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혜문 소설집 『대암의 하늘』 작품론
화살은 정말 실수로 날아갔는가.
「화살을 쏜 것은 실수였어요!」의 결핍과 자기기만, 폭력의 탄생
「화살을 쏜 것은 실수였어요!」는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화살을 쏘아 죽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제목만 보면 우발적인 살인과 뒤늦은 후회를 다룬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을 끝까지 읽으면 제목 속의 ‘실수’가 사실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자기기만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샤를은 푸하를 향해 활을 겨눈다. 화살을 활줄에 끼우고, 분노와 질투만큼 줄을 당기며 숨을 고르고 그의 심장을 향해 조준한다. 그런데 화살이 푸하의 심장을 관통하자 그녀는 말한다.
“실수였어. 이런 결과를 바란 건 아니었어.”
이 작품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샤를이 푸하의 죽음을 정말 원했느냐보다, 자신의 행동을 이후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느냐이다. 화살은 우연히 손에서 미끄러진 것인가. 아니면 오래 쌓인 상처와 분노가 한 방향으로 응축되어 날아간 것인가.
작품은 직접 답하지 않는다. 대신 화살이 날아가기까지 샤를의 몸과 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활줄을 귀 뒤까지 당기고,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활을 내릴 기회도 있었고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화살을 끼우고 활줄을 당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실수’는 행위의 성격이라기보다 행위 이후에 만들어진 언어이다.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을 저질렀을 때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며, 결과를 바라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런 말은 죄책감을 덜어주지만 동시에 책임도 지워버린다. 「화살을 쏜 것은 실수였어요!」는 폭력이 행동 이전에는 마음속에서 준비되고, 행동 이후에는 또 다른 언어로 은폐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샤를의 폭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살아온 시간을 보아야 한다.
샤를은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버려졌다. 어머니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아버지는 새로운 여자를 집으로 들인다. 우불산에서 온 여자는 어린 샤를을 경쟁자처럼 대하며 아버지의 온기에서 밀어낸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그 여자마저 장신구와 먹을 것을 챙겨 떠나버린다. 이 경험은 샤를에게 하나의 근원적인 공포를 남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결국 빼앗긴다. 의지하는 사람은 언젠가 떠난다.
그래서 푸하가 씨족장의 딸에게 끌리는 모습은 단순한 연인의 배신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상실이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샤를이 겨누는 대상은 푸하 한 사람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아간 여자, 자신을 버린 사람들, 자신보다 아름답고 많은 것을 가진 이들, 언제나 자신을 혼자 남겨두었던 세계 전체가 그 화살 안에 겹쳐 있다.
화살은 오랫동안 축적된 결핍의 형상이다.
샤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푸하가 떠나는 순간 자체보다 그 뒤에 다시 혼자가 되는 자신이다. 푸하가 사라지면 아무도 없는 막집에 홀로 남았던 어린 시절이 되풀이된다.
이 작품은 상처가 인간을 반드시 선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지만, 자기 상처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피해의 기억은 때로 자신이 가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샤를의 결핍은 씨족 사회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부모가 없는 그녀는 푸하와 함께 직접 막집을 지어야 한다. 장신구도 없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조개껍데기를 다듬어야 곡식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씨족장의 딸은 좋은 옷과 귀걸이, 활과 화살을 가진 권력자의 딸이다.
푸하가 씨족장의 딸에게 끌리는 모습은 샤를에게 사랑의 배신이면서 동시에 계급적 패배이다. 골짜기에서 발견한 진주처럼 빛나는 귀걸이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여자의 흔적이며, 푸하가 자신과 다른 세계를 욕망하고 있다는 증거다.
샤를의 질투는 가난과 고립, 낮은 지위와 열등감이 뒤엉킨 감정이다.
그러나 작품은 샤를을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샤를과 늙은 씨족장의 관계에는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이 있다. 씨족장은 아버지를 잃은 샤를을 돌보는 보호자처럼 보이지만, 기도와 영혼의 춤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옷을 벗고 몸을 움직이게 한다. 나중에는 샤를이 잠든 사이 몸을 섞은 사실도 드러난다.
보호와 착취, 위로와 성적 지배가 뒤엉킨 관계다.
그러나 샤를은 그것을 명확한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푸하에게 버림받았을 때 자신의 허전함을 달래준 사람이 씨족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는 그녀의 사랑과 권력에 대한 감각을 왜곡한다. 사랑은 서로 존중하는 관계라기보다 누군가에게 선택되고 보호받는 관계가 된다. 푸하가 죽은 뒤 이 왜곡은 더욱 분명해진다.
샤를은 절망하지만 곧 자신의 죄를 피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활이 씨족장 아내의 것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씨족장 딸이 숨겨둔 활과 화살촉을 증거로 삼고, 자신이 아니라 씨족장 아내가 푸하를 겨누었다고 주장할 계획을 세운다. 이때 샤를은 더 이상 사랑을 구걸하던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공동체의 권력관계를 읽고, 증거를 조작하며,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을 계산한다. 마지막에 그녀가 “막 태어난 사람처럼 차가우면서도 당당한 표정”을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탄생’은 성장이나 구원의 탄생이 아니다. 권력적 인간의 탄생이다.
이 작품에서 활과 화살은 중요한 상징이다.
활은 본래 씨족장 아내의 것이다. 그녀는 매일 새벽 활을 쏘지만 귀가 어두워 화살이 과녁에 맞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샤를이 맞았다고 말하면 그대로 믿는다.
이 설정은 이후 사건을 예고한다.
사실 자체보다 누가 무엇을 사실이라고 말하게 만드는가가 중요해진다. 과녁을 맞히지 못해도 샤를의 말에 의해 맞힌 것이 되고, 푸하의 죽음 역시 샤를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으로 바뀔 수 있다.
활과 화살은 물리적 무기이면서 이야기의 무기이다.
첫 번째 화살은 푸하의 몸을 찌른다.
두 번째 화살은 거짓말과 증거 조작의 형태로 씨족장 아내를 향한다.
그래서 제목의 느낌표도 의미심장하다.
“화살을 쏜 것은 실수였어요!”
이 말은 조용한 고백이 아니다.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려는 다급한 외침이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오히려 독자는 그 말을 의심하게 된다.
샤를은 푸하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상처를 입히거나 겁을 주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결과만으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품은 감정과 선택한 행동의 과정까지 책임져야 한다.
푸하의 심장을 겨누고 활줄을 끝까지 당긴 사람이 결과만은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작품은 묻는다.
폭력은 언제 시작되는가.
화살이 활줄을 떠난 순간인가.
상대를 해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인가.
자신의 상처만을 더 크게 여긴 순간인가.
아니면 자신이 한 일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기로 한 순간인가.
「화살을 쏜 것은 실수였어요!」는 폭력이 어느 한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결핍과 버림받음의 기억, 질투와 박탈감, 왜곡된 사랑과 권력이 오랫동안 쌓여 폭력으로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 배경을 이해하는 것과 폭력을 용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샤를은 악인으로 태어난 인물이 아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였고, 아버지를 잃고 버림받았으며, 가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온 사람이다. 하지만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타인을 해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인간의 윤리는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상처가 타인을 향한 화살로 바뀌기 전에 알아차리고 멈추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샤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실패한다.
그녀는 활을 내리려 했지만 다시 들었다. 화살을 쏜 뒤에는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에게 죄를 씌울 계획을 세운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 번의 실수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책임을 회피할 때 한 번의 폭력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첫 번째 폭력은 푸하의 몸을 죽인다.
두 번째 폭력은 진실을 죽인다.
그리고 세 번째 폭력은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려 한다.
작품의 처음과 끝을 비교하면 샤를의 변화는 더욱 선명하다.
처음의 샤를은 푸하와 가정을 이루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삶을 꿈꾼다. 그러나 마지막의 샤를은 씨족장 아내를 제거하고 씨족장의 곁에서 더 강한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
처음에 그녀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었다.
마지막에 그녀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다.
사랑으로 채우지 못한 결핍을 권력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화살을 쏜 것은 실수였어요!」는 소설집의 다른 작품들과도 대비된다. 「안개그물」의 인물들은 타인의 외로움을 이해함으로써 오해를 풀고, 「해장라면」의 민서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기다리는 데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샤니와 라우나」에서는 서로 다른 인간이 폭력의 역사를 넘어 손을 내밀고 불을 나눈다.
그러나 샤를은 자신의 고통만을 바라보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다시 그 죄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한다.
이 작품은 소설집에서 인간성의 어두운 반대편을 보여준다.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화살을 쏜 것은 실수였어요!」는 긍정적인 대답 대신 하나의 경고를 남긴다.
상처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상처가 타인을 겨누는 화살로 변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활줄을 놓기 전에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화살을 쏘았다면 실수였다고 외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활을 잡은 손이 자신의 손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화살을 겨눈 마음이 자신의 마음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아야 한다.
샤를은 그 책임의 문턱에서 돌아선다.
그래서 작품의 마지막은 푸하의 죽음보다 더 두렵다.
한 사람을 죽인 화살은 이미 멈추었지만, 자신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을 겨누는 보이지 않는 화살은 이제 막 활줄 위에 놓였기 때문이다.
- 이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