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하여가와 단심가ㅡ
충성은 두 군주를 섬기지 않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살았던 충신으로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어
비극으로 생을 마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몽주입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설 무렵 이성계의 둘째 아들인 이방원은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려고 하면서,
조선의 초대 왕에 (자기 아버지인) 이성계를 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권력이 필요해
학문이 뛰어난 정몽주를 (자기편을 만들려고)
그에게 “하여가”를 보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ᆢ
이방원은 “하여가”로써
서로 다른 두 집단이지만
친하게 조화를 이루어
오래 살자고
정몽주에게 제안하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계에 입문하는 것은
출세의 지름길이며
부와 권력을 보장받는
확실한 방법이었기에
정몽주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고,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일종의 정치적인
스카웃을 제의한 셈입니다.
그러나 고려의 왕을 모셨던 정몽주로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몽주는 한 번 고려의 신하는
영원한 고려의 신하라고 생각하여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하여 “단심가”를 보내
이방원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ᆢ
정몽주는 임을 향한 하나의 마음을 고수했고,
결국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철퇴로 맞아 선죽교에서 죽었습니다.
정계에 입문하여
부와 권력과 생활의 안정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정몽주는 의연히 거절하고
한 군주에게 충성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정몽주가 선택한 것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를 떠나
한 주인를 섬기려는 것은
의와 충을 중요시하는 곳에서는
늘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정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을까요?
굿 ~모닝입니다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