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자유주의자들이 고문과 사형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 살인자는 세상의 질서를 침해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존재로 여겨졌다.
세상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는 범인을 고문하고 공개 처형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질서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셰익스피어아 몰리에르의 시대 런던이나 파리 주민들에게
끔찍한 처형을 참관하는 것은 인기 있는 오락이었다
한편 오늘날 유럽에서 살인은 인간성이 라는 신성한 본성에 대한 침해로 여겨진다.
요즘 유럽인들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고문하고 처형하지 않는다.
그 대신 범죄자들을 최대한 '인도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처벌함으로써,
인간으로서 그의 존엄을 지키고 심지어 회복시킨다.
살인범의 인간성을 존중함으로써 모든 사람은 인간의 존업성을 다시 되새기고, 질서는 회복된다.
우리는 살인범을 보호함으로써 그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을 신성시하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 일신론적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인의 자유롭고 신성함 본성에 대한 믿음은
자유로고 영원한 개인의 영혼을 믿었던 전통 기독교에서 직접 물려받은 유산이다.
그런데 영원한 영혼과 창조주 하느님에 의지하지 않을 경우,
자유주의자로서 사피엔스 개개인이
뭐 그리 특별한지를 설명하기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려워진다..
또 다른 중요한 분파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다.
사회주의자들은 '일간성'이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이 신성하게 보는 것은 개별 인간의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체 호모 사피엔스종이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가 개개인의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 반해,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추구한다.
사회주의자에 따르면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인간의 보편적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 속성에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부자가 가난한 자에 비해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우리가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 본질 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가 된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일신론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모든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시론적 확신의 개정판이다.
전통적 일신론의 속박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본주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가장 유명한 예는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다.
나치가 다른 인본주의 분파와 구별되는 점은
'인간성'에 대해 진화론에 깊이 감화된 좀 색다른 정의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치는 다른 인보주의자들과 달리 인류를 보편적이고 영원한 무엇이 아니라
진화하거나 퇴화할 수 있는 , 변하기 쉬운 종으로 보았다.
인간은 초인으로 진화할 수도, 인간 이하로 퇴화할 수도 있었다.
나치의 주된 야망은 인류의 퇴화를 막고 진보적 진화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나치가 인류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 아리아인을 보호육성해야 하고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정신병자 같은 호모 사피엔스의 퇴화된 종류들은
격리하거나 심지어 근절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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