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커티스 (Tony Curtis,1925~2010)
'토니 커티스' 는 '헝가리 이민자'의 장남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출생,
'미국 뉴욕 주 브롱크스'에서 자라면서 악명(惡名) 높은 갱단의 일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으로 병역을 마친 후에는 뉴욕의 '시티 칼리지'와 '그리니치
빌리지'의 '드라마 워크숍'에 다니며 연기의 첫 맛을 보았다. 그러다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눈에 띄어 계약 제안을 받았다. 1949년에 할리우드로 옮기면서
'토니 커티스' 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
〈도둑 왕자 The Prince Who Was a Thief〉(1951)와 같은 모험 영화에 출연했는데,
커티스가 출연했던 초기 영화들은 대부분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Houdini〉(1953)에서
헤리 후디니로, 〈Trapeze〉(1956)에서는 공중곡예사로, 〈Sweet Smell of Success〉
(1957)에서는 부정한 홍보담당자로 출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어 '시드니 포이티어'가 흑인 기결수 역으로 출연한 〈The Defiant Ones〉(1958)에
출연하여, 서로 손목에 사슬이 묶인 백인 기결수 역을 맡은 커티스는 자신의 배우 인생
역사상 '단 한 번의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커티스' 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Some Like It Hot〉(1959)에 출연하면서 더욱 유명
해졌다. 이 영화에서 '잭 레먼'과 함께 마피아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재즈
뮤지션 역을 연기했다.
'커티스는 코미디 연기를 하면서<Spartacus〉(1960) 같은 영화를 통해 좀더 진지한
배역들을 소화하기도 했지만, 주로 〈Operation Petticoat〉(1959), 〈The Great
Imposter〉(1961), 〈Sex and the Single Girl〉(1964) 같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1951년 '세기의 로맨스'라는 화제를 뿌리며 미모의 여배우 '자네트 리'와 결혼을
한다. '자네트 리'는 당시 24세의 신예 여배우로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필름 느와르
영화 '폭력행위(Act of Violence)'나 '푸른 화원(Little Women, 작은아씨들)' 같은 영화를
통해서 촉망받는 여배우였다.
1960년대가 되어서도 '토니 커티스'는 여전히 스타배우로 맹활약했다. '로버트 멀리간'
감독의 로맨스 코미디 'The Rat Race' 초호화 캐스팅의 스펙타클 '스팔타카스'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한 코미디 '그레이트 레이스' 등이 주요 출연작인데 특히 '율 브리너'와
공연한 대작 시대물 '대장 부리바(Taras Bulba)'에서 함께 공연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눈부신 미모의 여배우 '크리스티네 카우프만'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네트 리'와의
12년에 걸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토니 커티스'와 '크리스티네 카우프만'은 1963년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당시 그녀는
18세밖에 안된 미성년 배우였다. 20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을 한 그들의
부부생활은 4년밖에 가지 못했다. 이후 '토니 커티스'는 4번의 결혼을 더하여 총 6번의
결혼을 하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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