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을 마치고
이인규/소설가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보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유일한 수입이었던 대필이 챗GPT의 영향으로 서서히 사양 사업으로 전락하면서 나의 우울한 날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딥시크라는 새로운 기술이 전격적으로 나오면서 그간 나의 음주·가무비, 막내딸 용돈 등의 대필은 마침내 끝이 나려는 순간이었다. 한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정치인의 연설문부터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음주 운전자의 탄원서, 반성문 등의 대필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졸지에 실업자가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위의 말처럼, 옛 어른들의 말은 확실히 맞았다. 지난해 봄, 혹시나 하고 따두었던 문해교사 3급 자격증이 올해 실전에 쓰이게 된 것이다. 작년 연말, 내가 사는 지역의 군청에서 문해교사를 모집,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나는 2월 들어서 무려 2개 마을을 맡게 되면서 생계와 봉사,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문해교사 자격증을 무턱대고 따지는 않았다. 그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지역의 시니어클럽과 군청이 연계하여 컴퓨터 사용 능력이 있는 중장년을 모집, 8개월 정도 지역 내 평생교육 프로그램과 문해교실 모니터링을 진행할 때 나도 참여한 것이다. 그때 문해교실 모니터링과 보조 교사로 일하면서 나는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대다수 어르신이 이리도 많다는 사실과 그분들의 불타는 교육열 그리고 해당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의 뜨거운 열정에 경외감이 일었다.
여러 마을, 교실을 돌아다닌 결과, 대다수 어르신(그중 여성)은 어릴 때 학교는커녕 가족의 생계를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엄청나게 고생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긴, 해방 전후와 6.25를 보낸 세대이고, 당시만 해도 지지리도 가난한 시골에서 여자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가 없다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니 내가 만난 대다수 어르신은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던 그녀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 또 원망할 수밖에.
어쨌든 풍운의 꿈을 안고 A 마을에 첫 수업을 나갔다. 내가 사는 산골도 어지간한 오지인데, 그곳 역시 우리 마을 못지않았다. 젊은이들은 모두 대처에 나갔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사는 마을은 추운 날씨에 걸맞게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도 마을회관(경로당)에서 날 맞이하는 학습자 어르신들은 매우 부산스러웠다. 마을 이장의 마을 방송에 힘입어 새로운 선생을 맞이하는 그분들은 내가 방에 들어가자, 보고 있던 TV를 껐고 수업을 위한 밥상(판)을 펼치면서 내게 따뜻한 커피를 내어놓았다. 대충 교사 소개를 마친 나는 교재 대신 들고 간 통기타를 어깨에 메었다. 어리둥절한 어르신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칠판에 ‘오빠 생각’이라는 제목을 적고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뭐야?”“뭔데”“뭐시고”하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저거 우리 어릴 때 부르던 동요 아니가?”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아, 이 마을에선 한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 90세 할머니였다. 나의 선창과 그분의 호응 그리고 이어진 한글에 서툰 나머지 어르신들의 합창으로 나의 첫 수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음 날, 우리 면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B 마을에 수업을 나갔다. 소문대로 어르신 대다수가 한글을 알고 있어, 나는 어제처럼 첫째 시간에 교재 대신 통기타로 동요와 트로트를 함께한 뒤, 두 번째 시간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로 수업을 마무리하였다. 과연 이 어려운 시가 어르신들 수준에 맞는지 의아해하는 분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그런대로 성공적인 수업이었다. 게 중에는 칠판에 글씨가 작아서 어떻게 우리 할매들이 읽을 수 있느냐고 불평과 항의하는 빌런 할머니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처음 접하는 수업방식(시 낭독과 통기타 그리고 역사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말면서 수업에 집중하였다.
실상 문해교육이란 학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을 위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다. 이는 효과적으로 말하고, 쓰고, 경청하는 능력과 다양한 일상생활에서 요구하는 문해 능력 기술을 사용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현대에는 기본 학습 능력으로써의 읽기, 쓰기, 산수뿐만 아니라, 지식, 문제해결, 위기 대응, 생활 기술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실제적 문제에 독립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또한 최근에는 단순한 읽기나 쓰기를 넘어 언어와 내용(contents), 추리 영역을 특정 상황과 원리에 맞게 활용하는 능력도 요구되어, 그 범위를 넘기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기존 문해교사의 수업방식을 뛰어넘어, 한글 수업은 물론 어르신들의 고운 심성을 끌어내기 위한 시와 좋은 글들을 소개하고, 할머니들은 당연히 트로트만 좋아할 거라는 편견을 깨면서 좋은 동요를 함께 부르며,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와 인문학을 적용할까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젊은 날, 허구한 날 술이나 마시면서 즐기던 통기타 실력과 돈도 되지 않는 작품(소설)을 주야장천 써왔던 나의 작가 경력이 이분들에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벌써 다음 주가 기다려진다.
이인규
-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 장편소설 '사랑과 절망의 이중주' 등 다수
- 디지털 음반(원) : '비와 그대' 등 8곡
- 현. 경부울문화연대 스토리위원장, 산청문인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