은 데모크리토스적 입장이면 2)후자의 입장은 스피노자의 입장이다. (40NKA)]
왜냐하면, ... 프로이트 그 자신은 사회적 관계들과 형이상학적 관계들 전체를 나중에 또는 저넘어(un par-après ou un au-delà)로서 제기했지만, 욕망이란 이들(나중에와 저넘어)을 무매개적으로 투여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69)
[* §2.2.2. 둘째 텍스트(1919): On bat un enfant, 69 ]
2.2.2. 결여[부족]의 이데올로기: 거세 L'idéologie du manque : castration 69
나중에 나온 프로이트의 다른 텍스트, - 여기서는 외디푸스가 이미 “핵심적인 콤플렉스(complex nucléaire)”로서 제시되고 있는데, 한 어린이가 매를 맞는다(1919)를 분석해보자. (69)
외디푸스 제국주의는 부재에 근거한다. 왜냐하면 결국 소녀에게서 가정된 환영(fantasme)의 세 시기로부터 이기 때문이다. ... 소녀에게 상정되는 세 시기 중, 첫 번째 시기는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나타나지 않은 시기요, 두 번째 시기는 아버지가 “전혀 애매함이 없이 분명하게” 모든 불에 타오르고[최: 환하게 빛나고 있다], 세 번째 시기는 아버지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은 시기이다.(69)
한편으로 프로이트는 환영 집단적 성격을 순전히 개인적 차원에 환원시키기를 숙고하기를 바란다. ... 다른 한편 환영의 다양한 변형들은 그 용도가 엄격히 배타적이어야 하는 이접[관계]로 조직화되어야 한다. 여성적 환영은 세 시기이며, 마지막 시기는 “소년들이 선생에게 매를 맞는다.”이며, 남성적 환영은 두 시기이며, 마지막 시기는 “내 엄마가 나를 때린다.”이다. 오직 하나의 공통의 시기는 (소녀의 둘째시기와 소년의 첫째시기) 애매함이 없이 두 경우에서 아버지의 우선성을 확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존하지 않는(inexitant) 유명한 시기이다. (69) - [소녀와 소년이,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버지의 위력을 아는 시기(2살)이다. - 그런데 왜 현존하지 않는(inexitant)이란 말을 붙였을까? 들뢰즈는 이 시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 붙인 것일까? 이런 사정은 프로이트에서도 외디푸스 등장이나 거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결국 [소년이든 소녀든 자기의 성을 수용하게 된다] 간단히 “자기 성에 대한 수락(assomption du sex)”이 있다. 공통의 어떤 것, 거대한 남근, 겹칠 수 없는 두 측면(두개의 성)에 대한 갈망(Manques, [부족과 이중적 의미])이란 순수히 신화적이다. 갈망은 부정신학의 일자(l'Un)와 같은 것이다. 갈망이 욕망 속에 결여(manque)를 도입한다. 갈망은 각각에게 하나의 목표, 하나의 기원, [한쪽을 포기한] 체념의 길(cours résigné)로 고정시킨 배타적 계열(남, 여)들을 발산하게 한다. (70)
그 반대를 말해야 할 것이다: 두 성 사이에 공통점이 없다는[반대(견해)를 말해야 할 것이다.] ... 이 반대를 말하기 위하여 프로이트는 하나의 개념[장치] 즉 양성(兩性)개념을 마련한다. .. (70-71)
멜라니 클라인(M. Klein, 1882-1960)의 뒤를 이어 몇몇 분석가들은 여성 성기의 무의식적인 힘들을 부분적 대상들과 흐름들에 관련시켜 적극적인 성격들로서 규정하려 했을 때,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약간의 관점의 이동은 신화적 거세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고 성기가 거세의 의존한다고 하는 대신에, 거세를 부차적(2차적)으로 성기[기관]에 의존하게 하였는데, 이런 관점의 이동이 프로이트에게서 큰 반대에 부딪힌다. (71)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성기는 결여로부터라야 또는 처음의 결여로부터라야 이해될 수 있지, 그 역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본래 정신분석적인 오류추리(paralogisme)가 있다. (71) (40NKA)
거세에서도 외디푸스화에서도 무의식[내재의식]을 거세하였고, 그러고 나서 거세를 [다시] 무의식[내재의식] 속에 주입한 것이다. .. 무의식[내재의식]은 외디푸스도 모르지만 거세도 모른다. 부모도, 신들도, 법률도, 결여도 모르는 것처럼. (71) [내재의식 = 다양체 – 욕망하는 생산]
여성해방운동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거세당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당신들이 지겨워요. ... 여성해방운동들은 좀 애매하기는 해도 해방 요구 전체에 속하는 것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즉 그 운동들은 무의식 자체의 힘, 욕망에 의한 사회 터전의 공급, 억압적 구조들의 제거를 간직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71-72)
2.2.3. 환영 전체는 집단의 것이다 Tout fantasme est de groupe. - 73
“한 어린이를 때린다, 어린이들이 매를 맞는다.”라고 하는 환영에 되돌아 가보자. 이것은 전형적으로 집단의 환영이다. 이 환영에서는 욕망이 사회 터전과 그 억압적인 형태들 자체를 공급한다. (72)
[기록영화] 북위 17도(Le 17e parallèle: La guerre du peuple, en. 17th Parallel: Vietnam in War. 1968), ... 해병들의 방탕(Les crapules de Marines) (73)
사회체에 의해서 남색을 당하거나 당하기를 욕망하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73)
[집단환영과 개인환영의 차이 3가지] 73-74
집단환영의 용어가 (장 우리(Jean Oury)의 주위에, 라 보르드 팀의 업적들 속에) 제도적 분석의 관점에서 만들어졌을 때, 맨 처음의 과제는 개인환영과 집단환영의 차이를 밝히는 것이었다.
첫째, 집단환영은 사회터전을 현실적인 것으로만 규정하는 “상징적(symbolique)” 분절들과 분리될 수 없는데 반하여, 개인환영은 이 사회터전 전체를 “상상적(imaginaire)” 자료들(des données) 위에 포개놓았던 것이 분명해진다. (73)
[둘째] 개인 환영은 그 자체 현존하는 사회터전에 연결되어 있기는 하나, 이 사회터전을 상상적 성질들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개인 환영의 상상적 차원은 죽음 충동에 대하여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 반대로 집단환영의 혁명적 극은 제도들 자체를 가사적인(mortelle) 것으로서 경험하며 살아가는 힘 속에, 죽음 충동을 참된 제도적 창조성이 되게 하면서 욕망과 사회터전의 분절들을 따라 제도들을 파괴하거나 변화시키는 힘 속에 나타난다. (74)
셋째, 개인 환영은 “나”를 주체로서 가지고 있는 점이다. .. 그러나 집단환영은 이제 충동들 자체, 그리고 충동들이 혁명적 제도와 더불어 형성하는 욕망하는 기계들만을 주체로서 갖는다. 집단환영은, 각 주체가 그 인격적 자기 동일성이 제거되었으면서도, 그 특이성들은 제거되지 않았으므로 부분적 대상들에게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을 따라 다른 주체와 관계하고 있는 점에서 이접들을 포함하고 있다. (74)
이 두 가지 전형의 환영 즉 두 체제는, 재화의 사회적 생산이 하나의 나를 매개로 해서 그 규칙을 욕망에 과함에 따라, 또는 감정들의 욕망하는 생산이 제도들에다가 그 규칙을 과함에 따라, 구별된다. 전자에 있어서 나의 가공적 통일은 재화 자체에 의해 보증되고, 후자에 있어서 제도들의 요소들은 이제 충동일 따름이다. (75)
푸리에(Fourier)식으로 유토피아에 관하여, 그것은 이상적 모델로서가 아니라 혁명의 능동과 수동으로서이다.(75)
콜로소프스키: (프로이트와 맑스 사이) 평행론을 극복하는 유일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 왜냐하면 정서들과 충동들은 경제적 형태들 속에서 그것들 자신의 억압만 아니라, 또한 억압을 부수는 수단들을 창조함으로써 하부구조의 부분을 이루고 온갖 모양으로 거기에 현전해 있기 때문이다.(75)
[두 집단: 주체 집단과 예속집단 - 프로이트는 개인을 예속집단에 귀속시킨다. 언어의 두 차원에서처럼 이원성 형태로 도입하는 데, 그 이원성은 인위적이고 파생적이다.]
집단환영과 개인 환영 사이의 구별을 발전시켜보면, 결국에는 개인환영이 없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차라리 두 종류의 집단, 주체 집단과 예속집단들이 있다. (75)
프로이트의 분석이 얼마나 환영에서 배타적 이접의 방향들만을 유지하였고....(75) 유사-개인적 환영의 특성을 지닌 이원성 ... 이 이원성은 인위적이고 파생적이며, 집단 환영에서 언표된 것과 언표를 집단적으로 행하는 작용자들의 직접적인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76)
[§2.2.3. 셋째 텍스트(1937): 끝난 분석과 끝날 수 없는 분석(Analyse terminée et analyse interminable)]
[프로이트는 말년에 치료의 분석이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이 중요한 문제에는 어떤 독기(난제)가 끼어있다. 들뢰즈는 이것이 리비도로서 무의식을 암시한다. 양적으로 설명 안 되는 질적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2.2.4. 흐름으로서 리비도 La libido comme flux 76 -
한편으로 억압적 요양원, 즉 합법적 병원, 다른 한편 계약적 정신분석, 이 둘 사이에서 제도적 분석[우리와 가타리]은 자기의 어려운 길을 가려고 노력한다. 처음부터 정신분석적 연관은 가장 전통적인 부르주아 의학의 계약적 관계의 틀에 맞추어 꾸며져 있다. 제3자를 배제하는 척하는 것, 정신분석이 우스꽝스럽게 새로이 정당화한 돈의 위선적 역할, 시간 속에서 소위 말하는 제한 ... (76)
프로이트의 세 번째 텍스트, 종결된 분석과 종결할 수 없는 분석(1937)(76) .. “유한한 분석, 무한한 분석”으로 번역할 필요는 없다... (77)
[프] 치료는 더욱더 종결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가고 있다. .. 욕망의 경제학 속에는 질적 요인들이 있다. 바로 이것들이 치료의 자애가 되는데, 프로이트는 자기가 이것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음을 뉘우치고 있다. (77)
질적 요인들(facteurs)중의 그 첫째는 거세의 “바위(le roc)”이다. ... 둘째는 갈등을 일으키는 질적 소질 ... 셋째는 위치화 할 수 없는 저항의 종류.... (77)
사실 여기서는 욕망의 현상 중의 가장 본질적인 것, 즉 여러 가지 질을 가진 리비도의 흐름이 문제가 된다. 앙드레 그린(André Green, 1927-2012))의 ... 세 가지 유형의 “임상(séance)”이 있는데, 이 유형들 중에 첫 두 가지는 분석에 대한 금기를 포함하고 있고, 셋째것 만이 분석에 있어서 이상적 임상을 구성한다. (78)
제1전형 (점착성, 히스테리 형태의 저항) .. 과거의 언급은 없다. 꿈은 가공적이다. ..
제2전형 (유액성, 강박관념 형태의 저항) .. 전이 속에 정박하지 않는다.
제3전형 이 전형의 특성들은 좋은 분석을 정의한다. 환자는 “시니피앙의 연쇄를 구성하기 위해서 말한다 ... 이런 점에서 이 해석은 지각된 의미작업이기에 언제나 회고적(rétrospective)이다. 이것이 의미했던 것은 그러니까 그것이었다(C’était donc cela que ceci voulait dire)....” (78)
2.2.5. 흐름의 반항 La rébellion des flux 78
[프로이트의 약점은 치료가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즉 치료의 불충분성에 있다. 이 불충분성에 대한 예로서 도착자와 정신분열증자를 들고 있다. 그런데 히스테리와 강박자들도 질적 경제에 매여 있다.]
여기서 심각한 것은 프로이트가 치료 과정을 절대로 의문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프로이트로서는 의문시하기에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78)
그리고 반대로 리비도의 흐름들이 더러 치료에 저항할 때, 이것은 자아의 저항이라기보다 오히려 욕망하는 생산 전체의 요란한 아우성(clameur, 함성)이다. 우리는 도착자가 잘 외디푸스화 되지 않음을 알았다. ... 우리는 분열자가 외디푸스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는 영토화 외부에 있고, 그 흐름들을 사막에까지 옮겨갔기 때문이다. (79)
사람들은 치료의 좋은 조건이 어떤 것인지 묻는다. 외디푸스에 의해 막혀진 체 있는 흐름,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온전한 대상 하에 포섭된 채 있는 부분대상들, 신화적 장소에 투사된 채 있는 흐름-절단들, ... 다의적 연쇄들, ... 무의식, ... 연결적 종합, ... 이접적 종합, ... 연접적 종합, ... 왜냐하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러므로 그것이었다(C’était donc cela que ceci voulait dire)”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므로”를 외디푸스와 거세 위에 짓눌러 놓고는 덮어놓고 이것들을 결론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79)
그러나 이것이(거세와 외디푸스화) 욕망하는 생산의 다음과 같은 아우성(clameur)을 침묵하게 하기에 충분한가? 우리는 모두 분열자이다! 우리는 모두 도착자이다! 우리는 모두 너무도 끈끈한 또는 흐르는 리비도이다… 우리는 이렇게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탈영토화한 흐름들이 우리를 운반했던 거기에…[이렇게 되었다]. (80)
치료는 외디푸스화의 길을 선택했는데, 이 길에는 온통 찌꺼기로 덮여있다. 반대로 정신분열화의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를 치료로부터 낫게[해방] 했음이 틀림이 없다.(80)
(40NKA) (옮, 5:24, 56UKH) (6:30, 56UME) (7:34, 56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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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1895(39살) 히스테리 연구(Studien über Hysterie)(안나 O양)
1900(마흔넷)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 1900; L'Interprétation des rêves 1900)
[#1901, 도라사례: Fragment d'une analyse d'hystérie (Dora) dans Cinq Psychanalyses, fr. tr. M Bonaparte and Loewenstein, PUF. : 도라사례(히스테리, 1901 연구, 1905년 수록)
1905(49살)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Drei Abhandlungen zur Sexualtheorie, 1905; Trois essais de la sexualité, tr. B. Reverchon-Jouve, NRF)
[#1907 쥐인간사례: 강박증, 1907 치료, 1909 발표. Remarques sur un cas de névrose obsessionnelle (l'homme aux rats), dans Cinq Psychanalyses, fr. tr. M Bonaparte and Loewenstein, PUF. ]
[#1909: 꼬마 한스 사례, Analyse d'une phobie d'un petit garcon de cinq ans: Le Petit Hans, (1909) - 한스, 즉 그라프(Herbert Graf, 1903-1973)는 오페라 연출가로 살았다. 그라프 어머니 올가(Olga Hönig)는 프로이트의 손님이었다.]
1910 정신분석학에 대하여(Über Psychoanalyse 1910) 즉 정신분석학의 다섯 강의(Über Psychoanalyse; fr. Cinq leçons sur la psychanalyse, 1910) 1909년 미국 클라크 대학에서 발표한 다섯 강의를 소개했다. - [치료의 의미] - [도라, 쥐인간, 한스, 늑대인간 사례, 슈레버, - 투탄카멘의 무덤과 연관하여 “파라오의 저주”와 비슷한(상사) 효과의 이야기 일 뿐이다. (56UME)]
1911(55살) 슈레버 사례 Remarques psychanalytiques sur l'autobiographie d'un cas de paranoïa (Le Président Schreber), dans Cinq Psychanalyses, fr. tr. M Bonaparte and Loewenstein, PUF. : 슈레버사례(파라노이아, 1910년 분석, 1911년 수록) 첫째 텍스트
‘슈레버 사례’(1911),
[#1914 늑대인간: 부유한 러시아 청년(Sergeï Petrov-Pankieff, 1886-1979): 늑대 인간(Wolfsmann, 분석 시작(1910-1914) - 발표 1918.)]
1919(63살) (Das Unheimliche, 1919)(섬뜩함, 무시무시함, 불쾌한, 낯선) [The uncanny, (Ger. Das Unheimliche - "the opposite of what is familiar")] [낯설고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우리 속에 있는 어르렁거림, 즉 무의식적 욕망. 이성이 잠들면 등장하는 그것인데 그것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상아가죽과 같이, 살려야할 것이다. 자꾸 보면 이쁘고 가까이 하면 할수록 사랑스럽다. 그게 욕망이라는 실체이다.]]
1919(63살) 「한 아이를 때린다 On bat un enfant」(1919) 둘째 텍스트(1919):
‘한 아이를 때린다(한 아이가 매를 맞는다).’(1919),
1923(67살) 자아와 이드(Das Ich und das Es, 1923; Le Moi et le Ça) - 세 위상으로 정립.
1937(81살) 「끝난 분석과 끝날 수 없는 분석」(1937)[셋째 텍스트(1937): Analyse terminée et analyse interminable]
‘끝난 분석과 끝날 수 없는 분석’(1937)이다.
1938(82살)에 나찌 정권이 그를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박해하였기에, 그는 런던으로 추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아테네를 떠나고 1년 이상 살지 못했다. 프로이트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스토아적 마감이 필요했다. 그 나이에 어딜 간단 말인가! (45VMF)]
1939(83살) 프로이트 영국에서 세상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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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 프랑스 철학자, 학파(l’École sociétaire) 창설자. .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독일 공산주의 혁명가, 혁명적 사회주의자, 철학자, 언론인, 역사가. 자본론 제1권: 자본의 생산방식(Das Kapital. Buch I: Der Produktionsprocess des Kapitals, 1867)
1847 플레히지히(Paul Emil Flechsig, 1847-1929) 독일 신경해부학자, 신경병리학자. 라이프찌히 대학교수, 재판장 슈레버(1842-1911)의 주치의. “플레히지히 다발(Le faisceau de Flechsig)”
1856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1875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스위스 정신의학자, 분석심리학의 개척자.
1882 클라인(Melanie Klein 1882-1960) 오스트리아 출신 영국 정신분석가.
1905 클로스프스키(Pierre Klossowski, 1905-2001) 소설가, 수필가, 철학자, 번역가, 화가. 먼 폴란드 가계.
1921 프리단(Betty Naomi Goldstein Friedan, 1921-2006) 미국 여성주의자, 기자, 수필가. 신비화된 여성(The Feminine Mystique, 1963),
1924 우리(Jean Oury, 1924-2014) 프랑스 정신과의사, 정신분석가. 제도적 정신치료의 주장자.
1925 샤뜰레(François Châtelet, 1925-1985)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정치철학자. 1948년 철학교수자격. (ENS가 아닌 것 같은데, 맑스주의자)
1925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1927 그린(André Green, 1927-2012), 카이로서 고등학교, 파리대학 의학부, 프랑스 정신의학자, 정신분석가. Narcissisme de vie, Narcissisme de mort (1983), Le travail du négatif (1993)
1930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
* Libido(라틴어): 문자 그대로 «욕망(désir), 욕정(volupté) »을 의미한다. .
- 의학에서 성적 욕망의 감정(Sentiment du désir sexuel, en médecine).
- 정신분석학에서 성적 충동의 에너지(Énergie de la pulsion sexuelle, en psychanalyse).
* 라 보르드 진료소(La clinique de Cour-Cheverny, dite clinique de La Borde), 1953년에 쟝 우리가 세웠다. / 꾸르 슈베르니(Cour-Cheverny) 오를레앙과 투르 사이(블르와 남쪽)에 있는 진료소. 제도적 심리치료( psychothérapie institutionnelle.)
* 북위 17도(Le 17e parallèle: La guerre du peuple, en. 17th Parallel: Vietnam in War. 1968), 26 septembre 1968 출시. - 1968년에 나온 프랑스 기록 영화. 이방/이벤스 부부(Marceline Loridan-Ivens and Joris Ivens. - 1968 미국이 점점 곤경에 빠지는 시기에 베트남 인민들이 해방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 이방/이벤스(Georg Henri Anton "Joris" Ivens, 1898–1989) 네델란드 기록영화 작가.
- 마르셀린 이방/이벤스(Marceline Loridan-Ivens, née Rozenberg; 1928–2018) 프랑스 작가, 영화제작자. 폴란드 유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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