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한상렬
코로나가 ‘집콕’을 하라 한다. 모든 강의가 묶이고 두문불출한다. 그렇게 1년이 넘었다. 글을 쓰는 작가이니 때없이 얻은 긴 휴식이 유효하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들긴다. 청탁원고도 시간이 어지간히 남아도니 걱정이 없다. 그러다 쉼이 필요하면 텔레비전의 리모콘을 돌린다. 별반 시청할 만한 게 없다. 다행히 엣지에선 일천 회를 넘었던 최장수프로 <전원일기>를 방영하고 있다. 잠시 시선을 화면에 둔다. 고전적 냄새가 나지만, 그 풍미만은 여전하다.
양지마을엔 꼬마들이 몇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커다란 나무를 끼고 한 아이가 눈을 감고 숫자를 센다. 그러면 남은 아이들은 여기저기 몸을 감춘다. 세기를 끝낸 술래가 숨은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그때는 그랬다. 놀거리가 별반 없었던 우리네 유년시절은 흑백장면이다. 그러나 지금은 총천연색의 칼라가 판을 친다. 아니, 어린아이들도 스마트폰에 익숙하여 게임을 즐긴다. 젊은 연인은 만나서도 이야기를 주고받기보다는 서로 자기 스마트폰에 더 열중한다. 최근까지도 카카오톡을 하지 않고 송수신에 만족해 하던 내가 이를 개통하자마자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카톡을 보내왔다. 원시로부터 해방한 할아버지를 축하하는 메시지다.
숨바꼭질은 사라짐과 나타남, 이별과 상봉의 반복이다. 이 둘은 같이 있지만 늘 다른 데에 있다. 나는 여기에, 남은 거기에 존재한다. 양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숨은 그림을 찾는 순간 풀린다. 숨바꼭질은 몸으로 하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애착과 기쁨, 갈등과 공포가 재현되는 게 숨바꼭질이다. 아이들의 숨바꼭질은 들키려고 하는 놀이다. 들키지 않으면 아이는 그만 실망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하는 숨바꼭질은 숨으려 하는 놀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가급적 꼭꼭 숨는다. 들키면 저들은 절망한다. 아이의 놀이는 관계를 잇는 놀이지만, 어른은 이기기 위한 놀이다. 들키는 날이면 관계는 끊어지고 만다.
누구나 숨기면서 산다. 나를 지나치게 노출시키면 생존 자체가 흔들린다. 그래 숨김은 그의 능력이요, 부담이기도 하다. 만일 숨긴 것을 들키게 되면 애를 태우게 된다. 다른 이가 찾지 못하면 기쁘고 만족해 한다.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그러니 숨겼다는 건 들키기 직전이라는 말이겠다. 그래 계속 감출 것인지, 털어 놓을 것인지를 갈등하게 된다.
숨고 밝히는 게임에서는 남의 잘못은 속속들이 뒤져내고 내 잘못을 꼭꼭 감추면 싸움에서 이기게 된다. 그러나 비밀이 밝혀지면 숨겼던 사람의 마음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비난과 공격에 일일이 반응하고 무시하거나 불평하기 일쑤다.
인생은 숨기고 찾고 알아내고 나누는 게임이다. 숨기면 누구는 보호받고, 누구는 다치게 된다. 숨기면 누구는 자유롭고, 누구는 구속받기도 한다. 숨기면 누구는 평안하고, 누구는 괴롭게 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은 들켜도 걱정이 없다는 데 있다. 침묵이나 변명, 물타기 발뺌으로 다 해결되기도 한다. 그래 형식적 사과도 약효가 있다.
아이들의 숨바꼭질에는 어른들의 것과 달리 계산이 깔려 있지 않다. 그저 놀이로 만족한다. 하지만 어른의 숨바꼭질에는 속내가 꼭꼭 숨어있다. 머리카락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하여 사특하거나 사전에 계산된 이득에 눈이 먼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싸움이 오래도록 질기게 이어졌다. 아직도 싸움은 미궁을 헤맨다. 흡사 숨바꼭질을 닮아있다. 일 년 앞둔 대선후보들의 지지도가 들쭉날쭉이다. 직위를 내려놓자마자 지지율이 반등한 당사자는 지금 웃고 있을까, 아니면 가슴 조릴까.
서울아파트 가격이 치솟는다. 엄청난 홋가다.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 하련만 서울공화국은 지금 한창 번창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LH투기가 한창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웃는 이도 있고 땅을 치며 분통해 하는 이도 있으렷다. 이제 숨바꼭질은 절정을 향해 갈 것이다. 그네들은 지금 아이들의 것과는 다른 숨바꼭질을 한다. 누가 웃고 누가 울까. 관중은 재미있어 한다. 남의 일 같은 내 일이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숨바꼭질이 그립다. 숨고 숨기려는 어른의 숨바꼭질은 별반 재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