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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구성과 골격
작품 개요
제목: 빛비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화자: 연희/ 할머니의 침묵을 오해
소설 구성의 3요소
인물: 연희, 죽은 외할머니 순애, 세탁소 주인 태석 그의 아내 정자,
연희의 어머니 미숙
사건: 할머니의 유품에서 발견된 편지 한 통이 연희를 폐업한 세탁소로 이끈다. 그 곳에서 만난 정자는 죽은 남편 태석의 유품을 보여 주고, 연희는 할머니의 유품과 똑같은 세탁표를 발견한다. 두 사람의 편지와 세탁 장부를 맞추어 보 며 오래 감추어진 사랑과 결별의 사연을 유추한다.
배경: 장맛비가 내리는 초여름 저녁, 재개발을 앞둔 ‘백조세탁소’. 젖은 옷과 수증 기, 다리미의 열기와 빗물, 낡은 주전자가 비밀의 상징
단계별 스토리보드
발단/ 할머니 장례 뒤 유품을 정리하던 연희가 주소 없는 편지와 흰 백조가 새겨진 황동 세 탁표를 발견한다.
전개/ 편지에 적힌 태석의 유품에서 나온 똑같은 황동표와 편지들을 내놓는다. 연희 할머니 와 태석은 전쟁 통에 헤어진 첫사랑이었다. 재회 뒤에도 가정을 허물지 않기 위해 서로 의 옷만 맡기고 돌려주는 방식으로 안부를 나누다가 서로 결별한다.
위기/ 연희는 할머니가 유부남과 평생 관계를 이어 왔다고 오해하며 분노한다.
절정/ 두 묶음의 편지와 세탁 장부를 날짜순으로 맞추어보며 진실은 드러난다. 연희는 비밀을 폭로하지 않고 정자와 함께 마지막 편지를 읽기로 한다.
결말/ 연희는 할머니의 마지막 블라우스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직접 다림질한다. 두 개의 17 번 표 중 하나는 정자에게 돌려주고 하나는 간직한다.
제목/ 빛비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지난 날의 과거와 말 못 하는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 몇 년 동안 할머니 방에서 봄에는 쑥 냄새가 났고, 겨울에는 묵은 솜, 이 불 냄새가 났다. 웃음조차 소리를 아끼고, 엄마가 넌지시 과거를 물으면 “지난 세월은 다시 입을 수 없는 옷과 비슷하다고 말하곤 했다.
오늘로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지 꼭 열흘째 되는 날인데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장맛비라고 하기에는 이르고 봄비라고 부르기에는 무거운 빗소리였다. 빗방울은 베란다 난간을 두드리며 사람이 떠난 집의 빈 곳을 하나씩 세어 보는 듯했다. 엄마는 할머니 방 앞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펼쳐 놓고 말했다. “쓸만한 것은 별로 없으니, 웬만하면 버리자.” 사람 한 명의 생애를 ‘필요한 것과 버릴 것’으로 갈라치기 하는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저고리 한 벌, 겨울 바지 두 벌, 목도리 한 장, 약봉지, 돋보기, 고장 난 손목시계.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물건을 나누었다. 할머니를 오래 돌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냉정한 아쉬움이었다. 나는 그것이 서운하면서도 부러웠다. 그때 내 눈의 시선은 사소한 물건 앞에서 멈췄다. 손때 묻은 빗, 모서리가 닳은 명심보감, 반쯤 쓴 동백기름. 버리면 할머니가 두 번 죽을 것 같고, 남기면 죽음을 인정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장롱 맨 아래에서 푸른 보자기에 회색 모직 치마를 꺼냈을 때였다. 치맛단 안쪽이 이상하게 두꺼웠다. 실밥을 뜯자 누렇게 변한 봉투 한 장과 동전과 비슷한 황동표가 떨어졌다.
황동표에는 날개를 접은 흰 백조가 음각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 숫자 17이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는 ‘백조세탁’이라는 글자가 희미했다.
봉투에는 받는 이도 보내는 이도 없었다. 풀칠조차 하지 않은 채 봉투 속에서 네 번 접힌 편지지가 나왔다.
태석 씨.
비가 오는 날이면 세탁소 유리창이 먼저 흐려지겠지요. 그 흐린 창 너머에 당신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아직도 습관처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맡긴 것은 옷이 아니었습니다. 돌려받지 못할 줄 알면서도 서로의 젊은 날을 맡겼습니다.
편지는 거기서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정자 씨보다 먼저 죽게 된다면 이 편지를 태워 주세요. 내가 먼저 살아남는다면 당신의 이름을 끝까지 모르는 척하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벌칙이자 식구들에 대한 예의일 것입니다.
마지막 줄에는 주소 대신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백조세탁소. 열일곱 번째 옷걸이 아래.
나는 편지를 두 번 읽었다. 세 번째에는 할머니의 이름을 확인하려고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서명은 없었지만, 글씨는 분명 할머니의 것이었다. 냉장고에 붙여 놓은 ‘미역 사라’, 내 생일 봉투에 쓴 ‘연희에게’라는 모서리 진 필체. 다만 그 글씨체는 내가 아는 할머니보다 젊어 보였다. 문장마다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려는 애절한 숨결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엄마, 태석이라는 사람 알아?” 흘러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유품을 정리하던 어머니의 손이 잠깐 멎었다. 그러나 정말 모르는 이름인 듯 눈썹만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태석! 태석이라, 우리 친척 중에는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러니?”
나는 편지를 등 뒤로 슬쩍 감췄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편지 속 내용을 ‘모르는 척하겠습니다’라는 할머니의 부탁이 벌써 내 몸뚱어리를 움직였는지 모른다.
“별거 아니야. 그냥 옛날 영수증에 적혀 있어서.” 대수롭지 않은 듯이 그 자리를 나왔다.
그날 저녁, 나는 지도에서 백조세탁소를 열심히 찾았다. 같은 이름이 몇 군데 나왔지만, 황동표 뒷면에 새겨진 전화번호의 앞자리와 편지지 위 희미한 도장이 한 곳을 가리켰다. 영등포구 신정2동 699-, 우리 동네에서 버스로 사십 분쯤 떨어진 약간 외진 도심이었다. 거리나 집 담장에는 붉은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목동 신도시 개발이라는 찢긴 구호는 철거 막판의 혼잡한 분위기다. 반쯤 내려온 셔터와 ‘빛바랜 재개발 확정’이라는 붉은 현수막이 사진에서 보였다. 간판의 백조는 목이 부러진 것처럼 글자 사이로 기울어져 구세주의 부축을 요구한다.
나는 오후에 검정 우산을 들고 버스 시간에 맞춰서 집을 나섰다. 진실을 알고 싶기보다 할머니가 자기한테 숨긴 사람이 있다는 사실관계가 좀처럼 견디기 어려웠다. 그동안 인자하신 할머니의 침묵은 가족 모두에게 공평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 단 한 사람만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면, 나는 그 집 문 앞 언저리라도 가보고 싶은 심산이었다. 구도심에 들어서자, 빗줄기는 더 세차게 뿌리고 굵어졌다.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고, 빗물은 간판의 불빛을 길바닥에 길게 풀어 놓았다. 백조세탁소 셔터는 절반쯤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는 오래된 형광등이 물에 젖은 생선의 배처럼 푸르스름하게 떨고 있었다.
“계세요?”
내 목소리 뒤로 수증기 빠지는 소리가 길게 났다.
옷걸이 사이에서 수척해진 노인이 삐죽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마른 여자였다. 잿빛 머리를 단정히 빗어 은색 비녀를 꽂았고, 손에는 남색 남자 양복을 들고 있었다.
“세탁은 이제 받을 수가 없네요. 이번 주면 문 닫아요.” 죄송합니다.
그 와중에 염치없이 눈과 눈을 마주한다.
나는 젖은 손바닥 위에 선뜻 황동표를 올려 보였다.
노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놀란 얼굴보다 무서운 것은 표정이 없어지는 얼굴이다.
그녀는 양복을 내려놓고 내 손의 물건을 가까이 와서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살피면서, 세세한 사연은 묻지 않고 “이걸 어디서 났어요?”
“정순애라는 분을 아세요? 예, 제 할머니예요.”
깡마른 노인은 유리창에 너덜대는 백조의 날개 부분을 오른쪽 엄지로 한 번 쓱 문지른다.
그러고는 세탁소 문을 점잔하게 닫았다. 빗소리가 셔터 바깥으로 밀려나 가게 안은 갑자기 오래된 동굴 속의 미로처럼 어리둥절 해졌다.
“나는 윤정자예요. 강태식의 아내고.” 뜻밖에 자기소개를 거침없이 한다.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편지 속의 문장들이 숨을 쉬며 움직였다. 정자 씨보다 먼저 죽게 된다면. “버리자” 나는 내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알아버렸다고 생각했다. 죽은 할머니의 얼굴 위에 내가 모르는 표정 하나가 어렵사리 스치듯이 겹쳐진다.
잠시 후 정자 할머니는 나를 세탁소 안쪽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방에는 낡은 소파와 전기주전자, 세탁 장부가 덜컹대는 철제 책상이 비스듬히 있었다. 벽에는 젊은 부부의 결혼사진이 결기 있게 걸려 있었다. 신랑은 마른 얼굴에 눈매가 선명했고, 신부는 긴장한 듯 입을 꼭 다물고 있는 평범한 흑백 사진이었다. “남편이 죽은 지 오늘로 열흘째가 되었네요. 진작에 이사를 해야 했는데, 잠시 무엇인가 표현하고 싶은지 입술만 달삭거린다. 영감은”폐가 안 좋았지. 평생 수증기를 마셨으니.” 누군가에 넉두리를 하는 모습인가, 아님 신빨에게 하소연.
정자 할머니는 책상 서랍에서 나무 상자를 꺼냈다. 뚜껑에는 희미하게 ‘양복 단추’라고 붓글씨로 쓰여있었다. 그안에는 손목시계와 만년필, 인감도장, 빛바랜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고, 그녀가 흰 손수건을 펼치자 황동표 하나가 나타났다.
백조, 그리고 17.
내 손에 있는 것과 똑같았다. 녹슨 자국의 방향까지 닮아, 어느 것이 진짜 할머니 것인지 순간적으로 구별할 수 없었다.
“남편 유품에서 나왔어요. 당신 할머니 것과 같은 거지요?”
정자 할머니는 이번에는 편지 묶음을 꺼냈다. 푸른 리본으로 묶인 봉투들 위에는 연희 할머니의 글씨가 있었다. 태석 씨에게. 어떤 봉투에는 우표가 붙어 있었고 어떤 것은 붙어 있지 않았다. 한 번도 발송되지 않은 편지도, 여러 번 읽어보아 접힌 자리가 해진 편지도 있었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할머니의 비밀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다른 여자의 결혼생활 한가운데 놓인 무심한 돌덩이 처럼 느껴졌다. 참으로 어이없는 현상을 보고 있다.
“이걸 알고도 갖고 계셨어요?”
나의 말에는 필요 이상으로 반항적인 말투고, 날카로움이 서 있었다.
“무엇을 안다는 말이지요?” 그녀의 숨소리는 차분했다.
“두 분이… 계속 만났다는 것요! 할머니도 남편이 있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와 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편지를….”
정자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월을 잊은 노랑 주전자에서 칙칙거리며 물이 끓기 시작한다. 나는 그 작은 소리가 두 분의 죽은 사람을 변명하는 것 같아 더욱 화가 났다.
할머니는 우리한테 평생 아무런 말도 하지 안 했어요. 자기는 항상 깨끗하고 이지적인 사람처럼 평생을 살았어요.”
그때 정자 할머니가 나를 똑바로 보면서 언성을 높였다.
“세탁하는 사람이 깨끗한 사람인 줄 알아요?”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허름한 벽 쪽을 향해서, 그리고 오래된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손짓하며 두드렸다. “우리는 얼룩이 어디서 생겼는지 절대 묻지 않아요. 피인지 포도주인지 알아야 지우기는 하지만, 누구 피인지 누구와 마신 술인지는 묻지 않지. 깨끗해서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남의 옷을 맡았기 때문에 입을 다무는 거예요.”
나는 젖은 우산 끝만 철없이 바라보았다. 바닥에 고인 물이 내 발밑으로 조금씩 번졌다.
정자 할머니는 가장 아래에 있던 세탁 장부를 펼쳤다. 표지에는 1968년이라고 또렷이 적혀 있었다. 바스러질 듯 누런 종이 위로 날짜와 이름, 옷의 종류가 적혀 있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게 있다면, 내 짐작이 아니라 이 안에 있을 거예요. 나도 남편이 죽고 나서야 전부 읽었으니까.” 우리는 두 사람의 편지를 날짜순으로 늘어놓았다. 세탁소 바닥은 금세 한 생애를 펼쳐 놓은 듯, 달력을 찍어대는 인쇄소 배지대 좌판처럼 변했다. 빗소리가 세탁소의 얇은 슬레이트 지붕을 제법 두드린다. 나는 할머니의 편지를 읽고, 정자 할머니는 남편의 답장을 읽었다. 순애와 태석은 전쟁이 끝난 뒤 피란민 수용소에서 처음 만났다. 순애는 열일곱 살, 태석은 열아홉 살이었다. 둘 다 북쪽에 가족을 두고 자유를 찾아 내려왔다. 이름 대신 배급표 번호로 불리던 때, 태석은 세탁소 심부름을 했고, 순애는 군복의 찢어진 소매를 꿰맸다. 세탁물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달던 황동표 중 17번이 두 개 잘못 만들어졌고, 태석은 하나를 순애에게 주었다.
우리도 서로를 잃어버리면 이 황동표를 들고 찾자.
젊은 태석의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은 물건보다 쉽게 이별을 하고, 더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수용소에서 태석은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떠났고, 순애는 먼 친척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그중 몇 통의 편지는 반송되었다. 그사이 순애는 집안의 권유로 내 외할아버지와 혼인했고, 태석도 자신을 거둬 준 세탁소 주인의 딸 정자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것이다.
“나와 결혼한 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있더군요.”
정자 할머니는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마르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두 사람은 근 20여 년 만에 재회했다. 할머니가 내 중학교 교복을 맡기러 우연히 백조세탁소에 들어온 날이었다. 장부에는 그날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1974년 6월 17일. 정순애. 여학생 교복 상의 한 점. 얼룩: 잉크.
그 날짜를 보는 순간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미술 시간에 만년필 잉크를 쏟아 할머니에게 야단맞을까? 울었던 날. 할머니는 화를 내지 않고 “물이든것은 것은 지우면 된다”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 교복이 이곳에 왔고, 그것을 받은 사람이 태석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운명처럼 재회한 뒤에, 두 사람은 가끔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내가 상상한 밀회는 어디에도 없었다. 순애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코트나 블라우스를 맡겼고, 태석은 세탁이 끝난 옷의 안주머니에 짧은 답장을 넣었다. 서로의 손을 잡았다는 문장도, 함께 떠나자는 약속도 없었다. 오히려 편지의 대부분은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다짐으로 가득했다.
당신의 집 앞까지 갔으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정자 씨가 다림질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돌아섭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겠다고 나서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시간을 잃게 되겠지요.
하지만 참았다는 이유로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편지를 읽는 정자 할머니의 손이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여기 온 건 언제였어요?”
정자 할머니는 1982년 장부를 펼쳤다. 10월 10일, 정순애라는 이름 옆에 ‘회색 모직 치마’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편지와 황동표가 들어 있던 그 치마였다. 비고란에는 태석의 글씨로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얼룩 남음. 고객 요청으로 그대로 반환.
그날 할머니는 더 이상 세탁소에 오지 않았다. 편지 한 통이 그 까닭을 말해 주었다.
태식 씨, 오늘 정자 씨의 손을 보았습니다. 다리미에 덴 자국과 세제에 갈라진 손가락을 보았습니다. 그 손이 당신과 이 가게와 아이들을 붙들고 온 세월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그리움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그 손보다 먼저일 수는 없습니다. 이제 내 옷을 다른 곳에 맡기겠습니다. 당신도 내 소식을 세탁하려 들지 마세요. 기억은 얼룩으로 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치맛단에 감춘 것은 사랑의 증표 보다는 사랑을 끝낸 증거로 보였다. 보내지 못한 마지막 편지는 태석에게 가는 대신 할머니의 몸 가까운 곳에서 십수 년을 서로 살았다.
태석의 상자에도 같은 날짜의 편지가 있었다.
순애 씨,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일이 의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말이 곁에 있는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는 뜻인 줄 늦게 알았습니다. 열일곱 번 표를 돌려보내지 않겠습니다. 찾지 않기 위해서 가지고 있겠습니다.
그 뒤로도 각자 같은 번호표를 간직했다. 다시 만나기 위한 증표가 아니라 만나지 않기로 한 약속처럼.
나는 할머니를 너무 쉽게 재판하려 했다는 사실이 쪼금 부끄러웠다. 그러나 곧바로 용서나 존경 같은 말로 덮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하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사랑했고 모든 것을 숨겼다. 태석은 아내 곁에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품었다. 정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혹은 어렴풋이 알면서 평생 남편과 세탁소를 지켰다. 어느 한 사람만 죄인으로 내세우면 나머지 사람들의 세월이 지나치게 간단해질 것 같았다.
“저를 왜 안 미워하세요?” 내가 물었다. “할머니 손녀잖아요.”
정자 할머니가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미워하려면 살아 있는 사람을 미워해야지. 죽은 사람은 대답을 안 해서 재미가 없어요.”
그 말이 우스워 나는 조금 웃었다. 정자 할머니도 따라 웃었다. 웃음이 그치자, 그녀는 벽의 결혼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당신 할머니가 고맙지는 않아요. 물러났다고 해서 처음부터 오지 않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 다만 그 양반도 나처럼 자기 몫의 불행을 들고 살았겠구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말은 용서보다 정직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정자 할머니는 이번 주에 세탁소를 비울 예정이라고 했다. 재개발 조합에서 몇 번이나 독촉장이 왔고, 자식들은 낡은 기계를 버리라고 성화였다. 나는 문득 가방 속에 넣어 온 할머니의 흰 블라우스를 꺼냈다. 장례식 전날까지 할머니 방 의자에 걸려 있던 옷이었다. 목깃 안쪽에 누런 얼룩이 남아 있었다.
“이것 하나만 세탁해 주실 수 있어요?”
정자 할머니가 블라우스를 받아 두 손으로 빛에 비춰 보았다.
“오래된 땀 얼룩이네. 다 빠지지는 않을 거예요.”
“괜찮아요. 없어지지 않아도 돼요.”
그녀는 잠시 나를 보더니 다림질 판 위에 블라우스를 펼쳤다. 세탁기는 이미 물을 뺀 뒤라 우리는 작은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받고 손으로 옷을 주물렀다. 정자 할머니가 세제를 아주 조금 풀었다. 할머니의 체온도 냄새도 이미 사라졌을 텐데, 젖은 천을 만지는 순간 나는 할머니의 등을 씻겨 드리던 마지막 겨울을 떠올렸다. 뼈가 얇게 만져지던 어깨와,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내 팔을 놓지 않던 손.
헹군 블라우스를 탈수기에 넣자 낡은 기계가 크게 몸을 떨었다.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정자 할머니는 능숙하게 기계 옆구리를 한 번 발로 쳤다.
“늙은것들은 달래기보다 가끔 정신 차리게 두드려야 한다니까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웃었다.
우리는 젖은 블라우스를 다림질 판에 펼쳤다. 정자 할머니가 내게 다리미를 건넸다. 나는 망설였다.
“제가 해도 돼요?”
“당신 할머니 옷이잖아요.”
뜨거운 다리미가 젖은 천 위를 지나가자 흰 김이 피어올랐다. 김은 잠시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가 형광등 아래에서 흩어졌다. 나는 천천히 주름을 밀었다. 너무 세게 누르면 천이 상하고, 너무 빨리 지나가면 주름이 펴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도 이와 비슷했을까. 할머니는 평생 어떤 주름은 펴고 어떤 주름은 남겨 두었을 것이다.
목깃의 얼룩은 희미해졌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손끝으로 그 자리를 만져 보았다.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면 할머니의 생애가 새 옷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을 것이다.
정자 할머니는 두 개의 황동표를 나란히 놓았다. 어느 것이 누구의 것인지 끝내 구별되지 않았다.
“하나는 가져가요.”
“어느 것이 할머니 건데요?”
“이제 그게 중요할까요?”
나는 조금 덜 녹슨 것을 정자 할머니 쪽으로 밀고, 가장자리가 검게 변한 것을 집었다. 선택에 근거는 없었다. 어쩌면 유품이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이 쓰던 물건이어서 유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남아 있는 사람이 자기 기억을 하나 골라 얹는 순간 유품이 되는 것. 세탁소를 나설 때 비는 가늘어져 있었다. 나는 다린 블라우스를 누런 봉지에 넣어 품에 안았다. 간판의 백조에서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그녀는 셔터 아래서 나를 배웅했다.
“연희 씨!”
정자 할머니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 편지는 어쩔 거예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황동표를 손안에 쥐었다. 차창에는 빗방울들이 서로의 길을 침범하며 흘러내리는 자연의 법칙을 그려 낸다. 어떤 것은 중간에서 합쳐졌고 어떤 것은 끝까지 혼자 내려간다. 창밖의 불빛은 물기를 통과하며 번졌지만 사라질 생각이 없다.
그날 밤,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편지 아래에 날짜를 적었다.
할머니가 떠난 뒤 열흘째, 비.
그리고 짧게 한 줄을 덧붙였다.
나는 오늘 할머니가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비로소 할머니를 한 사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