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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하제 팽나무
벼리가 이사 온 첫날 자기 집을 찾아가다가 말고 나에게 다가왔다. 마을 한가운데 떡하니 서 있는 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 보다. 개구쟁이 아이니까. 그것도 나무를 좋아하는 아이.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더니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할매가 이 마을에 주인이구나. 단번에 알아봤어. 잘 부탁해.”
나는 한 번도 이 마을에 주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이 주인이니까. 그런데도 벼리가 나를 주인이라고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마을에서 나만큼 오래 산 사람도 나무도 없다. 그러니까 벼리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500살이 넘었으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정확한 내 나이를 잊었다. 1919년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이다.
내가 서 있는 하제마을은 오래전에 ‘무의인도’라는 섬이었다. 조용하던 섬이 어느 날 갑자기 시끄럽게 됐다. 1919년은 일제강점기였고 3.1만세운동이 있었던 해다. 같은 해에 ‘불이흥업’이라는 일본 회사가 우리 마을을 중심으로 간척, 개간 사업을 벌였다. 간척, 개간 사업은 1923년까지 이어졌다. 개간한 땅 위에 ‘불이옥구농장’이 들어섰다. 그때 놀랍게도 하제마을이 육지와 연결됐다. 더는 섬이 아니었다. 한 번도 예상하지 않은 낯선 풍경이었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불안하기도 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뭔가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불이옥구농장에서 많은 조선 노동자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라고 일만 했던 거다. 결국,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또 내게 올라와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그때 나는 부들부들 떨다가 축 늘어진 사람을 밤새워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니까 그때 충격을 받아 정확한 나이를 잊었다. 그 이후 사람들이 나를 보고 500살이 넘었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불이옥구농장의 아픔은 서서히 치유됐다. 그러다가 1977년 우리 하제마을이 아주 떠들썩해졌다. 몇 해 전부터 우리 지역인 군산은 물론이고 전북의 다른 지역과 전남, 충남 등지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왔던 거다. 이 조그만 마을에 인구가 3,000여 명이 넘었다.
사람들이 몰려온 건 노랑조개라 불리는 개량조개 때문이었다. 320여 척이 넘는 배들이 날마다 조업했다. 또 연간 9,200여 톤이나 되는 개량조개가 전국으로 실려 나갔다. 개량조개는 노랗다고 노랑조개, 예쁘다고 명주조개, 또 특별히 해방조개라고도 불렸다. 해방되면서 갑자기 나타났다고 해서 해방조개라고 불린 거다.
바로 그때 우리 마을에 아주 독특한 아이가 이사 왔다. 이름이 벼리라고 했다. 벼리는 뼈대, 중심, 이야기나 일의 핵심이라는 뜻인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뼈대 있게 잘 살라고. 아홉 살인 벼리는 키가 작은 데 비해 팔다리가 유별나게 길었다. 그래서 마을 아이들이 원숭이라고 불렀다. 물론 나무를 잘 탔다.
벼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찾아왔다. 사실 말썽꾸러기였던 벼리는 도망가다가 숨을 곳을 찾아 내게 온 것이다. 나를 타고 올라와서는 나뭇가지 위에 숨었다. 엄마가 쫓아온다면서 말이다. 실제로 엄마가 자주 쫓아왔다. 벼리 엄마는 나무 밑에서 매번 이렇게 말했다.
“너 거기 숨은 거 다 알아. 자꾸 그렇게 속 썩이면 누나보고 영영 오지 말라고 할 거야!”
아마도 벼리에게 누나가 있나 보다. 그렇다면 벼리 식구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이 마을로 모여든 사람들 모두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웃고 울어야 할 많은 사연이. 벼리는 엄마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엄마가 돌아간 후, 그제야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나가 보고 싶어.”
벼리는 원숭이처럼 나무를 아주 잘 탔다. 20여 미터나 되는 내 꼭대기까지도 올라왔다. 꼭대기에서 멀리 지는 해를 바라보곤 했다. 저 멀리 수평선에 노을이 지는 풍경을 좋아했다. 어느 때는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곤 했다. 그때마다 누나가 보고 싶다고 했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 누나와 헤어진 모양이었다. 어느 날 벼리가 말했다.
“누나를 만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해.”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벼리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돈을 벌려면 조개를 주워야 해. 하지만 난 학교에 다녀야 하는걸.”
벼리는 학교를 싫어했다. 학교에 가기 싫다며 아침부터 갯벌에서 조개를 줍다가 엄마에게 여러 번 혼났다.
노을이 유난히 붉었던 어느 날 저녁 벼리가 누나 이야기를 했다. 노을이 바다에 빠진 듯 하늘도 바다도 갯벌도 온통 붉은 날이었다. 벼리가 나를 타고 올라오더니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오늘이 누나 생일이야.”
누나는 엄마와 벼리, 두 식구를 위해 서울에 있는 방직 공장에 취직하러 갔다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했던 거다. 누나가 취직하러 서울로 가자, 엄마는 벼리를 데리고 이곳에 왔다. 물론 돈을 벌려고 온 것이다. 이곳은 늘 일손이 부족해서 할 일이 많았으니까. 마을 사람들은 노랑조개를 캐고, 씻고, 까고, 속살을 찌고, 햇빛에 말리고, 봉투에 담아서 장사꾼에게 넘겼다. 벼리가 말했다.
“돈을 많이 벌어야 누나가 다시 돌아올 수 있어.”
그런데 얼마 후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바다가 뒤집혔다. 이상한 것은 그날 이후 벼리가 늘 혼자였다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게 올라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때는 내 나뭇가지 위에서 밤새 자기도 했다. 마치 내가 자기 집인 양 그랬다. 그러더니 어느 날 이렇게 중얼거렸다.
“언젠가부터 엄마가 나를 돌보지 않아.”
또 어느 때는 아주 슬픈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 아예 나를 유령 취급하거든.”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벼리 엄마가 벼리를 찾지 않았다. 밥때가 되어도 찾지 않았다. 또한, 벼리를 원숭이라고 부르던 아이들도 벼리와 놀지 않았다. 벼리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늘 외로워 보였다.
바다가 뒤집히고 한 달 때쯤 지났을 때 벼리 엄마가 어딘가를 갔다. 벼리가 내게 올라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엄마가 혼자 누나를 만나러 가는 거야. 내가 가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 나도 누나가 보고 싶은데 말이야.”
벼리가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자 마음이 아팠다. 벼리 엄마는 왜 혼자서 간 걸까? 그런데 그날 저녁 벼리 엄마나 벼리 누나를 데려왔다. 그렇게 서럽게 울더니 누구보다 벼리가 기뻐했다. 자기가 언제 울었냐는 듯 나무 위에서 껑충껑충 춤까지 추며 기뻐했다.
그러다가 이 마을이 또다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 주변에서 수년 전부터 새만금 간척 사업이 시작됐던 거다. 그러더니 2000년에 별안간 하제마을 북쪽이 미 공군기지 탄약고로 확정됐다. 그리고 2년 후, 2002년에 하제마을이 안전거리 확보 문제로 국방부 수용이 결정됐다. 그러니까 우리 마을이 사라진다고 했다. 탄약고가 가까이에 있어 위험하다면서 말이다. 탄약고는 총알이나 포탄, 폭발물 같은 전쟁 무기가 있는 창고라고 했다. 그렇다면 미군이 일본군처럼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인가? 또다시 기억을 잃고 싶지 않은데 어쩌지?
그 과정을 보면서 벼리가 나만큼이나 걱정하며 슬퍼했다. 벼리는 서른을 훌쩍 넘긴 어른인데도 나를 타고 올라왔다. 어른들은 웬만해선 나무에 올라오지 않는데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어떡하면 좋겠냐고 내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나도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6년에 새만금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자, 하제마을은 바다와 아주 멀어졌다. 바로 코앞에서 출렁이던 바다가 아주 멀리 쫓겨난 거다. 그렇게 바다가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생업을 잃었다. 또 쫑쨍이 도요새를 비롯해 매년 찾아오던 철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바닷가엔 갯벌을 잃은 갯것들의 시체가 즐비했을 뿐이다.
결국, 3년 후 2009년부터 마을 사람들이 하제마을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무려 664가구가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난 거다. 그때 벼리 엄마와 누나도 떠났다. 그런데도 벼리는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을 혼자 보살폈다. 하지만 바다도 갯벌도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름답던 바닷가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 많던 조개, 물고기, 새, 게, 바다 식물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그렇게 많은 생명과 함께 아름다움도 사라졌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잃어버린 거다.
저기 멀어진 바다에서 바람만 쓸쓸하게 불어왔다. 사계절 내내 그랬다. 사람들이 북적대며 시끄러웠을 땐 조용히 살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이젠 사람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았다. 땅속 깊이 뿌리를 박은 나무 처지에 사람을 따라서 마을을 떠날 수도 없고 마음만 아팠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왠지 조마조마하더니 결국엔 내게도 위기가 닥쳤다. 내가 서 있는 이 땅의 주인이 국방부라며 나를 잘라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 둘레에 군사 시설인 탄약고가 이미 들어섰으니까. 또 탄약고를 확장해야 하는데, 내가 방해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미군들이 뭔가 일을 꾸민 모양이었다.
그때 벼리가 나섰다. 여기저기 전화도 하고 찾아다녔다. 벼리는 텅 빈 마을을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나마저 사라지면 벼리가 너무 슬플 것만 같았다. 벼리는 내가 곧 하제마을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조선 태종 때부터 내가 이곳에서 살았다고 했다. 또 간척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섬을 지켰다고 했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사라지면 그 모든 기록이 사라질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마을의 진짜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주장하고 다니자 시민 단체가 도왔다. 또 하제마을을 떠났던 고향 사람들도 도왔다. 벼리에게 다시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 흐뭇한 일이었으나 이상하게도 벼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벼리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은 국방부 소유가 아니라 기획재정부 소유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국방부에서 나를 함부로 자를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를 영영 자를 수 없도록 뭔가를 하고 다녔다. 그 결과 2020년 한국임업진흥원에서 내 수령을 조사했다. 그 결과 내 나이가 537살에서 더하기 빼기 50살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최고 587살로 측정된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내 나이가 600살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600년 하제 팽나무라고 불렀다.
1년 후, 2021년 6월 나는 전북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역사적 가치가 인정된다며 소중히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내가 이 지역 사람들의 고유 생활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했다. 또 우수한 규모와 아름다운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은 자연유산이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했다. 벼리는 물론 모든 사람이 기뻐했다. 이젠 누구도 나를 함부로 벨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더니 2024년 8월 7일, 국가 지정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됐다. 이젠 나도 서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후 벼리를 볼 수 없었다. 결국, 우리 마을엔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았다. 내 앞에 있던 마을회관과 옥봉초등학교 선연분교는 물론 사람들이 살던 가옥까지 모조리 철거됐다. 포장된 빈 골목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 길도 잡목과 잡초가 우거졌다. 바다도 저 멀리 있다. 파도 소리와 나를 찾아오던 수많은 새가 그리울 뿐이다.
어느 날 한동안 오지 않던 벼리가 찾아왔다. 그날따라 내 밑동을 유심히 바라봤다. 아주 많이 못나게도 나무 밑동이 꼬이고 비틀리고 울퉁불퉁했다. 소머리만 한 혹도 여러 개 있었다. 그렇다고 부끄럽거나 창피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팽나무는 고목이 되면서 곁뿌리가 굵게 발달해서 그런 혹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팽나무에 비해 그 주름이 더 깊고 그 혹이 훨씬 컸다. 그걸 벼리가 알아보고는 그 주름과 혹을 어루만지며 수고했다고 했다. 벼리가 우리 마을로 오기 전에 나에게 있었던 일을 알아본 거다. 어떻게 알아봤을까?
그러니까 나는 1919년 일본 회사가 간척 사업을 하기 전에 계선주였다. 계선주는 배를 묶는 기둥을 말한다. 지금은 주로 쇠말뚝을 박아 사용하지만, 오래전엔 내가 바로 계선주였다. 여러 척의 배들을 나에게 묶어 놓았던 거다. 그 세월이 몇백 년이었다. 그러니까 이 마을이 섬이었을 땐, 바로 코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출렁거렸던 거다. 벼리가 물었다.
“이 상처는 수백 년 동안 배를 묶은 밧줄에 시달리다 생긴 거겠지?”
나는 나뭇가지를 흔들어 그렇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걸까? 벼리가 내 말을 알아들었다. 벼리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랬구나. 그러면 그 상처에 딱지가 앉아 이렇게 깊은 주름이 생긴 거네?”
이번에도 가지를 흔들었다. 벼리가 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역시 그랬어.”
벼리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는 다시 가지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게 슬퍼할 필요 없어. 이젠 하나도 아프지 않으니까.”
“그래도 그 흔적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게 그렇게 시끌시끌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 벼리가 갑자기 나를 타고 올라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한동안 내게 올라오지 않았었다. 아,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내 꼭대기에 오른 벼리가 한순간 어린아이가 됐다. 나를 처음 찾아왔던 아홉 살 벼리가 된 것이다. 벼리가 아홉 살 그때처럼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봤다.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사실 엄마도 누나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거야. 내가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벼리가 또 말했다.
“그때 친구들이 나를 본척만척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친구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거야.”
“그래도 내 눈에 네가 보여,”
“맞아. 유일하게 너만 나를 알아본 거야. 그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 알게 됐어.”
“그럼, 내 눈에만 네가 보인다는 거야?”
“그래, 하여간 그때 바다가 뒤집히기 전에 물이 나를 삼켰을 때, 아무래도 내가 내 몸을 잃을 것만 같아.”
이렇게 말한 벼리가 수평선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내게 물었다.
“할매는 알고 있었지?”
이젠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응. 네 누나가 이 마을을 떠날 때 내게 말해줬어.”
“그랬구나.”
그러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시끌벅적 살 땐 참 좋았는데, 이젠 모두 떠났으니 나도 떠나야겠어.”
벼리가 빨간 노을처럼 빨갛게 울었다.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뭇잎을 하얗게 덮을 때까지 울었다.
벼리는 노을이 다 지고도 내게서 내려가지 않았다. 내 나뭇가지 사이에서 고이 잠들었다. 나도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벼리는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아, 그제야 내가 잃어버린 아름다움이 바다 풍경만이 아니란 걸 알았다. 진짜 아름다운 건 사람 사는 모습이었다. 대대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말이다. 그때 내 안에서 벼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곧 사람들이 찾아올 테니까.”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그래, 나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너를 알아보고 찾아올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엔 동화작가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그랬어. 나를 소재로 동화를 쓸 거래.”
“그랬어? 아주 잘 됐어.”
우리 나무에게는 나이가 들면 나무의 정령이 찾아와 깃든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벼리가 나의 정령이다. 벼리가 나를 좋아했으니까. 벼리가 어른의 모습으로 찾아왔던 것은 아마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은 비록 사람 사는 모습을 잃었지만, 이제 나는 나무의 정령이 깃든 600년 하제 팽나무 할매다.
할매는 정령이 깃든 나무를 말한다. 또 다른 나무들이 숲의 질서를 지키도록 돕는 나무를 말한다. 그만큼 내 책임이 커졌다. 어쨌든 벼리 말대로 사람들이 찾아오면 좋겠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서있는 건 외로우니까.
1977년 벼리가 우리 마을에 들어오고, 1년이 채 안 되어 소년 하나가 바다에 빠져 죽은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멀리에서 그 소년을 바라봤다. 너무 멀어서 소년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사람이 없는 외진 곳에서 노랑조개를 캐고 있었다. 그렇다면 벼리일지도 몰랐다. 벼리는 엄마 몰래 조개를 캤으니까. 엄마가 반대해서 아예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간 모양이었다. 벼리는 돈을 벌어야 누나가 온다며 날마다 바닷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소년이 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소년이 아직 바다에 있는데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다와 갯벌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소년은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노랑조개를 캐느라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는 걸 보지 못한 거다. 소년이 있는 곳은 갯벌이 봉긋 솟은 곳이라 다른 곳보다 높았다.
소년은 뒤늦게 바닷물이 밀려드는 걸 알았다. 화들짝 놀란 소년은 나오려고 했지만 벌써 바닷물이 깊어 나오지 못했다. 이미 어두워져서 사람들 누구도 그 소년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소년이 소리쳤지만,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또 나도 가지를 흔들며 소리쳤지만,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가지를 흔드는 바람에 내 밑에 파란 잎이 떨어져 소복이 쌓였을 뿐이다. 눈물이 났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소년은 갯바위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물은 점점 차올라 결국엔 갯바위마저 삼켰다. 그리고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사람들이 해안가에서 밤새워 소년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런데 찾는 사람들 사이에 벼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죽은 소년은 벼리가 아니었다. 새벽녘에 강풍이 불고 바다가 울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소년을 삼킨 바다가 뒤집혔다고 했다.
그날 오후에 벼리가 찾아왔다. 엄마가 쫓아온다며 나를 타고 올라와 숨었다. 다행히 바다가 삼킨 소년은 벼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벼리 엄마가 쫓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 벼리 엄마는 단 한 번도 벼리를 쫓아오지 않았다. 벼리가 혼자서 숨었던 거다. 뭔가 아주 이상했지만 난 벼리가 있어 좋았다.
한 달 후 벼리 엄마가 어딘가를 가더니 벼리 누나를 데려왔다. 벼리가 엄청나게 좋아했다. 하지만 벼리 누나는 통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벼리가 이렇게 말했다.
“누나가 나와 놀아주지 않아. 아니,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아. 왜 그러지?”
또 이렇게 말했다.
“누나가 한마디의 말도 안 하고 자꾸 울기만 해. 울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2009년, 사람들이 하제마을 떠났다. 벼리네 식구도 하제마을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벼리 누나가 나를 찾아왔었다. 내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벼리를 아나요?”
내가 그렇다고 했지만, 벼리 누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또 물었다.
“혹시, 벼리가 이 나무에서 사나요?”
깜짝 놀랐다. 벼리와 내가 특별한 사이란 걸 벼리 누나가 알았던 거다. 그런데 벼리가 이 나무에서 살다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벼리 누나가 또 말했다.
“나는 그 어린 벼리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걸 알아요.”
나는 다시 깜짝 놀랐다. 그제야 벼리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벼리는 이미 죽었던 거다. 바다가 삼킨 소년이 벼리가 맞았다. 벼리 누나가 말을 이었다.
“벼리의 일기장을 봤어요. 당신을 할머니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또 자기가 죽으면 당신 안에서 살겠다고도 했어요.”
아, 벼리가 내 안에서 살고 싶었구나! 벼리 누나가 부탁했다.
“혹시 벼리가 찾아오거든 전해주세요. 내가 많이 미안하다고, 또 많이 사랑한다고 말이에요.”
나는 알겠다며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그러자 벼리 누나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안고 말했다.
“벼리야, 네가 이 나무에서 산다면 내가 사랑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잠시 후 내게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벼리 잘 부탁해요. 600년 하제 팽나무님!”
그렇게 벼리의 엄마와 누나가 떠났다. 그런데도 벼리는 내 곁에 남아 나를 지켰다. 그것이 영혼이든 귀신이든 정령이든 내게는 다 벼리였다. 나를 함께 지켜냈던 사람들이 벼리를 알아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들 마음도 벼리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그 마음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통했는지, 벼리 말대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내 이름을 걸고 문화제를 한다고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아이들까지 찾아와 시끌벅적 떠들었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건 어색하고 싫지만, 내가 다른 나무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다른 새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또 사람들에게도 좋은 뜻의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나는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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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 고향에도 팽나무가 있었지요.
결국 새만금 방조제가 마을도 사람도 모두 갈라 놓았네요.
곳곳에 오래된 나무들이 있지요
수백 년에서 천 년을 넘게 사는 나무
그나마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하는 곳이 있어서 다행인 듯 합니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사라지는 것들도 있지요
잘 읽었습니다.
동화로 그려서 더욱 순하고 진한 감동을 주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