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2000년대 초반에는 기본적인 수비 숫자를 늘림으로써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경기를 펼친 후 단조로운 카운터 어택을 시도하는 방법이 역습 전술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의 축구에서는 공·수 양면에 걸친 빠른 전환속도를 바탕으로 한 능동적 역습 전술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역습 전술은 "상대 진영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압박한 후, 볼을 빼앗아낸 이후에는 상대 수비가 정비되기 이전에 피니쉬까지 연결해야 한다" 는 아리고 사키(사진)의 속공 이론에 밑바탕을 둔다. 사키의 이론이 하나의 스타일로 정립됨에 따라 공격적인 스타일의 팀들도 빠른 전환 속도를 바탕으로 능동적인 역습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위와 같은 방식의 속공 전술은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볼을 빼앗아낸 후 역습이 시도되는 까닭에 공격적이고, 능동적이며, 역습의 사정거리가 길지 않다는 특성을 나타낸다. 공격적인 팀들이 활용하기에 용이한 사정거리가 길지 않은 역습, 즉 '숏 카운터' 전술은 최근의 축구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되고 있다.
▣ 아리고 사키의 역습 이론
아리고 사키는 현대 축구의 역습 전술이 한 개인의 드리블이나 스피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잘 훈련된' 패스 플레이 및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속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한 개인의 드리블이나 스피드에 의해 이루어지는 역습은 하나의 전술로써 성립될 수 없다. 전술적인 역습이란 조직적 패스 플레이 및 빠른 전환속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아리고 사키 |
사키가 전술적으로 역습을 시도하기 위해 주목한 측면은 바로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순간의 신속한 대처 능력이다. 사키는 볼을 빼앗아낸 직후 '전진하며 패스하는' 움직임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숫자의 선수를 공격 국면에 관여시키는 한편, 상대 수비가 대형을 갖추기 이전에 피니쉬까지 연결하는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사키는 현대 축구에서의 역습이란 곧 '전환 속도의 승부'라고 주장했다. 이는 곧 선수 개개인의 주력의 차이가 역습의 성패를 판가름짓는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 조직적·전술적 스피드의 차이가 역습의 성패를 판가름짓는다는 의미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역점을 둔 팀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유로 2004 우승국 그리스의 레하겔 감독이 구사한 역습 전술 역시도 사키의 속공 이론에 밑바탕을 둔다. 유럽 언론들은 "4-5-1 대형을 바탕으로 상대 진영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압박한 후, 최단 시간내에 상대 문전까지 도달하는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훈련한 것이 그리스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의 축구에서 유행하고 있는 역습 전술은 아리고 사키의 "상대보다 빠르게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한 후, 상대보다 빠르게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해야 한다" 는 이론에 밑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한 개인의 스피드와 개인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반된 성향을 나타낸다. 이처럼 '장거리 드리블러'에 의한 역습 전술을 본격적으로 체계화시킨 주인공은 화제를 몰고다니는 전 첼시 감독, 조세 무리뉴다.
-Check Point-
사정거리가 길지 않은 숏 카운터 전술은 공격적인 팀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밀란, 아스날, 레알, 바르샤 등과 같이 볼 포제션을 중시하는 팀들은 지공 위주로 공격을 전개하면서도 경기 상황에 따라 숏 카운터 위주로 역습을 시도하는 성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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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뉴, 사키와 크라이프에 반기를 들다
무리뉴 감독이 첼시를 유럽 정상급 팀으로 급부상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완성도 높은 역습 전술이었다. 무리뉴 감독의 첼시는 4-3-3을 기본 대형으로 하면서도, 수비시에는 4-5-1로 변화함으로써 미드필드 지역의 수비벽을 두텁게 구축한 후 측면 공격수들의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카운터 어택을 시도하는 전술적인 특성을 나타냈다.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역습전술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사키와 카펠로의 이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국면에서의 대처 과정에 있어서는 사키의 '전환 이론'을, 상대 진영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압박하기보다는 볼을 가진 상대 선수보다 아래로 내려와 자기 진영 쪽에 수비 대형을 갖추는 전술운용에 있어서는 카펠로의 이론을 그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림설명: 최대한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상대가 공격을 전개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볼을 가진 상대 선수를 기준으로 설정되는 '볼의 라인'보다 아래로 내려올 수 있어야 한다. 첼시는 수비시 양쪽 측면 공격수가 볼의 라인보다 윗쪽에 머무는 전형적인 4-3-3과 다르게, 양쪽 측면 공격수를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시킴으로써 4-5-1로 변화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또한 무리뉴는 4~50m 가량의 중·장거리를 드리블로써 질주할 수 있는 '고속 드리블러'의 효용성에 크게 주목했다. 한 개인에 의한 역습 전술을 부정했던 사키는 무리뉴의 이러한 전술운용에 "축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며, 전술적인 측면 또한 그 때의 환경에 맞게 발전하고 변화해나갈 수 있다" 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다만 크라이프는 사키와 다르게 무리뉴의 축구에 노골적인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크라이프는 "무리뉴의 축구는 수비적이고, 수동적이며, 이기는 것에만 집착한다" 며 자신과 상반된 철학을 고수하는 무리뉴에 선제 공격을 가했고, 이에 무리뉴는 "크라이프는 아직도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현대 축구는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나는 그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계속해서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지 않은가" 라며 그 공격을 일축했다.
[사진: 크라이프 vs. 무리뉴, 서로 다른 축구철학의 충돌.]
무리뉴의 첼시가 빛나는 성공을 거두면서 드리블러의 중요성은 유럽 전 지역에 걸쳐 크게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밀란의 카카, 바르샤의 메시, 레알의 호비뉴 등과 같은 직선적 돌파에 능한 선수들이 각 팀의 역습 전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수의 드리블러에 의한 '폭탄 역습'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팀이다.
루드 반 니스텔로이의 이적 이후 새로운 한 사이클을 맞이한 '젊은 맨유'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카운터 어택의 가공할만한 위력이다. 상대로부터 볼을 빼앗아낸 직후의 시점에서부터 일제히 시작되는 루니, 테베스, 호나우두, 긱스, 나니, 에브라 등의 공간 쇄도는 이 선수들 중 누군가에게 빠르고 정확한 패스가 투입될 경우 곧 위력적인 역습 장면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야말로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스펙타클한 팀이다." - 비센테 델 보스케(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 |
퍼거슨 감독은 컴팩트한 대형, 상대 진영에서부터 시작되는 압박, 패스하고 움직이는 모토에 기반을 둔 공격축구 등 기존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방식의 경기 스타일을 개척함으로써 성공을 이끌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패스 & 무브'를 바탕으로 한 공격축구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맨유의 변화는 속공 능력이 강조되는 최근의 전술적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포스트 플레이어의 높은 활용도
아리고 사키의 속공 이론을 뒤집는 역습 전술은 비단 '드리블러에 의한 역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낮은 성공확률로 인해 비효율적이고 구시대적인 공격법으로 간주되었던 '롱볼 전술'이 최근 들어 각 팀의 역습 전술에서 생각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워, 높이, 수준급의 테크닉을 겸비한 '포스트 플레이어' 스타일의 공격수들은 이러한 롱볼 전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과거에는 포스트 플레이어 스타일의 공격수들에게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영향력 및 공중볼 장악 등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방면에 걸쳐 높은 공헌도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역습 상황에서 포스트 플레이어는 1.5선 혹은 2선의 위치까지 내려와 볼을 전달받은 후, 골문을 등진 상태에서 효과적으로 볼을 키핑함으로써 충분한 공격 숫자가 확보될만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경기 상황 및 상대 수비의 움직임에 따라 직접 돌파를 시도하거나 피니쉬까지 연결하는 다재다능함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 선수의 활용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드록바와 크라우치를 보유한 첼시와 리버풀 등이 위와 같은 롱볼 전술이나 포스트 플레이에 의한 속공을 하나의 공격루트로 확립시켜놓고 있으며, 이는 아데바요르를 앞세운 아스날도 마찬가지다. 그 밖에 세비야의 카누테, 바이에른의 토니, 팔레르모의 아마우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이다.
[사진: 최전방 공격수의 포스트 플레이 능력을 중시하는 도나도니 감독은 토니의 가장 자연스러운 대체요원이 될 수 있는 아마우리의 발탁을 적극 고려 중에 있다.]
한편 로마에서 원톱 역할을 맡고 있는 토티의 경우 전형적인 포스트 플레이어들과는 스타일적 차이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역습시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수행하고 있다. 골문을 등진 상태에서 볼을 키핑하는 것에 능숙할 뿐 아니라, 2선 깊숙한 곳까지 내려와 상대 문전을 향해 침투하는 만시니, 페로타, 타데이 등에게 '최고급 패스'를 찔러줄 수 있는 토티 특유의 재능은 스팔레티 감독에 의해 새롭게 극대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지공 상황: "상대의 밀집수비를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아무리 스피드 면에서 강점을 나타내는 팀이라 할지라도, 90분 내내 속도 면에서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축구에서는 속공 이외에도 지공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경우에는 이미 밀집 대형을 갖추고 있는 상대 수비진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여부가 공격의 성패를 판가름 짓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요한 크라이프의 스타일을 계승하는 지도자들은 상대를 속도로 제압하려 하기 보다는 볼 점유율을 최대한으로 높여 지공 위주로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팀들이 점차 감소되는 추세에 놓여져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바르셀로나, 인테르 밀란, 혹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대표팀 등과 같이 볼 소유권을 지배하는 공격축구를 그 팀의 '정신'으로 삼고 있는 팀들은 변함 없이 위와 같은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Check Point-
지공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인테르의 경우 '팀 스피드의 부족', '역습 루트의 부재' 등을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실패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는 중이다. 이는 볼 소유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을 때의 '무기력함'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05/06 시즌 비야레알과의 원정경기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수아소의 효과적인 활용을 비롯한 역습 루트의 개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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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많은 숫자의 수비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지공 상황에서는 공격적인 측면에서의 포커스가 "상대의 밀집 수비대형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상대의 밀집수비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볼 수 있다.
첫째,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위에 있어야 한다.
지공 상황에서는 속공 상황에 비해 좁은 공간에서, 많은 숫자의 수비수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테크닉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지공 상황에서의 공격은 개인 전술(개인기) 및 부분 전술(컴비네이션)의 연속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공격의 완성도가 테크닉의 수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은 진부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둘째, 공격루트가 다양해야 한다.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이미 대형을 갖춘 상태에서 상대 공격에 대비하고 있는 만큼 공격하는 팀 입장에서는 양쪽 측면과 중앙을 다양하게 공략할 수 있어야 한다. 양날개의 돌파를 통해 상대 수비수들을 사이드 쪽으로 끌어내는 전형적인 공격 방법은 물론, 적극적인 중거리 슈팅 혹은 원·투 패스를 바탕으로 한 컴비네이션 공격을 시의적절하게 구사해야 한다.
셋째, 예측 불허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마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수퍼스타의 마법 한 방은 완성된 수비조직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 펠레, 마라도나, 호나우두, 지단, 호나우디뉴와 같은 '마법사'들이 그 사실을 그라운드 위에서 증명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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