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fo-QW0Jf4s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성경의 중요한 어휘들을 연구해 왔고 오늘도 또 하나의 중요한 단어를 가지고 함께 연구하겠습니다. 153번째 연구할 단어는 '형사취수(兄死娶嫂)'입니다. 처음 듣는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여러 가지로 깊이 연구하시는 분들은 들었겠지만,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처음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영어로는 'Levirate marriage'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형사취수, 즉 형이 죽거든 형수를 취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그런 결혼이 어디 있느냐?" 하고 우리 풍습에는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성경 시대에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법이었습니다.
먼저 형사취수라는 단어의 한자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맏형 형(兄)', '죽을 사(死)', '장가들 취(娶)', '형수 수(嫂)' 자를 씁니다. 여기서 '취' 자는 단순히 물건을 취하는 '가질 취(取)' 자와 달리 밑에 '계집 여(女)' 자가 붙어 있어 '아내를 맞이하다, 장가들다'라는 뜻입니다. 이 제도는 형수나 제수(계수)와 결혼하는 제도라 하여 '수혼(嫂婚) 제도'라고도 부릅니다.
이것을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로는 '이붐(Yibum)'이라고 합니다. 이붐은 형사취수 결혼 자체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야바마(Yavamah)'에서 오는데, 야바마는 남편의 형제인 시숙이나 시동생(Brother-in-law)을 뜻합니다. 모음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데, '이벰(Yibem)'이라고 하면 동사의 강세형(피엘형)으로서 '형사취수하다, 수혼하다', 즉 형수를 취하여 장가들다라는 뜻이 됩니다. 야바마, 이벰, 이붐은 모두 남편의 형제와 관련된 같은 어원에서 나옵니다.
그 뜻은 만약 어떤 사람이 아들(후사)이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취하여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 동생이 이 형사취수 결혼을 거절하면 모세의 율법에 따라 과부가 된 형수가 성문으로 가서 장로들에게 고발합니다. "이 시동생이 죽은 내 남편의 대를 이어줄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장로들 앞에서 그 동생의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어 "자기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는 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을 찍었습니다. 이처럼 신을 벗기는 예식을 히브리어로 '할리차(Halitzah)'라고 합니다. '신을 벗기다'라는 뜻입니다.
영어 명칭인 'Levirate marriage'에서 'Levirate'라는 말은 라틴어 '레비르(Levir, 남편의 형제, 시동생)'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는 관습을 뜻합니다. 과부가 된 여인이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함으로써 죽은 사람의 혈통을 이어주고, 홀로 남은 과부의 생계를 보호해 주는 제도입니다. 그 목적은 죽은 사람의 이름과 재산을 보존하여 가문의 대가 끊기지 않게 확실히 해주는 동시에, 남아 있는 과부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확보해 주는 것입니다.
모세 율법에 무엇이라 되어 있는지 신명기 25장 5절로 10절 말씀을 직접 보충하여 살피겠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을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고대 이스라엘에서 대가 끊어지는 것은 가문의 멸절을 의미했기에, 대를 이어주는 것은 동생의 엄숙한 의무였습니다. 거절할 경우 행해진 '할리차' 예식의 고대 그림들을 보면, 형수와 결혼하기를 거부한 동생의 발에서 형수가 신을 벗기고 땅에 침을 뱉으며 장로들과 증인들 앞에서 가문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임을 공포하는 장험한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실제 사례가 나옵니다. 창세기 38장에 보면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의 집안에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가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지내다가, 가난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아내로 맞이하여 동침했습니다. 유다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엘, 오난, 셀라였습니다. 셀라를 낳을 때 유다는 거십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왔는데 그의 이름이 '다말'이었습니다. 다말은 종려나무라는 좋은 뜻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무슨 악한 일을 했는지는 성경이 밝히지 않습니다. 마다들이 자녀 없이 죽자, 그 당시의 법(이붐)에 따라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말했습니다.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결혼하여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형수 다말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첫날밤에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고 죽은 형의 아들로 입적될 것을 알고는, 의도적으로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피임)을 하였습니다. 형의 이름을 잇지 못하게 하려는 이 고의적인 기피 행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오난의 행동이 악했던 이유는 단순한 피임이 아니라, 형의 대를 이어 가문을 세워야 하는 엄숙한 의무를 이기심 때문에 저버려 형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형을 죽인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까지 죽을까 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 다말에게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셀라가 다 크면 남편으로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속으로는 셀라도 형들처럼 죽을까 봐 결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핑계를 댄 것입니다. 다말은 친정으로 돌아가 기다렸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창세기 38장 12절로 30절에 길게 이어집니다. 유다의 아내인 수아의 딸이 죽었습니다. 아내를 잃고 홀로 된 유다가 슬픔을 달랜 후 친구 히라와 함께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올라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며느리 다말은 막내 시동생 셀라가 이미 장성했음에도 시아버지가 자신을 아내로 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과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결단을 내립니다. 과부의 의복을 벗고 얼굴을 면박으로 가려 눈만 내놓은 채, 딤나 길곁 에나임 문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딤나로 가던 유다는 얼굴을 가린 다말을 보고 가문의 며느리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거리의 여인(창녀)으로 오해하여 수작을 걸었습니다. 다말은 유다에게 "나와 동침하는 대가로 무엇을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유다가 염소 새끼를 보내주겠다고 하자, 다말은 그것을 담보할 증표를 요구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도장과 그 끈, 그리고 지팡이를 담보물로 건네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 사이에 불륜의 관계가 맺어졌고, 다말은 단 한 번의 관계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집으로 돌아온 후 친구 히라에게 염소 새끼를 들려 보내며 담보로 준 도장과 지팡이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히라가 에나임에 가서 찾아보니 사람들은 "여기에는 본래 창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건을 찾지 못한 유다는 부끄러움을 당할까 봐 그만두라 하였습니다.
석 달쯤 지난 후에 유다에게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당신의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유다는 분노하며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소리쳤습니다. 가문의 정절을 더럽혔다며 며느리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다말이 끌려 나갈 때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그 담보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이 물건의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살펴보소서 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유다가 그것을 확인해 보니 분명 자기의 물건이었습니다. 유다는 큰 충격을 받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잘못을 자책했습니다. 다말은 해산할 때가 되어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이 유다 가문의 해프닝을 그린 고대 성화들을 보면, 과부의 면박을 쓴 다말을 알아보지 못하고 담보물을 건네며 수작을 거는 유다의 씁쓸한 역사적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며느리 다말을 통해 태어난 베레스의 계보를 타고 훗날 보아스가 나오고, 다윗 왕이 나오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됩니다. 메시아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유다 가문의 사건이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형사취수 제도는 한 개인과 가문의 명맥을 이어주는 제도로서 당시에 매우 엄중한 법적·종교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않거나 오난처럼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피하면 하나님의 엄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셀라를 속히 주지 않은 것도 이 제도를 준수하지 않은 명백한 잘못이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루기』에 나오는 '룻'의 이야기입니다. 사사 시대에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 가나안에 흉년이 들자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 기룐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두 아들이 모압 여인인 룻, 오르바와 결혼하였으나 얼마 후 아버지와 두 아들이 모두 자식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집안에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등 과부 세 사람만 남은 것입니다. 남편과 자식을 잃고 알거지가 된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하라고 권했고 오르바는 눈물로 작별했으나,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며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좇아 베들레헴으로 함께 돌아왔습니다.
텅 빈 손으로 돌아온 고부에게는 그들의 잃어버린 토지 재산(기업)을 대신 돈을 주고 사서 되찾아주고, 죽은 남편의 대를 이어줄 친족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율법에 따른 형사취수와 기업 무르기의 법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만난 인물이 유력한 자인 '보아스'였습니다. 룻기 4장 구도성의 성문 재판 장면을 보면, 보아스는 성문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앉히고 룻의 가문과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고엘)에게 의향을 묻습니다.
히브리어로 '고엘(Goel)'은 '기업 무를 자'를 뜻합니다. 친족의 잃어버린 재산을 빚을 대신 갚아 되찾아주고 그의 대를 이어줄 의무를 지닌 가까운 혈족입니다. 영어로는 이를 'Redeem(무르다, 대속하다)'이라 하고 그 의무를 지닌 친족을 'Kinsman-Redeemer(혈족 구속자)'라고 부릅니다. 보아스가 그 1순위 고엘에게 나오미의 토지를 사고 말론의 아내인 룻을 취하여 가문의 이름을 세우겠느냐고 묻자, 그 사람은 처음에는 땅을 사겠다고 했다가 룻과 결혼하여 후사를 낳아주어야 한다는 말에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며 최종 거절하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이에 옛 관습에 따라 그 사람이 장로들 앞에서 자신의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나는 이 의무를 포기하니 당신이 취하시오" 하는 공식적인 '할리차' 예식이 행해진 것입니다. 이로써 보아스는 합법적인 고엘의 자격을 갖추어 룻과 결혼하였고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룻기의 족보 마지막은 유다가 다말에게서 낳은 '베레스'로부터 보아스를 거쳐 다윗에게로 연결되며 끝이 납니다. 루스(룻)가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를 줍던 아름다운 로맨스의 장면 뒤에는, 이처럼 가문의 생명과 명맥을 이어주는 엄숙한 형사취수의 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고엘(혈족 구속자)의 자격과 책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혈통적으로 가장 합당하고 가까운 친족이어야 합니다. 멀리 떨어진 타인은 자격이 없습니다.
친족의 부채와 가난을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넉넉한 경제적 재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가정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중재해 줄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 귀찮고 손해가 되는 험한 일들을 자원하여 기꺼이 감당할 희생적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기업을 무르는 자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조나 원어와 영어로는 모두 똑같은 단어인 '고엘'과 '리디머(Redeemer)'를 씁니다.
이 형사취수와 고엘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성도)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표상입니다.
형사취수와 기업 무르기 제도는 단순한 고대의 결혼 풍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인류의 무거운 죄의 부채를 대신 갚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되찾아 주시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지극히 구원사적인 복음의 제도였습니다. 그렇기에 그 의무를 이기심으로 거절하는 자는 가문의 생명을 단절하는 자로서 엄한 책임을 물었던 것입니다.
오늘 형사취수라는 낯선 용어 속에 담긴 성경의 역사와 구속사적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결혼은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의 연합을 상징합니다. 여러분도 창세기 38장의 유다 집안 이야기와 룻기 1~4장의 나오미, 룻의 대하소설 같은 이야기를 읽으시면서 이 제도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와 복음의 깊이를 깊이 명상해 보시기를 바라며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