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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the Great Perfection
BY YONGEY MINGYUR RINPOCHE| FEBRUARY 3, 2020, Lion`s Roar
당신은 이미 완벽하게 완전하다.
용게이 밍규르 린포체-라이언스 로어(불교잡지 사자후) 2020.2.3
Rest in your true nature without effort or distraction — Mingyur Rinpoche teaches the renowned practice of Dzogchen.
애씀이나 산란함이 없는 진정한 본성에 쉬어라-밍규르 린포체가 <족첸>이라고 널리 알려진 수행을 가르치다.
You are already perfect. You are already a buddha. In fact, there’s no difference between your true nature, right now as you sit reading this, and the true nature of the buddha, or any enlightened being for that matter.
당신은 이미 완전하다. 당신이 이미 부처님이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한 지금 앉아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본성과 부처님과 깨달은 분들의 본성에는 차이가 없다.
That’s the view of Dzogchen, a Tibetan word that means “Great Perfection.” Dzogchen is treasured above all other practices in the Nyingma school of Vajrayana Buddhism because it helps us connect directly with our own enlightened nature.
이것이 티베트 말로 “크게 완전함, 大圓滿대원만”을 의미하는 족첸의 견해이다. 족첸은 금강승 불교(티베트 불교를 금강승이라 한다)의 여러 수행법 가운데 닝마파(티베트 불교에는 4대종파가 있다. 겔룩파, 닝마파, 카규파, 샤카파)에서 제일 귀중하게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깨달은 본성과 곧 바로 연결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This Great Perfection is you right now, right here in this moment, not some fully developed you after you do a lot more meditation.
대원만(족첸)은 지금 이 순간 당시 앞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수행을 하고 난 다음 당신이 어느 정도 충분히 발전한 뒤에 나타나는 게 아니다.
Your essence, and the essence of every living creature, is pure, whole, and complete. There’s nothing missing, and that’s why we call it the Great Perfection. YOU are the Great Perfection. Don’t forget that. Dzogchen is talking about you. This Great Perfection is you right now, right here in this moment, not some fully developed you after you do a lot more meditation.
당신이란 존재의 핵심, 모든 중생의 핵심은 순수하고 전체적이며, 완전하다. 거기엔 어떤 것도 빠진 게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크나큰 원만함”이라 부른다. 당신은 크게 완전하다. 이것을 잊지 말라. 족첸은 당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족첸은 지금 바로 이 순간 당신이다. 많은 수행을 하고 난 다음 당신이 어느 정도 충분히 발전한 뒤에 나타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In Dzogchen, we call this enlightened nature rigpa, or pure awareness. Unlike some approaches in which buddhanature is taught in a more theoretical way, and you need to study and meditate for a long time to figure out what it is, Dzogchen is experiential. You get introduced to pure awareness directly, right on the spot.
족첸에서 깨달은 본성을 릭파 혹은 순수한 알아차림(순수각성 혹은 청정각성)이라고 부른다. 불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배우고 명상하면서 좀 더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다른 학파의 접근과는 다르게 족첸은 경험적이다. 당신은 당장 이 자리에서 곧 바로 순수한 알아차림을 소개받아야 한다(이것을 족첸에서는 pointing out, 곧바로 지시받음, 直指직지라 한다).
A traditional way to describe Dzogchen is in terms of the ground, the path, and the fruition.
족첸을 설명하기 위해 토대(基), 길(道), 결과(果)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말하려 한다.
The Great Perfection is our true nature, whether we realize it or not. That’s the ground of Dzogchen. It’s the reality of our experience and who we are.
대원만은 우리가 그걸 깨닫든 못 깨닫든 관계없이 자기의 진정한 성품이다. 그것이 족첸의 토대이다. 그건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이면서 자기 존재 그 자체이다.
But that doesn’t help if we don’t experience it for ourselves. The way to do that is by having this pure awareness introduced to us, and then getting familiar with it until it becomes stable and enduring. That process is the path.
그러나 우리기 그걸 스스로 체험하지 못하면 그건 도움이 안 된다. 체험하기 위해선 이 순수한 알아차림을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아야 하며, 그 다음엔 그것이 안정되어 지속될 때까지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이 길이다.
Then, once we’re familiar with our own true nature, once we’ve realized it fully and integrated it into every aspect of our lives, we will fully manifest the enlightened qualities that were there all along. That’s the fruition.
그래서 자신의 참 성품과 친해지면, 그걸 완전히 깨달아 일상의 온갖 방면으로 적용시켜 자신의 삶과 통합이 이뤄지면, 당신은 이제까지 늘 지녀 왔던 깨달음의 자질을 현실에 완전히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이 결과이다.
The Ground of Dzogchen
족첸의 토대
It might be a little unclear what this “true nature” really is, so let me explain a bit more about the ground.
이 “참 성품”이란 게 정말로 무엇인지 좀 불분명한 것 같아서 조금 더 설명해보겠다.
When we use all these fancy terms like “buddhanature” and “pure awareness,” what are we actually talking about? Well, there are three main qualities to look for here. We refer to these as the “empty essence,” “luminous nature,” and “all-pervasive compassion.” That’s the ground, your true nature.
우리가 “불성”이라든지 “순수한 알아차림”이라는 멋있는 말을 할 때 진짜로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우리는 궁금하다. 흠, 여기엔 살펴보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텅 빈 본질”, “밝은 성품”, 그리고 “두루 하는 자비”를 언급한다. 이것이 당신의 참 성품인 토대(基)이다.
“Empty essence” means that the true nature of mind, the essence of pure awareness, transcends all our ideas, concepts, and beliefs. It is utterly beyond all our suffering and problems. It is completely free. The term for this is “innate purity”—the essence of who we are was, is, and always will be perfect. It’s completely pure, and nothing can change that.
“텅 빈 본질(空性)”이란 마음의 진정한 성품이며 순수한 알아차림의 본질로서 모든 생각과 개념 및 신념체계를 넘어선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의 고통과 문제를 벗어나 있다. 그건 완전히 자유롭다. 여기에 대한 용어가 “내면의 순수(自心淸淨)”-그건 우리가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인- ‘우리는 본래 완전하다’는 것이다. 그건 완전히 순수하여 어떤 것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This empty essence is ungraspable, beyond our ordinary way of seeing things, but it’s not nothing. There is also a luminous, knowing presence. This is what we call the “luminous nature.” Sometimes it’s called “self-clarity,” because this clarity is spontaneous and natural. It’s just there, all the time. Even when we’re asleep, distracted, or completely neurotic. It’s there.
이 텅 빈 본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물을 보는 방식으로는 포착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거기엔 밝게 아는 것(靈智영지)이 있다. 이것을 일러 “밝는 성질”이라 한다. 가끔은 그걸 “스스로 밝음(自明)”이라 한다. 이 밝음은 자발적이며 자연스런 것이다. 그건 언제나 거기에 그대로 있다. 당신이 잠들어 있거나, 산란하거나, 혹은 완전히 신경증 상태에 있더라도 거기에 있다.
The empty essence and clear nature are one and the same. They’re inseparable. This inseparability is the third quality of the ground, which we call “all-pervasive compassion.” This open, spacious clarity manifests as all our thoughts, feelings, and perceptions, just like the sun radiates light. These experiences, in fact all of our experiences, are none other than the manifestations or play of pure awareness.
텅 빈 본질과 밝은 본성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그것은 나누어질 수 없다. 이 나뉠 수 없음이 토대의 세 번째 자질로서 그걸 “두루 하는 자비”라 한다. 이 열린, 넓은 밝음은 마치 태양이 빛을 비추는 것처럼 모든 생각과 감정과 인식으로 나타난다. 사실 이런 경험, 일체의 우리 경험은 순수한 각성의 현시 내지 유희이다.
The Path of Dzogchen
족첸의 길
But what good does just knowing this do us? Not much. That’s why we need a path. We need to translate this from nice words and ideas to an actual experience.
그러나 단지 이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는 게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되는가? 그렇게 많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게 바로 도(道)가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는 道라는 것을 멋진 말이나 관념이라기 보다는 실제 경험이라고 번역할 필요가 있다.
The Dzogchen path is really quite simple. That’s not to say it’s easy, but it is simple.
족첸의 길은 정말 아주 간단하다. 그건 말 그대로 쉽다는 게 아니라 간단하다는 것이다.
The only thing we need to do is to recognize this pure inner nature. We need to experience it for ourselves. That’s it. If we want to make it a little more complicated, we could say that first we need to have pure awareness introduced to us, and then we become familiar with it.
우리가 해야 할 단 한가지는 이 순수한 내적인 성품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자기 스스로 체험해야 한다. 그게 전부다. 그걸 좀더 복잡하게 하길 원한다면, 먼저 순수한 각성을 (스승으로부터)지시받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그것과 친해질 수 있다.
So, how does that happen?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까?
This is where a teacher becomes important. There’s a lot going on in our minds. We have all sorts of memories and reactions, emotions and expectations. In short, we have monkey mind.
여기가 바로 스승이 중요하다고 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우리 마음 속에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기억과 반응들, 감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는 원숭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
Seeing the subtle quality of empty clarity amidst of all this mental activity isn’t easy. If it were, we would have recognized rigpa a long time ago! But a skilled teacher who has recognized pure awareness in him or herself, and who holds an authentic lineage, can point it out to us. They can help us find our way through all the complexities of the mind to see this simple, ever-present reality.
이 모든 종류의 마음이 헐떡거리는 가운데 텅 빈 밝음(空寂靈智공적영지)이란 미묘한 성품을 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쉬운 일이었다면 우리는 오래전에 벌써 릭파(각성)을 알아차렸을 터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순수한 각성을 깨달은 숙달된 스승이라면, 그리고 권위있는 법맥을 이어온 분이라면 우리에게 각성을 지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복잡하게 얽힌 우리 마음을 꽤 뚫어 이 간단하며 늘 있어온 실재를 보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You might think that because you are already perfect, because this awakened nature is fully present as the very nature of your mind, then you don’t need to meditate or practice. Nothing could be further from the truth. The trick is how you practice. You still need to meditate but meditate effortlessly. You still need to practice, but practice naturalness.
당신은 이미 완전하며 이 깨달은 성품은 당신의 진정한 본질로서 완전히 현재해 있기 때문에 당신은 명상이나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지 도 모른다. 만일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진실에서 멀어질 수는 없으리라. 까다로운 점은 그래서 어떻게 수행하느냐 다. 당신은 명상할 필요가 있는데, 애씀이 없이 하라는 것이다. 수행할 필요가 있긴 있는데, 자연스러움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Rather than practicing with the notion that there’s some level to achieve beyond where you are right now, the main practice is learning to trust that this original purity is always present, especially when it feels like it isn’t. Every step you take on the path should reinforce your trust that pure awareness is right here, right now. Until your recognition is unshakeable, you still need to do formal practice.
지금 현재 당신의 수준을 넘어 성취해야 할 어떤 경지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수행하기 보다는 본래의 청정함이 늘 현재해 있다는 걸-특히 그게 없어진 것 같이 느껴지는 때에도-신뢰하기를 배우는 것이다. 길을 가는 매 걸음마다 청정한 각성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 당신의 자각이 흔들리지 않은 지경에 이를 때까지 당신은 정해진 수행을 할 필요가 있다.
The Fruition of Dzogchen
족첸의 결과
As I said, the core of the path is simply recognizing the nature of mind and coming back to that recognition again and again, until it’s as familiar as an old friend. If you do that, there will come a time when you’ve experienced this pure awareness so thoroughly and completely that you never lose touch with it. When you’re meditating, you’re meditating in pure awareness. When you’re eating, you’re eating in pure awareness. Even when you’re sleeping, you’re still resting in the recognition of pure awareness.
이미 말했듯이 길의 핵심은 다만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오래된 친구처럼 친숙해질 때까지 거듭해서 다시 또 다시 재인식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거기엔 이 순수한 각성을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경험하여 결코 두 번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당신이 명상을 한다고 할 때, 그건 순수한 각성 안에서 명상한다는 말이다. 밥을 먹을 때 당신은 순수한 각성 안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잘 때는 순수한 각성의 자각 속에서 쉬는 것이다.
That’s what we call “full realization,” the fruition of the path. At this point, all the qualities of the ground, your true enlightened nature, become manifest. These were there all along, but because you didn’t know they were, it was almost as though they didn’t exist. But now you know them. You know them thoroughly and completely. Perfect wisdom, boundless compassion, the spontaneous capacity to benefit others—all of these manifest.
이것을 일러 “완전한 깨달음”, 즉 도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때는 토대의 모든 자질, 당신의 진정한 성품이 현재화 된다. 이런 것들은 늘 당신과 함께 해왔으나, 당신이 거기에 있는 걸 알지 못했기에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그걸 알았다.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알았다. 완벽한 지혜, 무한한 자비, 타인을 이롭게 하려는 자발적인 능력, 이 모든 것들이 나타난다.
This fruition is simply the full expression of your true nature. It’s as though you go out and travel the whole world, looking and searching high and low for some peace of mind. But in the end, you come home and realize that everything you were looking for was right where you started. That’s the Great Perfection.
이 결과란 자신의 참 성품의 완전한 표현에 불과하다. 그건 마음의 평화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 높고 낮은 곳을 둘러보며 온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종내는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까지 찾아다니던 게 처음 출발한 곳에 모두 다 있었구나 하며 깨닫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대원만이다.
Practice: Dzogchen
수행: 족첸
The trickiest part of Dzogchen practice is that it is not something we can do. The whole point is that we are learning to recognize what is already there, while our “doing” impulse is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who and what we are in the present moment needs improvement. So how do we put this into practice?
족첸 수행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걸 배우는 게 전부이다. 그런데 우리가 “한다”는 충동은 현재순간의 우리가 무언가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가정아래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에서는 이걸 어떻게 실천하라는 말인가?
Dzogchen meditation involves three important qualities: effortlessness, presence, and naturalness. In traditional terms, these three are called non-meditation, non-distraction, and non-fabrication.
족첸 명상에는 세 가지 중요한 자질-애씀이 없음, 그대로 있기,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 세 가지를 수행 없음(無修行무수행), 산란 없음(莫妄想막망상), 그리고 조작 없음(무조작)이라 한다.
To connect with effortlessness, we shift from a mode of “doing” to one of “being.” We let go of the impulse to fiddle with the knobs of experience and give ourselves permission to simply be. We rest in effortless awareness.
애씀이 없음과 연결되려면 우리는 “한다”에서 “존재한다(있다)”로의 모드(존재방식)가 바뀌어야 한다. 경험이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려는 충동을 내려놓고 자기에게 단지 존재하기만 할 것을 허용하라. 그러면 우리는 애씀이 없는 각성에 머문다.
But while we rest in effortless awareness, we are not lost or distracted. We are fully present, alert and aware. This presence is the second quality. It’s not something we need to make happen. It’s already here, with us all the time. When we drop the effort and simply rest, we’re giving ourselves the opportunity to recognize the open clarity of awareness, to be this open clarity.
그러나 우리가 애씀이 없는 각성에 머문다 해도 정신을 놓치거나, 주의가 산만 해진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완전히 현재에 있으며, 성성하게 깨어 있다. 이것(애씀이 없는 각성)이 있는 게 두 번째 자질이다. 이것은 일어나도록 만들 필요가 없다. 이건 이미 늘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애씀을 내려놓고 단지 쉬기만 한다면 우리는 활짝 열린 각성의 자명함을 인식하는-이것이 바로 열린 자명함인데-기회가 올 것이다.
Nothing can diminish this effortless awareness. All our thoughts, emotions, perceptions, and impulses arise from this knowing presence, and dissolve back into it. For this reason, we do not need to create any special state of mind to experience the mind’s innate purity. We don’t need to block our thoughts and emotions or control the movements of our attention. Just be as you are.
어떤 것도 애씀이 없는 각성을 줄어들게 할 수는 없다. 모든 생각, 감정, 인식, 및 충동이 모두 이 앎의 현존에서 일어나서 거기로 사라진다. 이런 이유로 마음의 내적인 청정을 경험하기 위해 특별한 마음 상태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생각과 감정을 막을 필요도 없고, 의도의 움직임을 통제할 필요도 없다. 지금 있는 그대로 단지 존재하기만 하라(그냥 그대로 있어라).
This is the third quality—naturalness. We let everything unfold without trying to correct, alter, or improve anything.
이것이 세 번째 자질인 자연스러움이다. 우리는 고치려 하거나 바꾸려고 하거나 혹은 개선하려고 할 필요 없이 모든 게 저절로 드러나도록 그냥 그대로 두면 된다.
As we grow more comfortable with resting in awareness, these qualities of effortlessness, presence, and naturalness will emerge, and we will slowly come to see that this spacious awareness is who we truly are.
우리가 알아차림(각성) 가운데 쉬는 것에 점점 더 편안해지면 애씀이 없음, 현존,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드러나서, 우리는 이 드넓은 각성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라는 걸 서서히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