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사건의 존재론, 권대근 작필의 원리론
- <의미의 논리> ‘초험적 사건화’를 중심으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서론
- 수필은 ‘사건의 언어’이고, ‘사건은 의미’다
들뢰즈 철학의 절단면에서 나는 ‘사건과 의미’라는 사건의 존재론과 마주치게 되었다. 순간 왜 이제야 내게 찾아왔는가라는 원망을 아장스망에 쏟아놓으면서도 들뢰즈를 철학의 차원에서만 보고 해석하려 했던 내 자신 안의 동일성 원리의 작동을 후회했다. 그가 이미 1969년도에 <의미의 논리> 속에 수필시학의 바탕을 마련해 놓았던 것이다. 수필은 흔히 ‘삶을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바탕으로 쓰는 글’로 여겨진다. 그러나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필은 단순한 경험의 재현이 아니다. 삶의 한 순간이 언어를 만나 새로운 의미로 변환되는 생성의 장이다. 우리가 “느낀 대로 쓴다”고 말할 때의 그 ‘느낌’은 이미 언어적 구조 속에서 재조직된 사건이다. 수필은 ‘사실’이 아니라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글이다. 즉 수필이란 경험이 언어를 통과하며 다른 차원의 현실로 변모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글쓰기이다. 말하자면, 수필의 진정한 주제는 ‘무엇을 겪었는가’가 아니라, ‘그 겪음이 언어 속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가’에 있다.
들뢰즈는 진정한 경험은 의미있는 사건에서 건질 수 있다고 했다. 감각세계, 기호세계, 상징계에 순치된 것들과의 마주침이 아니라 낯선 것과의 아장스망, 즉 새로운 배치에서 사건과 의미가 생성된다고 하였다. 들뢰즈의 이론에 따르면, 사건이 곧 의미고, 의미가 곧 사건이다.『의미의 논리』에서 의미를 “사건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비물질적 효과”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표면’이란 사물과 언어, 현실과 사고가 맞닿는 경계의 자리이다. 의미는 사물의 내부에도, 언어의 내부에도 있지 않다. 의미는 사건이 언어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미세한 흔들림’, 즉 표면적 떨림 속에서 생성된다. 예를 들어, “눈이 왔다”는 말은 단순한 사실의 진술이지만, “눈이 와서 모든 소리가 잠잠해졌다”는 문장은 사건이 언어를 통과하며 감각적 울림과 정서적 파문을 일으킨 예다. 바로 그 파문이 들뢰즈가 말한 의미의 자리다. 윤석열의 의미는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가 다르게 나타난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실세 권력에 저항하는 사건에서, 투사라는 강직한 인물로 다가왔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내란 사건으로 우리에게 이해 안 되는 인물로 다가온다. 우리는 윤석열이라는 고유명사를 사건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서 여러분은 '사건의 의미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수필창작의 핵심은 단순히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언어 속에서 새롭게 의미화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수필은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좋은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건을 다시 조직해내는 과정을 드러낸다. 작가는 삶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 감정의 진동, 우연한 만남을 언어로 다시 구성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낸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드러나게 된다. 또한 이 지점에서 수필의 시학이 사건의 존재론을 관통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들뢰즈가 말하는 ‘사건의 언어’란, 바로 이 의미 생성의 운동을 가리킨다. 사건은 한 번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만날 때마다 다른 의미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수필에서의 사건은 일회적이 아니고 반복적이다. 계열화된 반복적인 사건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수필을 창작하기 전에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제재의 철학적 통찰이다. 이런 과정이 초험적 사건화이고, 사건의 의미화다.
김홍신은 세계한글작가대회 기조강연에서, 문학은 육신의 눈은 물론 영혼의 두 눈을 뜨고 있다는 표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수필 쓰기다. 하늘이 아름다운 건 구름 때문이듯 문학이 아름다운 건 창작의 고통 때문이다. 한 편의 작품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도 있고, 영혼의 상처를 향기로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역사에서 문인이 귀중한 까닭은 필주 때문이다. 사람의 허물이나 지은 죄를 글로 꾸짖는 걸 필주라 한다. 혀와 글과 행동으로 한 거짓은 피로 쓴 진실을 결코 이길 수 없다. 문인의 필주는 곧 역사와 세상을 바로 잡는다. 햇살처럼 왔다가 그믐밤 달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인생에서 문학은 햇살이고, 치유제이자 희망 메시지이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표시하는 깃대종이다. 수필을 쓰는 일은 ‘영혼 벌이’이니 인생을 걸자. 자존심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차리고 세상의 주인답게 살며 내게 주어진 일에 정진하는 긍지다. 수필가란 수필의 작필 원리를 알고 좋은 수필은 제대로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수필가로서의 자존심은 좋은 수필가다움의 다른 이름이다. 수필을 써서 밥벌이를 하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생의 철학적 해석이 수필이다. 문학은 철학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선비정신과 진실의 상징인 문학은 소수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천적이 많은 동물이 생존력이 강하고 빠르게 진화한다고 한다. 수필은 천적이 많은 장르다. 지금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그런 만큼 미래문학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이 강의는 이러한 관점에서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론을 발전시켜 수필창작의 원리로 읽고자 한다. 특히 그는 언어의 작용을 세 가지 층위, 즉 지시(denotation), 표명(manifestation), 의미(signification)로 구분했다. 이런 개념의 세 층위에서 ‘지시’는 러셀의 분석철학 지칭이론에서, ‘표명’은 후썰의 현상학 지향성이론에서, 그리고 ‘의미’는 소쉬러의 구조주의나 들뢰즈의 후기구조주의에서 각기 그 해석의 방향이 다름을 보여준다. 들뢰즈는 개념의 지시는 사건의 구체적 장면을 가리키고, 표명은 그 사건을 말하는 주체의 태도와 감정을 드러내며, 의미는 그 두 층위가 교차할 때 생겨나는 ‘표면의 효과’라고 설명한다. 이 세 층위를 바탕으로 수필이 어떻게 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삶과 언어가 만나 새로운 사유의 사건을 낳는 글쓰기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