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김민지가 되자>
1. "여기 알바생들은 왜 다 이름이 김민지야?”
오랜만에 짠 과자가 먹고 싶어 집 앞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였다. 계산대 앞에 술에 취해 발음이 꼬부라진 술주정뱅이 하나가 알바생을 붙잡고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아 왜 김민지냐니까. 거 내가 여기 맨날 오는데 평일 일하는 사람들이랑 주말 일하는 사람들이랑, 전부 이름이 김민지잖아.”
내 계산을 빨리 안 해줘서 조바심이 난다기보다는, 알바생이 불쌍했다. 취업준비생이던 시절 나도 여러 알바를 전전했는데, 편의점도 그 중 하나였다. 식당 홀 서빙이면 사장님이나 주방 이모들이 도와주기라도 하지, 편의점은 한 번 진상이 걸리면 정말 답이 없다.
나는 이름이 다 같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같은 명찰을 돌려 쓰는 거였다. 아마도 평일 오후 알바생의 이름이 김민지던가 할 거였다. 주말 알바생들의 명찰은 보통 없었다. 알바생이 당황해하면 내가 끼어들어 대답할 심정으로 기회만 엿보고 있는데, 알바생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새로 들어온 것 같은, 처음 보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 알바생은 곤란해 하는 기색도 없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야 모두 이름이 김민지니까요.”
의문을 종식시키는 아주 간단한 대답이었다. 진상을 상대하는 것 치고는 단호한 것이, 조금 이상한 답변 축에 들었다. 그러나 앳된 얼굴의 알바생을 보면서 아마도 편의점 알바가 처음이라 당황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술주정뱅이는 술에 취해 사고판단이 흐려진 뇌로도 뭔가 의문점을 잡아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따지고 들었다.
“아 글쎄 내가 봤다니까. 평일 야간에 일하는 그, 뭐냐, 사장님도 김민지고 방금 전까지 여기서 일하던 남자 알바생도 김민지고, 다 김민지란 명찰을 달고 있잖아!”
“그러니까 정말 이름이 다 김민지라니까요, 손님.”
한 손에는 포스기를, 한 손에는 참이슬 병을 잡은 알바생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술주정뱅이는 끈질기게 말을 걸어 댔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전부. 다. 이름이. 김 민지에요.”
일종의 평행선을 보는 것 같았다. 영원히 만날 일도 타협할 일도 없을 대화였다.
다행히 술주정뱅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치가 보이는지 씨근거리며 비틀비틀 걸어나갔다. 나는 알바생의 신선한 대처가 마음에 들었다. 허니버터칩 하나를 올리며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2. “와. 단호하네. 잘 했어요. 저런 진상들은 저렇게 당해봐야 돼.”
알바생은 머쓱하게 웃었다.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들리고 알바생이 대답했다.
“아니에요. 틀린 말도 아닌 걸요, 뭐.”
“네?”
“틀린 말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이름이 김민지에요. 참 신기한 우연이죠?”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싶어 알바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알바생 또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눈을 피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아니, 그러면 진짜로 전부 이름이 김민지라는 거에요?” 하고 묻자 알바생은 또 천연덕스럽게 “그렇다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이 알바생이 능숙한 거짓말쟁이인건지, 아니면 그저 나를 놀리기 위해 하는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물론 알바생의 말이 사실일 확률도 존재했지만,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섯 명의 이름이 모두 똑같이 ‘김민지’일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
“참, 재미있는 농담이네요.”
“농담 아닌데. 천 오백원입니다. 할인, 적립 하시나요?”
알바생이 말을 바꾸려 들었다. '장난이 심하네.'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카드를 주며 나는 계속 말을 걸었다.
“내 이름도 민지라서 알아요. 흔한 이름이죠? 주말이나 야간은 명찰 만들기 귀찮아서 같은 명찰 돌려 쓰는 거잖아요.”
내 이름이 '민지'라는 부분에서 알바생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뚫어지게 한 번 바라보았다. 피곤해 보이는 눈매 아래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재빨리 결제를 끝낸 뒤 카드를 되돌려주며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대답했다.
"아니요. 모두 이름이 김민지가 맞아요. 야간이며 주말에 일하는 남자 알바생까지 전부 김민지에요. 신기한 우연이죠?"
신기한 우연이라기보다는 소름이 돋았다. 살면서 김민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만 일하는 편의점이 어디 있을까? 하물며 남자 중에서 김민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알바생이 나를 골탕먹이려고 한 건지, 아니면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편의점을 나섰다.
'그래. 알바생이 거짓말을 한 거겠지. 진짜겠어?'
하지만 계속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3. 주인공의 이름 또한 민지였다. 편의점에서의 사건으로 그녀는 예전 자신의 친구-동명이인이었던 김민지를 떠올린다. 자주 포차에서 술을 마시며 한탄을 내뱉던 친구였다.
“나는 내 이름이 싫어. 너무 흔해. 흔한 이름이면 오래 산다지만, 너랑 나도 그래- 이제 더 이상 ‘초등학교 김민지1’ 이라거나, ‘고등학교 김민지’ 이렇게 저장되는 굴욕은 피하고 싶어. 1반 김민지는 전교 1등이고 옆반 김민지는 예쁘다는데, 넌 뭐니. 이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이름엔 힘이 있다지. 이런 이름은 기억에도 남질 않아. 넌 만화나 소설 주인공 이름이 김민지인걸 본 적 있어?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나 연예인 중에서는? 기억에 각인될 만한 이름이니? 흔한 엑스트라한테나 써 주는 이름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너는 유민지잖아. 민지란 이름도 순우리말이고……. 민지에도 급이 있다는 걸까?”
주인공은 친구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한다.
"그렇지 않아. 나도 고등학교 때 유민지가 있어서 항상 비교당하며 살았다구."
"있잖아, 20대 여자 10명이 모이는 좌담회에 가면 김민지가 두 명이야. 우연치고는 소름돋지 않니? 열 명 중에 두 명이 김민지라고! 하다못해 투표를 하러 가도, '김민지가 너무 많아'라고 중얼거리면서 주민등록번호까지 일일히 확인해야 하니...."
"그런 적은 나도 있어, 택배를 보내는데 판매자 이름이 김민지더라고."
"그런 우연이면 재밌기라도 하지. 김민지가 너무 많아서 학원 수납 때마다 전산마비를 일으키는데, 거기에 전화번호 뒷자리를 더해도 나와 전화번호 뒷자리가 같은 김민지까지- 너무 많아. 너무 흔해. 왜 내가 김민지라서 수납 담당 직원한테 미안해해야 돼?"
4. 개명을 하지 않고 김민지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던 친구는, 요즘 종교를 믿고 있다고 갑자기 먼저 연락을 한다. 오랜만에 연락에 반갑게 나가지만, 역시나 포교를 위해 만난 것이었다. 평범한 것을 싫어하던 친구는 광신도가 되어 있었다. "재밌잖아. 평범한 김민지로 사는 게 아니니까."
5. 종교의 이름은 ‘김민지교’. 동명이인이 많아질수록 같은 이름인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되고, 나중에는 개미처럼 군체로- 집단이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는 종교라며 친구는 이름이 ‘민지’인 주인공을 꼬드긴다.
6.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인 주인공은 거의 질질 끌려간다. 속으로는 ‘이번 한 번만 가고 연락을 완전히 끊어 버려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마주한 ‘김민지교’는 상당히 큰 건물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교주인 ‘김민지’의 말에 로봇처럼 움직이고, 울고, 광기에 빠진다. 주인공은 소름끼쳐한다. 그러나 친구는 그저 ‘다른 종교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다.’라며 주인공을 꼬드긴다.
7. 그 이후 ‘김민지교’의 끈질긴 포교가 시작된다. 그녀가 마주치거나 우연히 인연을 쌓게 되면 모두 이름이 김민지였다. 인터넷 뉴스나 게시판에는 ‘김민지교’를 조심하라는 글이 짧은 시간 올라왔다가 ‘김민지교’ 신자들의 신고를 먹고 사라지고, 주인공은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포교에 시달린 나머지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결심한다.
8. 몇 년 후, 주인공은 미국에서 한국인 2세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남자는 결혼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자신이 종교가 있다고 말하고, 주인공은 ‘설마 아니겠지’싶으면서도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남편의 한국식 이름은 ‘김민수’였다. ‘김민지’가 아니니까 다행이지 싶으면서도, 주인공은 TV 뉴스에서 [한국의 특이한 신종 사이비 종교]로 소개되는 ‘김민지교’를 다 시청하고야 만다.
9. 그리고 남편은 ‘김민지교’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김민지교’는 특이하게도 여성들이 더 높은 지위에 올라 있었으며, 남자들은 ‘김민수’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름이 ‘김민지’가 아니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종교 활동에 감명한 남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주인공은, 교주의 2인자가 자신의 친구였던 ‘김민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초점없는 눈빛으로 교주의 손짓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마치 명령 없이도, 이름이 같기 때문에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10. 그리고 저 멀리 친구와 마주친 주인공은 친구가 웃으며 움직이는 입모양을 바라본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목소리는 안 들리지만 분명 친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도 이제 김 민 지.’
불행 : 편의점에서 진상이 편의점 알바생에게 행패를 부리고 있음. (1)
다행 : 알바생이 잘 대처함. (1)
불행 : 이름이 흔한 이름인 ‘민지’라 불편함. (3)
다행 : 성은 유씨임. (2)
불행 : 친구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함. (4)
다행 : 이번 기회에 생각하고 있었던 이민을 갈 용기가 났으며, 이민을 감. (2)
불행 : 남편이 사이비 신자인 것 같음. (4)
다행 : 이름이 ‘김민지’는 아닌 것으로 보아, 아직 사이비 신자임을 재고할 여지가 남아있음. (2)
불행 : 남편이 사이비 신자가 맞았으며, 사이비 종교 행사에 강제로 끌려가게 됨. 남편 성을 따르는 미국 관습에 따르면 나도 김민지임. (5)
다행 : 남편과 이혼하면 됨. (1)
첫댓글 -처음에는 동명이인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사건을 다루는 줄 알았습니다. 뒤로 갈수록 사건의 스케일이 커지네요. 좋은 설정입니다.
-다만, 스케일이 커지면 그에 걸맞게 인물의 대화나 배경 설명, 상황 제시 등이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여러 개의 사건 - 알바, 김민지교, 미국 생활 등이 잘 연결이 안되는 듯합니다.
-김민지교라는 것이 어떻게 결성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왜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요? 교주는 누구인가요? 앞부분에서 그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