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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료바구니(기독) 원문보기 글쓴이: 팔도강산
슥 8: 11 이제는 - 슥 8: 12 평강의 씨앗 ( 1 )
슥 8: 11 이제는 -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옛날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축복하셔서 추수가 많도록 하신다.
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옛날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인즉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재건도 형통할 줄 알고 건축 공사를 강력 추진시켜야 할 것이다.
슥 8: 12 평강의 씨앗 -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
1]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1) 평강
히브리어로는 "샬롬"으로서, 유대인들이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전쟁"이 없는 상태나 내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총체적인 안녕, 특별히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안녕을 뜻한다.
신약에서 보통 다툼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세속 그리스어의 이 낱말은 "샬롬"의 뜻을 거의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인은 하나님 및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이러한 평화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경에서 평화는 하나님의 선물로 나타난다.
* 레 26: 6 -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 롬 15: 33 -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 빌 4: 7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히 13: 20-21 –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 평강의 씨앗
① 씨(Seed)
씨앗, 종자(種子)는 식물의 밑씨가 발달한 것이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에 있다.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식물은 씨에 의해 번식한다.
* 신 22: 9 -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 사 6: 13 -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씨’를 동물이나 인간에게 사용할 때는 고유한 혈통, 또는 그 혈통을 이어가게 하는 자손을 일컫는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씨를 뿌리는 시기는 고온 건조한 여름이 지난 후, 첫 비가 내린 후 초겨울에 파종한다. 이른 비가 올 때로 10월말에서 11월경이다.
이 때에야 비로소 땅이 비로 적셔져서 밭을 갈 수 있고 파종한 씨앗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씨’에 대한 성경에서의 언급은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었다.
* 마 13: 24-38 –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 막 4: 31 -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 눅 8: 5-11 –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영적인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말씀을 받아 태어난 하나님의 자손들에 대한 진리의 개념을 예수님은 ‘씨 뿌리는 농부’에 대한 이야기로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한 일상생활을 소재로 사용하여 가르치셨다.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 뿌리는 자’는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한다.
* 마 13: 37 -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 막 4: 14 -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사용하심으로써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받은 하나님의 자손으로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셨다.
* 벧전 1: 23, 25 –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② 씨앗의 의미
씨앗은 크게 세 가지의 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해하기 쉽게 콩을 예로 들어본다.
콩은 쉽게 두 쪽으로 갈라진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떡잎이다. 이것은 콩이 싹이 터 성장하기까지 영양소의 역할을 한다.
두 떡잎 사이에 순이 있다. 여기에서 뿌리와 새싹이 자라나 콩 줄기가 된다. 떡잎과 순을 감싸고 있는 껍질,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씨앗의 모양이나 크기는 다양하다. 퍼지는 것도 씨앗이 다 형성되면 모체로부터 떨어질 때 스스로 멀리 흩어지는 봉숭아 같은 것이 있다면 민들레나 할미꽃처럼 바람에 날려가 퍼지거나 짐승이나 사람의 몸에 붙어 흗어지는 것도 있다.
씨앗의 주위에 과육이 있어 이 과육을 새나 짐승이 먹고 씨앗은 소화되지 않고 배설되어 생존하기도 한다.
농부는 씨앗의 크기나 싹튼 뒤에 자라면서 차지하는 면적에 따라서 심는 간격을 조정한다. 이처럼 복음도 한마디로 단정을 지을 수 없다. 여기에 복음의 비밀이 있다.
③ 평강
히브리어로는 "샬롬"으로서, 유대인들이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전쟁"이 없는 상태나 내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총체적인 안녕, 특별히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안녕을 뜻한다.
신약에서 보통 다툼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세속 그리스어의 이 낱말은 "샬롬"의 뜻을 거의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인은 하나님 및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이러한 평화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경에서 평화는 하나님의 선물로 나타난다.
* 레 26: 6 -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 롬 15: 33 -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 빌 4: 7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히 13: 20-21 –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백성을 ‘극상품 포도나무’로 표현하셨다.
* 사 5: 1-3 –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이처럼 예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신약교회인 우리들을 ‘그 가지들’로, 하나님을 ‘그 농부’로 비유하셨다.
* 요 15: 1 참 포도나무 -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
(1) 참
"참"이란 말의 헬라 원어 대조되는 "참"이 아니고, 불완전에 대조된 "완전", 그림자에 대조된 "실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2) 포도나무
포도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택한 백성)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 시 80: 8-15 –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 겔 15: 1-8 – 불에 던질 땔감 같은 예루살렘 주민 –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4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7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8 내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 겔 19: 10-14 – 10 네 피의 어머니는 물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11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12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13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어진 바 되고 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그러므로 랍비 문학에서도 말하기를, "실물 중에 가장 낮은 것(포도나무)이 식물계의 왕인 것처럼,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낮아 보여도 장차 메시야 시대에는 세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점령한다"고 하였다(Lev.R. 36:2 참조).
예수님이 이런 랍비 문학에서 이 비유를 인용하신 것은 아니지만 참고할 만한 말이다. 예수님은 참된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을 성립시키신다. 이런 의미에서 그 자신이 포도나무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본래 참 포도나무가 아니며,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실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와 같으시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포도나무)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되어서만 비로서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포도나무 비유의 말씀은, 또한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중보자(中保者)되신 관계를 보여준다.
그들은 그에게 전적으로 의뢰하여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신자의 의뢰심은 자기 자신이 예수님과 일체 될 정도까지 깊어져야 한다.
그에게는, 독자적 의지가 없고 오직 예수님의 의지가 있을 뿐이다. 죄 많은 인간이 어떻게 이런 이상적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