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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나아감 * 초대 * 송영 4,26
고백와 사죄 * 신앙고백 고백의 기도 사죄의 선언 감사의 찬양 46
말씀으로 오심 성경 마태 4:12-17 말씀:빛의 오심 헌신의 기도
감사로 응답 감사의 찬양 248 감사의 예물 감사의 기도
파송 * 파송의 찬송 502 * 축도 |
12 요한이 넘겨졌다는 것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떠나갔다. 13 나사렛을 버려 두고,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에 있는 해변 가버나움으로 들어와 살았다. 14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되어진 것이 성취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말하기를 15 “스불론 땅과 남달리 땅, 요르단 건너편 바다의 길 이방/민족들의 갈릴리여 16 어둠에 앉아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또한 죽음의 땅과 그늘에 앉아 있는 자, 그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그 때부터 예수는 선포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회개하라. 왜냐하면 하늘 나라가 이미 까왔기 때문이다.” |
1. 예수님은 포로된 백성과 함께 살며 해방시키러 오셨다 (마태복음 1-4장) 1:23 1:21 4:17
2. 예수님은 고난받으심으로서 하나님나라를 세우신다. 1) 유대에서 갈릴리로 (12절) 요한복음 4:1-2
갈릴리로 물러 가심 (2:14,22).
2)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12절) 누가복음 4: 22
3. 예수님은 복음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에 생명의 빛을 비춘다. 1) 가장 비참하고 죄가 있는 곳에 사신 예수님 (14-16) 이사야서 9:1-2
에배소서 5:3-4,8,14
2)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여 백성에게 빛을 비추심 (16,17절) 이사야 9:3 – 생육하고 번성 17절 23절 베드로후서 1:19 에배소서 3:17 요한복음 1:9-12 에배소서 5:11 |
여러분에게 부모님이 유산을 많이 남겨 주어서 한국에 있는 어느 동네에서든지 집을 살 수 있다고 합시다. 우리 교회가 있는 신림 봉천동, 대학동으로 오겠습니까? 아니면 학군이 좋은 강남에 좋은 아파트 동네, 수입억 아 파트로 이사가겠습니까? 부자 동네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가난한 동네로 이사오시겠습니까? 대개 학군이 좋고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살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예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온 세상을 가진 부자지만, 가장 가난하고 힘든 동네로 이사가서 사셨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자라서는 같은 갈릴리, 가버나움에 들어가서 사셨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어둠과 죽음 가운데 사는 사람들과 같이 사셨습니다. 그들에게 빛과 생명을 비추어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생명과 빛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 살지 않고, 하늘 나라에 사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은 성령님과 함께 우리와 함께 삽니다.우리 동네에 우리 집에 생명의 빛을 비추어서 생명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오늘 본문 마 4:12-17은 1장에서 시작된 마태복음 전체의 서론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오늘 전하는 복음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생명을 누립시다.
첫째, 먼저, 마태복음 1-4장 전체로서, 예수님은 죄와 어둠에 포로가 된 백성들과 함께 살면서 해방시키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둘째, 오늘 4장 본문은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복음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에 생명의 빛을 비춥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우리 영혼을 움직여 주시기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오고, 생명을 비추시는 예수님을 믿고 경험하기 바랍니다. 우리 영혼, 우리 가정, 우리 동네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1. 마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죄와 어둠에 포로가 되어 있는 백성과 함께 살면서 해방시키려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1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시작합니다. 세계는 히브리말로 톨레돗,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의 이야기입니다. 마태 복음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죄와 어둠 속에 있는 민족 가운데서 제자를 불러 모으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불러 모으십니다. 예수님의 영적 자손이 번성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마지막으로 바벨론 포로의 자손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가문을 번성하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 지역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벌써 5백년 전에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바벨론 포로의 후손으로 소개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아직 남의 땅에서 노예생활하고 있는 것 처럼 쓰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여전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비참한 상태에 있었고 사단의 포로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임마누엘”,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으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1:23). 예수라는 이름으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1:21) 로 태어났습니다. 2장에서, 헤롯왕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베들레헴의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자기 땅에서 백성들은 악한 왕 아래에서 포로생활이 계속됩니다. 헤롯은 사단의 하수인 노롯을 합니다. 예수님이 헤롯을 피하여서 도망하여 이집트로 도망하였다가 오는 생활에서 포로들에 대한 해방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집트로 들어갔다고 온 것은, 호세아서가 예언한 앗수르의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어린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하는 일을 예수님을 통해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3장에서 예수님은 죄가 있는 백성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시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임명받습니다. 4장에서, 사단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온 백성을 포로로 잡아서 억압하던 사단, 헤롯을 조종하던 사단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여 사단을 이기시고 이제, 사단에 눌린 바벨론 포로의 후예들을 해방하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포로의 후손들을 해방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4장에서, 구체적인 한 땅, 사단에게 그 백성이 포로가 되어 있는 곳에 삽니다. 백성들을 하나 하나 풀어서 자기의 백성 삼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해방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 분이 사셨습니다. 17절에 “비로소”는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그 때 시작하셨고 지금도 계속 하고 계십니다. 그 때 가버나움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시작하신 예수님은 지금은 하늘에서 왕으로 다스리면서 계속 그 나라 백성을 불러내고 예수님의 빛과 생명 가운데 살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되어서 우리와 같이 되신 예수님, 죄와 죽음, 사단의 포로가 되어 있는 우리를 해방하러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감사합시다.
2. 예수님은 고난받으심으로서 하나님나라를 세우신다.
1) 유대에서 갈릴리로 (12절)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것은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12절에,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또, 17절에서, 이 때부터, 즉 요한이 잡힌 다음부터 하나님 나라를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4:1-2에 보면, 예수님은 요한이 잡히기 전에 이미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큰 흐름에서 보면,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 사명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요한이 잡힘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다한 다음부터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2절에 “요한이 잡혔다”는 것은 다른 말로, “요한이 넘겨졌다”고”고 번역됩니다. ” 넘겨진다는 것은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위해 넘겨지신다는 데 많이 쓰입니다 (17:22. 그리고 26,27장에만 15번이나 나옵니다). 요한은 유대 지역, 즉 헤롯왕궁과 성전과 제사장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세례를 주었고 전도했고, 거기서 구속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나중에 유대 예루살렘에서 전도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아서 그 곳을 피해 갑니다. 갈릴리로 가셨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고난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예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계속 이어갈 제자들을 불러서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는 것은 2장에 4번이나 도망가셨다는 뜻으로 쓰인 단어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동방박사들이 헤롯을 피해 (2:12,13) 도망갔고,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도 헤롯이 있던 유대를 피해 예수님을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가고, 또 갈릴리로 도망갔습니다 (2:14,22). 이제 어른이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역시 갈릴리로 도망합니다. 악한 정치나 악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받아 고망치는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애매히 고난받으며 도망치는 일이 있을 때 우리 예수님이 당한 고난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2)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12절)
12,13절은 “갈릴리로 떠나, 나사렛을 버려두고, 가버나움에 들어와 거주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2: 22,23절에,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갈릴리로 떠나 나사렛에 들어와 거주했다”고 하는 말씀과 비슷합니다. 떠나, 들어와, 거주했다, 세개의 단어가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 요셉은 예수님을 데리고 갈릴리고 들어갔지만, 예수님은 어른이 되어, 고향마을 나사렛을 버려두고 떠납니다. 사실은 고향 사람들에게 쫓겨나 도망한 것입니다. 어른인 예수님은 주로 가버나움에서 일했지만, 나사렛 회당에 가서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는그 때 고향사람들은 그 입으로 나오는 은혜로운 말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22절에, “이게, 요셉의 아들 아니냐”하고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영접을 받지 못한다”고 꾸짖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그 동네 끝에 있는 큰 절벽으로 데리고 가서 죽이려고 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피해서 떠났습니다. 고향에서 쫓겨난 것은 예수님의 고난을 미리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 가서 많은 백성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였듯이 예수의 길은 번성의 길입니다. 또 다른 번성을 위해 고향을 떠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의 주요 사역지 베이스 캠프는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은 나사렛으로부터 북동쪽으로 30Km 정도 가서, 갈릴리 호수 해변의 항구가 있는 마을입니다. 거기서 우선 제자들을 양성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사명의 길은, 처음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 도망하는 길이었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죄인들에 의해 추방당하면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다가오시는 고난받으신 예수님을 감사하고 찬양합시다. 우리도 주님 나라를 위해 힘든 일을 당할 때 마다 주님도 고난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참으면서 사명을 다하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복음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에 생명의 빛을 비춥니다.
1) 가장 비참하고 죄가 있는 곳에 사신 예수님 (13-16)
셋째, 예수님은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에 생명의 빛을 비춥니다. 그것을 위해 가장 비참하고 죄가 있는 곳에 사셨습니다. 오늘 마태 복음은 예수님이 들어와 산 동네 가버나움을, “스블론과 납달리의 해변지역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그 지역에 사신 이유는 성령님이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이사야서 9:1-2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5 스불론 땅과 남달리 땅,
요르단 건너편 바다의 길
이방/민족들의 갈릴리여
16 어둠에 앉아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또한 죽음의 땅과 그늘에 앉아 있는 자,
그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700여년 전 쯤에 이 예언을 했습니다.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합니다. 먼저 732년에 갈릴리지역 사람들을 잡아갔습니다 (왕하 15:29 ). 11년 지난 다음, 721년에 모든 이스라엘을 명망시켰습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메시야가 오시면, 가장 먼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먼저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갈릴리에 먼저 하나님의 빛이 올 것으로 예언했습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북쪽 지방이고, 원래 이스라엘 12 지파가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가 분배받았던 땅입니다. 이 지역은 이방 민족 시돈에 가까이 있어서, 솔로몬 왕 때부터 이방민족이 섞여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갈릴지 지역은 경제적으로 못살고 이스라엘에서도 무시를 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곳, 가장 많은 고통을 당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서 살면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생명을 주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리 지역을, “이방”의 갈릴리라고 하는데, 거기 이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방 갈릴리는 예수님이 앞으로 구원하실 온 세상 민족과 인류를 대표하는 곳입니다. 이방지역에서 먼저 일을 시작하셔서 이방에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9에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했는데, 족속은 이방민족을 말합니다.
그 때 갈릴리 처럼 지금 온 세계 민족, 우리들도 “어둠에 앉아 있는 자” “또한 죽음의 땅과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입니다. 빛이 없고 어두워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모릅니다. 숨은 쉬는 데 죽은 것 처럼 비참합니다. 한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삽니다. 성경은 이 어둠과 죽음의 원인은 죄라고 말합니다. 에배소서 5:3-4,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가운데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음행, “간음하지 말라” 7계명 명을 어긴 죄입니다. 탐욕, “탐욕하지 말라” 10번째 계명을 어긴 죄입니다. 이 죄들이 어둠이요 (8절).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불순종의 아들에게 임하는 진노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14). 예수님은 지금도 다른 곳이 아니라, 어둠이 있는 곳에 찾아 오십니다. 죄가 있는 곳에 찾아오십니다. 교회는 아주 깨끗하게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죄와 어두움에 살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어둠과 죽음이 있는 곳에 비추었다는 것은, 너희는 죄 가운데 어둡다. 너희는 죄 때문에 죽어 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 마음, 죄와 비참이 있는 곳에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신 가버나움은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2)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여 백성에게 빛을 비추심 (16,17절)
16절은 예수님이 가버나움 지역에 거기 사시니까 빛이 비춰 졌다고 합니다. 에수님이 오셨을 때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16절은 구약 이사야서 9:1-2절을 인용한 것인데, 신약이 구약성경의 한 부분을 인용할 때는, 의미에서는 앞뒤 부분도 함께 인용합니다. 이사야 9:3는 말합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둠이 짙은 가버나움 지역에 오신 것은, 그곳에서 번성하게 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온 인류가 새롭게 번성하게 되는 일을 어둠이 짙은 지역 갈릴리에서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안에서 빛과 생명이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갔습니다. 어둠과 죽음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빛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16절에 흑암에 사는 사람들이 큰 빛을 본 것은, 그들에게 빛이 비취었기 때문입니다. 비취었다는 것은 “빛이 떠올랐다”는 말입니다.
이 빛은 민족들에게 비취지만, 16절에, 오직 그 백성만 빛을 보았습니다. 많은 민족들이 이방인이 있지만 오직 그 마음에 예수님이 떠오른 사람만이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이방의 갈릴리에 비취던 빛은 오늘 우리 대한민국에도 좋은 교회 성도들에게도 떠올랐고 우리는 여기 왔습니다. 이 빛 속에 생명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생명을 비춰서 주십니까? 17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전파하시면서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던 빛은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비춰졌습니다. 23절에,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 말씀과 함께 그들에게 빛이 되고 생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이 있는 생명을 받았다는 나타내기 위해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시지는 않으시고, 어떤 사람의 병은 고쳐 주고 어떤 사람의 병은 그대로 두셨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쳐 주셨고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은 갈릴리 가버나움에 살지 않고 하늘에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십니까? 예수님의 몸은 하늘에 있지만 영으로는 우리와 함께 같이 게십니다. 교회가 복음의 말씀을 바로 전파하는 곳에 예수님은 함께 계시면서 생명의 빛을 전해 주십니다. 베드로후서 1:19는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고 잘 들을 때, 우리 마음에 샛별이신 예수님의 빛이 떠오릅니다.
말씀으로 빛이 우리에게 비추일 때 어떻게 하면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까? 17절에서, “회개하라.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지금도 에수님은 우리에게 믿고 회개하라 합니다. 믿음이 먼저 오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회개합니다. 엡 3:17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계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거주하였다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주신 말씀을 믿고 회개할 때, 가버나움에 거주했던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거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거주하면서 빛을 비추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말씀을 믿고 회개하는 것은 바로 예배에서 일어납니다. 오늘 지금 이 예배 시간에 우리가 들은 예수님, 다음 예배시간에도,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잘 듣고 믿읍시다.
요한복음 1:9-12는 말합니다.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참 빛이 가버나움에 비추었고 오늘도 그 빛은 비추이고 있습니다. 예배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빛으로 찾아오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들에게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계속 비췹니다. 빛 가운데서 살아갑시다. 에배소서 5:11은 권합니다. “너희는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에배소서 5:18 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빛된 말씀을 붙잡고 나갈 때 성령의 충만으로 살아가기 축복합니다. 계속 죄악된 삶을 버리고 빛 가운데서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우리 바벨론 포로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 위해 고난받으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모든 죄를 버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과 빛 가운데서 살아가는 축복이 넘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