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낭에 얇은 시집책과 수건,
마스크 두장, 솔의 눈 음료수, 부산 쥐포채를 넣고 새벽 부터 동서울 터미널로 달렸다. 첫차, 7시 반차를 타야 하루 일정이 꼬이지 않고 계획대로 여유가 있는, 모처럼의
서울도심, 탈출이다.
"우뚝 구름 위로 솟은 오래된 탑
손으로 잡고 올라 돌 난간에 기댄다
움푹한 봉방은 보찰이 지어져 있고
학을 타고 오르니 선관에 가깝구나"
성종대왕때 문신 매계 조위가 지은
오언절구 "등수정암경" 시조이다.
무오사화의 파란, 조의제문 사건
김종직 처남인 매계 조위는 충청도
관찰사 재임시절에 속리산을 올라
비경의 수정암을 노래했는데 지금,
속리산국립공원은 백악산, 칠보산,
대아산, 군자산을 아우르는 넓은
백두대간 갈비뼈에 해당하는 골길,
풍광이 남쪽 지리산과 난형호제의
산맥을 이룬다.
속리산 암자들은 모두 법주사 오층
목탑 형식인 팔상전으로 부터 시작
하는 가람과 뫼의 자연풍색을 띠고
돛대모습의 팔상전 중심으로 복천암,
수정암, 상환암, 중사자암, 여적암,
탈골암이 군데 군데 터를 잡고 수도
스님들의 번뇌와 불심경전 공부를
다독거리는, 속세를 떠난 무념의
딴 세상이다.
11시가 넘어 도착한 속리산터미널,
기웃거리며 정이품송을 구경했다.
세조왕이 지나가니 나뭇가지를 들어
올려 편히 지나가게 해서 소나무에게
지금의 차관급 벼슬을 내준 세조왕,
옛 조상들의 해학과 윗트, 자연식물을
대하는 태도 역시, 군자의 나라 조선,
괜히 지어낸 말은 아니다 라고,
좌우동형을 잃은 정이품송은 태풍에 좌측 큰 가지가 부러져 볼품과 균형이 어색했지만 칠백년 수령의 거목에서 품어져 발산하는 기품과 품위는 여전,
고사목 단계에서 육림보호를 잘하여 생목, 환목으로 씨종을 널리 육종하여 퍼뜨린다고,
산채거리에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주변엔 모텔 숙박시설, 유명한 산과
고적 사찰입구에는 상업적 돈벌이,
시설이 난무한다. 관광과 여흥, 순례목적이 단순한 사람 모이는
곳에 풍요가 있고 소비가 있는,
사랑과 로맨스, 불륜과 탐닉이 공존,
세상은 그렇게 돌고, 먼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에도 평화로운 웃음과
교태로 지난 수재민들의 울음과
아픔도 잊고 어둔 색 위에 밝은
하이톤 브라우닝을 덧 칠하는 공간,
그 속에서 살며 점심밥을 찾는다.
산채비빕밥은 맛 있었다.
일석이조, 오늘 가는 길은 중사자암
이지만 암자 한곳도 더 추가했다.
짜장면을 먹으려 하는데 탕수육까지
시킨다면 두배로 오는 기쁨과 맛남이
아니겠는가, 법주사 뒤편으로 계곡을
따라 걷다 왼편으로 돌아 올라가면
탈골암이라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
하는 여승무복 같은 작은 암자이다.
늦게핀 수련이 스님들의 모습보다도
먼저 반가이 맞아준다. 여승들이
수도해서일까! 능소화, 분꽃, 달맞이,
백합화, 수국, 꽃들의 정원이다.
시원한 계곡 물소리, 하늘거리는 꽃들,
손벽을 쳐 소리가 나듯, 닫힌 마음이
환히 열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내 마음의 동요이리라!
암자를 둘러싼 자연과 경건의 고요,
불성이 저절로 생기고 부처님 말씀도
바람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는 실감도,
중사자암은 문장대 아래에 있다.
신라 성덕왕때 창건된 암자이니
천년 암자인 셈이다. 세조왕을 비롯
조선왕들이 피접겸 방문이 잦아,
그 이유를 알아보니,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상이 문수도량이라고,
다 관념적 수사에 불과하다.
문수보살이 지혜와 도량을 보시
하는 성안을 주어도 속세인들,
내 자신이 알아내지 못하고 감동이
없다면 불성을 깨닫지 못하는 법.
에라, 모르겠다. 꽃이나 실컷
구경하자꾸나, 암자 뜨락에 핀,
노랑꽃 붉은 꽃이나 눈 시리게
보고 가자 꾸나. 꽃이름을 모르면
어떠리, 부처님 불심과 광명제세를
모르면 어떠리, 태초에 무슨
이름들이 있었던가! 이름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의 그림자.
나무 빽빽한 한자 삼, 속리산은
원시림으로 변하고 있는듯, 나무
식물들이 삼라지망을 펼치듯
하늘 보기가 어려운 정글 같았다.
빨리 하산해야 4시 반, 막차를
타고 상경해야 되니, 서둘러서
주마간산격으로 내려 간다.
산속 암자에서 고행의 수도를 하는
스님은 무엇을 얻으려, 나도 또한
무엇을 얻으려 속리산 암자를 탐방,
산길을 허겁지겁 내려 갈까!
선정과 지혜를 얻어 영원한 자유인
으로, 힘겨운 사색의 통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이기의 최고점, 유아독존
무념무상의 내 편한데로의 한 세상,
작지만 곱게 핀 꽃을 보고서도 연애
감정처럼 뛰는, 가슴 뛰는 삶을
살고파서 그렇게 허둥거리고 빌빌
거리고 살고 있는지!
- 풍운유서(속리산)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