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상휼(患難相恤)- 걱정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동정한다
살기가 나아지면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지는 것인데, 남을 위한 배려는 점점 줄어든다. 사람들이 점점 이기주의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나만 잘살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 점점 팽배해져 간다. 인정(人情), 인간미(人間味)가 점점 사라져, 세상은 더욱더 각박해지고 삭막해지고 살벌해진다.
우리 조상들은 향약(鄕約)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서로 도우고 의지하며 살아왔다. 향약의 정신은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지만, 그것을 문자로 정착시킨 것은 중국 송(宋)나라 때 남전여씨(藍田呂氏)였다. 그래서 향약을 남전여씨향약(藍田呂氏鄕約) 또는 남전향약(藍田鄕約), 여씨향약(呂氏鄕約) 등으로 불렀다. 주자(朱子)가 <소학(小學)>을 편찬하면서, 이 남전여씨향약을 <소학>에 실음으로써 중국과 우리나라 등에 널리 퍼졌다.
조선 중기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퇴계(退溪) 이황(李滉), 율곡(栗谷) 이이(李珥) 등의 노력으로 향약이 각 지방에 널리 보급되어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상부상조(相扶相助)하며 살아가는 도덕적인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 ‘남전향약’의 사대강령은 ‘덕업상권(德業相勸: 덕을 닦는 일을 서로 권할 것)’, ‘과실상규(過失相規: 잘못한 일은 서로 바로잡을 것)’, ‘예속상교(禮俗相交: 예의를 지키는 풍속을 서로 주고받을 것)’, ‘환난상휼(患難相恤: 걱정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동정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힘든 큰일은 ‘품앗이’라 해서 서로 노동력을 모아서 도우며 살아갔다. 마을에 경사가 있거나 흉사가 있으면, 서로 함께 가서 일을 거들고, 술이나 음식을 해서 보내며 같이 축하하고 같이 슬퍼하였다. 부모에게 불효(不孝)하거나, 형제간에 싸우거나 패륜적(悖倫的)인 행위를 하면, 마을 어른들이 불러와 엄격한 훈계를 하여 바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도시생활이 되면서 이런 풍속은 거의 다 사라졌다.
현재 자신의 생활수준이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것 없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이기주의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이미 마음이 교만(驕慢)해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혼자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농촌에는 돼지열병 등으로 축산농가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대학졸업생들은 직장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좀 살기가 나은 사람들 모두가 마음의 난로를 피워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민소득 3만달러는 대단한 성과지만, 3만달러가 진정하게 고루 나누어져 못사는 사람이 없는 것이 더 중요하다.
* 患 : 근심 환. * 難 : 어려울 난. * 相 : 서로 상. * 恤 : 불쌍히여길 휼.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