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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돌아가심(44-49)
고난은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더 큰 목적과 계획을 발견하게 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을 깨닫습니다. 결국, 고난은 우리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44-49)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최후에 관한 진술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누가복음에서 성전 휘장이 찢어진 일은 예수님의 운명 이전에 언급되는데 병행 구절은 운명 이후에 언급됩니다(마 27:57; 막 15:38).
(1) 십자가의 죽음(44-46)
누가복음에서 십자가상 예수의 최후 외침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입니다. 그런데 병행구절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막 15:34)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백부장은 예수님을 의인으로 고백하는데 병행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마 27:54; 막 15:39). 이러한 차이는 복음서 저자들의 서술 의도나 관심사의 차이에 따른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간결하게 서술합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의 죽음 이전에 일어난 일들과 십자가에서의 운명의 순간, 그리고 죽음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서술합니다. 44-45절은 예수의 죽음 이전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서술입니다. 누가는 두 가지 상징적인 일, 온 땅에 임한 어둠과 성전 휘장의 찢어짐을 특별히 언급합니다.
44절에 보면 온 땅에 어둠이 임합니다.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3시간의 긴 어둠이 지속되었습니다. 여기 ‘어둠’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한 슬픔의 엄숙함을 표현합니다. “해가 빛을 잃고”는 누가복음에만 언급되는데 그 엄숙함을 더합니다. 더구나 누가는 사탄의 권세와 관련하여 어둠을 언급합니다(1:78-79;22:53; 참조. 행 26:18). 45절에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집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은 휘장이 찢어진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로 거룩한 곳 중에서도 특히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휘장을 열고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휘장이 찢어져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 길이 열렸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휘장을 예수의 몸으로 동일시하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로운 길을 언급합니다(히 10:20). 46절은 십자가상 예수님의 최종적인 간구입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이 구절은 시편 31:5을 반영합니다. 순교하는 스데반의 기도도 여기 예수님의 간구와 유사합니다(행 7:59). 이 간구는 23:34에 언급된 간구와 더불어 누가의 강조점을 드러냅니다. 누가는 예수님 고난의 정점에서 아버지-아들 모티브를 통해 예수님의 정체를 분명하게 나타냅니다. 누가복음은 다양한 문맥에서 아버지-아들 모티브를 사용합니다(2:49; 9:26; 10:21-22; 22:29, 42:23:34). 공적 사역을 시작할 때에 하늘에서 난 소리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는데 이제 사역을 마칠 즈음 예수님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2) 죽음의 목격자들(47-49)
본문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서술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목도한 백부장(23:47)과 무리들(23:48), 그리고 그를 아는 자들과 여인들(23:49)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47절은 백부장에 관한 서술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는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강조적인 표현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자였다.” 병행 구절에서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합니다(마 27:54; 막 15:39). 본 절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무죄에 초점을 맞춥니다. 또한 이사야서에 언급된 고난의 종을 반영합니다(사 52:13-53:12). 48절은 구경하러 모인 무리에 관한 서술입니다. ‘가슴을 치며’는 그들의 애도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애도하며 돌아갔습니다. 49절은 예수님을 아는 자들에 관한 서술입니다. 그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그를 따르던 여인들은 멀리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체포되어 끌려가는 예수님을 멀리서 뒤따르던 것과 비교됩니다(22:54). 이 구절은 시편 38:11을 상기시킵니다.
복음서 저자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누구인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정체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죽음은 그의 정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수난 기사의 절정인 동시에 누가복음 전체의 절정입니다. 우리는 인자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매장(50-56)
우리 삶에서는 어려움과 고난이 지나간 뒤에 반드시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어 줍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은 신앙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서로를 대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우리를 더욱 성장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50○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50-56)
고난 기사는 예수님의 매장에 관한 이야기로 끝맺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매장 이야기,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여 바위에 판 무덤에 안치하는 내용(23:50-54)과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는 내용(23:55-56)으로 구성됩니다.
(1) 요셉에 의해 매장됨(50-54)
예수님의 매장 이야기는 요셉에 대한 소개(23:50-51)와 요셉에 의한 매장(23:52-53) 내용으로 이루어집니다. 50-51절은 공회원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소개입니다. 그는 산헤드린의 회원이었습니다. 마가는 그를 존경받는 공회원(막 15:43)으로 표현합니다, 공회원인 요셉은 선하고 의로운 자입니다. ‘의로운’이란 표현은 사가랴와 엘리사벳(1:6), 시므온(2:25), 예수(23:47) 등을 묘사할 때 나옵니다. ‘그들의 결의와 행사’는 산헤드린의 결정과 행동을 뜻합니다. 누가는 그가 산헤드린의 결정과 행동에 동의하지 않은 자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2:25),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2:38)과 유사한 표현입니다. 이 구절에서 동사는 미완료과거형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메시아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마태는 그를 예수님의 제자로 언급합니다(마 27:57; 요 19:38). 52절에서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합니다. 마가는 그가 ‘당돌히’ 빌라도에게 요구했다고 서술합니다(막 15:43). 누가복음은 요셉의 요구에 대한 빌라도의 반응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빌라도가 백부장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고 시체를 내어주었다고 서술합니다(막 15:44-45; 참조. 마 27:58; 요 19:38). 53절은 요셉이 예수님을 매장하는 장면입니다. ‘바위에 판 무덤’은 당시 부유한 자들의 무덤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세마포에 싸서 바위에 판 무덤에 안치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밤중에 예수님을 방문하였던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 함께 장례를 행하였다고 서술합니다(요 18:39-41). 54절은 이 일의 시간적 배경입니다. 이날은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었다고 서술합니다. ‘예비일’은 안식일 전날이므로 금요일을 뜻합니다. 55절은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그의 무덤과 시신의 안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23:49). 그리고 예수님을 장사하는 무덤까지 따라가서 시신의 안치된 모습을 확인하였습니다. 56절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그녀들은 모든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이어서 쉬었습니다. 누가는 24:10에서 그녀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데,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입니다.
(2) 향유를 준비한 여인들(55-56)
고난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인 본문 54-56절은 안식일 언급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습니다. 누가는 이 끝부분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매장된 정확한 시간을 언급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고난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정확하게 이루어졌듯이 앞으로 전개될 부활의 이야기도 예언대로 성취될 것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관하여 예언된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언된 말씀의 성취라는 큰 틀 속에서 전개됩니다. 그리하여 예언된 말씀대로 성취된 과거는 예언된 말씀대로 성취될 미래를 기약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고난, 부활, 그리고 승천이 약속대로 성취되었고 예수님의 재림이 약속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약속의 성취를 고대하며 오늘 종말의 때를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그로 인한 구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어둠이 내린 순간은 인류의 죄가 드러나는 상징이며,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를 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백부장의 고백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여인들의 슬픔은 그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구원의 소망을 새기고,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할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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