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코린 9,6ㄴ-10; 요한 12,24-26
성 라우렌시오는 기원후 225년경 태어나 258년에 순교하셨습니다. 약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순교하셨는데요, 로마의 일곱 부제 중 수석 부제로, 교회 재산 관리, 빈민 구호 등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식스토 2세 교황님께서 체포되시자 울면서 따라오는 라우렌시오에게 교황님은, ‘나흘 뒤에 너도 붙잡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라우렌시오는 교회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로마 총독은 그 사실을 전해 듣고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한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라우렌시오를 불러서 교회 재산을 내놓으라고 협박했습니다. 라우렌시오는 “교회는 참으로 부유합니다.”라고 대답한 뒤, “당신에게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대신 모든 것을 순서있게 정돈할 시간과 명세서를 만들 시간을 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3일 뒤 라우렌시오는 장님, 불구자, 나병 환자, 고아를 모아서 한 줄로 세웠고 총독에게 “이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에 의하면 라우렌시오는 이렇게 덧붙였다고 합니다. “진주와 보석도 있는데, 과부와 축성된 동정녀들이고 이들이 교회의 왕관입니다.” 화가 난 총독에 의해 라우렌시오 성인은 화형으로 순교하셨다고 전해집니다.
제가 본당에 부임한 후 처음으로 봉성체를 다녀온 뒤, 이분들께서 우리 본당의 보물들이라 말씀드렸는데, 라우렌시오 성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었고요,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순교자 축일이라 봉독된 요한복음 12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자기를 내 놓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그것을 지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어둠, 이 세상,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 이 세 가지는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나쁜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빛, 영원한 생명,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3,19)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12,47)라는 말씀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형제들을 도울 때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되고, 기쁘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것을 마지못해 할 수도 있고, 최대한의 것을 기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진 후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면 보기에 참 안쓰러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름다운 밀알로 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해 왔습니다. 내가 맺는 열매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내어드릴 뿐이고 열매를 맺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