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56〉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 말라
진리도 깊은 슬픔에는 약이 되지 못하나?
자식잃은 부모 부처님 많이 찾아
무상설법 넘어 아픔 함께할 필요
부처님 재세시 사위국에 끼사고따미(Kisgotam)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한 재산가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한창 재롱을 피울 때쯤 갑자기 죽었다. 그녀는 거의 반미치광이 되어 기원정사에 계시는 부처님을 찾아와 울며 애원했다.
“부처님께서는 위대한 성자라고 들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살아가는 삶의 희망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들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제 아들을 살려만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묵묵히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말씀하셨다.
“너는 마을로 가서 한 사람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 한줌을 얻어 오너라. 그 겨자씨를 구해오면 내가 너의 아들을 살려주리라.”
고따미 여인은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마을로 내려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제발, 겨자씨 한줌을 주십시오. 우리 아들을 살리는 약입니다.”
고따미는 온 마을을 쏘다니며 겨자씨를 구하려 했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요구조건이 아니었다. 어느 집에서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고, 어느 집에서는 할머니가 죽었다고 하며, 어느 집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가 죽었다는 등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없었다. 그녀는 온 종일 이 집 저 집을 쏘다니다 지친 몸으로 아들을 내려놓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자신만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고따미는 왜 부처님께서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구해오라고 한지를 알았다. 그녀는 교외 근교에서 아들을 묻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는 너를 살리려고 했지만, 이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이란다.”
그녀가 부처님 처소로 돌아오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이 세상에 너만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네가 깨달은 것처럼 모든 생명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느니라. 죽음은 중생이 자기의 욕망을 다 채우기도 전에 그를 저 세상으로 데려가 버린다.”
고따미는 부처님의 이 설법을 듣고, 일체 모든 현상은 무상하여 영원할 수 없으며, 모든 생명은 자기 욕망을 성취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죽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자식 잃은 슬픔으로 부처님을 찾아오는 신자들이 많았다.
고따미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고, 무상관으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녀는 평생 낡은 가사를 걸치고 수행했다고 하여 비구니 가운데 두타제일이라고 칭하였다.
일전에 우리나라에 큰 재난이 있었다. 진도에서 배가 침몰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실종되었다. 모든 국민이 함께 울었고, ‘국민적 스트레스 증후군(트라우마)’이라고 할 만큼 힘겨운 사건이었다. 그 어떤 것을 준다고 한들 사람의 생명과 어찌 바꾸겠는가!
이제는 조금 냉철하게 앞으로의 일을 염두에 두자. 죽은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생존자와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본다. 유가족들은 시간이 지나도 슬픔이 점점 커지는데 국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슬픔을 잊어버린다. 이들도 이런 점에 힘들어한다고 한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누군가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의 고통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이나 언론 등 지속적인 반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은 죽음에 관한 무상관을 글로 작성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진리도 인간의 깊은 슬픔에는 약이 되지 못하는구나!’싶어 안타까웠다. 소납도 이 시대, 한명의 어른으로서 희생당한 어린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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