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아침 불암산
새해 아침 해돋이 명소를 찾아 떠나는 가족여행이 익숙한 풍경이 되었듯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산에 오른 것 역시 도심 속 신풍속도가 되었다.
거대한 수평선을 가르며 떠오르는 장엄한 태양은 분명 희망의 메시지이지만 고요한 지평선을 따라 슬그머니 머리를 내미는 태양도 똑같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큰 산마다 예외없이 해돋이 명소가 있고 새해 아침이 되면 조금이라도 먼저 희망을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가족 단위로 혹은 동호회 회원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캄캄한 새벽 산길을 기어 오르는 모습은 마치 부족한 희망의 부스러기를 먼저 챙기려는 전쟁터 같기도 하다.
나 역시 새해가 되면 집 근처 불암산에 오른다.
떠 오르는 해를보며 소망을 바라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산에 올라 욕심만이라도 좀 내려놓으려는 나름의 의도도 간직한채.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나의 소망을 한가지씩 말한다.
먼저 나와 가족의 건강을 빌고, 화목한 가정이 되게 해주라고 빈다. 하는 일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빌고 올핸 더욱 번창하기를 바란다. 슬그머니 내게도 문운이 틔기를 바란다. 마음 속에 간직한 소망을 다 말하기도 전에 겨울산은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해가 떠오르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녹은 산길은 벌써 질척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내려가는 길에 미끄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무사히 집 근처에 다다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처 생각지 못한 소원들이 다시 꼬리를 문다. 큰 아들 놈이 군 복무를 잘 마치고 나머지 대학생활을 잘 하기를 바라고 둘째 놈은 좋은 대학에 붙기를 바란다. 아내는 따뜻한 밥을 지어 놓고 반갑게 나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집 앞 현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욕심을 내려 놓은게 아니라 새로운 욕심만 잔뜩 지고 내려온 나를 발견한다. 혹을 떼러 갔다가 욕심의 혹만 잔뜩 지고 내려오는 혹부리 영감처럼.
언젠가 송년 모임에서 당시 환자들의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안과 의사에게 후배 의사가 당돌하게 질문했다.
그 해 겨울 안질이 돌아 병원 앞이 문전성시를 이루던 때였다.
유행성 결막염으로 인해 선배님의 병원에 환자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건강을 되찾아 하루 빨리 병원이 한가해지기를 바라는지. 그 때 속마음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얼버무렸지만 아마 그 선배 의사도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농부는 곡식값이 비싸야 하고, 건축가는 집이 쉬 무너져야 하며, 재판소 관리들은 소송을 하며 다투어야 하고 성직자들의 영광과 직무까지도 우리들의 죽음과 악덕 없이는 안될 말이다. 의사는 친구의 건강도 달가워하지 않으며, 군인은 자기 나라의 평화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옛 그리스 희극작가는 말하였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더욱 언짢은 것은 우리네 각자가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소망은 거의 다른 사람의 손해가 되는데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몽테뉴, <수상록>에서
물론 인간사의 이기심을 과장해서 표현한 대목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 같다.
한 해가 지나가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공연히 슬퍼지고 또 공허해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렇다면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비우려 해도 비우지 못한 욕심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새해 아침 불암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며 따져 물어봐야겠다.
혹 나의 소망이 다른 사람의 손해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첫댓글 새해 인사로 갈음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의정부에서 김연종 올림
선생님 반갑습니다. 자주 들려 주시어요!
새해에도 멋진 작품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김연종 시인님, 아무쪼록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더 좋은 시 많이 쓰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김연종 선생님, 반갑습니다. 새해 많은 축복으로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