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비둘기
조성순
숲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새소리에 잠이 깬다. 아파트 화단 쪽이 아니라 있는 도로 쪽에서 들린다. 요즈음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문을 열어둔다. 에어컨을 끄고 자연 바람을 불러들일 수 있는 시간이 자동차운행이 뜸한 그때뿐이다. 한뎃잠을 자는 것처럼 새소리가 가깝다.
어렸을 때 여름밤이면 옥상이나 바깥에서 노숙(?)을 했다. 집 앞이 도로였지만 집집마다 도로를 마당삼아 평상을 내놓고 모이곤 했다. 수박에 옥수수를 먹다 졸리면 그냥 거기서 잠이 들었다. 그런 밤이 지나 아침이면 희한하게 집안에서 눈을 떴다. 그 보다 전에는 산골할머니네 꺼끌꺼끌한 멍석위에서 별을 보다 잠이 들곤 했던 아련한 기억도 있다.
이제는 꼭꼭 닫아걸고 산다.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다 멈칫한다. 아파트 앞 도로변에 배롱나무 화단이 있는데 나무 아래 풀숲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보인다.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총 총 뜀뛰기하는 참새였다. 통통 튀어 오르는 모습이 신선하고 앙증맞다. 버스정류장에는 비둘기들이 모여 있다. 사람이 있어도, 자전거가 위협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바닥을 쪼아댄다. 발등이라도 쪼일까 피하게 된다. 비둘기들이야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와 보폭을 맞춰왔기에 익숙한 장면이다. 얼마 전 녀석들이 거드름피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날, 점심을 먹고 지하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옆에는 자동차 한대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중이라 한쪽으로 바짝 붙어 섰다. 그런데 운전자가 계속 클랙슨이 눌러댄다. 나는 안전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왜, 이상해서 자동차 앞을 보니 비둘기 떼가 진입하는 차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계속되는 빵, 빵 소리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두루마기자락 나부끼며 팔자걸음 걷는 양반이 따로 없다. 보다 못한 내가 차 앞으로 나아가 온몸으로 쫒으니 그제야 날아간다. 마지못해 비켜준다는 날갯짓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운전자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우리는 서로 헛웃음을 지었다.
저들을 일러 ‘도시새’ 라고 한다더니, 사람을 겁내지 않고 환경 적응도 빠르고 잡식성에 목청은 커지고 무리를 지으니 두려울 것이 없는 상태로 진화 한 도시에 사는 새들이다. 주택가 골목의 음식쓰레기통 주변에 까치들이 모여 있는 걸 보는 건 흔한 일이다. 대부분 날기보다 뛰거나 걷는다. 숲에선 나무와 나무사이를 포르르 날아 먹이를 구할 수 있지만 거리에서 다르기 때문이겠지. 이제는 참새까지 끼어들었다. 환경이 달라지면 힘겹지만 적응할 수밖에 없나보다. 해가 바뀔 때마다 기온은 높아져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 열대화에 이르렀다. 우리도 작년여름과 올여름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오늘도 역시 최고기온을 갱신하고 있다.
뙤약볕을 피해 살가운 친구와 대청댐에서 만났다. 데크 길을 따라 물가를 걷다가 정자에 앉아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멍하게 앉아있었다. 오리들이 물위에 그리는 기하학적인 무늬도 아름답다. 마치 우리를 위한 공연이라도 하는 듯 두 마리에서 세 마리, 네 마리까지 모여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우아한 몸짓 아래 물에서 열심히 헤엄을 치고 있으니 오리도 물속에서 걷고 있는 게다. 그러고 보니 물가에 모인 새들도 걷는다. 먹이를 찾아 달음박질도 한다. 철원 철새도래지에서 보았던 재두루미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갈매기도 그랬다.
숲에선 멀리 있어도 기꺼운 존재지만 도심에서 반갑지 않을 때가 많다. 새들은 하늘을 날 때나 전깃줄에 앉아 있을 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그들만의 안전거리라고 한다. 자기들끼리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인간에겐 너무 훅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아니 우리가 그들의 숲을 야금야금 축내며 도시로 내몰았음이다. 그러니 우리 집에 왜 왔느냐고 밀어붙일 수도, 흘겨 볼 수도 없다. 새들이 그러겠지, 적반하장이라고.
저녁이면 스마트폰 걷기 앱을 확인한다. 목표했던 걸음수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만보걷기열풍이 이어진지 오래되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움직임을 최대한 아낀다. 날개를 아끼는 새들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가, 어쩌다 높이뛰기 하듯이 날아오르는 것으로 만보를 채우기라도 하는지 여전히 걷는다. 나도 팔을 열심히 흔들며 걷다보면 새처럼 날아오르는 건 아닐까? 더위 탓인지,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드라마 탓인지, 시답잖은 생각이 끼어드는 오늘아침에도 양반비둘기 버스정류장에서 호통을 친다. 콕(걸),콕(어),콕(라). 정신 차리라고 내 발등을 쪼아 대나보다. 따끔거리는 햇살아래 새들이 걷는다. 참새는 총 총, 비둘기는 에헴.
첫댓글 ㅎㅎ 저는 앵무새를 키우고 있어요. 선생님의 글을 보니 새에 대한 느낌이 새롭네요.^^
양반 비둘기라는 호칭도 재미있고요.
늘 좋은 날 되세요!
조성순 선생님 !
이 글이 <막걸리 커피>라는 수필집에 수록된 글이군요.
올 가을에 수필집을 발간하셨군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