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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목사님께서 카톡으로 보내 주신 주님의 약속된 말씀 - 13
TSR/제2249호/260826(WED)
이사야 35:1-10 새시대의 미드바르(Midbar)와 다바르(Davar)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1, 5, 6, 8, 10)
☕ Appetizer
이사야서는 작은 성경(Small Bible)으로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처럼 66장의 구조는 1장~39장은 구약의 율법적인 메시지이고 40장에서 66장까지는 신약의 복음적인 메시지로 회복과 기쁨의 노래로 충만하다.
이사야 35장은 메마른 광야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뀌는 예언으로 1차 독자에게는 바벨론에서 귀국자들을 통한 예루살렘 회복의 메시지이다. 2차 독자인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영적으로 출애굽 하여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평강을 누리게 되는 구원의 메시지이다.
좀 더 멀리 적용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온 세상은 심판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천국의 예언이다.
현대사에서는 조선 땅에서 눈물로 기도하였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Underwood's prayer)의 응답이다.
1885년 4월 5일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하여 선교사의 사역을 시작한 그의 눈물의 기도가 조선 땅에 응답으로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복된 나라가 되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영국은 국교도들의 박해를 피하여 청교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사막 같은 황무지 땅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개척하고 지유와 풍요의 나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시각을 가지고 미래적으로 북한 땅에 어둠이 물러가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 오고, 그들의 눈과 귀와 입이 열리고 발로 뛰어 걸을 수 있는 그날이 오도록 기도하고 있다.
“찬송가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찬송은 이사야 35장으로 작사한 찬송이다.
https://youtu.be/MZVrTe7jwk4?si=q1YKxVRLJhn6gGV7
| 1 |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
| ♬ 후렴 |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
| 2 |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 볼 때에 모든 괴롬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 ∼ ∼ 후렴 ∼ |
| 3 | 마른 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물 흐를 때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 ∼ ∼ 후렴 ∼ |
| 4 |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겠네 평안함과 즐거움으로 거룩한 길 다니리 ∼ ∼ ∼ 후렴 ∼ |
| 5 |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 자뿐이라 주님 주신 면류관 쓰고 거룩한 길 다니리 ∼ ∼ ∼ 후렴 ∼ |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워 피어 즐거워하며” (1절)
단테의 '신곡'에는 '지옥 대 낙원'(Inferno v. Paradiso)이라는 소제목이 있다. 이사야 34장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대표하는 에돔은 지옥같이 황무한 땅으로 변하는 반면, 35장에는 남은 자들이 '광야와 메마른 땅'이 백합화 꽃이 피는 기쁜 낙원으로 회복된 곳에서 살것을 노래하고 있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2절) 레바논과 갈멜과 사론 세 지역은 비옥함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곳이다. '레바논'은 향기로운 백향목으로, '갈멜'은 웅장한 상수리나무로, 그리고 '사론'은 아름다운 꽃들과 비옥한 목초지로 이름이 나 있다.
시온의 회복은 땅의 회복만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좌절과 절망한 백성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주신다.
"그 때에 소경의 눈과 귀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이며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물이 솟고 시내가 흐를 것이다." (5절, 6절)
하나님께 구속받은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오는' 대로가 생길 것이다.(10절) 그 길은 ‘거룩한 길’인데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 통행하는 도로이며, '깨끗하지 못한 자'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구속받지 못한 자들은 그 길을 지나지 못 할 것이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10절) '고엘'의 '몸값을 지불하고 풀어주는 '속량을 받은 자들‘이 여호와께 돌아오고 시온에 정착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항상 희락이 넘칠 것이며 기쁨과 즐거움을 얻음으로 슬픔과 탄식이 달아날 것이다.
⛾ Today’s dish
1. 광야의 소리
광야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의지하던 대상이 제거된 자리를 의미한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Midbar)이다. 이 단어는 ‘다바르’(Davar)라는 ‘말씀’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광야는 말씀이 사라진 곳이 아니라, 말씀만 남은 자리이다.
광야는 소음이 사라진 곳이기에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이 더 분명하게 들린다. 그래서 모세도, 엘리야도,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광야를 걸었고, 광야에서 살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광야를 경험할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신실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일하는 사명자가 된다.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광야가 아니라 온갖 잡음이 들리는 도심지 같아서 듣고 싶은 광야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곳이 되어 가고 있다.
광야는 성경에서 언제나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물이 없고, 길이 없고, 방향을 잃기 쉬운 곳, 사람의 힘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자리, 그곳이 바로 광야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의 이스라엘은 그러한 광야 한복판에 서 있었다. 나라는 무너져 가고, 정의는 사라졌으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입술에 남아 있을 뿐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없던 때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계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선언을 하신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꽃이 피어 즐거워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으로 역사와 시간의 방향을 바꾸시는 분이라는 선언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신다.
'광야가 기뻐한다'는 말은, 환경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존재의 이유가 회복되었다는 뜻이다. '메마른 땅이 즐거워한다'는 것은 비가 조금 내렸다는 정도의 변화가 아니라, 생명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증언이다.
'사막에 꽃이 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약속의 성취이며, 그 약속은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져 있다는 뜻이다.
이사야 35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 현실의 광야를 보고 절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광야를 낙원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미래를 보고 있는가?
사람들은 부정과 부패와 폭력과 무자비, 환경오염, 소유와 분배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을 혁명과 개혁과 재건과 폭력으로도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갈망한다.
IS는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고 피의 혁명과 테러를 일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시대는 피의 보복만 반복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새 시대가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사야는 그런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세상의 모든 열방을 심판한 이후 메시야 왕국이 도래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사야 34장은 악한 나라와 통치자와 악한 백성들을 심판하고, 35장은 공의와 자비로운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왕, 새로운 백성들이 살게 되는 새 예루살렘을 예언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새로운 나라의 조상으로 부르시고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은 나라를 세우셨다.
세상을 물로 심판한 이후 새로운 땅의 주인이며 새로운 조상으로 노아를 부르셨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약속의 땅에서 12지파들이 자기중심적으로 헤게모니를 쥐려고 하였던 사사시대를 청산하고 신본주의로 예배 왕국을 꿈꾸던 다윗 왕국을 세우셨다.
유다 백성들의 배교와 범죄로 바벨론의 몽둥이로 심판을 받고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였던 남은 자들을 해방하고 스룹바벨을 통해서 유다 나라를 회복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초림으로 구 이스라엘에서 새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새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다.
교회 시대에는 교회의 세속화와 부패들로 인해서 다시금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남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새 하늘 새 땅에서 새로운 시대가 완성된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1절) 라는 예언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대표적인 세력인 에돔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노래로 표현하였다.
시온의 회복은 이스라엘만 아니라 전 우주적인 회복을 찬양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적인 통치와 관련하여 로마서 9장에서 11장까지 이스라엘의 미래를 설명하고 난 후 결론적으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로마서 11:36)으로 찬양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최종적 구원은 전 우주적인 회복임을 보여주고 있다.
메시야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격려와 축복과 구원을 허락하신다. 여호와의 구원이 임하기 전의 인간의 상태인 '청각과 시각 장애인' (5절), '저는 자', '말못하는 자'(6절)들의 절망적인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된다.
2. 시온의 영광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여실 때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괴롭히던 에돔이 멸망하고 남은 자들이 시온에서 회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통치자가 새로운 백성들을 다스리는 이상적인 나라가 실현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세 가지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다.
광야의 사막에서 물이 솟아나고 사막이 시내로 바뀌고, 물을 가둔 저수지와 물의 원천이 흐르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백합화 같은 꽃들이 피어나고 승냥이와 온갖 짐승들이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난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의 지형을 대입하여 시온의 회복을 노래하였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여호와의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구원의 하나님이 시온으로 오심으로 약한 자가 즐거워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고, 겁내는 자가 굳세게 된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이 보고, 장애인들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어지며 저는 발이 사슴의 발과 같이 뛰어다니는 복음의 자유가 올 것이다.
그곳에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거룩한 대로가 열린다. 그 길은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고 구속받은 자들만 출입할 수 있다. 마치 코로나 팬데믹 때에 방역증서가 없는 사람은 출입국을 하지 못했던 것과 같다.
시온의 새 땅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우매자 들과 사자나 사나운 맹수들이 없는 평안하고 안전한 길이 열린다. 구속받고 속량 받은 자들이 들어가서 기쁨으로 노래를 부르고 영영한 희락과 슬픔과 탄식이 사라진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는 시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7-10절)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회복 운동은 땅의 상태를 변화시킴으로 절정을 이루지만, 땅의 회복은 시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시온과 땅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땅의 갱신과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준다.
종말의 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새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베풀어질 것이다.
시온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뿐이다(10절)
속량을 받지 않고서는 누구도 여호와의 백성들이 될 수 없음을 말하였다. 속죄는 인간이 자기 능력이나 선행에 의하지 않고 오직 은혜로 인해 주어지는 믿음뿐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속량을 받은 자들이 거주하는 시온에서 누리는 기쁨은 영원할 것이다(10절) 시온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복이 구현되는 장소이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있게 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요한계시록 7:17, 21:4)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비참한 상태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일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묵상함으로써 신앙이 더욱 뿌리를 내리고,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히브리서 12:1)
이사야 35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광야(midbar)는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거룩한 길이 시작되는 자리다. 그리고 하나님은 꽃이 핀 후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그가 오심으로 꽃을 피우시는 분이다. 신앙은 문제의 제거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을 확보하는 것이다.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슬픔이 왕좌에서 내려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 dessert
1. 나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하나님의 사람인가?
2. 나는 열국과 에돔의 심판을 기정사실로 믿고 염려와 두려움 없이
시온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역에 참여하고 있는가?
3. 나는 교회가 이 땅에서 시온이라는 사실을 알고 교회의 영광과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온의 남은 자로 거룩하게 살고 있는가?
⛑ Prayer
주님! 우리를 시온의 남은 자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장차 열방과 에돔의 심판을 알고 어떤 방해나 대적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시온의 영광을 위해서 남은 자의 사명을 다하게 하옵소서.아멘!
♡ Chef.Rev.JK.Kim/Busan, Korea ♡
⛑ 하늘 밥집(The Sky Restaurant)은 하늘 양식(Manna)을 나누는 집(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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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내 영혼이 은총입어 - 가수 남진 장로
https://youtu.be/3OGfhvVY2jQ?si=6V_s3r8muCfaEaVy
PLAY
♬ [날마다 감사찬송④] 고단했던 하루 끝, 내 영혼을 은혜로 적시는 감사찬송가 6곡
https://youtu.be/glCIh5ZFyv8?si=ZgHEjx5zypwbISrK