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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5월 22일
여의도 돔지붕 아래
철새들이 모여산다.
황새, 저어새, 흑두루미, 검은머리 갈매기
제각기 짝을 이루며
선량처럼 폼을 낸다.
모두들
깃털 세워 끼룩거리는 천연기념물
우리는 이 땅
한 무리
잡새로 남아
구린내 나는 도래지
어느 늪지
찾아 떠도나.
- 이재창 「철새공화국 - 年代記的 몽타주․23」 전문, (열린시조, 1998 가을호)
*생물다양성의 날 ; 나날이 악화되는 환경위협으로부터 생물다양성 보전하고 생물자원의 가치에 대한 인식 높이려 유엔이 제정, 생물다양성(Biodiversity)=생물체들간의 다양성과 변이 및 그들이 살고 있는 모든 생태적 복합체를 통틀어 일컫는 말
*노예제 폐지의 날(Abolition Day): 마르티니크
*예멘 통일 기념일(Unity Day or National Day): 예멘
*바다의 날: 미국
*하비 밀크 데이: 캘리포니아주
*애국자의 날: 캐나다
*공작초 승상 취임의 날 (2055년 12월 31일 만기)
1104년 [음]숙종(肅宗) 9년, 남경(南京)의 궁궐이 완성됨
1126년 [음]인종(仁宗) 4년,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척준경 등을 포상함
1371년 [음]공민왕(恭愍王) 20년,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이인복(李仁復)·지춘추관사(知春秋舘事) 이색(李穡) 등에게 명하여 본조(本朝) 『금경록(金鏡錄)』을 증수(增修)하게 하였다.
1388년 [음]이성계(李成桂),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실정 장악
--(우왕 14) 5월 22일 요동정벌(遼東征伐)에 나선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李成桂)가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서 군사를 회군했다.
당시 고려의 외교는 친명(親明)에서 친원(親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고, 내부에서도 친원파와 친명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중국을 통일한 명나라가 1388년 3월 철령 이북 땅의 쌍성총관부와 동녕부 관하 지역에 철령위를 설치한다고 통고하자, 고려에서 최영(崔瑩)이 중심이 되어 명의 전초기지인 요동을 정벌하자는 요동정벌론이 제기되었다. 이에 우왕은 최영을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로 삼아 평양에 나아가 독전하게 하고 조민수(曺敏修)를 좌군도통사, 이성계를 우군도통사로 삼아 5만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하게 하였다.
처음부터 요동정벌론에 반대한 이성계는 정벌군이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 이르자 진군을 멈추고,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상의하여 4불가론(四不可論)을 상서(上書)로써 회군을 청하였다. 4불가론은 첫째,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상책이 되지 못한다.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부적당하다. 셋째,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 왜구의 침입이 증대할 것이다. 넷째, 당시 장마철이라 무기가 온전치 못하고 전염병이 돌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양에 있던 최영과 우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이성계는 5월 22일 회군을 결행하여 군대를 국내로 돌이켰다. 그해 6월에 개경을 점령한 뒤 최영을 체포해서 유배시키고 우왕을 퇴위시켰다. 처음에는 종실 중에서 국왕을 택하려 했으나 조민수·이색의 주장으로 우왕의 아들 창왕을 즉위시켰다. 그러나 조민수가 이성계파의 탄핵으로 실각하고 이성계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창왕도 폐위당하고 공양왕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이성계파가 권력을 장악하고 조선건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왕도 강화도로 쫓겨났다가 다음해인 1389년 그 아들 창왕과 함께 살해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성계는 정치적·군사적 권력을 한손에 잡아 조선창업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우왕(禑王)이 성주(成州) 온천에 갔다. 좌우군도통사(左右軍都統使)가 사람을 보내어 최영(崔瑩)에게 가서 속히 군사를 돌릴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최영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군대 안에서 헛소문이 돌기를, “태조(太祖)가 휘하의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동북면(東北面)으로 향하기 위해 이미 말에 올랐다.”라고 하였다. 군대 내부가 흉흉해지자 조민수(曹敏修)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단기(單騎)로 태조에게 달려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공이 가시면 우리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공은 이러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태조가 이에 여러 장수들을 타일러 말하기를, “만약 상국(上國)의 국경을 침범한다면 천자(天子)께 죄를 얻을 것이니, 종사(宗社)와 생민(生民)의 화가 곧 닥칠 것이다. 나는 이치를 따르는 것[順]과 이치를 거스르는 것[逆]으로써 상서(上書)하여 군사를 돌리기를 청하였으나 왕은 살펴보지 않고 최영은 또한 노쇠하여 듣지를 않으니, 어찌 경들과 함께 왕을 뵙고 친히 화와 복을 아뢰며 왕 곁의 악한 자를 제거하여 생령을 편안히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 동방의 사직(社稷)의 안위가 공의 한 몸에 달려 있으니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군사를 돌려 압록강(鴨綠江)을 건넜다. 태조는 백마를 타고 동궁(彤弓)과 백우전(白羽箭)을 메고 언덕에 서서 군사들이 모두 건너기를 기다렸다. 군중에서 이를 바라보고 서로 말하기를, “예로부터 이와 같은 사람이 있지 않았다. 지금 이후로도 어찌 다시 이런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때 장맛비가 여러 날 내렸는데도 물이 불어 넘치지 않았는데, 군사들이 건너고 나자 큰물이 갑자기 이르러 온 섬이 잠기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당시 동요에 ‘목자득국(木子得國)’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군인과 민(民)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노래하였다. 정유. 조전사(漕轉使) 최유경(崔有慶)이 달아나서 우왕에게 고하였다. 이날 밤, 우리 공정왕(恭靖王)이 그 형 이방우(李芳雨) 및 이두란(李豆蘭)의 아들 이화상(李和尙), 상호군(上護軍) 유용생(柳龍生)·최고시첩목아(崔高時帖木兒)와 함께 우왕이 머물고 있는 성주(成州)에서 〈태조의〉 군영으로 달려왔다. 무술. 우왕이 대군이 이미 안주(安州)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달려 돌아와 밤에 자주(慈州)·이성(泥城)에 이르러 영을 내려 말하기를, “정벌에 나섰던 여러 장수들이 멋대로 군사를 돌렸다. 너희 크고 작은 군사와 민(民)들이 마음을 다하여 방어한다면 반드시 크게 상을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회군하는 여러 장수들이 급히 추격할 것을 청하였으나, 태조는 말하기를, “서둘러서 가면 반드시 전투를 할 것이고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항상 군사들을 경계하기를, “너희가 만약 승여(乘輿)를 범한다면 내가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 민(民)의 오이 한 개라도 빼앗으면 역시 마땅히 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연도에서 사냥을 하면서 일부러 행군을 늦추었다. 기해. 우왕이 평양(平壤)에 이르러서 재화와 보물을 거두어들이고 대동강(大同江)을 건너 밤에 중화군(中和郡)에 이르렀다. 신축. 우왕이 길 위에서 여러 군사들이 이미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샛길을 따라 서둘러 달려 기탄(岐灘)에 이르렀다. 이튿날 아침 경성에 돌아와 화원으로 들어가니 따르는 자가 겨우 50여 기에 불과하였다. 서경(西京)에서 경성에 이르기까지 우왕을 따르던 신료 및 인민들로서 술과 음료를 가지고 대군을 맞이하는 자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최영이 맞서 싸우고자 백관에게 명하여 병장기를 들고 시위하도록 하였다.
1404년 [음]태종 4년, 금주령을 내림
1412년 [음]태종 12년, 도성(都城) 좌우의 행랑(行廊) 472칸과 돈화문(敦化門)이 완공
1422년 경상도 성주(星州) · 김산(金山) · 합천(陜川) ·거제(巨濟)에 지진 발생
1436년 [음]세종 18년, 전국 토지의 품등을 세 가지로 나누는 공법 절목(貢法節目)을 정
--황희 등을 불러서 다시 공법의 절목을 의논하게 하였다. 의논하기를,
"각 도를 나누어서 3등으로 하되, 경상·전라·충청도를 상등으로 하고, 경기·강원·황해도를 중등으로 하며, 평안·함길도를 하등으로 하고, 토지의 품등은 한결같이 도행장(導行帳)대로 3등으로 나누어, 지나간 해의 손실수(損實數)와 경비의 수를 참작해서 세액(稅額)을 정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1460년 [음]세조 6년, 이조에서 줄일 수 있는 관원과 혁파할 수 있는 관사를 기록하여 아룀
--이조(吏曹)에서 아뢰기를,
"지금 전지(傳旨)를 받들어 가히 줄일 수 있는 관원(官員)과 혁파(革罷)할 수 있는 관사(官司)를 마련하여 자세히 기록하여서 아룁니다.
종친부 녹사(宗親府錄事) 1인·부녹사(副錄事) 1인, 병조 겸정랑(兵曹兼正郞) 1인·겸좌랑(兼佐郞) 1인, 사헌부 겸감찰(司憲府兼監察) 5인, 인수부 겸부승(仁壽府兼副丞) 1인, 선공감 부정(繕工監副正) 1인·직장(直長) 1인, 군기감 겸정(軍器監兼正) 1인·겸부정(兼副正) 1인·겸판관(兼判官) 1인·겸주부(兼注簿) 1인, 승문원 겸관(承文院兼官) 9인, 의영고 직장(義盈庫直長) 1인, 장흥고 직장(長興庫直長) 1인·부직장(副直長) 1인, 경시서 영(京市署令) 1인, 주부(注簿) 1인·승(丞) 1인, 전구서 부승(典廐署副丞) 1인, 사온서 겸주부(司醞署兼注簿) 1인·겸직장(兼直長) 1인·겸부직장(兼副直長) 1인, 종묘서 부승(宗廟署副丞) 1인, 예빈시 녹사(禮賓寺錄事) 1인·부녹사(副錄事) 1인, 사재감 부정(司宰監副正) 1인·직장(直長) 1인, 사복시 소윤(司僕寺少尹) 1인·직장(直長) 1인, 사섬시 판관(司贍寺判官) 1인, 소윤(少尹) 1인·주부(注簿) 1인·직장(直長) 1인, 통례 겸관(通禮兼官) 1인·부지(副知) 이하 봉례랑(奉禮郞) 2인, 종부시 판관(宗簿寺判官) 1인·겸주부(兼注簿) 1인, 서연 보덕(書筵輔德) 1인·필선(弼善) 1인·문학(文學) 1인·사경(司經) 1인·정자(正字) 1인,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 1인·헌납(獻納) 2인·정언(正言) 1인, 한성부 겸판관(漢城府兼判官) 1인, 내자시 주부(內資寺注簿) 1인, 내섬시 주부(內贍寺注簿) 1인, 제용감 직장(濟用監直長) 1인, 경복궁(景福宮) 제거사 제강(提擧司提控) 1인, 동활인원 부녹사(東活人院副錄事) 1인, 서활인원 부녹사(西活人院副錄事) 1인, 상서사 겸승(尙瑞司兼丞) 1인·겸주부(兼注簿) 1인·겸직장(兼直長) 1인, 동요직(東窯直) 1인·서요직(西窯直) 1인, 동서요(東西窯)에 와요(瓦窯)를 합칭(合稱)하여 별좌(別坐) 2원(員)을 두고, 문소전 직(文昭殿直) 2인·내시부 사알(內侍府司謁) 1인·알자(謁者) 1인·궁위 승(宮闈丞) 1인·해관 영(奚官令) 1인, 급사(給事) 1인을 두고, 경창부(慶昌府)·도관서(䆃官署)를 혁파(革罷)하여 사선서(司膳署)에 합속(合屬)시키고, 사섬서(司贍署)를 전농시(典農寺)에 합속시키고, 도염서(都染署)를 제용감(濟用監)에 합속시키고, 제생원(濟生院)을 혜민국(惠民局)에 합속시키고, 분예빈시(分禮賓寺)·사련소(司臠所)를 합속시키어 사축소(司畜所)라 칭(稱)하고, 위의색(威儀色)을 공조(工曹)에 합속시키고, 금화 도감(禁火都監)을 한성부(漢城府)에 합속시키고, 전선색(典船色)을 전운색(轉運色)에 합속시키고, 복흥고(福興庫)를 예빈시(禮賓寺)에 합속시키고, 주자소(鑄字所)를 교서관(校書館)에 합속(合屬)시키소서.
위의 항목에서 서연관(書筵官)은 5원(員)을 두되 실관(實官) 3인·겸관(兼官) 3인으로 하고, 경창부(慶昌府)·도관서(䆃官署)·사섬서(司贍署)·도염서(都染署)·제생원(濟生院)은 전 관사를 혁파하되, 맡은바 물건이 염려되면 다른 관사로 옮겨 붙이고, 때때로 혹시라도 소홀하게 되는 것은 혁파한 관사의 관원을 택해서 합속(合屬)시킨 관사에 옮겨 보충시키며, 그 숫자를 줄인 것에 준(准)하도록 하소서. 사축소(司畜所)에는 별좌(別坐) 3원(三員)을 두고, 별감(別監) 6인도 옛날 그대로 두며, 전운색(轉運色)에 별좌(別坐) 4원(員)을 두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1460년 [음]세조 6년, 경연(經筵)·집현전(集賢殿)·보문각(寶文閣)·수문전(修文殿)을 혁파함
--"사관(史官)은 선임(選任)을 신중하게 하는데, 단지 《소미통감(小微通監)》374) 과 제술(製述) 한 편(篇)만을 시험보니, 비단 재주를 시험하는 것이 너무 가벼울 뿐만 아니라 제술(製述)할 때에 혹시라도 모람(冒濫)되는 폐단이 있을까 합니다. 청컨대 지금부터 제술(製述)을 하지 말고 춘추관(春秋館)·예문관(藝文館)·이조 당상(吏曹堂上)으로 하여금 의정부(議政府)에 모여서 《강목(綱目)》·《좌전(左傳)》·《송원절요(宋元節要)》 중에서 1서(書)를 강(講)하여 세 곳에 통(通)한 자를 임명하소서. 또 경연(經筵)·집현전(集賢殿)·보문각(寶文閣)·수문전(修文殿) 등의 관(官)은 이름 뿐인 관직으로 직임(職任)이 없으니, 청컨대 이를 혁파하소서. 또 의정부 녹사(議政府錄事)도 체아(遞兒)로서 권무(權務)의 직(職)에 제수된 자를 의정부 녹사(議政府錄事)라고 칭하니 분별이 없는 듯합니다. 청컨대 체아(遞兒)의 직함(職銜)을 가각고 부녹사(架閣庫副錄事)로 개칭(改稱)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註 374]《소미통감(小微通監)》 : 송(宋)나라 강지(江贄)가 《통감》의 내용을 간추려 엮은 것.
1541년 [음]중종 36년, 주세붕(周世鵬)이 풍기 군수가 됨
1586년 [음]선조 19년, 평양에서 석탄을 발견함
1592년 [음]선조 25년, 여주 싸움에서 승리한 조방장 원호(元豪)에게 가자(加資)함
1608년 [음]광해 즉위년, 이필영이 세자책봉사로 명나라에 감
1614년 [음]광해 6년, 해서 지방 해적에 대비하여 백령도에 수사(水使)를 설치함
1623년 [음]인조 1년, 강화에 유폐된 폐세자(광해군의 아들)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힘
--폐세자(廢世子) 이지(李祬)가 위리 안치된 상황에서 땅굴을 70여 척이나 파 울타리 밖으로 통로를 낸 뒤 밤중에 빠져 나가다가 나졸에게 붙잡힌 사실을 강화 부사(江華府使) 이중로(李重老)가 치계하여 보고하였다. 이에 즉시 별장 권채(權綵)와 중사(中使) 박홍수(朴弘秀) 및 데리고 있던 나인 막덕(莫德)을 붙잡아 들여 국문하였다. 막덕이 공초하기를,
"폐세자가 처음 위리 안치되었을 때 폐빈(廢嬪)과 같이 죽기로 약속하고는 미리 멱목(幎目)과 악수(幄手)를 만들어 놓고 15일이 넘도록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어느날 폐빈과 함께 목을 맨 것을 여종이 바로 풀어 주어 구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번에 가위와 인두가 서울에서 보내져 왔는데, 이것을 보고는 마침내 굴을 뚫겠다는 생각을 낸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손으로 직접 땅을 파서 빈으로 하여금 자루에 흙을 담게 하고는 방 안에 옮겨 두었는데, 시작한 지 26일만에야 일을 끝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도망쳐 나와 마니산(摩尼山)으로 가려다가 가야산(伽倻山)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1681년 [음]숙종 7년, 《현종실록(顯宗實錄)》을 고쳐 쓰게 함
--선조(先朝)의 실록(實錄)을 개수(改修)하는 데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을 총재관(摠裁官)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 김석주(金錫胄)·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 이단하(李端夏)·대제학(大提學) 이민서(李敏敍)·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만중(金萬重)을 당상(堂上)으로 삼고, 한성부(漢城府)에 국(局)을 설치하고 도청랑(都廳郞)·등록랑(謄錄郞) 각 8원(員)을 두었다
1762년 [음]영조 38년, 동궁(사도 세자)의 허물을 아뢴 나경언(羅景彦)을 처형함
1768년 [음]영조 44년, 가뭄으로 인해 가벼운 죄수를 석방함
1776년 [음]정조 즉위년, 윤선거(尹宣擧)와 윤증(尹拯)의 관작을 추탈함
1776년 [음]정조 즉위년, 임금의 이름과 같은 이산(理山)은 초산(楚山)으로, 이산(尼山)은 이성(尼城)으로 고침
1776년 [음]정조 즉위년, 무당을 금지하여 도성 밖으로 쫓아냄
1780년 [음]정조 4년, 옥중에 열병이 심하여 전의감과 내의원으로 하여금 구료하게 함
1784년 [음]정조 8년, 궁궐의 각 문(門)을 관리하는 감문 절목(監門節目)을 정함
1785년 [음]정조 9년, 《일성록(日省錄)》을 편집하는 뜻을 알림
1786년 [음]정조 10년, 왕세자(정조의 맏아들)의 시호를 온효(溫孝)에서 문효(文孝)로 고침
1787년 [음]정조 11년, 《문원보불(文苑黼黻)》을 완성함
1788년 [음]정조 12년, 한성의 전염병자를 진휼함
1791년 [음]정조 15년, 장용영의 수기(手旗)에 장용(壯勇)이란 글자를 쓰게 함
1792년 [음]정조 16년, 평안도 양하진(楊下鎭)을 혁파하여 백마산성(白馬山城)에 소속시킴
1798년 [음]정조 22년, 임금에게 보고하지 않고 금은점을 허가해준 호조판서를 파직함
1798년 [음]정조 22년, 호서 지방에 서양학(西洋學)을 퍼뜨린 이존창(李存昌)을 처형하게 함
--지평 윤함(尹涵)이 아뢰기를,
"이단(異端)에 대한 폐해를 성인이 홍수(洪水)와 맹수(猛獸)에 비유하였는데, 지금 이른바 서양학(西洋學)이라는 것이 바로 그중에서 더욱 심히 패려한 것입니다. 연전에 내린 조정의 금령이 더없이 신엄(申嚴)하였고 보면, 이제 사설(邪說)이 영원히 지식되었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듣건대, 호서 지방에는 그 무리들이 실로 번성하여, 곳곳에서 서로 무리를 불러 모으고 곳곳에서 사람을 속여 꾀면서 궁벽한 도서 지방이나 산속 토굴 사이에 자취를 숨기고 있는 자들이 도리어 지난날보다 더 치성하고, 심지어는 도성 안에도 그 무리들이 계속 늘어나서 처단하기 어려운 염려가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곧 다름이 아니라, 전하께서 비록 금한다고는 하시나 뿌리를 뽑지 못하여 그들의 소굴이 아직도 남아 있음으로써 이렇게 오래갈수록 더욱 치성해지는 것입니다. 아, 저 천리(天理)와 인기(人紀)를 멸절시키는 사설이 아직도 감히 이 천지 사이에 제멋대로 행해지고 있으니, 또한 어찌 하늘이 노염을 품고 음양이 화기를 잃는 일이 없겠습니까. 청컨대, 전하께서는 먼저 그들의 소굴부터 속히 깨뜨릴 방도를 진념하시어, 그들로부터 유혹당한 저 백성들로 하여금 회오(回悟)할 바를 알도록 하셔서 음양의 화기를 도양(導揚)하는 한 가지 도움으로 삼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호서 지방의 소굴에 대해서는 대신이 이미 말하였으니, 절로 의당 거조(擧條)를 낼 것이다. 그 밖의 경외 인민들의 미혹을 깨우치고 지식시키는 방도에 대해서는 각각 유사가 있으니, 유사의 직무 수행이 성실하지 못할 경우에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로 대신은 그들을 논박하여 감죄하고, 너희들은 그들을 규핵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좌의정 채제공이 아뢰기를,
"신의 생각에는 반드시 먼저 이존창(李存昌)을 베어 죽인 다음에야 호서 지방의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점차로 감염되는 폐단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여깁니다. 대저 이존창은 그들 가운데 두목으로서 전혀 두려워할 줄을 모르고 소굴을 만들었습니다. 조정에서는 비록 그런 하찮은 것들까지도 반드시 그 악을 변화시켜 삶으로 인도하려고 하니, 그렇다면 저 돼지나 물고기, 나무나 돌맹이 같은 것들도 의당 감격할 터인데, 저 이존창은 어둡고 강포하여 조금도 변동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를 처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혹은 서로 다투어 주육(洒肉)을 준비해서 옥중(獄中)으로 찾아가 그를 위문하기까지 한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사람 살리는 도리로 사람을 죽이는 의리이겠습니까. 도신(道臣)으로 말하더라도 의당 사유를 갖추어 진문(陳聞)해서 처분을 기다려야 할 터인데, 여러해가 지나도록 아직까지 가부간에 아무런 말이 없으니, 청컨대 해당 전후 도신들을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고 속히 사실을 열거하여 치계하도록 해서 율에 따라 처단할 뒷받침으로 삼으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1798년 [음]정조 22년, 심리(審理)·녹계(錄啓)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게 함
1872년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갑순 출생.
1877년 독립운동가 임용상 출생
1881년 [음]일본 외무성에 일본인의 울릉도 잠입·도벌을 금지해달라고 요구
1882년 (조선 고종19)서양과 맺은 첫 조약 한-미수호통상조약 조인, 최초의 쌍무협약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은 19세기 말 숨가쁘게 돌아가던 동아시아 국제외교의 산물이었다. 미국에 조선개항은 대(對)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펼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요소였다. 강제개항을 시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포기하고 청의 중재를 통한 개항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청의 이홍장은 러시아의 남침과 일본의 대한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대한(對韓)종주권 유지를 위해서였다.
이홍장은 조선에 밀서를 보내 조약의 긴요성을 역설한다. ‘조선책략(朝鮮策略)’이 소개돼 쇄국정책에 대한 인식전환이 조선에 막 싹틀 때였다. 조선책략은 아라사(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防俄) 조선은 중국과 친하고(親中) 일본과 결탁하고(結日) 미국과 연대(聯美)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
고종은 척사파의 반대를 피해 대청(對)교섭을 비밀리에 추진, 전권을 청에 위임한다. 미국과 청이 조선을 사이에 두고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조선은 청의 속국”이라는 속방(屬邦)조항을 조약에 명문화할 것을 고집한 청과 이를 반대하는 미국이 대립했지만 결국 별도 조회문에서 속방론을 밝히기로 하고 외교전을 마감한다.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이 강화도에서 체결됐다. 불평등이 배제된 주권 독립국가 간의 최초의 쌍무적 협약이었다.
1905년 경성중학교 설립
1906년 고종의 계비 엄비 명신여학교(현 숙명여고) 세움
1907년 무용가 조택원 출생
1907년 이완용 이토 히로부미 추천으로 내각 총리대신이 됨
1911년 청. 철도국휴화 선포
1914년 농공은행령.지방금융조합령 공포
1930년 독립운동가 장인환 작고
--평안남도 대동군(현 평양직할시) 태생으로, 어려서 고아가 되어 어렵게 자랐다. 숭실학교를 졸업한 이후, 1905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고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장인환은 독립운동을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의 회원이 되었다. 1908년 친일파 미국인으로 조선통감부와 밀착해 있던 대한제국 외교고문 더럼 스티븐스(d.w.stevens)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들에게 을사늑약을 비호하고 한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고 미국의 각 신문사에 발표되었다. 이에 인근 지역에 거주하던 미주 한인 대표들이 스티븐스를 만나 항의하였으나 스티븐스는 이완용을 충신이라 하고 한국의 인민이 우매하여 독립의 자격이 없다는 등 궤변을 하여 한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스티븐스의 친일 발언을 전해들은 장인환은 격분하여 그를 저격하기로 결심했다.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 D.C.으로 떠나는 길의 스티븐스를 공격하려 하던 중 같은 목적으로 대기하던 전명운이 먼저 스티븐스와 격투를 벌였다. 그는 권총 세발을 발포하였는데, 한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잘못 맞았고 나머지 두발을 맞은 스티븐스는 중상을 입어 이틀 후 사망했다.
1935년 북한 개척지, 남한 주민 4000 명 이주
1936년 백정기(1896~1936), 주중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암살 혐의로 무기형 선고받고 복역 중 나가사키 감옥에서 옥사
1938년 일제, 안재홍 등 흥업구락부 간부 총검거 시작
1940년 한국광복군계, 한국독립당 결성
1940년 청소년 학도에게 내린 칙어(勅語) 봉대(奉戴) 기념식, 전국에서 일제히 거행
1947년 남북간 물자교류 허용
1947년 조선 인권옹호연맹 결성
1948년 〈교사 자격 규정〉 공포
1950년 세무당국, 거액 체납자는 그냥 놔두고 소시민에게만 징세
1953년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감독 차범근 츨생
1954년 제네바회담에서 변영태 한국대표 14개항 통한방안 제시,
--주요내용=자유선거 불가능했던 북한지역 자유선거, 남한에서는 대한민국헌법 절차에 따라 선거, 유엔감시하 6개월내 선거, 인구비례원칙, 선거직후 전한국 입법부 서울에서 소집, 선거1개월전 중국군 완전철수, 유엔군은 통일정부수립 완전달성 전까지 철수 안됨
1955년 주한 미 군사원조고문단 설치. 한국, 미국에 원조 요청을 위한 사절 파견
1960년 한국 교원 노조 연합회 결성
1961년 최고회의, 용공분자 2천여명, 깡패 4200여명 검거 발표.
1963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 언론인 김의겸 출생
1963년 정일권 국무총리, 국회 본회의에서 무장군인의 서울법원 난입을 애국적 충성으로 규정
1963년 한국-오스트리아, 국교수립
1966년 북한조류학자 원홍구 남북한 과학자교류 제의
1973년 대법원, 울산의 영남화학에 첫 공해 배상 322만원 지급 판시
1974년 경제기획원, 1974년 3월 말 현재 대한민국 총인구를 3,330만 9천 명으로 집계
1974년 남북적십자 제6차실무대표자회의 개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실무회의」개최 합의
1974년 아산-남양만 방조제 준공
1975년 서울대생 500여명 긴급조치9호 맞서 김상진 열사 기리는 오둘둘시위 구속56명
1974년 아산-남양만 방조제 준공
1980년 계엄사령부, 김대중의 대중 선동·정부 전복 기도, 학생시위 배후 조종 중간 수사 결과 발표
1980년 미국 항공모함 코랄씨호, 한국 근해에 파견
1980년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80년 광주투입 계엄군은 시내에서 철수. 시민 수습 대책위원회, 무기회수 시작
1983년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 설악산에서 총상 으로 절명(밀렵꾼 이상우, 6월 4일 자수)
1984년 지하철 2호선 전 구간개통 -6년2개월 만에 48.8㎞ 완전 개통 순환 지하철
--서울지하철 2호선중 잔여구간인 시청앞∼서울대입구간 19.2km가 1984년 5월 22일 개통, 운행을 시작했다. 이로써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한바퀴 도는 순환선인 2호선의 48.8km 전구간이 개통돼 서울은 본격적인 지하철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완공된 2호선은 1978년 3월 착공, 6년2개월 만에 개통된 것으로 투입된 공사비만 8천7백80억원이었다. 이날 개통된 구간은 시청앞 충정로 아현 이대앞 신촌 홍대입구 합정 당산 영등포구청앞 문래 신도림 대림 구로공단 신대방 신림 봉천 등 16개 역으로 2호선 전체를 한바퀴 도는 데 83분이 소요됐다. 개통 당시 요금은 1백 10원에서 최고 1백 80원으로 현재 1구간 700원, 2구간 800원인 요금에 비하면 꽤 저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2호선은 영동, 잠실, 영등포, 신촌 등의 부도심권과 도심을 직결, 도시기능분산에 기여했으며 서울대, 연대, 이대, 서강대 등 서울시내 상당수 대학가 부근을 지남으로써 학생들에게 통학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1984년 오산 상공에서 미 U2기 추락
1984년 대법원, 중공민항기 납치범 6명의 형량을 원심 대로 확정
1985년 북한 허담 , 남북한교차승인 반대 표명
1985년 국회, 직선개헌·광주사태·학원문제 등 대정부 질의 개시
1987년 김영삼 민주당 총재, 박종철 고문치사조작. 범양사건 등과 관련 내각 총사퇴 요구
1987년 전두환 대통령,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진상 규명하고 관련자 입법조치하도록 내각에 지시
1989년 교통부, 백화점 호텔 등 교통인구를 유발하는 사업주에 교통유발부담금을 부과하는 법안 입법예고
1989년 북한자료센타 개설(광화문우체국 건물 6층)
1990년 한국-예멘, 국교수립
1991년 인도 라지브 간디 폭사-10대총선 유세도중
1991년 정부와 민자당, 보안법 위반사범의 특별사면, 감형, 공소취소대상자를 250명으로 확정.
1991년 서울지검, 히로뽕을 상습적으로 복용한 前프로 야구 선수 장명부(41), 성낙수씨(34)를 구속.
1992년 한ㆍ러시아, 구 소련의 채무보증승계에 합의
1992년 대남공작원 자수 귀환-구국의 소리 방송요원 오길남
1992년 대간첩작전본부, 철원북방 비무 장지대의 수색활동중 북한의 무장침투조와 교전, 북한군 3명사살
1992년 한국과 러시아 실무대표단, 한국이 구소련에 제공 현금 차관 10억달러 러시아가 전액 상환 보증합의
1992년 철도청, 7월1일부터 새마을호 열차의 객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조치.
1992년 서울형사지법, 민주당 홍사덕후보 사생활 비방 안기부직원 4명 모두 집행유 예를 선고, 석방하다.
1992년 안전기획부, 독일유학중 북한 망명 구국의 소리 방송요원 오길남(50) 독일 주재 대사관에 자수
1992년 재일교포 소설가 이양지 사망
1993년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제26차총회 개막 (서울,5월26일)
1993년 검찰, 박철언 국민당 의원을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진씨 비호세력과 관련 알선수뢰죄로 구속
1993년 현정화, 제4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서 처음 으로 여자 단식 우승
--1993년 5월 22일 밤 스웨덴 예테보리. 준결승서 루마니아의 강호 오틸리아 바데스쿠에 대역전승을 거둔 현정화 선수는 잔뜩 기세가 올라 있었다. 결승 상대는 대만의 첸징. 정신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현정화 특유의 전진속공이 살아나면서 반 박자 빠른 스매싱이 연속으로 테이블에 꽂혔다. 관중의 박수소리에 정신을 차린 순간 스코어는 3대0. 첸징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올림픽보다 훨씬 어렵다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우승으로 현정화는 ‘세계선수권 그랜드슬램’ 을 이루며 탁구여왕에 등극했다.
1987년 양영자와 여자 복식에서 우승하며 기록사냥의 돛을 올린 현정화는 1989년 유남규와 혼합복식 정상에 올랐고 1991년엔 남북단일 코리아팀으로 출전, 만리장성을 넘어 단체전 왕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출전했던 세계선수권에서 대망의 단식 우승을 차지해 극적이고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현정화의 우승으로 1973년 사라예보에서 시작된 막강 한국 여자탁구의 신화는 정점에 올랐다.
1994년 사회운동가 장일순씨 별세
--사회운동가 장일순 선생이 1994년 5월 22일 타계했다. 그의 생애는 `민주화운동에서 생명운동으로`라는 말로 요약 될 수 있다. 6.25의 혼란중에 서울대 미학과를 중퇴하고 고향 원주로 돌아온 그는 안창호 선생이 대성학원을 설립한 뜻을 본받아 같은 이름의 학원을 원주에 세웠으나 5.16직후 혁신계로 몰려 3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60년대에는 오랫동안 농사꾼으로 지내다, 1970년대에는 고 지학순 주교와 손잡고 원주를 반 유신 운동의 진원지로 만들었다. 그는 원주 가톨릭 교구에 사회개발조직위원회를 발족, 가톨릭 농민회의 기초를 닦았고, 1980년대 들어서는 소비자 협동조합 운동을 거쳐 생명 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한살림운동`을 제창했다. 그는 한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사회 운동가로서 김지하 시인과 특히 각별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타계하기 전까지 이현주 목사와 노자를 놓고 나눈 대담을 모아 노자이야기(전3권) 중 상-중권을 냈는데,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저서가 됐다. 그는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어 1980년대 이후 6차례에 걸쳐 서예전을 개최, 수익금을 양심수와 민주인사를 돕기 위한 기금으로 희사하기도 했다.
1996년 교육부ㆍ한국교육개발원, `차세대 잠재력 인적자원의 확보'란 제목의 교육부문 개혁안 제시
1998년 검찰, 북풍공작 사건 종합 수사결과 발표
2004년 ‘올드보이’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 보이’가 23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제5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Grand Prix)을 차지했다.
심사위원대상은 이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 다음으로 큰 상으로, 한국 영화가 가장 권위있는 영화제인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은 것이 칸에서 한국 영화의 최고 수상 기록이었다.
황금종려상은 영화제 내내 최고 화제를 몰고다니며 찬사를 받은 미국 감독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Fahrenheit 911)’에 돌아갔다.
임권택(취화선·칸 영화제) 이창동(오아시스·베니스) 김기덕(사마리아·베를린) 감독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을 따내는 성과를 거뒀던 한국 영화는 이제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을 통해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까지 받아냄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확고히 했다.
2004년 김정일-고이즈미 일본총리 평양에서 제2차 북-일정상회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2일 평양에서 가진 정상회담을 통해 납북 일본인의 자녀 등 8명 가운데 5명을 일본으로 귀국시키는 것에 합의, 고이즈미 총리가 이들과 함께 이날 밤 일본으로 돌아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오전 전용기를 타고 북한으로 출발해 오후 8시 56분 도쿄에 도착하는 ‘당일치기’ 정상회담을 가졌고, 일본인 피해자들의 자녀들을 데려오기 위한 별도의 비행기도 북한으로 갔다. 5명을 태운 비행기는 고이즈미 총리의 전용기보다 20여분 늦게 도착했다. 일본 TV들은 도착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이에 앞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오후 4시 30분쯤 평양의 한 호텔에서 북·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재개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 일 정상은 이날 오전 11시 2분쯤 평양 근교 대동강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해 90분간 납북피해자 가족의 일본 귀국 문제 등 양국간의 현안을 논의했다.
북한은 지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한국에 파견할 공작원 교육과 한국 침투 목적을 위해 일본인들을 납치했었으며, 지난 2002년에 열린 김정일·고이즈미의 첫 정상 회담 뒤 납치 피해자 다섯명을 일본으로 일시적으로 보냈었다. 이들은 이후 일본 정부의 설득에 의해 일본에 영구 귀국했고, 이에따라 일본 정부는 이들의 북한 체류 중 결혼해 의해 생긴 자녀의 일본 송환을 북한에 요구해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북한측이 사망했다고 밝힌 납치 의혹자 10명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재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 고이즈미 총리는 “핵포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국제 협력을 놓치지 말라”고 김 위원장에게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6자 회담을 활용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실험의 중단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고이즈미 총리는 말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일본이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쌀 25만t어치와 미화 1000만 달러 상당의 의약품을 구호품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5년 북한 화물선 21년만에 남한에 입항
2005년 일본 제11회 노베야마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대우조선 근로자 심재덕씨 우승
--호흡기 이상으로 남보다 떨어지는 폐기능을 향상시켜 보려고 달리기에 입문한 30대 직장인 마라토너가 일본에서 열린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일본 최고의 울트라 마라토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심재덕(36·생산지원팀)씨는 22일 일본 나가노현에서 열린 ‘제11회 노베야마 고원 울트라마라톤 대회’ 100㎞ 부문에서 8시간4분34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심씨의 우승은 일본 대만 한국 등의 철각 1100여 명이 참가한 대회에서 거둔 영예여서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베야마 고원 마라톤대회는 해발 1355m 지점을 출발, 해발 880m에서 1908m에 이르는 고원지대 100㎞를 시종일관 오르락내리락하며 달리는 경기. 특히 노베야마 대회는 100여 개의 일본 울트라마라톤 대회 가운데 가장 코스가 험난해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고 있다. ‘고수’들만이 참가하는 울트라대회지만 워낙 심한 경사 탓에 오르막에선 뛰기는커녕 걷는 마라토너들이 부지기수이고, 국내 일반 울트라마라톤대회의 완주율이 90% 정도인 데 비해 이 대회의 완주율은 평균 60% 수준에 불과하다
심씨는 92년 말 폐활량이 일반인의 69.5%에 불과하다는 기관지 확장증 진단에 따라 마라톤을 시작했다. “수술을 받느니 차라리 운동을 통해 극복해 보자”고 마음 먹었던 것. 그러나 처음엔 호흡이 힘들어 제대로 뛸 수가 없어 걷기만을 반복했다. 그러다 훈련량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심씨는 지금까지 54차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울트라마라톤대회는 이번에 네 번째 참가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지난해 충주마라톤대회에서 수립한 2시간30분15초.
2006년 한국최초의 유엔 산하기구 수장인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세상떠남
2006년 이종욱 WHO사무총장 제네바서 별세
--이종욱(李鍾郁·61)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006년 5월 22일 오전 7시43분(현지시각)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이 총장은 지난 20일 오후 제네바 사무실에서 공식 집무 중 구토를 일으키며 쓰러져 뇌에 생긴 혈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 총장은 22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WHO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과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WHO 남태평양 한센병 퇴치팀장으로 WHO와 인연을 맺은 이 총장은 2003년 7월 한국인 최초로 WHO사무총장에 취임한 뒤 에이즈 퇴치와 조류독감 예방에 힘을 쏟아왔다.
2006년 AP 계열사 평양지국 설립
--AP통신 계열사로, 영상뉴스 매체인 APTN이 2006년 5월 22일 북한 평양에 상설 지국을 개설했다. 평양 지국 개설로 APTN은 서방 언론으로는 최초로 북한에 상주하면서 뉴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개설식에 참석한 APTN의 총책임자 나이젤 베이커는 “이번에 전면적인 지국 개설로 인해 APTN은 북한에서 정기적으로 취재하는 유일한 서방 뉴스 매체가 됐다” 고 말했다
2006년 한국철도공사, KTX 여승무원 280명 해고
2007년 박수근作 ‘빨래터’ 45억2천만원에 낙찰
--5월 22일 경매에서 45억2천만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유화 ‘빨래터’. 박수근 화백의 1950년대 후반 유화 ‘빨래터’(37×72㎝)가 2007년 5월 22일 열린 제106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서울옥션)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불과 두 달 전 자신의 기록 25억원을 훌쩍 넘기며 한국 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빨래터’는 강가에서 나란히 빨래하는 여인 6명을 캔버스에 담은 작품이다.
이날 33억원에 경매가 시작돼 2000만~5000만원씩 높여 호가되다가 가볍게 45억원을 넘기며 전화 응찰자에게 낙찰됐다.
이 작품을 내놓은 사람은 80대의 미국인으로 1950~1960년대에 군수품 사업을 하며 한국을 드나들다 박수근을 알게 됐던 그의 후원자였다고 서울옥션측이 밝혔고, 산 사람은 국내 개인 컬렉터로 알려졌다.
2007년 김영삼 전 대통령, 국립 5·18 민주묘지 첫 참배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5·18 단체들의 초청을 받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처음으로 참배했다.
김 전 대통령은 22일 오전 11시 40분쯤 김무성·정의화·이경재·김기현 의원과 오정소 전 국가보훈처장 등 20여 명과 함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자유(自由), 정의(正義), 진실(眞實)’ 이라고 쓴 뒤 5·18단체 회원 100여 명의 환영을 받으며 추모탑 앞에서 헌화·분향하고 묘역 마당에 금목서 나무를 심었다. 김 전 대통령은 유족들과 악수를 나누며 위로했으며, 박경순 5·18묘지관리소장의 안내를 받아 고(故) 홍남순 변호사의 묘 등 묘역 곳곳을 둘러봤다. 이어 5·18 희생자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유영봉안소를 둘러본 뒤 “더 일찍 왔어야 하는데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며 “묘지 조성 때 토지 매입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전국에서 가장 잘 정비돼 있는 것 같아 기쁘다” 고 말했다.
참배를 마친 김 전 대통령은 광주 남구 프라도호텔에서 이홍길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재임 당시 5·18특별법 제정, 국립묘지 승격 등이 이뤄진 데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감사패를 받았다.
이날 묘역 주변에서는 남총련 학생 50여 명이 김 전 대통령의 참배에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벌였으며, 광주전남진보연대 등은 감사패 증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2007년 정부, 부처 브리핑룸 3곳으로 통폐합 확정
--정부는 2007년 5월 22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각 부처의 브리핑룸을 통폐합하고 기자들의 부처 취재를 제한하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 을 확정했다.
이 방안은 현재 각 부처에 있는 37개 브리핑룸·기사송고실을 중앙청사, 과천청사, 대전청사 등 3곳으로 통폐합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다만 업무 특수성과 지리적 위치를 고려해 청와대, 국방부, 금감위 브리핑룸·기사송고실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본청과 지방청별로 쓰고 있는 검찰과 경찰 브리핑룸도 각각 하나로 통폐합하고, 서울시내 8개 경찰서 기자실은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중앙청사는 청사 인근에 있는 외교부 건물에 합동 브리핑센터를 설치해 총리실, 외교·교육·통일·행자부 등 16개 기관이 이용하고, 과천청사 브리핑센터는 재경·보건복지·예산처 등 10개 기관이 이용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 기자들의 공무원 사무실 ‘무단 출입’ 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등록 기자에게 발급한 전자출입증 소지자에게만 브리핑룸 출입을 허가하고, 이 전자출입증으로는 청사나 각 부처 사무실 출입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혀, 기자들의 공무원 접촉 및 사무실 출입통제가 철저하게 실시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는 2003년 6월 발표한 ‘사무실 출입금지’ 방안보다 강하게 청사 출입을 막는 것이다.
2009년 폐암 투병 탤런트 여운계씨 별세
2009년 쌍용자동차노조 정리해고반대파업 시작 2,413일 흐른 2015.12.30 노사협상 타결
2011년 김학원 前 자민련 대표 별세
2011년 안철수 서울대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희망공감 청춘콘서트’ 시작(-9.9)
2014년 박근혜 대통령 새 국무총리 후보에 안대희 전 대법관 내정(안 후보자는 고액수임 전관예우 논란으로 지명6일만에 후보사퇴)
2014년 스포츠4대악 합동수사반 출범
2014년 북한 연평도 우리 함정 인근에 2발 포격
--북한군이 22일 오후 연평도 근해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 중이던 우리 해군 유도탄 고속함 인근에 2발의 포격을 가했다. 이에 우리 해군 함정은 북한군의 포격 직후 곧바로 5발의 함포를 NLL 이북 해상에 있던 경비정 인근으로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발사한 포는 우리 해군 함정으로부터 150여m 떨어진 해상에 떨어졌다"며 "우리 함정이 발사한 포탄도 북한 경비정 인근 150여m 해상에 낙하했다"고 설명했다. 군은 오후 6시20분 부로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을 복귀토록 했고 주민들도 긴급 대피토록 하는 등 안전조치를 했다 북한군이 포격을 가했을 때 NLL 남쪽에선 우리 어선 20여척, NLL 북쪽에선 중국 어선 20여척이 부근 수역에서 조업 중이었다. 합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공군 전투기를 발진시켰고 해군 함정도 대기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한국 요리계 대모' 하숙정씨 별세
2019년 서울시와 지방 상생선언’ 협약식
2021년 북한화물선 동해상에서 침몰
--5500톤급 북한 화물선 청봉(CHONG BONG)호가 이날 오후 2시30분 침몰했다.
일본 해상보안청 제8관구 해상보안본부는 21일 오후 11시쯤 청봉호에서 '화물 창고가 침수하고 있다'며 구조 요청이 왔었다고 밝혔다. 청봉호에 타고 있던 선원 21명은 이후 배에 싣고 있던 구명정으로 탈출해 인근을 지나던 북한 유조선에 의해 구조됐다.
청봉호는 북한의 한 항구에서 자국의 또 다른 항구로 철 약 6500톤을 운반 중이었다
2021년 방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대통령 정상회담
2021년 文 “美, 한국에 백신 직접 지원”, 바이든 “한국군 55만명에 제공”
2021년 文대통령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지침 종료 전한다”
2021년 서울 지하철 7호선 부평구청역 ~ 석남역 구간 개통
2022년 美 “한국의 쿼드 추가 현재로선 고려 안해”
BC479년 공자 세상떠남(73세)
337년 비잔티움 제국 창시자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 사망
--비잔티움 제국을 건설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재위 중 이룩한 업적으로 그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불리었다. 오늘날의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에 해당하는 지역인 모에시아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니코메디아 궁정에 보내져 그곳에서 자랐다. 페르시아와 이집트에서 복무했고 잉글랜드의 요크에서 환호리에 부황제로 즉위했다. 그후 6년간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 황제의 부황제로서 갈리아와 이탈리아에서 지냈다.
312년에 막센티우스를 물리치고 로마를 장악해 서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고 323년에는 동로마 황제 리키니우스를 쳐부수고 그를 사로잡아 명실공히 동-서로마를 통합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의 해체를 막고, 영토와 문화면에서 이질적인 요소들을 새롭게 통합시키는 임무를 떠맡았다. 그는 음모와 계략이 난무하는 로마를 떠나, 교역의 중심지이며 파르티아인의 침입에 맞서는데 적합한 비잔티움을 새로운 수도로 정했다. 비잔티움은 330년 5월 11일 대제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새이름으로 엄숙하게 봉헌되었고 이로써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 시작됐다.
제국을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세속적인 토대와 영적 토대를 모두 마련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로마의 위대한 정치적 유산과 헬레니즘 세계의 문화적 유산,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폭발적인 역동성을 융합시켰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임을 공언한 최초의 로마 황제이기도 하다. 그의 개종에 힘입어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했으며, 이로써 그리스도교 문화는 비잔틴 제국과 서유럽의 중세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것은 향후 1123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여든 여덟 명이나 되는 지배자의 통치를 받았다
1599년 플랑드르의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 출생
1602년 중국 남명의 황제 융무제 출생
1667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 237대 로마 교황 작고
1809년 전투 마지막 둘째날 오스트리아의 카를 대공이 아스펜-에슬링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격파.
1813년 독일 작곡가 바그너 탄생
--독일의 작곡가, 극작가, 극 연출가, 지휘자, 음악 비평가 및 저술가였다. 독일의 오페라에 있어서 대표적인 작곡가 중의 하나이며, 19세기 유럽의 음악 및 문화 전체에 있어서도 독보적인 예술가 중의 하나였다. 그의 종합예술관과 종교적 예술관은 각 예술의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음악에 있어서 독일의 낭만주의 오페라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하였다. 활동후기에는 풍부한 반음계적 음악언어를 발전시켜, 후대의 작곡가들로 하여금 조성을 약화시키고 결국에 파기하도록 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또한 본인의 작품을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축제만을 위한 전용 공연장인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를 건립했다.
1859년 명탐정 셜록 홈스를 만들어낸 영국의 작가 코넌 도일 출생
1873년 이탈리아 소설가 만초니 사망
1885년 프랑스작가 빅토르 위고 세상떠남(83세)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
--“참사랑의 첫 특징은 남성은 겁쟁이가 되고 여성은 대담해지는 것이다.” The first symptom of true love in a man is timidity, in a girl it is boldness.
-- 『레미제라블』 출판 뒤 위고가 출판사사장에게 ‘?’라고 물음표만 있는 편지를 보내자 출판사사장은 잘 팔린다는 뜻으로 ‘!’ 하나만 적힌 답장 보냄, 세계에서 가장 짧은 편지
--위고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가였고 사형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였지만 프랑스인들에게 위고는 수사가 필요없는 `영웅`이었다. 왕당파ㆍ낭만주의였던 위고의 정치ㆍ문학적 경향이 공화파와 자유주의적ㆍ인도주의적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1830년의 7월혁명과 1848년의 2월혁명을 경험하면서였다.
1851년 제정(帝政)으로 복귀하려는 나폴레옹3세의 쿠데타에 항거, 망명길로 들어선 것은 위고의 문학적 성취를 위해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 때 ‘레 미제라블’ 등 숱한 작품이 발표돼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기 때문이다. 나폴레옹3세가 퇴위한 1870년, 19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파리에 돌아와서는 정치인으로 빈민구제ㆍ언론자유보장ㆍ초등학교 의무교육 등을 위해 헌신했다. 특히 그 당시에 이미 유럽통합을 주창하고 유로화의 출현을 예고한 그의 통찰력과 혜안(慧眼)은 또 다른 의미에서 `당연히 위고지!`였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볼품없는 수레에 실려 영웅들이 묻힌다는 팡테옹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보기위해 200만명이 그를 찾았다
1907년 영화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출생
1908년 라이트 형제 비행기특허 취득
1927년 중국에 진도8.3 지진 사망20여만명
1930년 미국의 정치인 하비 밀크 출생
1939년 독일-이탈리아 군사동맹 체결
1942년 시어도어 카진스키, 유나바머로 유명한 미국의 테러리스트 출생
-- 미국의 수학자이자 테러리스트이다. 전형적인 백인 가정에서 자라나서,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에서 학사, 미시간 대학교 대학원 수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수학과에서 2년동안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망치는 주범이라 인지하고 그에 맞서 싸우려는 시도로 17여 년간 사업가, 과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편지 폭탄을 보내서 3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유나바머"(Unabomber, university and airline bomber)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1995년 폭탄 희생자들과 언론사에 《산업 사회와 그 미래》를 보내, 글을 언론에 싣는다면 폭탄 테러를 멈추겠다고 제안했다. FBI는 이를 "유나바머 선언문"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결국 FBI의 수사와 더 이상의 살상을 막으려는 동생의 신고로 검거되었고,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되어 있다.
1946년 소련 만주에서 철수완료를 발표
1960년 칠레 중남부해안에 진도8.6 지진 사망2,300여명
1963년 아프리카 33개국 수뇌회담
1967년 미국흑인문학 대표하는 시인 랭스턴 휴즈 세상떠남(66세) 『유대인의 나들이옷』 『할렘의 셰익스피어』 『편도 차표』
1967년 벨기에 브뤼셀 백화점서 대화재 280여명 사망
1972년 실론 나라이름 스리랑카로 바꾸고 공화제 실시
1977년 오리엔트특급열차 마지막 유럽 운행
1985년 영국해양생물학자 앨리스터 하디 세상떠남(89세), 자신이 발명한 플랑크톤 연속기록계를 이용해 해양 미소생물 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해양생명체의 복잡한 생태계 밝혀냄
1986년 미국하원 일괄통상법안 통과
1989년 소련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 동시해체 제안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3.0이 출시
1990년 남북 예맨 통일
1990년 루마니아 대통령선거에서 일리에스쿠 당선, 공산주의와 결별 선언
--5월 22일 53년 만에 실시된 자유선거에서 루마니아 대통령에 일리에스쿠가 당선됐다.
그는 동구 자유선거사상 최초로 공산당 전력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차우세스쿠 집권당시 정보선전담당 당서기를 지낸바 있는 일리에스쿠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혁명이후의 과도기를 어렵게 이끌어 온 경험을 인정받았고 또한 1989년12월 공산당 독재자 차우세스크가 타도된 직후 임시정부격인 구국위원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그의 지도력을 국민들이 신뢰한 것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1996년 선거에서 패배, 권좌에서 물러난 후 1997년에는 1989년의 유혈반공민주화봉기 기간중 군에 발포를 요청한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유엔 가입.
1993년 캄보디아 21년만에 처음으로 다당제 선거
1998년 ‘비아그라’ 부작용 첫 공식 확인, 6명 사망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날개돋친 듯 팔리던 남성 발기불능 치료제 비아그라로 인한 사망자 발생 사실이 1998년 5월 22일 최초로 보고되면서 의학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비아그라 시판 후 복용자 사망사례가 보도된 것은 처음이다. 비아그라는 혈압강하 효과 때문에 원래 협심증 등 심장병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추후 발기불능 치료제로서의 효과가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밖에도 비아그라가 일시적 시각저하나 두통 현기증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해왔다. 비아그라가 시판 될 당시부터 이 약은 혈압을 강하시키는 부작용이 있어 심장병 치료를 위해 혈압 강하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은 사용하지 말도록 의학전문가들이 권고해왔다. 이번에 보고된 사망자들도 심장질환과 관련된 부작용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화이자사는 발표했다
2003년 일본 스키어 에베레스트 최고령 등정
2004년 야기라 유야, 제57회 칸 영화제서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
2004년 스페인 펠리페 왕자 앵커 출신 레티시아 오르티스와 결혼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비만과의 전쟁’ 선포
--비만이 세계적 관심사가 되면서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가 2004년 5월 22일 ‘비만과의 전쟁’ 을 선포했다. 이날 제네바에서 폐막된 세계보건기구 제57차 연차 총회에서 각국 보사부 장관들은 ‘다이어트·운동·건강에 대한 세계 전략’ 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WHO는 전 세계 성인 가운데 10억명 이상이 과체중이며, 이들 가운데 최소한 3억명이 비만이라고 밝혔다. 또한 오는 2020년이면 비전염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의 73%를, 치료 비용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비전염성 질병에는 심장혈관계 질환, 당뇨, 암 등이 포함되며, 주로 고혈압과 콜레스테롤, 과일과 채소를 적게 섭취하는 식습관, 과체중과 비만, 운동 부족, 담배 등에서 야기된다고 WHO는 밝혔다.
이에 따라 WHO는 이번 세계 전략에 입각해 각국 정부가 비만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이에 맞춰 효율적이고 통합된 농업 및 보건정책을 수립해 국민들에게 널리 교육할 것을 권고했다.
WHO의 ‘다이어트·운동·건강에 대한 세계 전략’ 은 제목 그대로 균형 잡힌 식습관과 적절한 운동 그리고 지방과 소금 및 설탕 섭취를 줄이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을 것을 권장했다. 하지만 회원국 간 논란도 있었다. 설탕 생산국인 브라질은 설탕 관련 조항이 어떤 형태로든 무역 거래를 왜곡하는 조치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 이번 WHO 세계전략에 동의하기도 했다.
2011년 미국에 토네이도 연쇄발생 사망500여명
2014년 태국 19번째 군부쿠데타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 권력 장악(현재 총리)
2014년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 시장에서 차량폭발 사망31명 부상94명
2016년 유럽최초로 녹색당출신 알렉산더 판데어벨렌(72세) 결선투표에서 오스트리아대통령 당선
2016년 영국영화감독 켄 로치(80세) 제6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받음 ‘나, 대니얼 브레이크’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외치자.”-수상소감
2017년 미국가수 아리아나 그란데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공연중 자살폭탄테러 사망22명, 범인은 22살 영국토박이
2018년 미국소설가 필립 로스 세상떠남
2020년 엔진 고장 파키스탄기 4번 착륙시도 끝 추락.."전원 사망“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의 주거지역에 99명을 태운 파키스탄국제항공(PIA) 여객기가 추락하여 탑승자 99명 중 2명이 생존하고 97명이 사망하였다 파키스탄 북동부 라호르에서 오후 1시에 출발한 이 여객기는 오후 2시45분께 남부 카라치 진나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착륙을 준비하던 조종사가 "기술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는 '메이데이' 조난 신호를 보냈고, 2개 활주로 모두 착륙 준비가 돼 있다는 답신을 들었다.
조종사는 착륙 전 항공교통관제센터에 엔진 하나가 고장났다고 보고했다.
일부 목격자들은 사고기가 세 차례 착륙 시도를 했지만 연이어 실패하고, 네 번째 시도를 하다 추락했다고 보고 있다.
2021년 G7, 탄소저감장치 없는 석탄발전에 자금지원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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