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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강해(4)
성경>:룻기 2:1-16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주 날개 아래에서 은혜받자
명제>: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준비된 마음에 채워진다.
설교목적>: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경만하지 않고 체험하는 신앙인이 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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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우영 목사(벧엘동산교회) 1994년 11월 27일 /주일 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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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편 65:4)
한번 말해 봅시다.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선 축복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궁색하게 살아간다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말도 안되는 일이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 의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제일 부자 나라인데 일본 사람들은 궁색하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는 부강한데 국민들은 찌들어 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모순입니다.
그 말도 안되는 모순이 우리에게 있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닙니까?
나오미와 룻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풍년의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모두들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여 넉넉함을 누리는데 그들은 아직도 한끼의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함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 만하고 자신은 갈급해 하는 모순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지 맙시다.
배가 고프면 극장엘 갑니까? 식당엘 갑니까? 식당에 가서 이 사람 구경, 저 사람 구경하고 나면 배가 불러집니까?
요즈음엔 극장도 구경만 하는 스타일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마당극」은 구경하다가 신명이 나면 같이 나와 춤을 추고 어울립니다. 그러면 속이 시원하고 합니다.
구경만 하는 신앙 생활은 얼마 안가 싫증을 내고 맙니다.
성가대 구경, 대표 기도 구경, 설교 구경, 아!..., 싫증하고 피곤합니다.
「복받은 여자 룻」은 구경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곧 참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베들레헴 사람들이 누리는 풍년의 축복을 함께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적극적인 초신자, 「나중 되었으나 먼저 된」 성도 룻의 신앙의 행적을 살펴봄으로서 여러분들에게도 구경만 하던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챙겨 돌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Ⅰ.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했습니다(1-4).
인생은 드라마입니다.하나님이 연출자라면 사람은 배우입니다. 김경태 장로님의 간증집 「웃으며 살자구요」에 보면 웃지 못할 웃기는 얘기가 있습니다.
『신인 탤런트의 첫 번째 출연, 의사 역할을 맡겼다.
대본에 의하면 주인공이 병원에서 운명하는 장면에 의사가 들어와서 눈을 까뒤집어 본후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한 후 나가는 단순한 역할이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운명하셨습니다"를 외웠다. 드디어 촬영하는 시간,병실에 들어온 후다짜고짜 하는 말이 "운명하셨습니다". "캇" 연출자는 노발대발하며 중지시켰다. 대본
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대본에 의하면 「눈을 까뒤집어 본후 "운명하셨습니다"라고 하라」 고 되어 있었다.
신인 탤런트는 바짝 긴장을 하였다. 첫 번째 NG를 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 으리라 하리라 다짐하였다. 다시 연출자의 "큐"신호가 떨어졌다.
의사 역할의 신인 탤런트는 정중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눈을 까뒤집어 본 후, 엄숙하게 말했다. "운명하셨습니다"
순간 촬영장 세트 내는 요절복통 사람들이 배를 움켜잡고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유족들도 데굴데굴, 심지어 죽었던 시체도 난데없는 폭소에 눈을 번쩍 뜨더니 침대에서 뛰쳐나와 데굴데굴 굴렀다.
이 신인 탤런트는 천연덕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찬찬히 유족들을 둘러
본후 자기 눈을 까뒤집어 본후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에 남을 NG를 낸 것이었다.
한참을 따라 웃다가 나는 갑자기 숙연해졌다. '하나님이 연출자였다면 나는 배우였다. 아, 나는 하나님의 대본과 관계없이 엉뚱한 짓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연출자이며 내 인생의 연출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본에 없는 엉뚱한 짓을 하여 웃지 못할 NG를 내고 있습니다. 인생의 NG는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하심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경륜」대로 전개되기를 원하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인생의 NG를 낼 때는 '캇'이라고 멈추게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오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입니다. 여러분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를 믿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는 첫째 비결입니다.
A.룻은 하나님의 인도하신 손길을 의지했습니다(1-2).
모압 여인 룻은 낯설은 타국에 왔습니다. 친정도 친구도 조국도 버리고 시어머니 따라 이스라엘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룻은 스스로 시어머니를 따라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따라 이 곳에 온 것을 믿었습니다.
낯설고 물 설은 땅이지만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이 인도하셨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하여 반드시 일터를 주시리라 확신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당신이 궁핍해지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합니까? 내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을 고백합니까?
<잠 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분은 아무리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구경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B.룻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필연이었습니다(3-4).
이스라엘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추수하는 밭에서 떨어지는 이삭을 줍도록 허용하는 것이 큰 미덕으로 삼고 있었습니다(신 24:19).
룻은 처음 전혀 안면이 없는 베들레헴 사람들의 밭을 찾아갔습니다. 이삭을 줍도록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우연히'이른 밭이 바로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었습니다.
'우연히' 룻에게 우연히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필연이었습니다.
룻의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우연」이라는 말은 기독인의 사전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저절로', '어쩌다가', '재수 없어서'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인간의 우연은 하나님의 필연입니다.
과학에서 신봉하는 '진화론'은 원숭이가 우연히 사람으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필연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지어졌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중 유력한 자인 보아스」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나타난 구세주였습니다. 보아스의 혈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룻에게 준비된 보아스는 성도에게 준비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보아스를 만나 인생의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룻이었습니다. 싯체말로 「팔자를 고쳤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팔자가 뒤집어져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포로된 자에게 자유가, 눈먼 자가 광명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준비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풍성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구경만 하시렵니까? 모시어 드리십시오. 기뻐하십시오. 「그리스도를 향하여」 룻처럼 달려갑시다.
Ⅱ.하나님이 주신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5-11).
하나님의 주권 적인 섭리는 인간의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축복은 사람의 구체적인 노력으로 얻게 됩니다.
A.룻은 부지런히 일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습니다(5-9).
룻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보아스의 밭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이삭을 주웠습니다.
밭의 주인인 보아스가 밭에 들렸다가 이삭을 줍는 생소한 여인 룻을 발견하고 사환에게 물었습니다.
그 사환의 룻에 대한 소개의 말을 보십시오.(7절)
그녀의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이삭을 주웠습니다.
부지런한 모압의 여인을 보고 보아스는 마음에서 호의가 우러나왔습니다.
이제부터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짓궂은 남자 일군들로부터 보호받도록 명하였습니다. 목이 마르면 일군들이 길어 온 물을 마시도록 배려하였습니다(8-9).
예수 그리스도는 부지런한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어떤 축복도 할 수 없는 분입니다. 게으른 자는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는 사람입니다.
시 128:1)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 기쁨입니다.
둘째, 예쁨입니다.
세째, 바쁨(부지런함)입니다.
1.게으른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발로 차는 행위입니다.
잠 6:9-11)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10」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11」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영적인 사람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게으른 사람은 영적인 일(기도 생활, 봉사 생활, 전도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부지런하나 육체로 사는 사람은 게을러집니다.
2.게으름은 악한 행위입니다.
마 25:26)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예배 시간에 습관적으로 늦는 행위는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게으른 사람은 아무런 은혜도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속수무책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더 먹게 됩니다.
룻은 부지런함으로 보아스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부지런히 예수 믿고,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전도하고, 봉사하고, 자기의 일을 하는 성도에게 풍성하신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B.그의 성실함이 소문났습니다(10-11)
룻은 이 예상치 못한 보아스의 호의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보아스가 룻을 처음 대면하였지만 그녀의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소문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룻의 성실한 효부였습니다. 며느리로서 책임을 성실히 행한 일이 어느덧 소문이 나서 보아스의 귀에까지 알려졌습니다.
당신에 대한 평판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알고 있는 당신에 대한 정보는 어떤 것일까요?
성실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입니다.
열심히 자기 맡은 일에 부지런히 성실히 땀흘려 책임을 다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임할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게으르고 불성실한 태도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대본에 없는 엉뚱한 짓을 하고 축복해 다라고 하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Ⅲ.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12-16).
우는 아이가 젖을 더 먹습니다. 보채는 아이에게 엄마의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습니다.
축복을 구경만 하지 않으려면 축복을 탐내야 합니다. 야곱같이 탐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베풀어주시는 축복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대하는 사람은 반드시 풍성한 은혜를 누립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목마름에 괴로워할 줄 압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성도입니다.
A.룻은 하나님의 「그 날개 아래」로 보호받으러 왔습니다(12)
보아스의 보호 아래에 살기 원하는 룻을 향하여 보아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축복하였습니다.(12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하십시오. 교회 생활에 충실하십시오. 교회가 멀어지면 예수님이 멀어지고,예수님이 멀어지면 하나님의 축복의 날개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서기관, 율법사들에게 이렇게 탄식하며 우셨습니다.
마 23:3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교회의 목사, 집사, 성도들이 예수님을 멀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암탉이라면 성도는 그의 병아리입니다.
시 17:8)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룻은 한 마리의 병아리가 되어 하나님의 품을 찾아왔습니다. 보아스의 축복을 보십시오.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로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가까이 교제하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보답하며 살도록 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지 않고 누리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은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시 36:7)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 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B.룻은 보아스의 은혜를 입기를 원했습니다(13-16).
은혜는 값없이 베풀어주는 호의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은혜가 베풀어져야 축복이 옵니다.
비가와야 땅에 곡식이 풍성해지는 원리입니다.
은혜가 베풀어져야 가정에 행복이 오고, 부부간에 사랑이 오고,육체에 건강이 오고, 마음에 기쁨이 오고, 사업에 일감이 오고, 교회에 부흥이 옵니다.
'축복을 주시옵소서'라고 구하기 전에 「은혜를 내리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1.겸손하게 은혜를 입습니다(13).
겸손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입니다.(10절)
겸손으로 은혜를 구하는 룻은 자신을 보아스의 시녀로 낮추었습니다.(13절)
하나님의 은혜는 강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쭈씨옵쏘써"
하나님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벧전 5: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겸손한 것과 아첨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첨하는 사람 곁에 가면 구역질이 나지만, 겸손한 사람 곁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는 사람입니다.
2.말씀을 기뻐하므로 은혜를 입었읍니다(13).
룻은 보아스의 베풀어 준 은혜에 감격합니다. 보아스의 위로의 말씀에 마음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꿀 송이 같이 즐깁니까? 설교 시간에 주님이 주의 종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에 감사하며 기뻐합니까?
주님의 말씀 듣기를 멀리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기쁨으로 응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C.룻은 배불리 먹고도 남았습니다(14-16).
룻은 이제 남의 배부름을 구경만 하는 배고픈 자가 아니었습니다.
1.보아스의 잔치에서 배부르도록 먹고도 남았습니다.
배는 부르고 볼 일입니다. 배고프면 만사가 짜증만 납니다. 잔치 집에 각서 배부르게 먹고나면 '그 집 잔치 잘했다」고 칭찬합니다.
구경만 하는 성도는 교회에서 짜증만 내고 불평 거리만 찾습니다.
배부른 성도는 예수 자랑, 교회 자랑, 목사 자랑, 성도 자랑합니다.
잔치 집에 차린 것은 많은 데 먹는 사람이 없으면 참 꼴불견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초청하였습니다.
먹기를 원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룻은 보아스의 초청을 받고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니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습니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라면 곡식 베는 자는 설교자입니다. 설교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의 떡을 잡수십시오. 그리고 남겨서 싸가지고 가십시오.
음식은 남겨서는 안되지만 말씀은 내 마음에 차고도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남에게 전할 수 있지 않습니까?
목회는 먹회입니다. 잘 잡수십시오.
은혜 받아 축복된 사람은 배불러 남아 남에게 까지 축복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2.보아스의 밭에서 풍성하게 얻었습니다(15-16).
룻은 배불러도 또 이삭을 주우러 일어났습니다(15).
우리는 이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주의 말씀을 채우고 또 채우며 주의 은혜를 채우고 또 채우며, 성령 충만을 채우며 또 채우기를 원하는 사람, 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 풍족함을 누립니다.
그런 분은 언제나 열심히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삭줍기는 추수가 끝난 빈들에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일군들에게 명하여 일부러 곡식 단 사이에 줍게 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결언: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선 축복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궁색하게 살아간다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편 65:4)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고 자신은 갈급해 하는 모순을 겪지 맙시다.
하나님은 풍요로운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풍성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간절히 원하십시오.
하나님의 허락하신 풍성한 은혜가 당신에게 넘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